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
2008년 가을학기 개강 특강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 말씀 : 여호수아 17:14-18
▯ 요절 : 여호수아 17:18 “그 산지로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 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였더라”
산악인 박영호씨는 지구 3극점 도달, 히말라야 14좌 완등, 7대륙 최고봉 정복하여 세계 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동물원에 있는 호랑이는 더 이상 호랑이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산악인이 도시에 머물면 산악인이 아닙니다. 내 삶은 곧 도전이기 때문에 생이 끝나는 순간까지 끝없이 도전하며 살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늘 운명처럼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살아왔습니다. 또 세상은 우리가 도전하지 않으면 도태될 정도로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며 도전하고 개척하는 삶을 살도록 우리를 자극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를 도전해 오는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목자로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삼림이라도 개척하는 개척정신과 개척 스피릿을 덧입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때는 바야흐로 가나안 정복전쟁의 후반부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장군의 지휘아래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은 합심단결하여 가나안 정복전쟁의 전반부를 승리로 마쳤습니다. 가나안 정복전쟁의 대장이신 하나님은 후반부의 작전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각 지파별로 흩어져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에는 함께 싸웠는데 이제는 각 지파별로 흩어져 싸움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각 지파별로 제비를 뽑아 땅을 분배받도록 하였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요셉 족속,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땅 분배에 대해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들은 두 지파인데 제비를 한번 뽑게 했다고 트집을 잡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한 지파의 기업에 해당하는 작은 땅을 받은 것처럼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지도를 보면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는 요단강 동편과 서편에서 기업을 얻었습니다. 그 땅은 어느 지파 못지않게 광활한 땅이었습니다. 그 땅에 거할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의 숫자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차지할 땅은 넓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정복한 땅 중에서도 가장 좋은 노른자위 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왜 불평을 하는 것입니까? 요셉 자손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고 큰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인 여호수아 장군도 에브라임 지파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와 축복으로 그들이 큰 민족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어 버렸습니다. 요셉 자손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고 큰 민족이 되었기 때문에 다른 지파보다 더 우월하고 더 좋은 것은 더 많이 받아야 한다는 교만과 자기의가 쌓였습니다. 또 14절을 보면 “나”와 관계된 말을 4번이나 반복한데서 볼 수 있듯 그들은 매우 자기중심적이 되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이미 정복된 땅 중에서 넓고 중요한 땅을 싸우지 않고 쉽게 얻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시고 우리를 큰 민족이 되게 하셨는데 왜 당신은 이렇게 좁은 땅을 주십니까?’하고 따지듯 땅을 더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수아는 불평하는 요셉 자손들을 어떻게 도왔습니까? 15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여호수아는 요셉 자손과 같은 지파입니다. 그러나 사사로운 정으로 그들의 부당한 요구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영향력있는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합심하여 여호수아의 지도력에 도전한다고 마음이 약해져 쩔쩔매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요셉 자손에게 분명한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여호수아의 방향은 단순하지만 분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큰 민족이 된 요셉 지파는 큰 민족이 되었다는 자부심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사 복을 주시고 큰 민족이 되게 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땅을 주셨다면 그 땅을 정복할 만한 능력도 주시지 않겠습니까? 요셉 자손들은 이를 믿고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해야 합니다. 그러면 스스로 개척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첫째, 자립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개척하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할 것을 믿고 나에게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하여 개척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의지하면 원망과 불평이 많아집니다. 요셉 자손처럼 이렇게 해 달라, 저렇게 해 달라 요구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참으로 부담스러워 가까이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85세의 갈렙은 어떻습니까? 갈렙은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산지, 헤브론을 얻고자 했습니다. 아무리 강한 아낙 자손이 있고 견고한 성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능히 그 땅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수14:12) 이처럼 하나님을 믿고 자립적으로 개척하여 얻고자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얻게 하십니다. 믿음으로 자립하고 도전하는 사람만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과 함께 하시고 그를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센터에 여러 요회가 있는데 그중 요나단 요회는 가장 모범적으로 자립적인 개척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요나단 요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토요일 전 동역자들이 모여 합심기도하고 영적 동역을 잘 이루었습니다. 동역할 목자를 보내달라거나 부족한 것을 하소연하기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하나님을 믿고 말씀과 기도로 끊임없이 도전하였습니다. 제자양성에 대한 분명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며 양들과 리더들을 세우는데 헌신하였습니다. 그리할 때 어떤 연약한 리더들이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믿음 위에 굳게 서게 되고 항상 양들이 와서 말씀을 공부하고 제자로 성장하였습니다. 송엘리사, 김상현, 김인호, 유수웅, 김하나 목자님들이 그 열매로서 이들이 모두 분명한 믿음의 동역자들로 서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요나단 요회가 자립적으로 개척하는 요회로서 본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이러한 은혜로운 본보기들이 많이 나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개척하는 것입니다. ‘개척한다’는 것은 ‘개간한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개간은 삼림에 올라가서 나무를 베고 돌을 뽑아내어 곡식을 가꿀 옥토로 만드는 작업입니다. 요셉 자손에게 삼림은 그리 매력적인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 산지는 이미 개간되어 있는 평지에 비해 쓸모없는 땅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산지도 개간하면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강원도에 가면 평지는 거의 없고 온통 산과 계곡뿐입니다. 그러나 강원도 사람들은 산비탈의 나무를 베고 돌을 뽑아 밭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감자, 옥수수를 심어 양식을 삼았습니다. 또한 대관령과 같은 높은 산지도 개간하여 배추나 무를 심었습니다. 이로써 강원도는 고랭지 채소로 높은 소득을 올리는 지방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삼림이라도 개간하면 옥토로 변합니다.
