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7 강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씀: 마태복음 9:18-34

요절: 마태복음 9: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마태복음 9장에는 여러 종류의 병자들이 등장합니다. 중풍병자, 혈루증 앓는 여인, 맹인, 귀신들려 말 못하는 자. 이들은 참으로 불쌍한 자들입니다. 병 때문에도 불쌍하지만 사회적으로 내 세울 것 하나 없는 천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소자야(son!)” “딸아(daughter!)” 하시며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 주셨습니다. 또한 그들의 병을 치료해 주시고 크게 축복해 주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얼굴이 예뻤습니까? 무슨 특별한 공을 세웠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분이십니다. 저희들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가 배우고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큰 믿음을 소유하여서 큰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18절을 봅시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고 계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을 하며 요청했습니다.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이는 대단한 믿음입니다. 딸이 아픈 것도 아니고 지금 방금 죽었습니다. 숨이 끊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오셔서 손을 얹으면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예수님께서 죽은 딸의 호흡도 돌아오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관리로서 어느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관리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절 하며 간구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겸손한 자인가 알 수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따라가서 딸을 안수해 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한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열 두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인입니다. 그는 혈루증 환자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나가기가 힘들었습니다. 예수님 앞으로 가서 자신의 병명을 밝히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뒤로 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겉옷 가를 만졌습니다. 영어성경에 보면 살짝 터치만 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손도 아니고 겉옷, 그것도 옷자락의 모서리만 살짝 만졌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2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을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와! 참으로 놀라운 믿음 아닙니까? 앞에 관리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손을 얹으면 낫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예수님이 오시지 않아도 예수님과 여인이 대면을 하지 않아도,  예수님과 작은 접촉만 이루어지면 병이 낫겠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권능의 원천으로 보았습니다. 은혜와 축복의 보물창고로 보았습니다. 그 예수님께 터치만 하면 예수님의 권능이 자신에게 쏟아져 들어와서 자신의 병을 깨끗이 치료해 줄 것을 믿었습니다. 그것은 언뜻보면 엉뚱해 보이지만 실상은 정말 정확한 믿음이었습니다.

 요즘 어디 집에 들어가거나 창고문을 열 때에 버튼 몇 개만 누르면 열립니다. 대단한 힘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많은 요령도 필요없습니다. 정확한 번호만 터치하면 어떤 육중한 문도 스르르 열립니다. 믿음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신뢰하고 예수님과 나의 코드가 서로 맞아 떨어지기만 하면 특별한 action이 없어도 즉시 주님의 능력이 내 안에 쏟아져 들어오게 됩니다. 여인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인의 병이 낫는데 있어서 대단한 행동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단지 능력의 보고가 되시는 예수님과 자신의 접촉만 이루어지면 구원을 받고 나을 것을 믿었습니다.    


 여인의 믿음은 복잡하고 철학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분석적이고 신학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여인의 믿음은 단순한 믿음입니다. 단순하지만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로서 오신 권능의 본체이시기 때문에 내가 그 분께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을 것이다. 얼마나 단순합니까? 얼마나 쉽습니까? 얼마나 순수합니까? 얼마나 창조적입니까? 오늘날 우리시대는 너무나 복잡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생각도 복잡합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면 비비꽈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복잡하고 인간적인 생각은 예수님께 나아가는 데 큰 장애물이 됩니다. 이론적으로는 말씀을 많이 알고, 예수님과 지근거리에 있지만 예수님께 손을 내어 밀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께 나아오라고 두 팔 벌리고 기다리고 계시지만 그 품에 뛰어들지를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런 능력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께 다가가서 손을 내밀어 주님께 터치함으로 능력을 체험할 때에 영원히 먼발치에서 쳐다보고 감상하는 관중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중계방송은 할 수 있는데 능력을 체험하는 주인공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에 이 여인은 얼마나 믿음이 좋습니까? 얼마나 그 용기가 가상합니까?


