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38 강

                           만나는 사람마다 데려오라

말씀: 마태복음 22:1-14

요절: 마태복음 22:9 “네거리 길로 가서 사람을 만나는대로 혼인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오늘 말씀에는 우리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오해하여서 아주 엄격하신 분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기대수준이 높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사람만 선별해서 구원하실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감히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나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오늘말씀에 보면 우리 하나님은 큰 잔치를 베풀어 놓고 우리를 초청하시는 분이십니다. 예비군 훈련 통지서 돌리듯이 강제적으로 참석하라고 지시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인격적이시기 때문에 누구나 와서 구원을 받으라고 초청하고 계십니다. 사실 엄격히 따지고 보면 우리가 잔치상을 차려놓고 하나님을 초청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높으신 분이시고,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피조물인 우리 인생들이 두렵고 떨림으로 잔치를 베풀어서 하나님을 대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큰 잔치를 베풀어서 하나님의 노를 풀고 관계성을 회복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하나님께서 직접 잔치 자리를 마련하셨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우리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을 위해서 천국잔치를 준비하셨습니다. 그 천국잔치는 혼인잔치와 같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잔치가 많이 있지만 혼인잔치만큼 기쁜 잔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 센타도 2주 후면 혼인잔치가 있을 것입니다. 신랑 유재호 목자님과 신부 장정현 목자님 사이에 결혼식이 있을 것입니다. 혼인잔치가 있는 날이면 모든 사람들이 기뻐합니다. 연미복과 드레스를 입은 신랑 신부를 보는 것도 즐겁지만 무엇보다 맛있는 음식이 풍성하게 준비되기 때문에 기쁩니다. 양가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결혼하기 때문에 최대한으로 맛있는 음식으로 손님들을 대접하고자 애를 씁니다. 평범한 서민들의 결혼식도 이러할진대 왕의 아들이 결혼하면 어떻겠습니까? 그 나라에 진기한 음식은 다 준비할 것입니다. 갈비찜, 오리훈제, 양상추 참치샐러드, 모듬참치, 육회, 송이버섯요리, 바닷가재요리, 수삼냉채, 왕새우찜, 꼬리수육, 삼합, 전복죽, 영덕대개, 영산포 홍어, 거기다가 조미숙 사모님이 잘 하시는 궁중 떡복기, 나 윤 사모님이 잘하시는 야채 비빔밥, 밀알 사모님의 전공 계란찜, 드보라 사모님이 잘 하시는 누룽지 요리까지, 아주 진수성찬을 준비하였습니다. 또 각 지방에 노래 잘하는 명창들은 다 초청했을 것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실제로 왕은 오찬을 준비하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준비해 놓고 손님들을 초청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잔치에 오소서” “Everything is ready. Please come. Please”

하나님께서는 매주일 풍성한 말씀을 준비해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특별히 7월 말에 있는 여름수양회는 일 년 중 가장 풍성한 말씀잔치입니다. 특히 2009년 여름수양회는 우리 생애에 최고의 여름 수양회가 될 것입니다. 강사진을 보십시오. 임이삭, 최정한, 전순기, 함모세, 정다니엘, 이희철, 조에스라, 우리 광주 센타가 자랑하는 최고의 말씀 강사진입니다. 거기 다 이번에는 전주센타에서 초빙된 홍바나바 목자님의 메시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태화 교수님의 강의도 이미 여러 센타에서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감동적인 인생소감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기대연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학사님들의 야심작 주홍글씨가 무대에 올려질 것입니다. 사모님들이 준비하고 있는 십자가 워쉽 댄싱은 얼마나 은혜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처음 보게 될 이스라엘 댄싱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게 될 곡성 성림 수양관은 주변 환경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수영장까지 있습니다. 음식 맛이 또 기가 막힙니다. 넓은 축구장도 있어서 얼마든지 운동도 할 수 있습니다. 또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이번 수양회는 양들이 무료로 참석할 수 있습니다. 돈 없어서 수양회 못 간다는 말은 못합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사오니 오소서” Please Please. 얼마나 좋습니까?

