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
마태복음 10 강
하늘 아빠를 향한 기도
말씀: 마태복음 6:7-15
요절: 마태복음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오늘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주 기도문 말씀입니다. 기도는 무엇입니까? 챨스 크로웨(Charles M. Crowe)라는 학자는 말하기를 “기도는 쇼(show)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에 생명의 호흡기를 사람들의 무대에 꽂지 말고 하나님의 보좌에 꽂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하늘 아버지께 드리는 대화입니다. 나를 지으시고 나를 가장 사랑하시고 나에게 큰 기대를 갖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자녀인 내가 말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지난 주 어버이날 다들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든지 편지를 쓰든지 했을 것입니다. 저도 아이들에게 편지를 받았는데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평소에도 같은 집에 살고 많은 대화를 나누지만 편지를 통해서 아이들의 진솔한 마음을 전해 들으니 참 감동이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을 담아서 기도를 드릴 때에 하늘 아버지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고 감동받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저희들이 기도를 사랑할 수 있길 바랍니다. 열심히 기도합시다.
사단은 우리가 하나님과 친해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대로 기도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일이 많고 바빠도 기도시간을 줄여서는 안 됩니다. 미얀마 선교사였던 아도니람 져드슨은 그런 말을 했습니다. “단호한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기도시간을 유지하십시오. 인생은 짧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사업과 친구들 때문에 당신의 하나님을 빼앗기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 하십시오. 절대적으로 기도시간을 확보 하십시오” 이시간 이후로 1,1,1 운동에 동참해서 적어도 하루 1시간 이상 기도하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처럼 기도생활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누구를 향해서 기도할 것인가?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가르쳐 주십니다.
먼저 기도의 대상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기도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9절에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라고 했습니다. 기도라고 하는 것은 허공에다 대고 주문을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괜히 알아듣지도 못한 말로,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지난 봄 수양회 때에 새벽에 선운산 등반을 하였습니다. 가다 보니까 작은 암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암자에 한 아주머니가 앉아서 염불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뭐라고 하시는가 가만히 가까이 가서 들어 봤더니 “운수대통, 무병장수” 이 말을 계속 반복했습니다. 수 십 번, 수 백 번 반복하는 것 같애요. 이방종교에서는 이처럼 수 천 번을 외워야 그 신이 눈 길 한번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자꾸 반복해서 잠자는 신을 깨우고, 신을 압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끄럽게 목탁까지 두드리고, 징도 치고, 바알 선지자들처럼 춤을 추고 자기 몸을 칼로 자해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의 대상은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 대상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하늘에 계시다’는 것은 ‘영원히 변치 않으시며 그 능력이 무한하시다’는 뜻입니다. ‘이 땅의 아버지’들은 아무리 자상하고 사랑이 많아도 한계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기력이 쇠합니다. 능력 면에서, 인격적인 측면에서 완벽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실망시킵니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는 전지전능하십니다. 어제께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십니다. 또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라고 한 것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친밀하신 분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문에는 ‘아버지’가 ‘아바’ ‘아빠’로 되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아빠를 부르면서 부동자세로 꼿꼿이 서서 “아버님” “아바마마” 이렇게 안 합니다. “아빠” 하면서 달려와서 아빠 품에 안깁니다. 그리고 재롱도 부르고, 자랑도 하고, 먹고 싶은 것도 사달라고 조릅니다. 그런 자식들을 보는 아버지들은 아빠로서 무한한 행복감을 느낍니다. 아이들이 달려와서 한 놈은 목을 잡고 늘어지고, 한 녀석은 팔을 잡고 늘어질 때에 부모와 자식 간에 친밀감이 깊어집니다. 이처럼 우리가 기도할 때도 어린아이같이 하나님 품에 달려가서 안겨서 하라는 것입니다. 아이가 아빠와 대화할 때에 일정한 형식이 없습니다. 문장구조가 완벽하지 않아도 됩니다. 단어만 나열해도 괜찮습니다. 그래도 아빠 엄마는 다 알아듣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가 낳았기 때문에 다 알아 듣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아빠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기도할 때도 이처럼 자연스럽게 친밀감을 가지고 격이 없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여” 이처럼 우리의 기도에는 분명한 대상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계시며 은밀한 중에 다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미리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길이 가장 좋은 길인지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 아빠와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heart to heart prayer’ 심령이 통하는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우리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빠에게 나아가서 전심으로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깊이 사귀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첫째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가 온 세상 만물과 구별되어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하나님으로서 대접을 받으시도록,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가득 채워지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어느날 성전에 들어갔다가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6:3)” 이것이 바로 우리인생들이 하나님앞에 취해야 할 자세입니다. 우리도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시지 않고 생명과 호흡을 주시지 않으면 무슨 재주로 삽니까? 하나님이 지혜와 건강을 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학교공부를 하며 직장생활을 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의 의무요, 도리입니다.
요즘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들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고 있습니다. 각종 이단들과 안티 기독교 세력들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이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세력들을 물리쳐 주시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루터는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라”고 외쳤습니다.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보다 높아질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온 세상에 가득하도록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하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합2:14).
