주일말씀
2008년 봄 수양회 주제 2 강 (임이삭)
하나님을 믿으라.
말씀:마가복음 11:11-26
요절:마가복음 11:22 “예수게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사람은 누구나 열매 맺는 삶을 살고 싶고, 큰일을 하고 싶고, 위대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막상 힘든 현실 앞에 부딪히면 마음이 약해지고 주눅이 듭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나 자신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나의 역량과 가능성을 가지고 상황을 예측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진 능력과 , 환경과, 가능성의 한계에서 맴돌 때 우리는 일생 한계적인 소심한 삶을 살며 보잘 것 없는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어느 날 한 꿈을 꾸었습니다. 삽으로 무언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포크레인을 가지고 내 곁에 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을 알지도 못하고 와서 도와달라고 말 한 적도 없었고 내 일이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다 하려고 했습니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그 사람은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떠나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만약 제가 그 때 저를 도와 주세요 라고 한 마디만 말했어도 그 사람은 나의 일을 다 해주었을 것이고 내 일은 순식간에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능력은 마치 호미와 삽 한 자루와 같습니다. 이것으로 일하면 조금만 일해도 팔이 아프고 온 몸이 피곤해 집니다. 한 일도 보잘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포크래인의 힘과 같습니다. 크고 작은 산들도 다 깎아내고 깊은 골짜기도 메워서 평탄하게 하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포크레인을 운전하는 천사들을 이미 우리 곂에 보내어 우리들의 일들을 도와주시고자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능력있는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보지 못하고 구할 줄 모르고 내 손의 힘으로 일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어리석은 사람같이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 고 하십니다. 나의 힘 나의 지혜를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을 받는 축복된 삶을 살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인생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축복된 사람들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곳에 오신 모든 분들이 이런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베다니에서 나와 예루살렘 성전으로 오시는 길이었습니다. 이번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한 마지막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새벽기도를 하시느라 아침식사를 못하셨는지 몹시 시장하셨습니다. 그래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멀리서 보시고 기대를 가지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가까이 가서 아무리 찾아 보아도 잎사귀 외에는 열매 하나가 열려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지만 저주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만약 이때 무화과 나무에 무화가가 몇 개라도 열려 있었다면 시장하신 예수님께 귀히 쓰임을 받는 가장 축복된 무화과 나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많은 열매를 맺으라는 예수님의 축복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무화과 나무는 예수님께 드려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에서 하나의 열매도 갖지 못함으로 쓰임 받는 축복의 기회를 잃고 오히려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꼭 필요하실 때가 있어 쓰시려는 순간이 찾아 올 때가 있습니다. 축복을 받아 쓰임 받을 수 있느냐 기회를 잃어버리고 평생 후회 하느냐 하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우리가 쓰임 받는 축복된 자들이 되도록 준비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며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축복과 사명을 주셨습니다. (창1:28)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때 기쁨이 있고, 사는 보람이 있고, 행복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노아시대에나 소돔 소모라 시대 사람들은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와 같이 물질 문명의 풍성함은 있었지만 그 내면에 하나님께서 원하신 거룩한 열매가 없었기 때문에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가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는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고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는 성령 충만함으로 맺게 되는 우리 내면의 아름다운 성품의 열매임을 알 수 입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심령에 사랑의 열매, 희락과 화평의 열매, 오래 참음과 자비의 열매, 양선과 충성의 열매, 온유와 절제의 열매 같은 9가지 성령의 열매가 우리 내면에 풍성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성령의 열매를 맺으려면 항상 성령 충만함 가운데 거하고 말씀을 순종하는 생활을 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중에 풍성히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는 생명을 구원하는 전도의 열매입니다. 