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
요한계시록 14 강
어린 양의 혼인잔치
말씀: 요한계시록 19, 20장
요절: 요한계시록 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시커먼 하늘에서 비바람이 몰아칠 때에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러나 장대비가 그치고 맑은 하늘에 무지개가 뜰 때에 얼마나 아름답고 환상적입니까? 그동안 계시록 말씀들은 주로 말세에 임할 재앙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인 재앙, 나팔 재앙, 대접 재앙, 바벨론의 멸망등 몰아치는 장대비처럼 심판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계시록 말씀이 너무 무서워서 이불 속에서 들어가서 덜덜 떨면서 읽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악의 세력에 대한 심판이 끝나고 마침내 승리의 찬가가 울려 퍼집니다. “할렐루야!”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야’처럼 감격과 환희의 찬가가 울려 퍼집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우리 신자들에게 임할 승리의 소망이 무지개와 같이 우리 마음에 떠오를 수 있길 바랍니다.
Ⅰ. 어린양의 혼인잔치(19장)
19:1,2을 봅시다. 하늘의 허다한 무리가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있도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있도다. 우리 하나님은 그동안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했던 큰 음녀 바벨론을 심판하십니다. 신자들의 피를 흘리게 한 우상 숭배자들의 죄값을 철저히 치루게 하십니다. 이로 말미암아 원수들이 다 패함을 당하고 하나님의 통치권이 회복 됩니다.
그러니 얼마나 기쁩니까? 허다한 무리들과 하늘의 천군 천사들이 기뻐 찬양하게 됩니다.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 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도다” 주님은 만유를 회복하시면서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베푸십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께서 신랑처럼 오셔서 우리 신자들을 신부로 영접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신자들은 음녀들이 들끓는 세상에서 믿음의 중심을 지키느라 많은 수고를 하였습니다. 지하동굴 카타콤에서 숨어서 신앙생활하느라 항상 숨 죽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짐승의 밥이 되기도 하고 칼에 맞아 순교당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 주님께서는 성도들을 괴롭히던 악의 세력을 무찌르고 성도들을 한 사람 한 사람 거룩한 신부로 맞아 주십니다. 신부 입장. 딴 따따단. 신부들이 천국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입장합니다. 이때에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5월의 신부로 맞아 주십니다. “오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여. 그동안 얼마나 수고가 많았소. 이제 내가 영원토록 그대를 행복하게 해 주리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신부를 위해서 성대한 혼인잔치를 열어 줍니다. 이것은 마치 이도령이 돌아와서 춘향이를 신부로 맞이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동안 춘향이가 변사또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온갖 유혹과 핍박 속에서 매를 맞고 옥에 갇혀 목에 칼을 쓰고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이도령이 과거급제하고 암행어사가 되어서 돌아와서 탐관오리들을 소탕하고 저 간악한 변사또도 심판하였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갇혀 있는 춘향이를 풀어주게 하고 신부로 맞이합니다. 춘향이의 눈에서는 한없이 눈물이 흘러 나옵니다. “서방님! 살아계셨군요.” “그래, 내 사랑 춘향아 내가 이제 영원토록 네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여봐라 풍악을 울려라” 그때에 모든 사람들이 기뻐서 노래를 부르며 혼인예식을 축복하잖습니까?
마지막 날 우리 신자들과 예수님의 관계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바벨론의 음녀들이 판을 쳤습니다. 온갖 화려한 옷과 귀금속으로 치장을 하고 위세를 떨쳤습니다. 이때 우리 신자들은 토굴을 전전하며 비참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주님이 오시게 되면 전세가 역전됩니다. 세상의 음녀들은 수치를 당하고 우리 성도들은 영광스럽게 됩니다. 주님은 신랑이 되셔서 우리를 당신의 아리따운 신부로 맞아 주십니다.
