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
마태복음 16강
아주 잔잔하게
말씀: 마태복음 8:23-34
요절: 마태복음 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우리는 그동안 예수님께서 많은 이적을 베푸시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마태복음 8,9장에는 예수님의 10가지 이적이 나옵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사람들의 병을 고치시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다릅니다. 오늘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연 세계와 영적 세계를 통치하십니다. 이 예수님에게서 우리는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 내가 생각하고 경험한 그 범위 내에서 예수님을 믿을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능력을 제한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겨우 나의 생각이나 경험의 테두리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생각하고 경험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지금보다 더 큰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일부러 광풍 가운데로 몰아 넣으십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대로 어려움이나 위기가 없기를 바랍니다. 사시사철 잔잔한 바다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평탄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우리의 믿음이 자라질 못합니다. 크신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옛말에 “아이들이 한번 큰 병을 앓고 나면 철이 들고 성숙해진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시련과 광풍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능력을 체험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믿음을 키워주시기 위해서 바다 한 가운데로 가셨습니다.
이때에 제자들이 어떤 위기를 만났습니까? 23,24절을 보십시오.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 배에 올랐습니다. 처음에는 너무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때마침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제자들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산들 바람이 --- ” 제자들은 오랜만에 예수님과 함께 뱃놀이를 하게 되어서 참으로 행복했을 것입니다. “아! 행복해, 자주 이런 여행을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갑자기 맑던 하늘에 시커먼 먹구름이 불어 닥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람도 거세게 불어 닥쳤습니다. 파도가 일기 시작하더니 점점 높아졌습니다. 배는 바이킹을 탄 것처럼 이리저리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파도가 물결을 일으켜서 배에 물이 들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일엽편주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반응과 제자들의 마음이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바람이 불고 큰 물결이 들이치는데 잠을 주무시다니. 예수님은 한 번 잠이 들면 누가 떠메고 가도 모를 만큼 둔하신 분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바람이 얼마나 거세게 부는지. 파도가 얼마나 높게 몰아치는지. 그러나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조금도 두렵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는 광풍이 겨우 물 컵에 물이 출렁이는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컵 속에 빠진 개미마냥 난리가 났습니다. 제자들은 배가 곧 가라앉아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들도 대부분 어부로서 항해도 많이 해 보았습니다. 파도도 많이 만났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취해 보았습니다. 고무신을 벗어서 열심히 물을 퍼내 보기도 했습니다. 열 두 사람이 힘을 합하여 노를 저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집채만한 파도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래서 호들갑을 떨면서 말했습니다.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그들의 얼굴은 죽음에 대한 공포로 새파랗게 질려 있었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보면 제자들과 같은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평안하던 가정에 갑자기 경제적인 문제로 평지풍파가 일어납니다. 예상치 못한 사고나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자녀들이 탈선을 한다거나 잘 자라던 양들이 도망가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총체적인 난국을 만나고 있습니다. 날마다 치솟는 유가로 모든 물가가 다 오르고 있습니다. 취업난은 더 치열해집니다. 직장에서는 더 많은 스트레스를 줍니다. 가뜩이나 어려운데 이 나라의 선장이 되어야 할 최고 지도자는 배를 어디로 몰고 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언론에서는 연일 “제 2의 IMF다” “제 3의 유류파동이다” 하며 위험의 적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흉악범죄는 늘어나고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자연재해는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핵전쟁이 곧 터지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실제로 미국 텍사스에서는 ‘버팔로 빌’이라는 한 사이비 교주가 6월 23일에 핵전쟁이 일어나서 지구가 망할 것이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그 지역의 이름이 이스라일 호킨스인데 이 교주는 호킨스라는 성씨를 가진 사람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성씨를 호킨스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또 핵전쟁이 날 것에 대비해서 그 종교시설 주변에는 수십 대의 트럭에 물과 음식물들을 사놓고 종말의 때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6월 23일에 미국전역에서 수많은 인파가 텍사스 그 지역으로 몰려들어서 말세를 대비했다는 것입니다. 그 교주가 이전에도 여러 번 그런 종말의 때 발표해서 거짓말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또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것을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미래에 대해서 막연한 걱정과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는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이런 우리 인생들의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다같이 26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어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예수님은 제자들이 두려워하는 문제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제자들의 두려움의 문제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왜 그렇게 기술이 없느냐?” “왜 그렇게 지혜가 없느냐” “12명이나 되는 놈들이 이렇게 위기관리 능력이 없느냐”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이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습니다. 사실 광풍보다 더 크신 분이 바로 옆에 계십니다. 