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5 강

                                                                  새 예루살렘

 

말씀: 요한계시록 21:1-27

요절: 요한계시록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병원에 가보면 엘리베이터의 층수가 특이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4층이 없어요. 아예 4층이 없거나 F층으로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병원에 4층이 있으면 누가 4층에 가고 싶겠습니까? 더구나 입원실이 404호, 444호 하면 아무도 그 병실에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이번에 아이티에서 지진이 발생해서 수 만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안전합니까? 알 수 없습니다. 이번에 폭설 내릴 때 보십시오. 눈이 몇 센티만 더 와도 온 나라가 완전히 꽁꽁 얼어 붙잖습니까? 미국사람들은 지난 크리스마스 때에 비행기가 테러를 당해서 300여명이 공중분해 될 위기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불안해서 뭘 탈 수도, 어디를 갈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근본적으로 죄로 말미암아 파괴되고 황폐화 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 저주받은 세상 가운데서 지진으로 죽던, 테러로 죽던, 병에 걸려서 죽던, 젊어서 죽던, 늙어서 죽던 반드시 죽어야만 합니다. 죽고 끝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9:27)”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두렵고 답답합니까?

 

Ⅰ.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나니(1-8)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소식을 알려 주고 계십니다. 다같이 21:1절을 함께 읽어 보시겠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주님께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기존의 하늘과 땅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옛 세상, 옛 질서는 무너지고 새로운 세상, 새로운 질서가 확립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죄 때문에 고통합니다. 질병에 시달립니다. 인간관계로 인한 갈등 때문에 미워하기, 시기하고, 죽고 죽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땅에서의 삶이 생지옥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우리 인간들 뿐 아니라 피조물들조차도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해방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탄식하며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2절을 보세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이 펼쳐지게 됩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새 창조입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든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여자가 가장 아름다울 때가 언제입니까? 그야 두말할 필요 없이 신부가 단장을 하고 결혼식장에 들어설 때입니다. 신부가 화장하고 웨딩드레스 입고 결혼식장에 입장할 때에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저는 결혼식 때마다 신부들의 모습을 보고 깜짝 깜짝 놀랍니다. 평소에 쌩얼에 청바지 입고 돌아다닐 때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웨딩포토는 더 환상적입니다. 그렇게 아름답고 환상적인 세상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우리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러브 하우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방송국에서 가난한 가정을 방문해서 그 집을 완전히 새로운 집으로 리모델링해 주는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방문이 열리고 그 식구들이 집에 들어서는 순간 하나같이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 합니다. 생활에 여유가 없어서 그렇게 힘들게 불편하게 초라하게 살았는데, 완전히 다른, 환상적인 집으로, 그것도 완전 무료로 리모델링 해 주니 얼마나 감격스럽겠습니까? 정말 새 하늘과 새 땅이죠.

 

그런데 저는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 집들을 한 5년이 지난 후에 다시 방문해 보면 어떨까? 과연 그때의 그 감격과 기쁨과 환상 속에서 살고 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집안 환경을 바꿔주고, 가구와 응접 셋트와 가전제품들을 최상의 것으로 바꿔줘도 그 사람의 본질이 바뀌지 않으면 똑같습니다. 어떤 곳에 사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이 사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과 함께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장차 들어가게 될 하나님 나라는 어떻습니까? 새 하늘과 새 땅은 삶의 환경만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완전히 바뀌어지게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사는 대상이 달라지게 됩니다. 3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새 예루살렘, 하나님의 장막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사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남편이 되십니다. 우리는 그 분의 자녀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서 주님과 더불어 영원토록 함께 삽니다.

 

4절을 봅시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눈물겨운 일들이 많습니다. 억울해서 울고, 서러워서 울고, 원통해서 울고, 슬퍼서 웁니다. 화가 나서 울고 아파서 웁니다. 양들에게 바람맞고 핍박을 받아서 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장막에서는 이런 모든 아픔과 슬픔이 다 사라져 버립니다. 사망이 없습니다. 아픈 것이 없습니다. 새 예루살렘, 하나님의 장막에는 전쟁이 없습니다. 지진도 없습니다. 폭설도 없습니다. 질병이 없습니다. 천국에 가면 병원과 약국이 없습니다. 우리 의사, 약사 목자님들은 천국에 가면 직업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번에 모스크바에 김엘리야 선교사님이 고열에 코피를 계속을 흘려서 병원에 가보니 백혈병인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습니다. 선교지에서 그동안 그렇게 고생해서 이제는 좀 안정이 되어서 센타도 짓고 개척역사를 이룰려고 하니까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사경을 헤매고 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픕니까? 그러나 천국에서는 이런 질병이 없습니다. 아픈 것이 없습니다. 사망이 없습니다. 상함도 해함도 없는 곳에서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들이 바라보아야 할 참 소망이요, 기대입니다.