그러나 평지에만 살았던 요셉지파 사람들은 삼림이 옥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개척은 항상 창조적인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개척’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바라’인데 이것은 ‘창조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개척은 곧 창조입니다. 개척은 새로운 것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가졌던 고정관념으로 사는 사람은 개척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할 때 어떤 마음이 듭니까?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 사람은, 새로운 것에 흥미진진한 태도를 가집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해 본다는 기대에 부풀게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담을 느낍니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일을 하는 것은 무난한데, 새로운 것을 하려니 왠지 두렵고 떨리고 용기가 생기지 않습니다. 막연히 번거롭고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평지에서만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산지도 농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창조적인 사람은 삼림도 개척하면 옥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6-70년대의 UBF선배들은 당시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것을 꿈꾸고 행동하였습니다. 그것은 대학생들을 복음화 하는 사역이었습니다. 당시 캠퍼스 사역은 복음의 불모지와 같았습니다. 캠퍼스 복음 사역에 관심을 가진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외국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 나라, 외국의 원조를 받아야 한해 예산을 마련할 수 있는 가난한 나라가 세계선교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일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불모지라 여겼던 캠퍼스는 세계를 섬기는 주의 종들을 키우는 옥토가 되었습니다. 국내 캠퍼스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이름난 캠퍼스를 개척하고 이방 양들을 제자양성하여 그들이 목자가 되고 선교사가 되어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결국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이처럼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도전할 때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번 가을 학기에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번 가을 학기는 학사수양회를 통해 학사 목자님들부터 마음의 자세를 새롭게 하여 준비하고 있습니다. 학사 목자님들은 캠퍼스에 올라가 전도하고자 결단하였습니다. 매주 금요일 기도회 말씀도 자립적으로 준비하여 섬기고 계십니다. 학사 가정 구역 예배도 드리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학생회도 새로운 마음으로 제자양성 역사에 주역이 되고자 결단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학생회 소감모임을 이루고 각종 캠퍼스 모임도 주도적으로 섬기기로 하였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캠퍼스 영적 상황에 신속하고 능률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가을에는 규모를 축소하여 파트별 가을 수양회를 갖게 됩니다. 이미 각 파트별로 이를 위한 기도와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푸른초장 파트는 “왕들의 1박 2일”이란 타이틀로 가을 수양회에 대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런 새로운 시도를 통해 우리의 굳어진 마음을 깨뜨리고 생동감 있고 열매를 거두는 복음역사를 섬길 수 있는 기회를 갖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크리스챤의 삶이란 본질적으로 개척자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면 자연히 개척자가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최초의 인간에게 축복을 주시며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 여기서 ‘정복하라’는 말이 곧 ‘개척하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도 개척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말씀을 가르치셨는데 그 가르치시는 것이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달리 권세가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도 하지 않았던 12제자를 부르셔서 양성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길을 개척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죽음으로 치닫던 온 인류를 구원할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떠나신 후 제자들은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았습니다. 보고 따라야할 대상이셨던 예수님이 떠나 버리셨으니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여 기도할 때 성령을 받고 사도행전의 역사를 개척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이 이처럼 십자가에서 피흘리며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이제는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두려움, 망설임을 떨쳐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열어 놓으신 생명의 길을 따라 가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6) 말씀처럼 우리가 피와 땀과 눈물로 개척하고자 하면 반드시 기쁨으로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생’이라는 기업을 주셨습니다. 거기에는 평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삼림도 있습니다. 내 인생의 삼림이 부담스럽다고 내 버려두면 내 인생은 거칠고 잡초가 무성한 땅과 같이 됩니다. 요셉 자손들과 같이 왜 내 인생은 평탄한 평지가 적냐고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허송세월 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대신해서 살아주지 않습니다. 또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야 합니다. 우리는 때로 내 인생이 삼림과 같을지라도 개척하여 풍요로운 열매를 맺는 옥토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여호수아 장군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또한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인 캠퍼스가 있습니다. 그러나 캠퍼스는 언제나 개척하기 힘든 삼림이었습니다. 특히 오늘날 캠퍼스에는 유례없이 강력한 인본주의, 쾌락주의가 빽빽하게 자라 숲을 이루었고, 이기심, 물질주의의 돌이 깊숙이 박혀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학생 제자 양성 역사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이것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척박해 보이는 캠퍼스도 개척하면 영적 옥토로 변할 것입니다. 인본주의의 나무, 이기심의 돌이 무성한 이곳이 개척되면 복음의 씨가 자라 열매를 맺는 옥토로 변할 것입니다.