전도를 통하여 한 생명을 구원하는 열매를 보실 때 하나님께서 심히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내적 열매와 전도의 외적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축복된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풍성한 열매는 맺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다만 얼마의 열매라도 맺음으로 주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받지 않고 귀히 쓰임 받을 수 있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잎만 무성한 성전을 깨끗케 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성전으로 가셨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악한 왕 헤롯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위해 무려 70여년에 걸쳐 지은 거대한 그 시대 최고의 건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볼 때에 그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하리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상을 보았을 때 전혀 아니었습니다. 제사장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거룩한 표정을 지으며 왔다 갔다 했지만 그 내면에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과 사람들에 대한 상한 목자의 심정이 매말라 있었습니다. 성전 안에는 말씀을 가르치는 소리, 기도소리, 찬송소리 대신에 짐승 우는 소리, 장사치들의 외치는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예수님은 분노하시고 채찍을 만들어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그리고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 나무에 무화과가 있어야 하듯 성전에는 기도와 말씀과 찬송이 있어야 하는 곳입니다. 고린도전서 3:16,17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
하나님께서는 보이는 건물의 성전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과 마음을 성전으로 삼아 계신 분이십니다. 우리 자신의 몸과 마음이 성전입니다. 그런데 우리 심령에 말씀이 없고 세상 만민을 위한 기도가 없고 세상 욕심과 염려와 근심으로 가득하고 더럽고 헛된 생각이나 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님께서는 노하시고 채찍으로 때려서라도 우리 마음의 성전을 깨끗케 하실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주님께서 진노하실 강도의 소굴이 되지 않았는지 돌아보며 마음에 낀 더럽고 추한 것들을 회개하기에 힘써 하나님 기뻐하시는 영적인 생각들, 기도와 말씀과 찬양으로 가득 채워 지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 몸도 항상 깨끗하고 건강하게 관리하여 하나님 역사를 위해 봉사하며 이웃을 섬기는 일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믿음의 능력을 가르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다음 날이었습니다.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보니 무화과나무가 뿌리 채 말라 있었습니다. 이를 본 베드로가 놀라서 말했습니다.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푸른 나무가 마르려면 톱으로 잘라 놓아도 보통 일주일은 되어야 마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그 푸르고 청청한 나무가 하룻만에 뿌리로 부터 마르고 말았습니다. 잎사귀는 무성한데 열매가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한 사건과 겉만 화려하고 내면은 강도의 소굴이 되버린 성전을 분노하시고 채찍으로 몰아내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어떤 것을 배울 수 있습니까?
그것은 크고 화려한 외적인 겉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적인 열매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물질이나, 세상의 명예 같은 눈에 보이는 것은 언젠가는 떨어져 말라버릴 잎사귀와 같은 것들 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관심은 열매보다는 겉에 보이는 잎사귀를 더 크고 아름답게 가꾸고자 합니다. 더 많은 물질을 쌓고 좀 더 높은 명예를 얻고, 좀 더 편리한 삶을 추구합니다. 그렇다고 잎사귀가 나무에서 필요 없는 것이 아닙니다. 잎사귀에게는 햇빛을 받아 영양분을 만들어 열매가 잘 자라도록 해주는 귀한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정과 직장, 물질이나 세상적인 어떤 지위나 재능을 잎사귀로 주셨습니다. 이러한 잎사귀들은 풍성한 영적인 열매를 맺는 일을 하는데 존재 목적이 있습니다. 열매 맺는데 양분이 가지 못하고 잎사귀 자체에 머물러 있다면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 나무의 꼴이 되고 맙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정, 직장, 물질, 재능, 각종 은사들의 잎사귀를 통해 영적인 내적 외적 열매를 맺는데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베드로는 자신도 예수님 같은 능력을 갖고 싶고 열매도 맺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베드로나 우리가 어떻게 이런 능력도 갖고 열매 맺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22절에서 “ 하나님을 믿으라 ” 라는 말씀을 우리에게 답으로 주십니다. 그러면 이 간단하고 외우기 쉬운 말씀 속에 숨겨져 있는 뜻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가지신 능력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기도한 것은 의심치 말고 받은 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능력을 덧입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다른 아무 것도 의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어느 정도까지 큰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지 말씀해주십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산도 들리어 바다에 던지는 능력이 나타나고, 태양도 멈추게 하는 능력도 나타나고, 마른 뼈들이 살아나게 하는 능력도 나타난다고 하십니다. 