 예수님은 이 여인의 믿음과 행동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2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예수님은 여인을 돌이켜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daughter! 딸이라고 불러 주셨습니다. 여인은 혈루증 앓는 여인이요, 보잘 것 없은 존재입니다. 12년동안 몹쓸 병으로 고생해서 외모도 너무나 초라합니다. 예쁜 구석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my daughter” “나의 예쁜 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볼 때에 예수님은 무엇을 보고 예뻐하십니까? 믿음을 보고 예뻐하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우리 주님은 우리의 외적인 모습 때문에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 마음에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8:8절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그만큼 믿음있는 사람을 찾아 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에 여인은 얼마나 귀한 존재입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그 여인의 믿음을 크게 칭찬하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딸아 안심하라.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여인은 예수님께 야단맞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큰 사랑과 칭찬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병이 즉시 나았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웁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다른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믿음만을 요구하십니다. 주님은 언제든지 누구에게든지 당신의 권능을 방출해 주시기 원하십니다. 능력의 에너지를 바로 송출해주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믿기만 하면, 믿고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믿음의 손을 내어 밀기만 하면 주님의 능력이 봇물처럼 우리에게 쏟아져 들어 올 것입니다. 그리할 때에 우리 안에 어떤 병이 있든지 치료될 수 있습니다. 육신의 병, 마음의 병, 영혼의 질병이 즉시 떠나고 깨끗이 나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어도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17:6)” 혈루증! 얼마 끈질기고 뿌리 깊은 질병입니까? 12년동안 있는 것도 다 허비하고 많은 의원에게 많은 고생을 당하게 한 병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이 믿음이 있었을 때에 결국 그 뿌리가 뽑혔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혈루의 근원이 곧 말랐다고 했습니다(막5:29). 여인의 마음 가운데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을 때에 그처럼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에게도 무슨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까? 어떤 뿌리 깊은 고질병이 있습니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다만 겨자씨 한 알만 믿음만 있으면 주님께서 그 문제의 뿌리를 뽑으사 당장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 그것을 갖는가 안 갖는가 하는 것은 종이 한 장의 차이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엄청납니다.


 열왕기하 5장에 보면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나옵니다. 그는 군대 장관이었지만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엘리사에게 도움을 받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나와 보지도 않고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담그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는 화가 나서 그냥 돌아갈려고 했습니다. “우리 다메섹 강은 이스라엘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우리나라 강물이 더 깨끗해, 청정수야, 1급수!” 그러나 그의 사환이 사정을 했습니다. “장군님 한번 믿어 봅시다” 그러자 나아만 장군이 자존심을 꺾고 엘리사의 말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요단강으로 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습니다. 그 때에 나병이 깨끗이 낫게 되었습니다. 그가 엘리사의 말을 믿고 요단강으로 가서 몸을 담글 것인가? 그냥 고국으로 돌아가 버릴 것인가? 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가지고 순종했을 때에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나은 것은 그가 아람의 군대장관이라는 타이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요단강물이 특별한 효험이 있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사회적 지위는 오히려 그가 믿음을 갖는데 장애가 되었습니다. 다메섹의 물이 요단강물보다 더 깨끗하다는 상식은 오히려 그의 마음을 교만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교만을 꺾고 단순하게 믿었을 때에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모든 인간적인 상식과 통념을 내려놓고 단순하게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크신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이번 여름수양회 때도 우리가 많은 학생들을 초청했지만 끝까지 고집을 피우고 오지 않는 사람들은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뭐 비싸게 돈 내고 더운데 논산까지 가냐?” 그런 사람은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겨자씨 한알 만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서 손을 내어민 사람들은 큰 은혜를 체험하고 큰 구원의 능력을 체험하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요즘 우리 박일훈 형제님을 볼 때에 은혜가 됩니다. 이 분은 센타에 나온지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믿음을 가지고 수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때에 수양회를 통해서 죄 사함을 주시는 주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또 수양회 이후에는 매일 새벽에 함인근 목자님과 함께 새벽기도에 나옵니다. 이를 통해서 게으른 삶을 청산하고 부지런하고 창조적인 삶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몸매도 날씬해 질 것입니다. 이는 우리 함인근 목자님과 박일훈 형제님의 마음에 있는 믿음의 역사인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매순간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을지라도 그 문제에 눌려서 주저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주님께 나아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나의 손을 내어 밀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에 주님께서 그 믿음을 기뻐 받으시고 우리를 즉시 치료하시고 구원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여인과의 대화를 마치고 관리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때에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들이 집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그 집 사람들은 이미 소녀가 죽었기 때문에 장례를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예수님은 소녀의 죽음을 잠으로 보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없이 피리불고 울고불고 난리 떠는 자들은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몰아 내시고 들어가셔서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소녀가 살아났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웁니까? 예수님의 권능의 손이 닿으면 어떤 병도 낫고 어떤 사람도 살아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12년을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도 예수님의 옷자락을 터치했을 때에 병이 즉시 나았습니다. 죽은 소녀에게도 예수님의 손이 닿았을 때에 살아나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어떤 병도 치료하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불치병도 고치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이라면 무슨 일인들 못하시겠습니까? 모든 것을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Everything is possible in Jesus. 12년 동안이나 계속된 혈루증, 죽은 소녀. 이는 다 인간적으로 소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적인 상식이나 경험의 틀 속에 예수님을 가두어 두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능력을 제한시켜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축소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을 확대시켜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켜야 합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이 관리는 회당장 야이로였습니다.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는 야이로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Don't be afraid, just believe” 상황은 분명히 두렵습니다. 딸이 죽어 버렸으니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Just believe! 우리가 주님께 나아갈 때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믿음 뿐입니다. 야이로가 두려움을 몰아내고 믿기만 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딸을 살려 주셨습니다.