광풍을 순식간에 잠재우실 수 있는 분이 지금 그들의 배에 타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광풍만 바라보고 두려워 떠는 그들의 불신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여러 번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나병환자를 치료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백부장 하인의 중풍병을 말씀만으로 고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베드로 장모의 열병도 손을 만지사 즉시 고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시는 것도 보았습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모든 일들을 다 해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예수님께서 왜 이 광풍을 잠재울 수 없겠습니까?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다면 “주여 죽겠나이다” 호들갑을 떨 것이 아니라 “주여, 믿습니다. 주께서 광풍을 잠잠케 하실 것을 믿습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광풍아 잠잠하라” 외쳤을 것입니다. “나병도 고치시고 중풍병도 고치신 주여, 광풍도 잠잠케 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의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앞에 나온 백부장은 이방인인데도 불구하고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태여 자기 집에 들어오시지 않을지라도 말씀만 하시면 하인의 중풍병이 나을 것을 믿었습니다. 뒤에 나오는 혈루증 앓은 여인도 예수님의 겉옷가만 만져도 병이 나을 것을 믿었습니다. 마가복음 2장에 나오는 중풍병자도 예수님께 나아가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지붕을 뚫고 나왔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이름도 나오지 않지만 믿음이 있어서 예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께로부터 그 믿음을 크게 인정받고 칭찬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명색이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많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미 산상보훈 말씀에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주의 사명을 따라 사는 자에게 모든 것을 더해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배를 타고 강 건너편으로 가자’고 제안하신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의 생명을 보호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왜 제자들의 안전을 책임져 주시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이 바로 코 앞에 계시는데, 같은 배에 타고 계시는데 왜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광풍만 바라보았을 때에 믿음의 사건들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약속의 말씀들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말씀은 말씀이고 현실은 현실이었습니다. ‘이렇게 내가 죽으면 처자식들은 누가 돌보지’ 생각하니 한없이 슬프고 두려워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의 슬픔과 두려움을 조금도 동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 그래 그래 울지마. 내가 이 광풍 혼내 줄께. 네끼, 바람아 그쳐라”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제자들의 믿음없음을 책망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언제까지나 징징거리며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제자들은 장차 이보다 더 큰 폭풍우도 싸워야 할 자들입니다. 갈릴리 바다의 광풍 정도가 아니라 지중해의 광풍과도 싸워야 할 자들입니다. 유대 땅의 폭풍우가 아니라 대 로마제국의 폭풍, 로마 황제의 핍박의 광풍과도 맞서 싸워야 할 자들입니다. 이런 그들이 이 정도가지고 벌벌 떨면 되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믿음을 키우시기 위해서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는 주님의 음성은 예수님의 차원 높은 사랑의 음성입니다. 우리가 초등학교 때 소풍가면 선생님이 아주 공손하게 말씀하십니다. “어린이 여러분! 선생님을 똑바로 쳐다 보세요” 그러나 청년이 되어서 군대 가면 어떻게 합니까? “똑바로 못해” “어쭈, 대한민국 남자 맞습니까?” 아주 막 죽여 놓습니다. 한계에 도전하도록 계속해서 다그칩니다. 그렇게 해야 어떤 상황도 헤쳐 나가는 정병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단지 구원 받고 해수욕장에서 뱃놀이나 하는 수준의 신자가 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저 태평양과 대서양에 나가서 어떤 시련과 폭풍우도 이겨내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휘몰아치는 광풍 속으로 일부로 데리고 가십니다. 그리고는 잠시 동안 침묵하십니다. 우리가 죽겠다고 호들갑을 떨고 두려워하는데도 가만히 두고 보십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구원의 손길을 뻗치사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이로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어떤 세상의 세파와 시련도 잠잠케 하시는 주님의 권능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로서 믿음을 배우게 됩니다. 이론적인 믿음이 아니라 실제적인 믿음. 살아있는 믿음, 생생한 믿음을 배우게 됩니다.
다윗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생의 위기를 만났습니다. 정말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위기를 많이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고 기도했습니다. 그때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항상 그와 동행하시고 그를 능력 있게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시편을 읽으면 힘이 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한 역동적인 믿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시편 18장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1,2) ---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6). 그가 높은 곳에서 손을 펴사 나를 붙잡아 주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16,17).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29).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31). 나의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높은 곳에 세우시며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34) 여호와는 살아계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로다(46)”
우리 다 같이 살아계신 하나님, 능력의 주님을 묵상하면서 복음성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를 힘있게 불러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일찍부터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어 세우셨습니다. 그런데도 왜 하나님은 그를 보자기에 싸서 오냐오냐 키우시지 않고 수많은 인생의 광풍을 만나게 하셨을까요? 이는 그가 많은 시련을 통해서 산전수전 다 겪고 큰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나도록 돕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를 메가톤급의 믿음을 가진 믿음의 용사로 키우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광풍을 만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짜증내고 벌벌 떨며 오두방정을 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큰 믿음의 사람으로 키우고자 하시는 뜻이 있음을 발견하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광풍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광풍과 싸워야 합니다. 광풍의 배후에서 나를 집어삼키고자 으르렁거리는 사단과 대항해서 싸워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강건케 하실 것입니다.