8절을 보십시오. 신부가 어떤 옷을 입었습니까?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신부들은 화려하고 휘황찬란한 옷을 입는 것이 아닙니다.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 단아하고 정결한 옷을 입습니다. 그것은 로마의 귀족들이 입는 그런 옷이 아닙니다. 오직 옳은 행실로서 신앙의 정절을 지켜온 거룩한 옷을 입고 신부가 등장합니다. 신랑되신 예수님도 장군이나 왕이 아니라 어린양으로 묘사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주님께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랑 예수님은 우리에게만 헌신과 희생과 인내를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도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아픔과 온갖 수모를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뒤에 부활 승천하신 뒤에 영광의 주로 재림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신랑되신 예수님 편에서나 신부된 우리 성도들 편에서나 다 눈물겹고 감격스러운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주례사를 하십니다.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주례사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참으로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가장 복 있는 사람입니까? 바벨론의 음녀들 틈에 끼여서 가질 것 다 가지고, 누릴 것 다 누리며, 즐길 것 다 즐기고 사는 사람입니까? 솔로몬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것은 잠시 잠깐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믿음의 중심을 지키며 주와 복음역사를 섬기기 위해서 좀 고생하며 살지라도 장차 주님 나라에서 주님과 연합되어지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것이 최고의 축복이요, 은총인 줄 믿습니다.
이것은 단지 주님의 재림의 때에 천국에서만 맛보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가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에 이런 기쁨과 감격 속에서 살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오셔서 가장 먼저 기적을 베푸신 곳이 가나 혼인잔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이 혼인잔치와 같이 기쁘고 감격스런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신랑으로 모시고 그의 뜻에 순종하여 살게 될 때에 맹물같은 인생이 포도주와 같이 맛있고 향기 나고 환상적인 삶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 사는 날 동안 고생하고 헌신하고 비참하게 살다가 마지막 날 하나님 나라에서만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해서 축복을 누리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말씀 안에서 주님과 연합되어지는 삶을 살기만 하면 얼마든지 하루하루의 삶이 혼인잔치와 같이 감격과 기쁨으로 넘치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요즘 우리 최순종 목자의 모습을 보면 하루 하루가 혼인잔치와 같습니다. 새벽기도하고, 형제 도서실 청소하고, 복사기, 프린트 관리하고, 도망간 양들 심방가고, 취직공부 하고 눈코 뜰새 없이 바쁜데도 기쁨이 충만합니다. 우리 윤영천 형제님도 매일매일 양식말씀이 생수와 같이 달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대하고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를 해 보십시오. 매일 매일의 삶이 혼인잔치와 기쁨과 감격의 도가니입니다. 정말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 보십시오. 신랑을 만나러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신부의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 보십시오. 매주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천국을 맛보는 천상의 예배가 될 것입니다. 2010년은 이런 생활의 연속이 되면 좋겠습니다.
반면에 성도들을 핍박하며 세상쾌락을 즐기며 산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19:11-21절은 이들에 대한 심판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충신과 진실이라는 이름을 가진 백마를 타십니다. 한충신 목자님과 같이 충성스러운 말이 주님을 태우고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눈은 불꽃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을 쓰셨습니다. 그 입에서는 예리한 검이 나옵니다. 그 옷과 다리에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주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로 악의 세력을 타파하십니다. 맹렬한 진노로 짓밟으십니다. 공의로 심판하십니다.
공중의 모든 새를 보내셔서 악한 세상 왕들과 장군들, 장사들의 살을 뜯어 먹게 하십니다. 그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 우상에게 절하며 또 미혹하던 자들은 모두 산채로 유황불이 붙는 불 못에 던져지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죽음이 어떤 죽음인지 아십니까? 그 시체가 독수리나 매등 새들에게 뜯어 먹혀 죽는 죽음이라고 합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눈을 다 파먹고 살을 다 쪼아서 얼마나 처참하게 만들어 놓겠습니까? 그리고 앙상하게 남은 뼈는 지옥 불에 던져집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을 믿지 않고 세상쾌락 속에서 음녀들과 짝하여 산 사람들의 최후입니다.