한마디로 사람들의 생각과 상식을 뛰어 넘는 놀랍고 신기한 일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믿고 신기한 체험을 누리는 복된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영국의 구갈렙 선교사님은 시골 외아들로 태어나 키도 작고 마음도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내려야 할 곳에서 사람들이 두려워 눈치를 보느라 초인종도 누르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좁고 어두운 골목길로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대학생 때 우리 UBF에 인도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되자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에 대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마음이 강해지고 담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영국 킹스턴에서 드보라 선교사와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영국 삼성의 SDA회사에서 키 큰 영국 사람들 속에서 당당히 일하고 있습니다. 누가 구 갈렙 선교사를 이렇게 한 것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이렇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이런 신기하고 놀라운 능력을 언제나 부어 주십니다. 우리에게는 나름대로 산처럼 보이는 것들이 한 두 가지씩은 있을 것입니다. 학교의 전공공부가 산처럼 느껴지는 분들도 있고 직장에 들어가기가 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양을 얻고 구원역사와 제자양성 역사를 섬기는 것이 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물질문제나 자녀문제나 건강문제 등이 산처럼 다가오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도전하면 하나님이 불가능을 가능케 하십니다. 하지만 이런 승리와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내면에 불신을 심는 사단과의 싸움에서 먼저 승리해야합니다. “ 나는 할 수 없어 ” 라는 부정적인 생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2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우리의 이성과 경험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가로 막는 장애 노릇을 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도 이 일은 못하실 거야 하며 부정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지만 너는 아니야 라고 말하는 사단이 심는 생각을 물리쳐야 합니다. 설마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실까 하는 생각도 물리쳐야 합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과 의심을 이길 수 있습니까? 사단을 이길 수 있는 최대의 무기는 기도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할 때 의심이 물러가고 사단이 물러갑니다.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확신이 생깁니다. 심령에 변화가 일어나고 믿음이 견고해집니다. 우리가 기도한 것은 씨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어머니의 모태에 아이가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씨가 안 보이는 가운데 자라나고 있고 모태의 아기가 안 보이는 가운데 자라다 때가 되면 우리 눈에 나타나듯이 우리는 때로 자신이 기도했던 것도 잊어 버리기도 합니다. 씨가 안 보이는 가운데 자라나고 아이가 모태에서 안 보이는 가운데 자라나서 어느 땐가 우리 눈에 나타나게 되듯이 기도한 것은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방법으로 꼭 이루어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100세 된 자기와 90세 된 할머니 사라를 보면서도 하나님께서 하늘의 뭇 별 같은 자손을 주신다고 하신 약속을 믿었습니다. 도저히 바랄 수 없는 것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어떤 때는 의심에 빠져 힘들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의심을 물리치고 다시 믿었습니다. 그랬을 때 아브라함은 마침내 이삭을 낳았고, 하늘의 허다한 별과 같고 해변의 무수한 모래 같이 많은 열매를 맺고 믿음의 조상이란 아름다운 이름을 얻었습니다. 믿음이란 어떤 불가능한 문제 가운데서도 기도하고, 기도한 것은 이루신 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합당한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 마음에 걸리는 사람을 다 용서하고 사랑의 마음을 품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60년의 삶 속에서 참 목자요 참 아버지가 되셔서 부족한 기도도 다 받으시고 삶 가운데 이루어 주셨습니다. 저는 1949년 해남의 시골 마을에서 1남3녀의 가정에서 독자로 태어났습니다. 세 살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조부모님과 어머니와 누나들 속에서 자랐습니다. 할머니와 부모님은 시골 마을 에 복음을 전하러 오신 분들에 의해서 믿음을 갖게 된 마을의 몇 분 안 되는 신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믿음의 영향을 받고 자라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때 교회 부흥회를 통해 어릴때 부터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게 지은 모든 죄를 회개하고 사죄의 은혜를 덧입고 거듭나고 하나님 앞에서 가치있는 삶을 살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가까운 친척도 없는 외로운 가정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시고 크신 능력과 사랑으로 참 아버지가 되시고 그 자녀들과 영원히 함께 해 주신다는 말씀은 저에게 가장 귀하고 축복된 말씀이 되었습니다.