 27절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거기서 떠나실 때에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은 메시야의 별칭입니다. 이 맹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하고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무엇을 확인하셨습니까? 28절을 봅시다.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 사실 앞 못 보는 맹인들이 “불쌍히 여겨 달라” 고 소리치며 달려오는데 얼마나 불쌍합니까? 얼마나 안됐습니까? 예수님 같은 능력에 저 같으면 바로 고쳐 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가지를 확인하셨습니다.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확인하셨습니다. 그들이 돈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메너가 세련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믿음을 확인하셨습니다. 그때에 맹인들의 대답이 어떠합니까?


  28b절을 봅시다.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하니” They replied, “Yes, Lord” Yes! Lord. 예, 주여 우리가 믿습니다. 우리가 믿나이다. 주님께서 능히 이 일을 할 줄을 믿습니다. 주께서 능히 저희들의 눈을 뜨게 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 그들은 힘있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떻게 해 주셨습니까? 29,30b절을 보십시오.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너의 믿음대로 되라”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축복하사 즉시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그들의 눈을 뜨게 한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믿은대로 축복해 주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작으면 작은 축복밖에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큰 믿음을 가지면 큰 축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입을 크게 열면 그 만큼 채워주십니다.


 열왕기하 13장에 보면 아람군대가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습니다. 이때 요아스왕이 엘리사를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때에 엘리사는 요아스에게 화살을 집어들고 땅을 치라고 했습니다. 이때 요아스는 세 번만 치고 그쳤습니다. 이때에 엘리사가 말합니다. “왕이 대여섯 번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별하기까지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땅을 친 만큼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십니다.