사도행전 27장에 보면 사도바울을 태운 배가 로마로 가다가 유라굴로라는 큰 광풍을 만나게 됩니다. 사흘 동안 광풍이 몰아치는데 시커먼 하늘에 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때 선장을 비롯해서 모든 사람들이 사색이 되었습니다. 구원의 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때 바울이 당당하게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에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행27:23-26)”
바울의 마음 가운데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무섭게 몰아치는 광풍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두려워 떨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며 믿음을 심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바울의 믿음대로 한 사람도 죽지 않고 276명 전원이 멜리데 섬에 안착하게 되었습니다. 또 섬에서는 바울이 독사에 물려서 죽을지 알았는데 끄떡 없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있으면 광풍 속에서도 죽지 않습니다. 독사에 물려도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6:17절에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우리가 믿음이 있을 때에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요한일서 5:4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믿음은 승리입니다. 믿음은 능력입니다.
어떤 믿음 좋은 신자가 밤에 산을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 추락하게 되었습니다. 간신히 소나무 가지를 붙들고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너무나 팔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도와 주세요, 살려 주세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네 손을 놓아라. 내가 도와 주겠다” 그러자 그 사람이 소리쳤습니다. “손을 놓으라니요. 저보고 죽으란 말씀입니까?” 그는 또다시 소리쳤습니다. “거기 하나님 말고 또 누구 없어요” 사람이 믿음이 좋은 것 같아도 결정적인 순간에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가. 그가 밤새도록 소리를 치며 낑낑거리다가 아침이 되어서 밑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발 밑이 땅바닥이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손을 놓았으면 밤새도록 고생할 필요가 없었는데 생고생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모든 손을 놓고 주님께 온전히 의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리케 하십니다.
1998년 IMF때에 사업을 하다가 쫄딱 망한 30대 중반의 한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모든 재산을 날리고 아내는 신경쇠약증과 우울증 때문에 병원에 입원을 하였습니다. 집에는 끼니를 걱정하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도 한 때는 잘 나가던 사업가였지만 IMF라는 광풍을 만나서 하루 아침에 알거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 앉고, 자살하는 사람까지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요한복음 15:7절 말씀을 주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는 그동안 자신의 힘으로 살아왔던 것을 회개하고 새벽마다 눈물로 기도하셨던 어머니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잠언 3:6절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에 주님께서 용기를 주셔서 2002년에 대학로에 죽 전문점을 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죽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 주인공이 바로 본죽의 창업자 김철호 집사입니다. 사실 본죽이 성공하리라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그 자신도 ‘죽 쒀서 개 준다’는 말을 떠올라서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시작한 사업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지금은 한국은 물론이요, 일본, 미국에까지 가맹점이 생겨서 700개가 넘는 점포를 개설했습니다. 그는『꿈꾸는 죽 장수』라는 책도 펴냈고 여기저기 많은 자선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내는 선교사로 살고자 하는 소원이 충만하여 베트남에 신학대학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 부부에게 있어서 광풍은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믿음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26b절을 다시 한번 봅시다. “(예수께서)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예수님께서 광풍을 책망하시자 바다는 언제 그랬느냐 싶게 잔잔해졌습니다. 이는 마치 시끄럽게 짖어대던 개가 “쉿, 조용히 해” 하는 주인의 한 마디에 꼬리를 내리고 개집으로 쏙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무섭게 몰아치는 인생의 광풍도 예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면 즉시 잠잠케 됩니다.
28-34절에도 보면 예수님께서 두 사람의 광인으로부터 귀신을 쫓아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28절에 보면 그들이 얼마나 사납게 날뛰는지 사람들이 지나갈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아무도 이 사람에게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앞에서는 이 귀신이 꼼짝하지 못했습니다. 31절에 보니까 귀신들이 벌벌 떨면서 예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결국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가라” Go! 한 마디 하시자 귀신들이 돼지 떼에게로 들어가서 바다에 빠져 몰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딱 두 마디 하셨습니다. “잠잠하라” “그들에게 들어가라” “Be Quiet” “Go” 그러자 광풍도 잔잔해지고 귀신들렸던 자들도 잠잠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보고 사람들이 외쳤습니다.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 앞에 모든 것들이 다 무릎을 꿇고 순종하게 됩니다. 이 예수님께서 나의 주요,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이 예수님께서 나와 항상 동행하고 계십니다. 이 예수님께서 내 인생의 배에 함께 타고 계십니다. 이사야 43:1-3절은 말합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 우리가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가지라고 촉구하십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우리가 힘든 현실문제만 바라보고 두려워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보다 훨씬 크시고 강하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예수님을 믿되 큰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고기를 잡는데 작은 고기만 주워 담고 자꾸 큰 고기는 바다에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왜 큰 고기를 버리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집 후라이팬이 작기 때문에 큰 고기는 그 후라이팬에 안 들어가니까 버린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병신같이 후라이팬을 큰 것을 사든지 큰 고기를 잘라서 튀기면 되지, 그릇이 작으니까 작은 고기만 잡는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우리가 믿음을 갖되 큰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메가톤 급의 광풍을 이길려면 우리의 믿음도 메가톤 급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연단을 많이 받아서 우리의 믿음이 항공모함처럼 커져서 어떤 시련도 헤쳐 나아가는 위대한 믿음의 소유자들로 성장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