둘째로, “나라이 임하옵시며” 이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임하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본래부터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하나님이 온 세상에 주인이셨습니다. 그런데 인류의 조상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은 지금 사단이 왕노릇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왕이 아닌데 왕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마귀가 인간세상을 지배하고 온갖 더러운 것들과 거짓된 것들과 음란한 것들로 유혹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통치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를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단의 세력들이 날뛰고 있습니까? 사단은 점점 그 통치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특히 사단은 오늘날 청소년들과 젊은 청년들의 마음을 장악해서 노예 삼고자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각종 음란하고 폭력적이고 감각적인 문화들로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인터넷과 케이블 TV등 영상매체를 통해서 무섭게 파고 들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대구에서 초등학교 학생들이 집단 성폭행을 하여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모두 인터넷과 케이블 TV에서 본대로 모방을 했다고 했습니다.
우리 대학가 주변을 봐도 원룸문화, 동거문화, 동성애 문화, 게임과 술취함, 방탕의 문화 때문에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병들어가고 있습니까? 우리 아이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니 우리 자신들도 정신 못 차리고 있으면 그 마음의 나라를 다 사단에게 내어줄 수 밖에 없습니다. 잠언 4:23절에 “무릇 지킬만한 것 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정말 정신차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위기의식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잠자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우리는 눈을 부릅뜨고 전투자의 자세로 열렬하게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에 음란의 영을 물리쳐 주시옵소서” “탐욕과 거짓, 부정과 부패, 분열과 다툼의 영을 물리쳐 주시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내 마음의 나라에도 더럽고 추악한 사단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지켜 주시옵소서” “날마다 성령께서 내 마음을 다스려 주시옵소서” “북한 땅에도 하루속히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온 땅에 교회들이 세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미얀마에도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키르키스탄에도 우리 임이삭목자님을 통해서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왜 퍼듀 수양회를 갖고 세계각국에 선교사를 파송합니까? 온 세상에 주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주님의 통치영역이 확장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3:10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적 명령도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우리가 온 세상 만방에 복음을 전파하므로 사단의 권세가 파해지고 주님의 나라가 임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늘의 영계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는 인간들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가리워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방해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의 뜻이 베스트입니다. 사람들은 욕심과 교만으로 말미암아 자기 뜻을 앞세웁니다. 자기 계획을 주장합니다. 인간의 뜻대로 인간의 계획대로 하면 낙원이 이루어지고 행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각종 이데올로기와 사상들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배제시키고 인간이 중심이 되는 세상, 인민이 중심이 되는 세상, 소수 권력 집단이 중심이 되는 세상, 인간의 철학과 종교와 문화로 유토피아를 만들어보고자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다 실패했습니다.
요즘 중국을 보십시오. 교회를 핍박하고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자기들의 힘으로 경제만 부흥시켜서 잘 먹고 잘 살고자 하니까 안 되잖습니까? 올림픽을 앞두고 자꾸 악재가 터집니다. 후진타오주석이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그 숫자를 반으로 줄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공안당국이 검열해서 자꾸 선교사들을 쫓아냅니다. 티벳등 소수민족들을 억압합니다. 그러면서도 올림픽은 잘 치러서 자기들만 잘 먹고 잘 살고자 합니다. 그러나 안 됩니다. 하나님이 틀어버리시면 잘 될 것 같아도 막판에 가서 안 됩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당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바벨탑을 쓸어버리는 것 보십시오. 홍수심판으로 다 쓸어버리시는 것 보십시오. 소돔 고모라를 불로 태워 버리시는 것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면 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히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옵나이다” Your will be done. Your kingdom come. Your name be hallowed. 내 이름이 아닙니다. 내 나라가 아니고 내 뜻이 아닙니다. 주님의 나라, 주님의 이름,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그렇게 기도하셨잖습니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시고, 하나님의 주권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회복되어야 진정한 평화와 행복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라고 하면 무조건 “하나님! 이것 주세요” “하나님 저것 주세요” 당장 눈앞에 자기가 필요한 것만 쏟아 내놓습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에게 시급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나의 바른 관계성입니다. 하나님과 나의 영적인 질서가 먼저 회복되어야 합니다. 첫 단추가 바로 꿰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파이프라인이 바로 연결되어야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우리 인생들이 불행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로마서 1장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않고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짐승 모양의 우상으로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불행이 왜 왔습니까? 아담이 하나님의 영광을 끌어내리고 자신의 이름을 높여서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다가 죄가 들어오고 불행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기도문을 통해서 날마다 신앙고백을 해야 합니다. “온 우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만이 홀로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온 세상을 하나님께서 다스려 주십시오. 하나님의 뜻대로 나를 써 주시옵소서”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 중심적인 기도를 할 때에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주기도문을 통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성이 맺어질 때에 우리 안에 천국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도록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하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먹고사는 음식문제 뿐 아니라, 주택과 직장, 학교생활, 자녀교육, 건강문제등등. 우리의 생존에 관계된 실제적인 문제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뭘 그런, 먹고 사는 것까지 째째하게 기도하는가?’ 하면서 성경보다 더 성경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의 힘든 문제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겸손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궁핍하게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선한 일을 행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얼마든지 채워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전공 공부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결혼문제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김상현 목자님은 어느 날 저를 찾아와서 눈물을 흘리며 결혼문제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제가 정말 마음이 동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기도를 하고 전국방방곡곡을 수소문한 끝에 마침내 룻처럼 아름다운 김 룻목자님과 어제 믿음의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나의 현실 문제를 위해서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되 우리 주님은 매일 매일의 삶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주용할 양식이 아니라, 달용할 양식이 아니고,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도 주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매일매일 겸손하게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좋은 것으로 먹이시고 입혀 주실 것입니다.