요셉 자손은 여호수아의 제안에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16절을 보십시오. “요셉 자손이 이르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나안 족속에게는 벧스안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 하니” 요셉 자손이 삼림을 개척하고자 할 때 반드시 극복해야 할 존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나안 족속들이 가지고 있는 철병거였습니다. 철병거는 지금으로 말하면 장갑차, 탱크와 같은 무기입니다. 소총부대가 탱크로 중무장한 적과 싸운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 치른 전쟁 중에 어느 것 하나 쉬운 전쟁은 없었습니다. 요단강이 가로막았을 때 그들에게는 건널 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단강물을 막아 마른 땅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입성할 수 있었습니다. 여리고성도 도저히 정복할 수 없는 철옹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자 철옹성 여리고도 힘없이 무너졌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요셉 자손과 함께 하셔서 도와주시면 철병거로 무장한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 삼림을 능히 개척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병거와 같은 장애물을 바라보기보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실 요셉 자손이 ‘철병거가 있나이다’하고 말하는 것은 가나안 정탐 후 열 두령들이 ‘가나안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메뚜기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가나안을 정탐한 열 두령은 그 땅이 얼마나 기름지고 풍요로운 땅인지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예비해 놓으신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임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들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좋은 가나안의 아낙 자손들을 보고 주눅이 들고 믿음을 잃어 버렸습니다. 스스로를 메뚜기라고 비하했습니다. 그럴 때 모든 백성이 밤새 통곡하며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서 다시 노예가 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14:9, 개역한글) 40년이 지나도 이 믿음은 변치 않았습니다.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수14:11,12) 마음속에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개척 스피릿이 살아있던 갈렙에게 나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정복할 땅이 산지라도 문제가 되지 않았고 가나안 대적들의 철병거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하나님을 믿고 그 산지를 개척하려는 갈렙에게는 그 어떤 것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이도 어리면서 ‘믿음이 없어서...’, ‘취업 때문에...’, ‘부모님 때문에...’,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먹고 살기도 바쁜데...’ 이런 불신의 말을 하면서 현재에 안주하려고 합니다. 마음속에서부터 소시민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자기 현실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척’이란 말만 들어도 두드러기가 나고 못들을 말을 들은 것처럼 깜짝 놀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임이삭 선교사님을 통해 우리에게 믿음의 모델을 보여 주셨습니다. 선교사님은 “하나님을 믿으라” 이 한 말씀을 우리에게 남겨주시고 개척자가 되어 나가셨습니다. 키르키스탄 산지를 개척하고자 나이나 능력, 건강에 매이지 않고 부르심을 따라, 믿음을 따라 그 땅으로 나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갈렙장군과 임이삭 선교사님 같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개척 스피릿을 넘치도록 부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개척하는 것은 수고와 헌신과 희생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위험한 일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개척하지 않고 현재에 안주하는 삶이 더 위험합니다. 로마가 끊임없이 외부세력의 도전에 응전할 때 그들은 역사상 대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적수가 될 만한 도전 세력이 없어지자 그들은 안주하고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는 제국의 멸망이었습니다. 역사상 모든 제국이나 왕들이 그러했습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업적을 쌓고 명성을 얻는다 해도 일단 현실에 안주하면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우리 모임이나 우리 각자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는 전 세계 UBF에서 찾아볼 수 없는 최첨단의 멋있고 쾌적한 센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좋은 센터에서 우리끼리만 은혜 받고 교제하면서 안주하면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할 날이 올 것입니다. 다행히 하나님은 우리가 현실에 안주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우리를 개척역사에 사용하고 계심을 감사합니다. 구갈렙 선교사님이 영국으로 파송됨으로 유럽을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에 김기도 목자님이 개척자로 나갈 길이 열렸습니다. 중국과 일본도 개척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개척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러시아도 개척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는 더 많은 목자님들이 유럽, 중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전 세계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각 나라의 캠퍼스를 품고 개척해 나갈 것을 믿습니다. 또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해야 합니다. 전공의 삼림을 남들보다 더 창조적으로 열심히 개척해야 합니다. 영어의 삼림도 책만 사서 쌓아두지 말고 유창하게 말할 수 있도록 도전하고 개척해야 합니다. 제자양성이 힘들고 어려운 삼림일지라도 한번 더 전도하고 기도하며 개척해야 합니다. 삼림을 개척하는데 있어 가장 큰 철병거는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것을 피하고 싶은 마음, 쉽고 편하게 열매 맺고 누리고 싶은 마음, 두려움, 한계적인 생각의 철병거가 내 안에서 나를 움츠려 들고 현실에 안주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내 안에 있는 이런 철병거를 물리치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철병거를 물리치고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개척하고자 하면 우리 앞에 있는 어떠한 삼림이라도 반드시 개척할 수 있습니다.