 

찬송가 470장 “내 평생에 가는 길”를 지으신 Spafford 라는 분은 시카고 대 화재로 말미암아 사무실과 집이 전소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듬해에 네 딸들이 배를 타고 여행을 가다가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네 딸이 다 죽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고 아팠겠습니까? 너무나 고통스럽고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아서 기도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의자에 앉아 있는데 성령의 음성이 들려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대여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네 사랑하는 딸들은 지금보다 더 좋은 곳, 저 천국,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고 있을 것이다” 이 주님의 음성에 큰 위로를 받고 찬송가를 지었는데 그 찬송이 바로 470장입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우리에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이 없다면 인생이 얼마나 허무하고 불안하겠습니까? 지금은 잘 살아도 언젠가는 병들어 죽을 것이기 때문에 불안하고 현재 어려움이 있는 사람은 그 어려움 때문에 괴로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두신 하나님의 장막을 생각할 때에 인생의 역경의 때나 순경의 때나 변함없이 평안하게 믿음의 길을 달려 갈 수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여기 나오는 하나님의 장막을 하나님의 신방이라고 표현합니다. 신랑신부가 신방을 꾸미고 그곳에서 행복한 삶을 꾸려 가듯이 우리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연합된 삶을 사시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것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이라고 하였습니다. 남녀가 결혼하여서 몸과 마음이 연합되어지는 것도 신비로운 일입니다. 그 사랑의 결실로 자신들을 닮은 자녀들이 태어납니다. 이것이 얼마나 귀하고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안대섭, 화진 목자님의 딸 예원이를 보면 정말 아빠 엄마를 빼 닮았습니다. 땡글땡글한 눈 하며, 귀여운 입술이 아빠 엄마 판박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장막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살게 될 때에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성령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됩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등 성령의 열매들이 우리 내면에 맺히게 됩니다(갈5:22,23).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5절에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우리가 주님과 교제하며 연합된 삶을 살게 될 때에 거기서 맺히는 열매는 우리에게도 기쁨이 되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은혜가 되고 향기를 발합니다.

 

어거스틴은 과거에 예수님을 알지 못할 때에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정식으로 결혼한 것도 아니고 한 여인과 동거하며 정욕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 열매로 사생아를 낳았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에게나 자신에게나 큰 짐이요, 수치였습니다. 그런데 어거스틴이 마침내 회개하고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장막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지는 삶을 살게 되므로 그의 인생이 180도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독교 역사상 수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위대한 작품들을 많이 썼습니다. 그의 참회록, 은혜론, 신의 도성등은 서양의 사상사를 바꾸어 놓는 수작들입니다. 그 작품들이 자신의 노력과 수양의 결과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고 또 읽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묵상에 묵상을 반복하면서 그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졌을 때에 마침내 그런 위대한 결실들을 맺게 된 것입니다.

 

어거스틴만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과거의 죄의 소굴에서 빠져 나와서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며 매일 일용할 양식을 쓰죠. 매주 주옥같은 소감을 쓰죠. 우리의 인생소감은 어거스틴의 참회록에 버금가는 위대한 수작들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의 은혜 안에 사는 것도 이렇게 감격적이고 기쁜데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게 될 때는 어떠하겠습니까? 이루 말할 수가 없겠죠.

 

5절을 봅시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재림의 때에 주님께서는 만물을 새롭게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는 제 아무리 위대한 영웅이 세상을 새롭게 하고자 해도 안 됩니다. 한계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단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는 사단이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가 20장에서 배운 것처럼 용, 옛 뱀, 마귀 사단이 불 못에 던져져서 멸망을 당하고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만물이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재림의 때에 우리 주님은 온 세상 만물을 리모델링하십니다. 엄격히 말하면 리모델링이 아니고 recreation, new creation. 재 창조, 새 창조입니다. 옛 질서는 붕괴되고 새로운 질서가 확립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51,52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주님의 재림의 때에 우주의 질서도 변하고, 우리 각자도 전혀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성화(sanctification)의 단계를 넘어서 영화(glorification)에 이르게 됩니다.

 

이 일을 누가 이루십니까? 알파요 오메가, 처음이요 나중되신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창세기 1장에서 원 창조를 이루신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 마지막에 와서 새 창조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라면 만물을 새롭게 하는 새 창조의 역사를 왜 이루시지 못하겠습니까?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이 주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생명수 샘물을 누구든지 풍성하게 값없이 부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목말랐던 것, 부족했던 것, 결핍되었던 모든 것을 넘치게 채워주십니다. 그러면 이런 축복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에게 주어집니까? 7절을 봅시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이기는 자, 핍박과 죄의 유혹을 이기고 믿음의 중심을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를 상속할 수 있는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두려워서 배교해 버리는 자, 자기는 믿지 않는다고 거짓말 하는 자, 흉악한 자, 살인자, 음행하는 자, 점술가들과 우상숭배자,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진다고 하였습니다.

