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6강

                                                                  생명수의 강이 흘러넘치리라

 

 

말씀: 요한계시록 22:1-21

요절: 요한계시록 22:1,2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요즘은 정보 통신이 발달해서 지구 반대쪽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4, 500년 전만 해도 동서양은 서로를 너무나 몰랐습니다. 그런데 14세기에 서양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책이 하나 출간 되었습니다. 그것은 한 서양사람이 동양에 갔다 와서 쓴 책입니다. 뭘까요? 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입니다. 이탈리아의 마르코 폴로가 1271년부터 1295년까지 동방을 여행한 체험담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때까지 서양사람들은 지구 반대편 동방에 뭐가 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 책에 기록된 내용을 보니까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과 전혀 다른 풍습과 언어와 옷차림과 음식,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이 책은 마르코 폴로가 이탈리아로 돌아와서 여러 가지 정쟁에 휘말리다가 감옥에 들어가서 쓴 책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르코 폴로가 약간 정신이 돌았나 보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소설을 쓴 것이다’ 이렇게 평가절하했습니다. 그러나 그 책의 내용을 믿는 몇 사람이 동방을 향해서 무역하러 떠났는데 그야말로 대박이 터졌습니다. 그동안 서양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비단, 후추, 향료, 나침반들을 수입해왔기 때문입니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이 이처럼 동방에 존재하는 나라를 소개한 것 처럼 요한계시록은 사도요한이 천국을 환상 가운데서 보고 쓴 책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천국견문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늘 말씀은 요한계시록의 맨 마지막 장으로서 핵심 중에 핵심입니다. 계란의 노른자위와도 같습니다. 그러니 오늘 오신 분들은 정말 잘 오셨습니다. 자 그러면 저와 함께 천국여행을 떠나 봅시다.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첫째로, 천국은 생명수 강물이 흘러넘치는 곳입니다. 1절을 봅시다.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천국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이 흐르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돈도 필요하고, 좋은 집도 필요하고, 차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물입니다. 그래서 세계사를 공부해 보면 문명의 발상지는 항상 물을 끼고 있었습니다. 다른 것이 다 좋아도 물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가 없습니다. 또 물이 있기는 있는데 오염되어 있으면 어떻습니까? 병들어서 오래 살 수가 없습니다. 많은 질병이 물 때문에 생깁니다. 요즘 캄보디아나 인도, 네팔, 이런 지역에 가보면 물이 너무나 오염되어 있어서 피부병, 위장병, 암환자가 그렇게 많다고 합니다. 워낙 하수 처리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는데다가 무분별하게 공장을 지어서 폐수를 그냥 막 흘려 보내기 때문입니다.

 