60년대 초 가정적 국가적 형편에서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를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80-90% 학생들은 학교를 마치면 농사일을 하거나 도시에 나가 기술을 배우는 때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린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중학교 뿐만 아나라 고등학교까지 다닐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가는 것은 태산처럼 힘들어 보였습니다. 당시 저의 마을에서 외아들을 서울 동국대학에 보낸 동네 부자가 있었는데 4년 대학을 보내면서 40여마지기의 논과 집과 소까지 다 팔고 거지가 되다시피 하여 서울로 가는 것을 보며 대학에 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홀어머니와 여동생만 있는 가정 형편과 시골 고등학교 출신의 실력으로는 대학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같이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가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머슴에게 줄 세경으로 대학 등록금으로 마련하고자 머슴을 내 보내고 농사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를 몰아 쟁기로 논과 밭을 갈았습니다. 낮에는 일 하고 밤에는 책을 들었습니다. 한번 밖에 없는 삶을 가장 보람 있는 일을 위해 살 수 있는 길로 인도해 주시고 합당한 대학에 꼭 갈 수 있게 해 주시길 새벽을 깨어 기도하였습니다. 저는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오직 기도하며 도전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68년 11월경 대학에 가려면 고등학교 전 과목을 평가하는 예비고사 시험에 합격해야만 대학 본 시험을 볼 자격이 있다는 새로운 제도가 발표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열심히 하지 못했던 몇 과목들이 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열심히 해 둘 것을 하며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고 남은 1개월간 하루 4-5시간만 자며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비고사는 본 고사 입학정원의 1.5배수만 뽑았다고 하는데 떨어진 줄만 생각했던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크신 은혜를 베푸사 합격시켜 주셨습니다. 가정 형편과 기도했던 방향과 저의 적성에도 초등교사가 되는 것이 좋아 광주교육대학에 원서를 냈습니다. 교대에 가려면 실력도 좋아야 했지만 미술과 음악 실기시험도 있었습니다. 저는 준비한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광주교대 입학시험은 해마다 3-4대 1의 높은 경쟁률이었는데 갑자기 생긴 예비고사로 말미암아 경쟁률은 1:1이 되어 버렸습니다. 간단한 신체 검사만 하고 무시험 합격되었습니다. 이것은 광주 교대 역사에 전무후무한 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국가의 법과 제도까지도 그의 뜻 가운데서 바꾸시거나 만드셔서 기도하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살 수 있도록 기도한 저의 기도를 하나님은 기억하셨습니다. 대학에 오고자 광주로 올라 올 무렵 고향 교회의 전도사님은 광주에 가면 대인동에 있는 대학생 성경읽기 선교회를 찾아가서 이 여호수아 목자님을 꼭 만나보라고 약도까지 자세히 그려주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 분은 이 여호수아 목자님의 고향 친구이고 믿음의 선배였으며 대인동 UBF 센타에 와 본적이 있었던 분이었습니다. 이 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인 섭리 가운데 저를 UBF로 보내주셔서 캠퍼스 개척과 세계선교를 위한 역사에 오늘까지 쓰임 받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불같은 열정과 사랑으로 교사의 축복과 사명을 감사하며 학생들과 즐겁게 공부하고 뛰놀며 시간 가는 것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23세부터 교사가 된 저에게 중마 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 눈에도 아름다와 보이는 자매들이 있었습니다. 만약 저의 감정과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좇아 결혼하였다면 오늘의 저는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뜻 가운데 결혼 하기로 마음 먹고 하나님께서 비젼과 방향을 주시도록 1개월간 작정 기도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도 소중한 결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결단과 기도를 받으셨습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캠퍼스 개척과 세계선교 역사를 위해 UBF에서 목자의 가정을 이루는 비젼과 소원을 마음가운데 일어나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리브가 동역자를 가장 합당한 동역자로 허락해 주셔서 75년 10월에 믿음의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할 때 주셨던 비젼과 소원대로 지난 33년동안 광주 시온성 조상의 가정으로서 수 많은 선교사님들을 파송하며 목자 가정들을 세우는 하나님 역사에 쓰임 받게 해 주셨습니다.