 

Ⅱ.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성(9-27)

 

9-27절에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환상적인 그림언어를 통해서 보여주고 계십니다. 11절을 봅시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과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주님의 나라는 보석처럼 아름답고 수정같이 맑고 깨끗합니다. 에덴동산의 이미지이죠. 즉 새 예루살렘은 새 에덴입니다. 거기에는 열두 문이 있고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습니다.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열두 사도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열 두 지파, 신약의 열 두 제자를 상징힙니다. 즉 구약과 신약시대에 신실한 성도들이 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그 성의 크기는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2000스타디온으로서 2400km, 성벽의 두께는 144규빗으로서 70미터나 됩니다. 어마어마한 크기입니다. 동서남북에 각각 문이 세 개씩이나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만방의 백성들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성곽의 기초석이 12개인데 12 종류의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습니다. 성의 길은 맑은 유리같은 정금이더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땅에서 피땀 흘려 돈 벌어서 각종 진기한 보석을 사서 모았습니다. 죽어서도 그 보석이 아까워서 관에 넣어달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마침내 천국에 가서 그 보석 자루를 가지고 정문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그러더랍니다. 그냥 놓고 가시라고. 천국에서는 보도블럭이 다 보석인데 뭐 할려고 그걸 여기까지 가지고 왔느냐고 하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죄악된 세상 가운데서 믿음의 중심을 지키고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서 희생하며 헌신하며 살아온 자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보석같이 아름다운 집을 지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신년 수양회 때에 문준경 전도사님과 이판일 장로님의 순교신앙을 다룬 영화를 봤습니다. 그분들은 이 땅에서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셨습니까? 문준경 전도사님은 여자의 몸으로 통통선 배를 타고 신안군 섬 지방을 돌아다니시며 100개의 교회를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남편의 사랑도 못 받고 온갖 수모와 멸시를 당해가며 복음을 전하다 총에 맞아 죽으셨습니다. 이판일 장로님 가정은 모래구덩이에 생매장을 당했습니다. 그것으로 그분들의 삶이 끝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안쓰럽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그분들을 위해서 예비되어 있습니다.

 

22절에 보면 성 안에 성전을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 양되신 예수님이 성전으로 좌정하고 계시다고 하였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건물이 아닙니다. 주님의 임재가 가득한 곳입니다. 주님의 임재와 통치하심이 완벽하게 이루어 진 곳, 그곳이 바로 새 예루살렘입니다. 그 곳은 더 이상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 없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밤이 없다고 했습니다. 낮에도 성문을 닫지 않습니다. 세상 만민이 언제든지 들어와서 예배 드릴 수 있도록 항상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속되고 가증한 일을 행한 사람, 거짓된 자들은 그곳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요즘 입시철이라 수험생들은 자신이 들어가고 싶은 대학 합격란에 내 이름이 적혀 있는가 그렇지 않는가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거기에 자기 이름이 있으면 너무나 기뻐하고 없으면 너무나 슬퍼하고 낙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들어가기에 힘써야 할 곳은 새 예루살렘 성, 천국입니다. 그때 그 천국문 앞에 명단에 내 이름이 없으면 끝장입니다. 천국에 가면 세 가지 때문에 놀란다고 하잖습니까? 첫째는 분명히 그 사람 이름이 거기 있을 줄 알았는데 없어서 놀라고, 둘째는 그 사람은 이름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름이 적혀 있어서 놀라고, 셋째는 내 이름이 거기 적혀 있어서 놀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그날에 그 기쁨과 환희의 주인공이 되어야죠.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들 이름이 다 거기 있어야죠. 요즘 방송에 보면 상조회사, 장례업체를 선전하는 내용이 정말 많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잘 모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에서부터 뭣까지 원스톱 서비스로 완벽하게 처리해 드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효도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부모님을 어디에 모셔야 하겠습니까?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 동료들에게 무엇을 선물해 드려야 하겠습니까?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구원의 복음을 선물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아파트 한 채씩을 사줄 수는 없지만 그 보다 더 귀한 새 예루살렘 성에 입주하는 길을 안내해 줄 수 있습니다. 다음 주는 생명수 축제를 위한 총동원 전도주일입니다. 우리가 최소한 한 사람 이상을 초청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복음을 듣고 천국을 체험하는 귀한 역사가 있도록 기도합시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누구든지 복음을 영접한 순간 주님께서 그 인생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 인생의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시고 새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감격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죄의 열매가 아니라 의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히는 성령의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과거에 어떤 망가지고 추하게 살아온 사람도 보석처럼 존귀한 존재로 변화되게 될 것입니다. 그 귀한 생명수의 잔치에 한 영혼이라도 더 초청합시다. 주님께서 마르지 않는 생수를 넘치도록 채워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