자! 이렇게 혼인잔치를 준비하고 손님을 초대하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가야죠. 더구나 그 나라 백성들은 평소에 왕의 혜택을 받아 살고 있는 자들입니다. 왕이 무슨 축의금 들고 오라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와서 혼인잔치를 마음껏 즐기기만 하면 됩니다. 참석만 해 주면 됩니다. 천국은 마치 이런 혼인잔치와 같습니다. 왕이 마련한 혼인잔치가 바로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서 풍성한 잔치상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사야 1:18절에서도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돌아온 탕자 비유에서도 아버지는 모든 것을 준비해 놓고 아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저는 이 하나님의 마음을 저희 부모님을 보면서 조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연로하시기 때문에 시장보기도 힘들고 음식 준비하기도 힘들어 하십니다. 그런데 부모님의 간절한 소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자식들이 무슨 돈을 부치는 것도, 무슨 선물을 사오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부모님을 찾아와서 함께 식사 한번 하는 것 그것 뿐입니다. 음식도 다 부모님이 준비하십니다. 우리가 어쩌다 한번 가서 함께 식사하고 대화를 해 드리면 그렇게 기뻐하십니다. 이 부모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일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도 할 수 있는대로 우리와 관계성을 맺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관계성입니다. 사랑의 관계성. 이것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치루기를 마다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소와 살진 짐승을 잡으셨다고 했습니다. 소 한 마리 잡을려면 얼마나 비쌉니까? 또 모든 것을 다 준비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루었겠습니까? 여기서 소와 살진 짐승을 잡았다고 했는데 엄격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잡으면서까지 구원의 잔치를 준비하셨습니다. 세상에 이런 분이 어디 있습니까? 사실은 우리가 죄를 범했기 때문에 우리가 속죄의 제물를 마련해야 합니다. 우리가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하나님께서 제물을 준비하십니다. 그것도 자기 아들을 십자가의 제단 위에 올려 놓으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이 잔치에 참여해야죠. 만사를 제쳐놓고 참여해야지 않겠습니까? 구원의 잔치에 참석해서 반드시 구원을 받아야죠. 그러면 즉시 그 내면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요한계시록 3:20절에 보면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단지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됩니다. 문을 열어요 활짝. 형제 마음에 문을. 문을 열어요 활짝 자매 마음에 문을. “똑똑! 들어가도 될까요?” 주님이 물으십니다. “예! 들어오세요” 우리가 문을 열기만 하면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준비해 오셔서 우리에게 풍성한 것으로 먹여주시고 입혀 주십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5절을 봅시다.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전혀 무관심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관심이 다른데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자기 밭에, 한 사람은 자기 사업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둘 다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자기 밭, 자기 사업, 오직 자기에게만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한 사람은 내가 밭을 샀기 때문에 나가 보아야 하겠다고 말합니다. 또 한 사람은 소 다섯 겨리를 샀기 때문에 시험하러 가보아야 하겠다고 말합니다. 차를 새로 뽑았기 때문에 시운전을 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은 장가 들었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오늘날에도 이것이 문제입니다. 전도를 해보면 사람들이 관심이 없습니다.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려고 하지 않습니다. pay no attention. 자신에게 왜 구원의 잔치가 필요한지, 내가 왜 구원을 받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죄인인지, 자신의 내면이 죄로 말미암아 얼마나 병들어가고 있는지, 썩어가고 있는지, 그 영혼이 죄 가운데서 죽어가고 있는지 인식하지를 못합니다. 마치 암환자가 지금 당장 증세가 심하지 않기 때문에 자꾸 치료를 뒤로 미루고 세상 일에 바쁜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구원의 잔치에 관심이 없고 세상의 잔치에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가 창세기 19장에 보면 여호와의 천사들이 롯의 집에 심방 가서 말했습니다. “이 소돔 고모라 땅이 죄 때문에 심판 받으니까 빨리 피하시오” 그러나 롯의 사위들은 전혀 듣지 않습니다. 관심이 없습니다. 문제의식이 없습니다. 그들은 천사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에이, 무슨 심판이 오겠어요. 날만 좋잖아요” “우리 바빠요, 낚시가야 해요. 골프치러 갑니다” 그러다가 결국 다 망했습니다.