 죠지 뮬러(1805~1898)는 5만 번 이상 기도응답을 받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성경구절은 시편 81:10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였다고 합니다. 그는 93세로 소천하기까지 15만 명의 고아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키웠습니다. 그가 처음 고아원 사역을 시작할 때 준비된 것이라곤 접시 3개, 쟁반 28개, 물병 하나, 컵 한 개, 칼 4 개와 포크 4 개, 도마 한 개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고 어떤 기관이나 유력인사에게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움만 구했습니다. 그랬을 때에 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63년 동안 750만 달러(한화로 약 30억 원) 이상을 주셨습니다. 지금부터 200년 전 일이니 오늘날로 치면 3천 억도 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채워주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입을 크게 여니까 그 믿음만큼 채워주신 것입니다. 우리라고 왜 못 하겠습니까? 우리에게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저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왜?” 라는 복음성가를 즐겨 부릅니다. ♫왜 슬퍼하느냐 왜 걱정하느냐 무얼 두려워하느냐 아무 염려 말아라 큰 어려움에도 큰 아픔 있어도 이젠 아무 걱정 하지 마 내가 널 붙들어 주리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지키리라 실망치 말고 나를 보아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에 우리주님께서 반드시 큰 축복을 베풀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믿음이 없어서 주님께 나아가지 못합니다. 믿음의 손을 내어 밀지 않습니다.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 물어보면 “글쎄요” “안 될 것 같은데요” 대답합니다. 그러면 그 안 될 것이라는 믿음대로 진짜로 안 됩니다. 그러나 될 줄을 믿고 기도하면 됩니다. 히브리서 11:1,2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내가 믿음을 갖고 바라면 실제로 그 실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아무리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지금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믿음을 갖고 바라면 언젠가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7절에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고 했습니다. 찬송가 344장은 그렇게 노래합니다.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들려도 하나님의 약속위에 서리라 걸어가세 믿음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버리고 걸어가세 믿음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면 주님께서 그 믿음대로 축복해 주십니다.


 우리는 요즘 미래가 불안하고 하루하루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막연히 두려워하기 쉽습니다. 나의 장래가 두렵고 국가의 미래가 불안합니다. 먹고 살 수는 있을지, 결혼은 할 수 있을지, 우리 자녀들은 어떻게 될지, 불안하고 염려가 됩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 마음에 두려움을 심고 염려를 심어서 뒤로 물러서고 좌절하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능히 너의 문제를 해결해 줄 줄로 믿느냐?” “내가 능히 너의 장래문제, 결혼문제, 물질문제, 자녀문제, 건강문제, 제자양성의 문제를 해결해 줄줄로 믿느냐?” 이때 우리가 어떻게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잘 모르겠는데요” 그러면 안 됩니다. 불합격입니다. 우리가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리고 힘 있게 대답합시다.“주여 그러하오이다, 주께서 능히 행하실 줄을 믿습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대로 축복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


  히브리서 10:38,39절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믿음으로 사는 자를 결코 망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축복해 주십니다.


  김정현 목자님은 주님이 원하시면 어디든지 선교사로 나가고 주님께서 가장 합당한 동역자도 허락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랬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경희대 간호대를 나와서 서울대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한 고유경 선교사와 선교가정을 이루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퍼듀 수양회가 끝나고 7월31일 오후 4시 뉴저지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믿음이 있었을 때에 주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우리가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오직 믿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5:4은 말합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오늘날 현대인들은 머리는 커졌습니다. 지식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믿음은 약해졌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따지고 의심하고 계산하고 염려하느라 도전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 문제를 들고 나가지 못합니다.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12해를 혈루증으로 앓은 여인이나 두 맹인들은 인간조건은 보잘 것이 없었지만 믿음이 있었습니다. 오직 믿음만을 가지고서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랬을 때에 주님께 큰 칭찬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너희 믿음대로 되라”앞에 나오는 중풍병자도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지붕을 뚫고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때에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대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son, your sins are forgiven” “아들아,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볼품없는 중풍병자를 아들로 영접해 주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단순하고 절대적인 믿음, 앞 뒤 가리지 않고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믿음, 용기를 가지고 필사적으로 예수님께 나아가는 믿음의 열정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말씀 34절을 보십시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많은 능력의 역사를 보고도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믿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마음에 교만과 불신과 헛된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저주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믿음을 가지고 나아갑시다. 눈에는 보이는 것 하나 없고, 손에는 잡히는 것 아무 것도 없고, 내가 내 세울 것 전혀 없지만, 믿음만을 가지고서 나아갈 때에 주님께서 놀랍도록 축복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서 주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