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0 강

                                                                    사단의 도전과 교회의 승리

 

말씀: 요한계시록 12:1-17

요절: 요한계시록 12: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처럼 굉장히 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막상 신앙생활은 그렇게 고고하거나 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자세히 공부해 보면 신앙생활은 굉장히 전투적이고 적극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적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단이라는 적이 엄연히 존재합니다. 사단은 에덴동산에서부터 가정과 교회를 무너뜨리고자 음모를 꾸몄습니다. 말세가 될수록 사단은 자신의 명이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더욱더 발악을 합니다. 그래서 사단과의 치열한 전투를 치루는 것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피할 수가 없습니다. 어짜피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싸워서 이겨야죠. 오늘말씀은 사단의 도전과 이에 대항해서 싸워 승리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교회가 어떻게 사단과의 전투에서 이깁니까? 우리가 이것을 배워서 이 말세의 때에 사단과의 치열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길 바랍니다.

 

 

먼저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교회의 모습을 한 사인을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한 여자가 등장하는데 해를 옷 입고,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습니다. 여기 여자는 교회를 상징하는데 해, 달, 별로 치장을 했을 정도로 영광스럽습니다. 교회는 그만큼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교회는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께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드리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곳이기 때문에 세상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화로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고자 진통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구약교회가 오랫동안 예언된 메시야 예수님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마지막 진통을 하는 것입니다. 이 진통은 참으로 거룩하고 신성한 것입니다. 한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10달 동안 자라다가 마침내 산모의 진통을 통해서 태어나는 것도 귀한 것입니다. 하물며 인류의 구원자 메시야가 수 천 년 동안 구약교회의 모태에서 자라다가 마침내 이 세상에 오시게 됩니다. 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결혼한 지 17년 만에 아내가 잉태하였습니다.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그런데 몇 개월 지나서 아내가 배가 아파 병원에 가 보니 아이가 문제가 있다며 낙태를 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산모도 위험하고 태아도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17년을 기다렸는데. 그래서 그 부부는 기도를 한 다음에 죽으면 죽으리라 순교의 각오로 믿음으로 아이를 낳았다고 합니다. 한 가정이 17년 동안 기다렸다 낳은 자식도 귀할진대, 수 백, 수 천년동안 온 인류가 기다려온 메시야입니다. 이제 그 분이 탄생하게 되면 모든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해서 하나님께로 인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니 사단이 가만 있겠습니까? 그동안 세상 가운데서 왕노릇해 왔는데 가만 있을 리가 없죠. 사단은 메시야 예수님이 태어나자마자 즉시 집어 삼키고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b절을 보십시오.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용은 사단을 가리킵니다. 사단이 즉시 아기 예수님을 죽여서 인류구속역사가 실패하도록 조장하고자 했습니다. 3절에 보면 사단은 붉은 용이라고 했습니다. 할 수 있는대로 많은 사람을 죽여서 피를 보고자 하기 때문에 사단은 붉은 용입니다. 사단은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나 되기 때문에 얼마나 세고, 고단수인지 모릅니다. 머리 하나에 IQ 100만 잡아도 700입니다. 우리는 기껏해야 IQ 150도 안 되는데 어떻게 IQ 700짜리를 따라갑니까? 사단은 얼마나 간교한지 모릅니다. 자기 머리 좋은 것 믿다 방심하면 큰 일 납니다.

 

솔로몬을 보십시오. 얼마나 영리하고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습니까? 솔로몬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주변 국가들로부터 환심을 사고 좋은 외교관계를 유지하려면 결혼정책을 통해서 다 사돈 삼으면 되겠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 부족들의 딸들을 아내로 삼다 보니 아내가 3000명이 되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 사돈 맺어서 평화롭게 되었습니까? 그 아내들이 가지고 들어 온 우상들 때문에 이스라엘은 완전히 우상천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솔로몬의 외교정책을 역이용해서 사단이 완전히 이스라엘 나라를 장악해 버렸습니다. 솔로몬이 영리한 것 같지만 사단은 그 머리 꼭대기 위에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은 솔로몬처럼 머리가 좋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싸우러 올라갈까요 말까요?” “앞으로 갈까요 뒤로 갈까요?” 다윗은 항상 기도하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가장 합당한 작전지시를 내려 주셨습니다. 다윗은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승리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승리의 인생을 사는 비결은 잔머리 굴리고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무릎 꿇고 기도하므로 하늘의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사단의 궤계를 파하시고, 물리쳐주십니다.