80년대 초 산수동 센타에서 부터 학생회 역사가 부흥하기 시작하여 83년 중흥동 센타를 , 93년에는 조대 백악센타를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제주와 목포와 순천과 광주 2,3,4,5,부까지 개척하는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내 평생 광주 역사가 400명대까지 부흥하는 것과 센타 하나만 건축하고 죽더라도 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80,90년대에 이런 역사를 다 이뤄주셨습니다. 한 번의 센타가 아닌 세 번의 센타를 짓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큰 용봉동 센타에서 예배드리는 놀라운 축복까지 받게 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저의 성격에 가장 합당한 직장의 축복을 주셨고 가장 귀한 캠퍼스 개척과 세계선교 역사를 위한 역사에 불러주셔서 평생을 행복과 보람 속에 살아올 수 있는 축복을 허락해주셨습니다. 또한 가정 가운데에도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받기 까지 길고 긴 인내의 연단이 있었고 요셉과 다윗도 연단과 인내의 시련이 있었듯이 저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많은 시련과 인내의 연단을 받아야 했습니다.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아버지를 불러본 적이 없었던 저는 자녀들에게는 다정한 최고의 아버지가 되어야겠다고 항상 생각하였습니다. 70년대 후반에 광주에는 학사가정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정을 이룬 분들이 대부분 선교사로 가셨기 때문입니다. 저와 동역자는 광주에 학생회 역사를 여호수아 목자님과 동역하여 섬길 학사 목자 가정이 꼭 있어야 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러나 저는 먼 해남에서 근무하고 있어 언젠가 광주로 발령이 나면 그때 자연스럽게 동역하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동역자는 이 일이 시급함으로 저의 인사 이동과 상관없이 우리 가정이 광주로 갈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동역자의 말을 인정하면서도 문제는 저 혼자 해남에서 언제 이동될지 알 수 없는 기간 동안 귀엽게 자라는 이숙이와 이삭이를 보지 못하고 동역자와 떨어져 살아야하는 결단을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를 두고 여러 날을 번민하면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말씀이 생각나게 했습니다. 썪는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하는 결단 할 힘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80년 2월 광주 산수동에 집을 사서 이사하였고 이 때부터 광주 역사의 그루터기 목자 가정으로 쓰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8년간의 외지생활은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처음 3-4년까지는 견딜 만 했지만 5년 6년이 지나자 너무도 힘들고 지쳐갔습니다. 해마다 2-3월이 되면 마치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고 물은 제자들처럼 힘든 외지 생활의 끝은 언제냐고 눈물을 흘리며 물었습니다. 하루가 천년처럼 길고 지루했습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도서 벽지에서 근무하지 않아도 되고 가족과 함께 안정된 생활도 하며 자녀들 교육도 시킬 수 있는 경기도와 인천 등으로 옮겨 갔습니다. 외지 생활에 지친 저는 동역자에게 우리도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말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제 우리 가정이 아니더라도 광주에 안정된 직장과 가정을 가진 학사 가정들이 생겼으니 그렇게 해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동역자는 이삭이 흉년의 때에 애굽으로 가지 않고 약속의 땅 그랄을 떠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듯이 믿고 인내하자고 하였습니다. 동역자마저도 저의 외로움과 고통을 모른것 같아 야속했습니다.
외지 생활은 자녀들 교육에 무슨 역할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자신의 모습을 느껴야 했습니다. 동역자도 자녀들도 내가 어찌할 수 없고 모두 하나님의 것임을 깊이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또한 아무리 가난해도 가족들이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도 절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외지에서 자녀들을 위해 실제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오직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참 아버지가 되사 가르쳐 주시고 지키시고 인도해 주셔서 하나님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자들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지혜를 주시도록 다니엘서 말씀인 “ 하나님이 이들에게 지혜와 명철을 더하시니라” 라는 말씀을 액자에 써서 벽에 걸어 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믿음 안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숙이는 중학생 때부터 주일 예배 피아노 반주를 섬기고 최근까지 찬양역사를 섬기었고 사위 대연 목자까지도 드럼으로 찬양 예배 역사를 섬기게 해 주셨습니다. 큰 아들 이삭이는 화학공부와 컴퓨터를 잘하는 은사를 살려 센타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있으며 며느리 성경 목자도 주일 찬양 인도와 관현악 연주를 하며 자매 팀들을 말씀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막내 아들 베드로는 장차 세계적인 JBF 목자가 되는 비젼 가운데 미국 어학연수를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온 가족이 하나님 역사를 함께 동역하는 귀한 동역자가 되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 크신 은혜를 생각할 때 마다 한없이 행복하고 감사하는 마음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물질 문제를 통해서도 연단을 받게 해 주셨습니다.