물이 좋아야 그 물을 마시는 사람이 건강합니다. 물이 좋아야 그 옆에서 자라는 작물이 싱싱하고 나무에서 열리는 과일도 맛있고 영양가가 풍부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물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 알기 때문에 얼마나 물을 가려 먹습니까? 정수기 없는 집이 없습니다. KTX 타면 한 병에 3000원 하는 스위스산 에미앙 생수만 팝니다. 석유보다 훨씬 더 비싸요. 그런데 항상 그 물만 사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집에서도 그 물만 배달해서 먹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 돈을 조금도 아까와하지 않습니다. 물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원래 에덴동산에는 맑고 신선한 강물이 사방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물이 좋았기 때문에 에덴동산에는 보기에도 좋고 먹기에도 좋은 과일들이 사시사철 주렁주렁 맺혔습니다. 더구나 거기에는 생명나무 실과가 있어서 생명나무 실과를 따 먹고 영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생명나무와 생명수 강을 못 먹고 못 마시게 되었습니까? 죄 때문에 상실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인간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축복인 에덴을 발로 차 버렸습니다. 에덴에 흐르는 그 생수의 강을 더럽히고 말았습니다. 그 맑고 깨끗한 생수가 더럽고 추하고 악취가 나는 폐수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 오염된 물을 먹고 자란 사람들은 자연히 죄로 병든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에서 죄의 물을 먹고 마시며 죄의 열매를 따 먹고 죄에 중독이 되어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세상을 보세요. 날마다 방송을 통해서 쏟아져 나오는 뉴스와 정보들이 어떻습니까? 각종 볼거리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지만 생수가 아니라 폐수인 것 경우가 너무나 많아요. 음란물, 폭력물, 별 영양가 없는 가십거리들이 쉴새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사람들을 죽고 죽이고 비방하고 욕하고 모함하고 비판하는 말들이 난무합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것들을 먹고 마시며 삽니다. 처음에는 양심에 찔리기도 하고 좀 거북했는데 이제는 거기에 중독이 되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매체를 통해서 죄의 중금속들이 우리의 체내에 축적이 됩니다. 그것이 말과 행동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그 열매는 죄로 오염된 독성이 가득한 열매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어떻습니까? 천국에는 전혀 오염되지 않는 수정과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흘러 넘칩니다. 전혀 더럽혀지지 않는 물, 얼마나 맑고 깨끗했으면 수정과 같이 맑다고 했겠습니까? 더구나 그 물은 생명수의 강물입니다. 생명수 강물이란 생명을 주는 강물입니다. 생명으로 충만한 강물입니다. 풍성한 생명, 생명으로 가득한 물입니다. 그 물을 마시면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면 이런 생명수를 매일 매순간 벌컥 벌컥 먹고 마시며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제한급수도 없습니다. 오늘 말씀 17절을 보십시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오늘 처음 오신 모든 분들이 다 예수 믿으시고 천국 가셔서 이 생명수를 영원무궁토록 먹고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도대체 이런 물이 어디서 옵니까?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의 보좌에서 흘러 나온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그 근원이 썩었기 때문에 맑고 깨끗한 물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겉으로 보면 그렇게 세련되고 유머도 있고 얼굴도 잘 생기고 매너도 좋고 실력도 있고, 그래서 호감이 가지만, 가까이 지내면서 사귀어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실망하게 됩니다. 거짓되고, 위선적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점점 실망하게 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그랬잖아요. 이 남자를 만나면 생수가 터져 나오겠지. 저 남자에게는 뭔가 신선한 것이 있겠지. 그렇게 해서 다섯 남자를 거쳤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까 다 가짜였습니다. 생명수가 아니었습니다. 가짜. 유사품, 짝퉁이었습니다. 마를린 먼로는 당대에 전 세계 남자들로부터 사랑받는 최고의 미녀였습니다. 그녀는 하루에도 수 백통의 팬레터를 받았고 유명한 의류회사, 화장품회사들로부터 최고급품들이 박스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잘생긴 영화배우, 인기절정의 야구선수와도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알 수 없는 허무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그녀는 36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이번 호 일용할 양식에 소개된 홍콩의 안젤라 김 선교사님의 인생소감을 보셨습니까? 그분은 여행사를 하는 남편을 따라 홍콩에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멋있는 홍콩의 야경을 구경하며 여러 외국인들을 만나서 사귀고 맛있는 중국 요리를 맛보며 돌아다니는 것이 재미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이것도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작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습니다. 