 

예수님도 태어나셨을 때에 어떠했습니까? 사단은 잔인한 헤롯왕을 이용해서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는 다 죽이도록 명하였습니다. 마리아가 해산하자마자 예수님은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헤롯은 동방 박사들에게 메시야의 탄생지를 알려 달라고 몰래 부탁했습니다. 자기도 가서 경배할려고 한다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주의 천사가 박사들에게 현몽하여 그냥 돌아갔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애굽으로 피신하라고 하심으로 예수님이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사단이 제 아무리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지고 메시야 탄생을 저지하고자 하였지만 안 되었습니다. 사단의 머리가 일곱 개가 아니라 70개가 되어도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탄생하신 예수님이 하실 일이 무엇입니까? 5절에 보니까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을 크신 능력과 권세로 다스리실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이사야 9:6절에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한 아기로 태어나시지만 그 분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모든 피조물들을 지배하고 다스리실 권세를 갖고 오십니다.

 

 

사단마귀는 예수님께서 메시야 사역을 이루실 때 끊임없이 방해 했습니다.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고 계실 때에 나타나서 온갖 방법으로 유혹하며 넘어뜨리고자 하였습니다. 바리새인과 종교지도자들을 이용해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훼방을 놓았습니다. 심지어는 수제자인 베드로를 통해서 메시야 사역을 가로막고자 하였습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십자가를 지지 마세요” 사단은 인간적인 정으로 호소하며 방해하고자 하였습니다. 또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도 사람들이 밑에서 “네가 만일 그리스도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자존심을 건드립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참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다 이루었다” 하시므로 인류구속역사를 완수하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빌2:9-11). 예수님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메시야가 되셨습니다.

 

5b절을 봅시다.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 가더라” 사단마귀가 아무리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을 방해하고자 발버둥을 치지만 안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탄생하시고, 주의 뜻 가운데 지상사역을 완수하시고, 마침내 부활승천하시어서 만왕의 왕이요, 주중의 주가 되셨습니다. 이로서 여자와 용 사이에 1라운드 전투는 용의 KO패로 끝이 났습니다. 창세기 3:15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께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기 때문에 사단은 치명상을 입고 그 힘이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근본적으로 사단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단의 권세를 파하시고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6:33절에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미 사단의 권세를 파하시고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는 다 이긴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승리가 보장된 싸움을 싸웁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땅에 남아 있는 교회는 아직 사단의 공격을 받습니다. 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 이백육십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이 땅에 남은 교회들은 광야같은 환난을 당합니다. 사단이 마지막까지 교회를 괴롭히며 핍박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이 기간을 주님은 양육의 기간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능력이 없어서,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서 곤란을 겪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기 위한 환난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때를 잘 참고 견뎌야 하겠습니다.

 