문제의식이 없는 것도 큰 죄입니다. 엊그제 마이클 잭슨이 죽었습니다. 50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한때 그의 장인이었던 앨비스 프레슬리도 42살에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앨비스 프레슬리는 1977년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마이클잭슨도 의사들이 시체를 부검해 본 결과 약물이 많이 검출되었다고 했습니다. 한때 마이클 잭슨의 아내였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는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수년 전 마이클 잭슨이 말하기를 자신도 엘비스와 같이 심장마비로 죽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나 마이클 잭슨. 이들 모두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잖습니까? 가는 곳 마다 얼마나 많은 팬들이 열광을 합니까? 그들이 한번 잔치를 벌이면 온 나라가 떠들썩합니다. 몇 년전 우리나라에 왔을 때도 온 나라 백성들이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습니다. DJ 대통령 취임식때 마이클잭슨이 왔는데 대통령에게는 관심이 없고 마이클잭슨에게만 자꾸 카메라가 잡혔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 세상의 잔치들의 결국은 어떻습니까? 너무나 허망하고 비참합니다. 마약잔치, 약물잔치, 알콜잔치, 폭력잔치. 왜 그처럼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까? 거기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생명이 없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하나님의 천국잔치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멋있습니다. 훨씬 더 웅장하고 떠들썩합니다. 사람들도 구름떼처럼 모여듭니다. 현란한 음악들과 무대장치가 완전히 사람의 혼을 빼놓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열광합니다. 어떤 소녀팬들은 아예 기절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사단의 잔치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단이 춤추는 광란의 잔치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천국의 말씀잔치를 준비할 때에 사단도 열심히 광란의 잔치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젊은 영혼들을 현혹시키는 것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어떤 사람은 무관심한 정도가 아니라 정면으로 대적하며 하나님의 종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얼마나 인간의 마음이 사악하고 탐욕스러운지 모릅니다. 이때 왕은 어떻게 합니까? 사람들이 무서워서 뒤로 물러서 버립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7절을 보세요.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서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살라 버린다고 했습니다. 임금의 초청을 거절하고 대적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아쉬운 소리로 초청만 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참고 기다리시는 무골호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천국잔치를 우습게 알고 하나님의 호의를 악으로 갚는 자들은 무시무시한 징계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사람들이 천국잔치에 무관심하다고 해서 잔치를 포기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다같이 8,9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어 보시겠습니다.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네 거리 길로 가서 사람을 만나는대로 혼인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 대” 하나님은 잔치의 문을 활짝 여셨습니다. 처음에는 택한 백성 유대인들을 초청하였으나 이들이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거부하고 때리고 능욕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렸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너무나 분노하셔서 유대인들을 징계하시고 구원의 문을 이방인들을 위해 개방하셨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모르고 살던 이방인들은 사거리표 사람들이라 허물투성이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사람도 있고, BC시절의 라이프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가까이 하게에 낯뜨거운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한 가지 위대한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임금의 초청에 응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구원의 잔치가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들이 구원이 필요한 죄인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어떤 사람이 귀합니까? 유대인들처럼 조금 의롭게 살았다고 자기 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입니까? 종교지도자들처럼 율법지식이 많은 사람들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부족할지라도 죄인된 자아를 발견하는 자, 하나님의 초청을 귀하게 여기는 자, 자기처럼 비천한 자를 초청해 주신데 대해서 고맙게 생각하는 자. 그런 자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런 사람이 결국은 구원을 받습니다. 겸손한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격없는 자를 초청해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은혜로 초청해 주실 때에 적극적으로 주님께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구원의 잔치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회가 왔을 때에 붙들어야 합니다. 나중에는 잔치에 참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날이 옵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한 가지 배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손님들을 초청하는 종들의 자세입니다. 1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종들은 그동안 여러 손님들을 초청해 왔기 때문에 지쳐 있을 수 있습니다. 잔치에 무관심한 손님들 때문에 마음에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모욕하고 멸시하고 때리는 손님까지 있어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심지어는 초청하다가 잡혀 죽은 동료 종들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임금이 또 나가서 초청하라고 하니 마음에 반발심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초청에 응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날씨는 덥고 자기들도 다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이 종들은 가나혼인 잔치집의 하인들처럼 100% 절대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사람들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인이 주신 방향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랬을 때에 초청에 응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마침내 혼인잔치는 손님들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우는 바가 무엇입니까? 우리도 주님의 뜻에 순종해서 사거리 길로 나아가 만나는 사람마다 초청하면 초청에 응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혼인잔치는 종들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손님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 능력의 사람, 지혜의 사람보다 순종의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고린도전서 2:20,21절에 “지혜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하였습니다.