밤새워 도박하고 낮에는 잠자고 그런 생활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도박빚만 지고 삶이 너무나 비참하고 곤고해 졌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맛보는 것들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나오는 생명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흘러 나옵니다.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하나님, 영광의 주님으로부터, 하늘로서 흘러 나오기 때문에 우리를 진정으로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어린양 예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옵니다. 우리를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 아무 죄가 없지만 우리 죄인들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죽은지 사흘 만에 무덤을 박차고 일어나 부활하신 예수님. 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성령의 생수를 흘려 보내 주십니다. 이 생명수는 우리의 모든 더러운 죄를 다 씻어 주십니다. 우리 안에 거룩한 영으로 가득 채워 주십니다. 하늘의 기쁨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신령한 기쁨이 계속해서 우리 안에서 솟아나게 하십니다. 뭘 가진 것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고 잔잔한 평화가 우리 마음에 흐릅니다. 이 물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충만하게 될 때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리라(요7:38)” 성령의 생수가 우리 마음 깊은 곳 속에서 폭포수와 같이 흘러 넘칩니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찬송가469장)”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를 마시게 되었을 때에 어떠했습니까? 성령의 생수가 샘물 터지듯이 솟구쳐 오르게 되었습니다. 너무너무나 기뻐서 그 기쁨을 혼자 누릴 수 없어서 동네에 뛰어 들어가서 동네사람들을 다 데리고 왔습니다. 이처럼 이 생명수의 기쁨은 천국에 가서만 맛보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시음을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릴 때에, 메시지를 들을 때에, 말씀공부를 할 때에, 찬송을 부를 때에, 기도할 때에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서 흘려 보내 주시는 기쁨과 감격을 누릴 수 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그 강물이 길 가운데로 흐르는데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고, 열 두 가지 열매가 맺힌다고 했습니다. 그 열매와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험악한 세상에 살면서 얼마나 많은 질병에 시달리는지 모릅니다. 육체적 질병 뿐만 아니라 영혼의 질병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의술이 얼마나 발달했습니까?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혈관에 켑슐을 집어넣어서 사진을 찍고 거기에 무슨 장치를 넣어서 수술을 한다고 합니다. 경성센타에 어떤 한의사는 그 사람의 머리카락을 분석해서 그 사람의 체질과 건강상태를 알아내는 기술을 개발해서 사람들이 아주 많이 몰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의술도 이렇게 발달하고 신약도 그렇게 많이 개발되는데도 병의 종류는 왜 또 그렇게 많습니까? 예전에는 듣도 보도 못한 질병이 계속해서 생겨납니다. 신중플루, 조류독감, 등등. 이런 것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말은 하지 않지만 정신적인 질환과 영혼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밤에 술을 마시거나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합니다. 남몰래 정신과 병원에 다니거나 상담치료를 받는 사람도 갈수록 늘어갑니다. 우울증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갑니다. 북한에서 내려온 탈북자들은 말하기를 남한은 이렇게 잘 먹고 잘 사는데 왜 사람들이 자살하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잘 사는 사람은 잘 사는 사람대로 못 사는 사람은 못 사는 사람대로 끊임없이 걱정 근심 염려 불안 초조 미움 시기심 열등감 비교의식 패배의식에 시달리며 살아갑니다. 살아가면서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그 내면이 패일대로 패이고 마음에 불을 품고 칼을 품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곳에는 약도 없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생명나무 열매와 나무 잎사귀를 먹으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만국을 치료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어떤 종류의 질병도 다 치료하는 효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생수는 육체의 질병과 영혼의 질병을 다 치료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스위스산 에비앙 생수를 마시지 않아도, 각종 건강보조식품 먹지 않아도 육체와 영혼이 다 치료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보십시오. 그동안 남자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상처가 너무나 깊어서 만나는 사람마다 상처를 입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막말로 쏟아 부었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의 남자로서 왜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을 거세요. 누구 놀리는 겁니까?” 그러나 그녀가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 생명나무의 열매와 잎사귀를 먹고 나자 과거에 상처가 다 치료되었습니다. 앙칼진 고양이 같던 사람이 순한 양처럼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다시는 목마르지도 않고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생명수를 소개하는 감동적인 소감강사가 되었습니다.