7-9절은 천사와 사단사이에 일어난 공중의 전쟁을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미가엘 천사가 이끄는 천사부대와 용이 이끄는 사단의 무리사이에 일대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전쟁에서 누가 이기죠? 천사들이 이깁니다. 그래서 사단이 더 이상 하늘에서 있을 곳을 찾지 못하고 내어 쫓깁니다. 패배한 그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어디서 뺨 맞고 어디서 화풀이 한다고, 사단은 하늘에서 천사들에게 당하고 만만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악을 행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사단은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했습니다. 10절에 보면 사단은 밤낮 우리 형제들을 참소한다고 했습니다. 사단은 할 수 있는대로 사람들을 유혹해서 죄를 짓게 합니다. 또 죄를 지은 다음에는 참소합니다. “네가 목자냐? 관 둬라. 포기해” 계속해서 양심에 가책과 두려움을 심어서 견딜 수 없게 만듭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사단이 꾀는 유혹에 넘어가 은밀하게 죄를 짓습니다. 죄를 지을 때는 잠시의 쾌락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사단이 쏘는 독화살에 맞아 고통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두통, 신경쇠약, 우울증, 조울증, 거식증, 불면증, 두근거림, 가면우울증, 화병, 강박장애, 불안장애, 공항장애, 틱증상, ADHD(주의력 결핍)등 각종 정신질환에 시달립니다. 특히 요즘은 우울증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간다고 합니다. 자기만 죽으면 괜찮은데 시어머니 손을 잡고 함께 달리는 지하철에 뛰어 들기도 하고, 자식들을 한강에 던지고 투신자살하기도 합니다. 그제 발생한 미국 텍사스 군부대의 총기난사 사건처럼 괜히 죄 없는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끼칩니다. 그래서 요즘 보면 마음 수련원, 하늘소리 한의원, 심리치료사등이 굉장히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겉으로 보면 단순히 심리적인 현상으로 보기 쉽지만 그 배후에는 사단이 그렇게 조종하는 것입니다. 12b절을 보십시오.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는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다”고 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재림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마귀가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사단의 유혹과 송사를 이길 수 있습니까? 다같이 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첫째로, 어린양의 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피는 이미 죄로 더러워지고 오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단의 조금만 자극해도 금방 죄의 욕망이 불타오릅니다. 이겨낼 장사가 없습니다. 마치 휘발유에 불을 갖다 대기만 하면 확 타오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는 사단이 아무리 강력한 불길을 갖다 대어도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욕망의 불길을 꺼 버립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보혈을 의지하게 되면 나의 육신은 죄에 대해서 무력하지만 나의 영이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에 대해서 저항을 하게 됩니다. 죄를 미워하게 되고, 죄를 거부하고, 죄악된 문화에 대해서 역겨워하게 됩니다. 로마서 8:9절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그랬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게 되면 더 이상 육신에 있지 않습니다. 육신적인 생각에 시달리지 않게 됩니다. 사단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거룩을 사모하게 됩니다. 경건을 추구하게 됩니다. 땅의 지체를 죽이고 위엣 것을 찾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입니다.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또한 우리가 부족하여서 죄에 넘어졌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사단의 송사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로마서 8장 33-34절에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변호사가 되셔서 우리를 위해 변론해 주십니다. “하나님, 제가 저 사람의 허물과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고 피 흘려 죽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피를 보고 우리를 용서해 주십니다. 더 이상 죄의식에 시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양심의 고소와 자의식, 두려움, 우울증에 시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찬송하며 기도하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사단이 제 아무리 우리를 꾀어서 죄 짓게 하고 수치심 때문에 하나님께 못 나가게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내밀면 꼼짝없이 꼬리를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합시다.

 