초청역사는 인간의 지혜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미련할 정도로 단순하게 전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신기하게 하나님께서 그 전도자의 발걸음을 귀하게 축복하십니다. 박스데반 목자님은 학창시절에 당시에 유명한 술꾼이었던 과 후배 구양규 형제님을 말씀공부에 초청했습니다. 구양규 형제님은 얼마나 막걸리를 좋아하든지 그 몸을 비틀면 당장에라도 막걸리가 뚝뚝 떨어질 정도였습니다. 그런 구양규형제님이 말씀공부를 통해서 변화되어서 구바나바 박사목자가 되었습니다. 그 누가 구양규형제님이 선교사가 되고 교수 목자가 될지 알았겠습니까? 유재호 목자님도 유명한 데모꾼이어서 도대체 다가가기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나 천진스럽고 호감이 가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또 김인호 목자는 어떻습니까? 시간관계상 여기서 그만하겠습니다. 하나님역사는 참으로 신기합니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서 초청한 양들은 뺀질뺀질 말을 듣지 않습니다. 방학때 학원 다녀야 한다. 친구들과 여행가야 한다고 빼고 초청에 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별로 소원을 두지 않았던 사거리 표 양들이 와서 회개하고 예수님 믿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의 역사는 온전히 은혜의 역사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모든 선입견과 자기 생각을 부인하고 단순하게 임금의 명령에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네거리 길로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잔치에 청하여 오라” 우리가 이 사람 저 사람 가리지 말고 네거리 길로 가서 만나는 사람마다 구원의 잔치에 초청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신 자들을 보내어 주실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도 보면 베드로가 밤새도록 수고하여 그물질을 하였지만 잡힌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말씀하시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제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그때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고기가 너무 많이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름수양회가 약 25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떤 목자들은 양 초청하기를 아예 포기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몇 명 전화 해 봤는데 역시나 소원이 없었어. 작년에도 한 명도 못 데려갔는데 뭐. 데려가 봐야 또 도망갈텐데 뭐” 그러나 이것은 종의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가 본문의 종들처럼 끝까지 순종해서 네거리 길로 나가 양들을 초청하기에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기대연 목자님은 토목과 양들을 얻기 위해서 스터디 모임을 조직하여 양들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푸른초장 목자님들은 군대가 있는 홍기훈 형제님을 심방하기 위해서 왕복 12시간을 운전하여 경기도 양주까지 갔다 왔습니다. 잠시 후에 보고하겠지만 지지난 주에 있었던 중앙아시아 수양회에는 총 60여명의 양들이 참석하였습니다(총 참석은 93명). 중앙 아시아 모든 국가들은 이슬람 국가들이기 때문에 수양회 준비를 위해 서로 메일이나 전화를 할 때 신앙적인 단어를 사용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메일을 보낼 때도 암호를 걸어서 보내고, 표현들도 일반적인 말들로 바꿔서 보냈습니다. 오쉬는 하루 동안 미니 버스로 이동하고, 아스타나는 하루 동안 기차로 이동을 했다고 했습니다. 많은 물질이 들고 시간이 들었습니다. 우리 선교사님들은 한 양을 초청하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쓰고 헌신을 했겠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큰 성령의 역사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좋습니까? 차로 불과 40분이면 가는 거리입니다. 많은 물질이 드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항상 손님의 자세로 수양회에 참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또 항상 말이 많습니다. 메시지가 어떻다, 식사가 어떻다. 모기가 많다. 그런 사람은 아프리카 수양회에 한번 갔다 와야 합니다. 우리가 올해는 정말 잔치를 준비하는 종의 자세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어찌하든지 구원의 잔치에 손님을 초청하여 영생을 선물하고자 하시는 우리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초청역사에 힘을 씁시다. 그리고 초청을 받은 양님들은 핑계대지 말고 빨리 등록해야 합니다. 만사를 제쳐두고 선착순으로 등록해야 합니다.

제가 대학 때에 친하게 지내는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각종 아카데미와 여름수양회 때마다 초청을 했습니다. 그 친구는 항상 정중하게 거절하였습니다. 그는 모질게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정중하게 아주 젠틀하게 웃으면서 거절했습니다. “나중에 꼭 갈게” 그러나 여름방학 때에 물놀이 갔다가 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영원토록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크게 후회했습니다. “그때 더 강력하게 도전할 걸” 우리는 양들을 초청할 때에 이런 저런 사정을 봐 주기 쉽습니다. 신사적으로 초청했다가 거절하면 그냥 포기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 그 기회가 마지막 기회라면 포기하겠습니까? 그 사람이 사단의 올무에 사로잡혀서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다면 그냥 놔두겠습니까? 그 사람과 싸워서라도, 떠메고라도 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누가복음에 보면 ‘강권하여 데려오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원문에 보면 ‘팔을 비틀어서라도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강권하여 초청역사를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찼는데 한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고 있었습니다. 임금은 사환들에게 말하였습니다.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여기서 예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구원의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나의 더러운 죄의 옷을 벗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으로 갈아 입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신의 옷을 벗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는 구원의 잔치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자기 의와 교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구원의 감격을 맛볼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죄인됨을 겸손히 인정하고 자기의 죄의 옷을 과감하게 벗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덧입는 자만 구원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1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주님의 안타까운 음성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초청의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잔치에 오소서” 그러나 주님의 초청을 끝까지 거절한 사람은 자기만 손해입니다.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씨는 죽기전 구원문제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급히 목사님을 불러 오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구원의 문은 항상 열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아직까지 여름수양회에 갈까말까 고민하시는 분들을 즉시 결단하고 오늘 등록하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가 이 귀한 말씀잔치에 우리만 가면 되겠습니까? 어찌하든지 네 거리 길로 가서 만나는 사람마다 초청하여 이번 여름수양회가 우리 생애 최고의 수양회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