19장에는 두 종류의 잔치가 확연하게 대비되어 나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으로 살다가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거룩한 신부로서 참여하는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하나입니다. 또 다른 잔치는 주님을 대적하고 사단의 뜻을 따라 살다가 심판을 받아 새들에게 뜯어 먹힘을 당하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심판의 잔치, 살육의 잔치입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에는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천사들의 할렐루야 찬송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반면에 지옥의 잔치에는 주님의 맹렬한 진노로 말미암아 울부짖고 탄식하는 소리가 가득합니다. 음산한 새들의 외침소리와 무섭게 타오르는 지옥불의 맹렬함이 충만합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잔치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주인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한 사람도 지옥의 잔치에 희생물이 되지 않고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거룩한 신부로 초청을 받는 자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Ⅱ. 천 년 왕국(20장)
20장 말씀은 사단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지옥불에 던져지는가 하는 내용입니다. 그동안 앞장에서는 음녀 바벨론과 적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심판의 내용이 나왔습니다. 이제 20장에서는 용, 옛 뱀, 마귀 사탄에 대한 심판입니다. 음녀 바벨론이나 적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등 악의 세력도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배후를 조종하는 근본적인 악의 뿌리, 사탄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귀 사단을 어떻게 멸하십니까? 20:1,2절을 봅시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가지고 와서 사단을 천 년 동안 결박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므로 우리의 죄 값을 다 치루셨습니다. 또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서 죽음의 권세를 파하셨습니다. 이로서 사단은 치명상을 입고 무저갱 가운데 갇힌 바 되었습니다. 얼마 동안 갇힙니까? 천 년 동안 갇힙니다. 여기서 천 년은 산술적인 햇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까지 사단의 권세를 완전히 결박하셨다는 승리의 완전성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굳게 붙들게 되면 사단이 힘을 쓰지 못합니다.
누가복음 10:17-19절에 보면 제자들이 전도 여행을 갔다 와서 예수님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전도하니까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도 사단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사단은 예수님의 이름만 듣게 되면 꼼짝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간절하게 기도하고, 힘 있게 찬양하고,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게 되면 마귀 사단이 번개처럼 우수수 떨어집니다. 사단의 왕초가 무저갱에 이미 결박되었기 때문에 그 졸개들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단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복음을 굳게 붙드는 자를 사단이 절대로 미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천로역정에 보면 크리스찬이 어디를 지나가다가 황소만한 개가 으르렁거리며 달려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개가 금방이라도 달려들어서 집어 삼킬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 개가 쇠사슬에 묶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말해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사단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단이 무서워서 자꾸 산으로 들어갈려고 합니다. 세상이 너무나 음란하고 험악하기 때문에 도피적인 삶을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사단은 근본적으로 패망한 패잔병에 불과합니다. 때문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세상가운데 나아가서 승리의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승리가 보장된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7절에 보면 천 년이 차매 사단이 옥에서 잠깐 놓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곡과 마곡을 미혹하여 큰 싸움을 벌인다고 했습니다. 곡은 악의 무리의 우두머리이고 마곡은 곡이 통치하는 영역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기 직전에 사단이 악의 세력을 규합해서 성도들을 짓밟고자 합니다. 마치 깡패 두목이 탈옥을 해서 졸개들을 규합해서 반격을 가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16장에 나오는 아마겟돈 전쟁입니다. 마지막 때에 악의 세력과 성도들의 최후의 전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서 사단의 무리들을 불태워 버리십니다. 그날에 마귀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져서 세세토록 괴로움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사단 마귀의 최후입니다. 그 날에는 사단만 심판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들도 함께 심판을 받습니다. 15절을 봅시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사단은 마지막까지 발악을 합니다. 무저갱에 갇혔는데도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겨보려고 안달을 합니다. 사단은 창세기 3장에서부터 요한계시록 20장까지 얼마나 집요하게 활동하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성을 파괴시키려고 발악을 합니다. 그러나 결국 이 전쟁에서 누가 이깁니까? 우리 주님과 성도들이 이깁니다.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신 하나님과 감히 싸워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사단이 악한 궤계를 꾸미고 별짓을 다 해도 마귀는 패하고 어린 양의 혼인 잔치는 이루어지고야 맙니다. 주님과 우리의 사랑의 연합은 누구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침내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어여쁜 신부로 당당하게 입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과 함께 천 년 만 년 왕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20: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노릇 하니” 주님을 위해서 믿음의 순결을 지키다가 순교당한 자들도 있습니다. 아무리 우상숭배를 강요당하지만 끝까지 이를 거부하고 끝끝내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비록 순교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순교의 각오로 산 사람들입니다. 이런 성도들을 주님께서 왜 모른체 하시겠습니까? 주님은 그들에게 주님과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하는 축복을 주십니다.