둘째 무기는 증언하는 말씀입니다. 11절을 다시 봅시다.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우리가 증거하는 말씀이 무기입니다. 사단은 말씀앞에서는 꼼짝하지 못합니다. 에베소서 6:17절에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4;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그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고 했습니다. 예례미야 23:29절에 “여호와의 말씀은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불방망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0:18절에 보면 제자들이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자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예수님께서 보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힘써 복음을 전하면 마귀 사탄이 우수수 떨어지게 됩니다. 반대로 이야기 하면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마귀가 득세를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를 쓰고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유럽수양회에서 그리스 대표로 소감발표를 한 스타마티스 형제는 자기가 좋아하는 Rock group member를 따라 자살하고자 하였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여행 갔을 때에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절벽에서 떨어져 멋있게 자살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옆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들어갔다가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살아계신다면 저를 만나 주십시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대학에 들어가서 UBF 선교사님을 만나 성경공부를 하던 중 창세기 12:2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하시는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발칸반도에 아브라함이 되고자 하는 소원을 덧입고 인생의 무의미와 어두움가운데서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사단의 무기도 말입니다. 말은 말인데 부정적인 말, 의심의 말, 비판하는 말, 절망과 슬픔의 말, 어두움의 말, 사람을 죽이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같은 말이지만 전혀 다른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살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능력있게 합니다. 죄와 싸우게 하고 승리하게 합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증거하게 되면 어떻습니까? 점점 죄인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됩니다. 그러면 사단의 영역이 점점 좁아집니다. 그래서 결국 이 땅에서도 사단이 설 자리가 없어져서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양의 피를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자들이 어느 정도의 열정을 가지고 감당했습니까? 11b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죽기까지 생명을 아끼지 않고, 순교자적인 자세로, 영적 전쟁을 치루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를 볼 때에 우리가 십자가의 복음을 붙들고 말씀을 전파하는 것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1세기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우리도 목숨을 겁시다. 기도하는 일에 목숨을 겁시다. 전도하는 일에 목숨을 겁시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생명을 겁시다.

 

제임스 케네디 목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군인들은 광이 나도록 군화를 닦고, 가슴에 화려한 훈장을 달고, 깃을 빳빳이 세운 제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다가 상관을 만나면 깍듯이 경례를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군인이 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군인은 전쟁터에 나가서 기꺼이 자기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 한 그는 군인도, 장교도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십자가의 군병들인 우리 신자들도 매너가 깔끔하고, 성경지식이 많은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서 피 흘려 죽을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진정한 성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군병들으로서, 순교자적인 자세로, 전투적인 자세로 투쟁할 수 있길 바랍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사단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교회를 박해하기 위해서 끈질기게 쫓아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독수리 날개로 엎어서 광야로 인도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사단이 거기까지 쫓아와서 물을 토해 내서 성도들을 몰살시키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땅을 벌려서 그 물을 다 삼켜 버리신다고 하였습니다. 사단은 교회를 파괴시키고 성도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발악을 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수리 날개로 업어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자 애굽군대가 어떠했습니까? 철병거를 몰고 뒤쫓아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홍해바다의 물을 다 삼키시고 홍해를 마른땅같이 건너게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어떤 사단의 권세도 파하시고 장애물도 제거하시고 우리를 승리케 하십니다.

 

 

결론적으로 사단은 마지막까지 하나님역사를 방해하고 성도들을 집어삼키고자 발악을 합니다. 말세가 될수록 사단이 더 활개를 칩니다. 그러나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실 예수님께서 이미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기셨습니다. 천사들도 하늘의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우리도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복음역사가 힘들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초대교회때 만큼 힘들겠습니까? 환경이나 조건이 문제가 아니라 편하게 신앙생활하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의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고 죽으시므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도 젊음과 시간과 물질을 다 바쳐서 개척의 기초를 놓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생명을 아끼지 말고 죽기까지 헌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앙생활을 만만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왜 주님께서 요한을 통하여 교회와 사단이 전쟁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겠습니까? 신앙생활이 영적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꾸 편리함만을 추구하고 안일하게 퍼져 있으면 사단의 밥이 됩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사단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느냐 패배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우리가 사단과의 영적전투에서 승리하려면 내적 파워를 키워야 합니다. 날마다 보혈의 능력을 덧입어야 하겠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열심히 먹고, 성령의 검, 말씀의 칼을 갈고 닦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다음 주에 가게 되는 제자수양회도 그냥 놀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죽어가는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수양회를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긴장이 풀려있는 리더들을 훈련하고 연단하기 위해서 제자수양회를 갖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점점 영향력을 상실해 가는 이유는 사람들이 축복을 누릴려고만 하지 죄와 싸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도 저마다 권리를 주장할려고만 하지 헌신할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편하게 신앙생활하고자 하는 마음을 회개하고 순교자의 자세로 죄와 싸우고 복음을 전해서 승리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