다섯째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파괴시키고 우리를 불행하게 합니다. 죄는 하나님과 나 사이를 틀어막는 찌꺼기와 같습니다. 시편 66:18절에 “내가 나의 마음에 죄를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 있는대로 빨리 죄를 고백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잠언 28:13절에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일서 1:9절에서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매일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나아가서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회개 기도를 가장 기뻐하십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가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기도를 하긴 하는데 온통 자기를 자랑하는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반면에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나님은 자기 의에 기초한 바리새인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습니다. 겸손하게 회개하며 죄 사함의 은총을 구하는 세리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의로운 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죄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서 죄 사함의 은혜를 구할 때에 주님께서 사죄의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사죄의 은혜를 구할 때에 우리에게 죄를 범한 사람을 용서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내 마음에 용서가 없이 미움을 품고 나아가면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문이 막히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께 일만 달란트(수조 원)나 되는 엄청난 죄의 빚을 탕감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백 데나리온(몇 백만원) 빚진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덧입은 자들로서 너그러이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그 사람까지 품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할 때에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다.
여섯째로,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시험은 유혹입니다. 이 세상에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안에는 여전히 죄의 불씨가 남아 있습니다. 평소에는 괜찮은데 조금이라도 유혹이 되는 정보가 들어오면 금방 그 불씨가 살아나서 스파크가 일어납니다. 음란의 스파크, 혈기의 스파크, 미움의 스파크, 탐심의 스파크가 일어납니다. 시련은 이길 수 있어도 시험은 이기기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시련의 때에는 피땀 흘리며 고생해서 정상에 올라갑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안정된 뒤에 찾아온 시험을 이기지 못해서 인생을 망친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인간적인 의지로 시험을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시험은 함정이기 때문에 얼른 분별할 수가 없습니다. 시험에는 항상 달콤한 미끼가 있기 때문에 알아도 이기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시험에 든 후에 후회하지 말고 미리미리 기도함으로 영적 무장을 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올 초 영국에 갔을 때에 가장 뜨거운 이슈가 폴 메카트니의 이혼소송재판이었습니다. 폴 메카트니는 비틀스의 멤버로서 세계적인 팝 가수입니다. 그런데 25살이나 어린, 자기 딸과 나이가 비슷한 헤더 밀스라는 여인과 잠시 결혼했다가 이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막대한 위자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결국 법원은 폴 메카트니에게 무려 500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판결을 듣고 헤더 밀스라는 여인은 “매우 기쁘고 행복하다”라고 소감을 발표했다는 것입니다. 폴 메카트니는 한 젊은 여인의 유혹에 넘어가서 어마어마한 정신적, 물질적 상처를 입게 된 것입니다. 사단은 지금도 우는 사자와 같이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이 간절히 기도했을 때에 사자굴에서도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지키신 것처럼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 유혹 많은 세상에서 능히 우리를 지키실 줄을 믿습니다.
꽃이 아름다운 있는 곳에 나비가 달려든다고 가능성이 많은 사람일수록, 훌륭한 사람일수록 사단의 유혹이 더 강합니다. 요셉처럼 잘생긴 사람일수록, 다윗처럼 성공의 때에 마귀의 시험은 더 강력하게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 나갈수록 더 겸손하게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야 합니다. 악과 시험은 결코 내가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에베소서 4:27절에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1,22절에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고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나의 연약함을 겸손히 인정하고 날마다 기도할 때에 성령께서 능히 마귀의 궤계를 파하시고 우리를 시험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악으로부터 건지실 것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 아멘.” 이는 송영으로서 주기도문의 결론처럼 중요합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 하나님께 영원히 있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가 효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르짖어 기도해도 그 기도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이 무력하다면 우리가 기도할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영원무궁토록 있습니다. 다윗은 역대상 29:11,12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온 천하의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기도는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영국의 복음전파자 존 낙스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한 민족보다 기도하는 한 사람이 더 위대하다” 이 민족의 장래는 기도하는 우리의 무릎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미래는 기도하는 부모의 부르짖음에 의해서 좌우됩니다. 저희들이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로 날마다 기도함으로 기도의 응답을 받고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축복을 받아 누리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