천 년 동안 왕 노릇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성도들이 부활하여 우리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천국의 영웅이 된다는 뜻입니다. 춘향이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에는 일개 천한 죄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이도령과 결혼하여 어사의 부인이 되면 어사와 함께 그 영광을 누리게 되잖습니까? 우리도 별 볼일 없지만 우리의 주님, 우리의 신랑되신 예수께서 만왕의 왕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도 그와 더불어 왕노릇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살 때에도 그리스도의 제사장으로서 당당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아프리카에서 한 어느 선교사 가족이 원주민 선교를 하다가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악명 높은 식인종들이었습니다. 그 식인종의 추장과 그 부족들이 몰려와서 선교사 가족을 묶어 놓고 그 앞에 불을 피워 놓은 다음에 식인종 고유의 의식을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이 의식이 끝나면 이 선교사 가족은 꼼짝없이 식인종들의 불고기감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선교사 가족이 눈을 감고 찬송을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주 예수 이름 높이여 다 찬양 하여라. 금 면류관을 드려서 만유의 주 찬양. 금 면류관을 드려서 만유의 주 찬양.” 하고 찬송이 계속되는 동안 식인종들의 의식도 끝나고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선교사 생각에 ‘이제는 우리의 생명의 마지막이 다가 왔나보다.’ 생각하고 눈을 떠보니 의외로 기적 같은 일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살해할 듯이 살기등등했던 저들이 선교사 가족들 앞에 엎드려 경배를 하고 있더랍니다. 선교사 가족이 극적으로 구출된 후에 추장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추장의 말이 자기들 의식이 끝나면 곧 바로 잡아 구워먹으려고 했는데 느닷없이 칼과, 창 그리고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선교사들 가족을 지키고 있는 것이 보여, ‘아, 저 사람들을 해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구나’ 싶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선교사들이 전하는 복음의 도리를 따르려고 무릎을 꿇었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마을에 선교사 가족을 지켜줄 군대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추장과 부족들에게 환상을 보여 주셔서 두려운 마음이 들게 하시고 무릎 꿇게 만드신 것입니다. 열왕기하 6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아람군대에 포위되어서 몰살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엘리사의 사환이 엘리사를 찾아와서 벌벌 떨며 보고합니다.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 하리이까?” 이때 엘리사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여호아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열어 불말과 불병거가 가득 이스라엘나라를 호위하고 있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아람군대의 눈을 멀게 하사 저 멀리 사마리아까지 가게 하시고 이스라엘나라는 완벽하게 보호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도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밤새도록 기도하고 찬양하자 천사가 나타나서 손과 발에 착고를 풀어 주시고 감옥문을 열어주셔서 유유히 걸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제사장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하게 됩니다. 누구도 감히 우리를 해할 수 없습니다. 물론 복음을 전하다가 스데반과 같이 순교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도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천국소망과 부활신앙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을 쳐 죽이기 위해서 돌을 들고 달려드는 무리들 앞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의 기색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밝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이 천사와 같았더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향해서 돌을 던지는 자들을 위해서 오히려 기도를 하였습니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7:59,60)” 이런 사람은 히브리서 11:38절 말씀과 같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는 자들의 당당함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핍박으로 인해서 흩어진 성도들에게 이렇게 위로하였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 (벧전2:9)” 우리가 누구라구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왕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만왕의 왕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모든 대적자들을 파하시고 거룩한 주의 신부가 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당당하게 삽시다. 기죽지 맙시다. 두려워하지 맙시다. 우리는 마침내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정복자가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끝까지 믿음의 중심을 지킨 자들은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것이요, 주님과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정결한 신부로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당당하게 살 수 있길 바랍니다. 용기와 담대함을 가지고 나아가서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며 2010년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하는 해가 될 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