83년 중흥동 센타 건축역사 때 약정한 건축 헌금을 감당하기 위해 집을 판 후 10여년 동안 오르는 전세금을 위해 대출을 받아야 했기에 물질적 어려움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너무도 힘이 들어 양봉을 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아 몇 년간 해 보았지만 벌침만 많이 맞고 꿀맛만 조금 맛보다 팔아버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물질 문제를 하나님의 방법으로 도와 주셨습니다. 자녀들이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게 해 주심으로 학비를 적게 들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숙이가 졸업과 동시에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직장을 갖게 해 주셨고 이삭이는 BK21이 생겨서 석박사 공부를 하면서도 오히려 용돈까지 받으며 공부하게 해 주셨으며, 베드로는 학사장교로 가서 돈을 벌어오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명예퇴직을 하면서 받은 물질로 그동안 지고 있던 물질의 모든 빚을 하룻 만에 다 갚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일하지 않아도 평생 연금을 받으며 살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나의 힘과 노력으로 물질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할 때는 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축복해 주심으로 해결되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한때 선교사로 살고자했던 소원이 있어 해외파견 교사 시험에 응시도 해 보았지만 떨어져 포기하였고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하고 지원하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1월 키르키스탄 김갈렙 선교사님을 광주에 보내주시고 선교보고를 듣는 중에 저를 그곳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끼며 선교사로 가고자 하는 비젼과 꿈을 가슴속에 가득 부어 주셨습니다. 자신이 선교사가 될 것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내게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신기하고 놀랍기만 했습니다. 키르키스탄이란 나라는 이름조차도 생소했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였습니다. 정년까지는 6년이나 남아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를 부르는 것 같고 빨리 가고 싶어 2-3년만 더 근무하며 자녀들 결혼도 시킨 후 가고자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6월 탁구를 한 후 성대에 부종이 생겨 병가를 얻어 누워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갑자기 목만 치료되면 바로 가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바꿔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감 며칠 전에 신청한 명예퇴직은 순적히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2-3년 걸릴 줄 알았던 자녀들의 결혼도 10개월 동안에 이숙이와 이삭이가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을 이루도록 해주셨습니다. 10년이나 동역자들이었던 목자들을 사위와 며느리가 되니 피차 부담이 없고 너무나 편했습니다. 지난 4월21일에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요셉이의 외할아버지가 되는 은혜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선교사로 가면 갈렙 선교사님과 동역하여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주고 하모니카를 가르치는 봉사를 하려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지난 2월 오쉬의 공과대학에서 그동안 선교사님들이 5년 동안이나 한국어과 개설을 건의했지만 무반응이었던 학장님이 갑자기 한국어과를 개설하려고 하니 좋은 한국어 교수님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해 왔고 제가 그곳에 올 것을 알고 있었던 선교사님은 저를 추천하여서 꿈에도 생각지 못한 외국 대학에서 오는 9월부터 우리의 한글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는 축복도 해 주셨습니다.
키르키즈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지난해 키르키스탄에 다녀 올 때 가져온 책을 하루5-6시간씩 공부하면서 도전하였을 때 차츰 입과 귀와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11월 키르키스탄 오쉬에서 찌모르,에밀란, 딜샤트 세 형제를 광주에 보내주셔서 이들을 매주 예배에 인도하며 더불어 원어민 발음으로 언어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러나 키르키스탄은 이슬람의 국가로서 드러내어 마음대로 전도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또한 경제적으로 우리나라 50-60년대 정도의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전기가 부족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전기가 나가고 겨울에는 영하 20-30도의 추운 날씨 때문에 수도가 얼면 겨우내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추위를 잘 타는 제가 길고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기에는 살기가 힘든 곳입니다. 심심찮게 교민들의 안전에도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제가 이 모든 힘든 조건들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친히 필요한 것을 앞서 예비하시고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할 때 그곳에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고 캠퍼스에 아름다운 선교의 열매를 넘치게 맺게 될 것을 믿습니다.
한 참 귀엽게 자라는 요셉이를 보는 즐거움을 부인하고 또한 세 자녀들 모두 하나님께서 가장 선하게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기쁨으로 그곳에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을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며 값지고 보람되게 살려는 결심과 소원을 가지고 기도하였을 때 응답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앞서 행하시며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서는 저의 남은 삶도 부족함이 없이 인도해 주실것을 믿습니다.
조상님들이 남겨주신 논 밭을 경작하며 살고 있었을 자를 36년 6개월 동안 초등교사로서 수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축복과 캠퍼스 개척과 세계선교 역사를 섬기는 UBF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불러주시고 부족한 가운데 쓰임 받게 해 주시고 이제는 선교사로 까지 쓰임 받도록 인도해 주신모든 은혜를 할렐루야 감사 찬송을 드립니다.
우리의 능력은 호미자루처럼 약하지만 하나님 안에는 수 백대의 포크레인보다 더 힘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지혜는 어린 아이같이 너무도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기도함으로 우리 모두 아름다운 인생의 열매를 맺는 축복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