캠퍼스는 분명 잘 개간만 하면 옥토 중의 옥토입니다. 그곳에 있는 지성인들은 복음을 받으면 시대를 감당할 큰 인물들이 될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캠퍼스 삼림에 철병거가 버티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진리라고 여기는 상대주의에 물든 학생들을 가르치고 제자 삼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학생들도 인생이 언젠가는 죽을 허무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문제의식이 없습니다. 거기다 쾌락주의의 철병거는 성도덕을 문란하게 하였습니다. 인터넷을 통한 음란물과 게임 같은 저질 쾌락문화는 대학생들을 통째로 집어 삼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7,18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는 가나안 사람들의 철병거로 인해 위축된 요셉 자손들을 격려하며 믿음을 심고 있습니다.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여호수아는 요셉 자손이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요셉 자손이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을 갖게 된 것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셔서 그들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 하나님을 믿고 싸울 때 그들은 능히 삼림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캠퍼스 지성인들이 쾌락주의, 상대주의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면 우리에게는 더 강력한 무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히브리서4:12절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쾌락주의, 상대주의로 무장한 지성인들의 마음을 파고들어 무장해제시킬 권능이 있습니다. 딤후3:16절을 말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은 캠퍼스 지성인들에게 바른 교훈을 주고 책망해 주고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도록 붙들어 주는 권능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기도하면 위로부터 성령의 권능을 덧입게 됩니다. 예수님은 행1: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은 죄를 깨닫게 하고 악령의 세력에서 놓이게 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믿는 자에게 이미 성령을 주셨습니다. 캠퍼스는 결코 만만하게 개척할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그러나 캠퍼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신 약속의 땅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이곳을 능히 개척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성령을 의지하여 캠퍼스를 적극적으로 개척해야겠습니다.
저는 지난해 가을부터 새 역사 창조 파트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파트를 섬기는 것은 오랫동안 농사짓지 않고 묵은 땅을 개간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묵은 땅을 개간하는데 필요한 기도와 말씀의 날은 너무나 무뎌져 있었습니다. 무뎌진 기도와 말씀의 날을 세우기 위해 기도모임과 말씀읽기를 적극적으로 하였습니다. 양들을 얻고 제자양성하기 위해 전도도 열심을 내서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변화와 성장이 없는 것 같은 파트 역사와 센터의 여러 일들을 감당하느라 지쳐 갔습니다. 결혼 준비와 결혼 후에는 신혼재미에 역사를 섬기는 것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어느새 가을학기가 다가오고 자신과 파트 역사를 돌아보니 더욱 심각하게 문제의식이 들었습니다. 분명한 제자 후보가 없고 리더들도 각자의 상황과 문제에서 쉽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지난 1년여 동안 파트 개척 역사를 열심히 섬긴 것 같은데 내놓을 것이 없는 현실에 힘이 빠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말씀을 감당하게 하심으로 새롭게 힘을 덧입혀 주셨습니다. 제가 요셉 자손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이 큰 민족이 되게 하시며 큰 권능을 갖게 하신 하나님이 또한 나의 하나님이 되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가정을 이루고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는 일에 헌신할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점이 많았지만 그런 나를 부르시고 쓰시려는 하나님은 저를 불러서 캠퍼스 개척 역사에 쓰시고자 하셨습니다. 저에게 소망 두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게 하시고 여호수아의 개척 스피릿을 덧입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파트 합심기도와 말씀읽기를 2학기에도 꾸준히 이루고 리더들이 먼저 예수님의 제자가 되도록 도와야겠습니다. 또한 올해 보내주신 양들을 인내와 사랑으로 잘 돕고 가을학기에 새로운 양들을 얻어 제자양성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삼림이라도 개척하라”는 말씀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먼저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복을 주사 우리가 큰 민족이 되게 하시고 큰 권능을 갖게 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캠퍼스가 옥토가 되도록 말씀과 기도로 개척해야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정과 직장도 풍성한 열매 맺는 옥토가 되도록 개척해야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개척자입니다. 하나님의 큰 권능을 가진 개척자들로서 우리 앞에 있는 어떠한 산림과 철병거도 개척하고 물리칠 수 있습니다. 2학기에는 개척하며 열매 맺는 즐거움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