 

창세기에 요셉을 보십시오. 그 인생이 얼마나 상처가 많았겠습니까?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이복형들에게 구박받고 결국 노예로 팔려갑니다. 보디발 여사의 앙탈 때문에 감옥에 들어갑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쇼생크 탈출처럼 감옥에서 칼을 갈다 출옥해서 자신의 인생을 짓밟은 자들을 하나씩 하나씩 복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을 다 용서하고 자기 가족과 동족 이방인까지 다 먹여 살리는 큰 인물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늘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생수를 공급받았습니다. 그 하나님의 생수가 그의 내면에 모든 상처를 다 녹여 버렸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을 품고 섬기는 성자가 되었습니다.

 

지난 신년 수양회때에 영화로 봤던 이인재 목사님은 그 아버지 이판일 장로님과 어머니, 할머니등등 일가족 18명이 6.25때에 순교를 당했습니다. 공산당들이 모래구덩이를 파고 교인들 40여명과 함께 집어넣고 땅에 묻어서 생매장을 시켜 버렸습니다. 나중에 공산당이 퇴각하고 청년 이인재는 해군이 되어 돌아 왔는데 그 사실을 알고 기가 막혔습니다. 너무 너무 화가 나서 심장이 멎어 버린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인재야, 그들을 용서하거라” 청년 이인재는 눈물로 기도하는 가운데 십자가에서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생수가 그 마음에 부음바 되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이로서 그는 모든 원수들을 용서하고 그 고향 마을에 교회를 세우고 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전도해서 그리스도안에서 한 형제로 삼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성자로 손양원 목사님만 알았는데 그렇게 훌륭하신 분이 또 계시는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 아들을 둘이나 죽인 원수를 용서하는 것도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런데 부모친척 18명, 교인들 40명을 생매장 시킨 공산당을 용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손양원 목사님이나 이인재 목사님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까?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러 나오는 그 사랑의 생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셨던 그 용서의 사랑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렇게 용서하셨던 그 용서의 사랑이 그 마음에 모든 미움과 증오심의 상처를 순식간에 녹여 버리고 치료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이 주시는 생수와 그 생명나무 실과, 생명나무 잎사귀 등은 어떤 아픔과 슬픔도 고통도 치료하는 신비한 약효가 있습니다. 그래서 3절에 보면 천국에는 저주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보세요. 사람들이 얼마나 서로를 향해서 욕설을 퍼붓고 저주하는지 모릅니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면 잡아 죽일듯이 저주하고 비판합니다. 그 저주와 비판이 부메랑이 되어서 또 돌아옵니다. 그 상처와 반목의 골이 너무나 깊어서 햇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모든 응어리가 풀립니다. 찬송가 가사 중에 그런 가사가 있죠 “못 고칠 질병이 아주 없네” 주님이 주시는 성령의 생수가 우리의 모든 병을 다 치료하실 것입니다. 이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매주 와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공부하게 되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마음에 쓴뿌리가 없어지고 마음의 병, 육신이 질병이 치료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둘째로, 천국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주님을 대면하여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우리가 천국에 가면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감히 쳐다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에 가게 되면 육신의 한계를 다 벗어 버리고 영화의 상태에 이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12절에 보면 우리가 이 땅에서는 청동거울을 보는 것 처럼 희미하게 보이지만 장차 하나님나라에 가면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본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과 더불어서 원없이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며 교제해야 삶의 의미가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저는 참 신기한 것을 봅니다. 요즘 사람들은 2000원짜리 김밥을 먹고 3000원짜리 커피를 마시러 갑니다. 우리 세대에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참된 교제에 목 마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야 합니다. 친구을 만나고 연인을 만나야 합니다. 친한 사람, 보고 싶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그 얼굴을 보고 싶고, 대화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그런데 가장 이상적인 만남이 어떤 만남일까요? 가장 영광스러운 만남이 누구와의 만남일까요? 배용준, 아이리스, 이병헌? 아니요. 어거스틴은 그랬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마음에 평화가 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그 분의 사랑을 풍성히 받는 곳, 그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천국을 완벽히는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맛 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어디입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가 교회와서 예배를 통해 주님과 교제하게 되면 하나님의 낯을 뵈옵는 것 같은 행복감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저는 새벽기도 시간에 찬송하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을 때에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얼굴과 얼굴을 대하며 보는 것 같은 감격을 누립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 앞에 무릎꿇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을 읽으면 모든 세상 근심이 사라집니다. “괴로울 때에 주님의 얼굴 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 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 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힘이 없고 네 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 이름 부르는 모든 자는 힘 주시고 늘 지켜 주시리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우리가 어디 가서 주님의 얼굴을 보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허락하신 교회에서 그런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나오십시오. 예배를 드리십시오. 예배 나오셔서 모든 고민을 털어 놓으시고 기도하시고 주님께 간구해 보세요.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내 마음에 임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은 이 땅에 있지만 우리 마음에는 이미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 있는 놀라운 감격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인생의 수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마다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을 대면하여 만남으로 큰 위로와 힘을 덧입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편 84:10절에서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 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 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주님과 교제할 때에 진정으로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5절을 봅시다. 거기에는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다고 했습니다. 천국에는 어두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밝은 빛으로 우리를 마음과 얼굴을 비추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때 우리는 세세토록 왕 노릇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죄인된 모습을 벗어 버리고 왕처럼 위엄있고 존귀한 존재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타락하기 전에 그 아름답고 영광스럽고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 받고 거듭난 사람들을 보십시오. 뭔가 풍기는 이미지가 다릅니다. 그 얼굴에서 광채가 납니다.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품위가 있습니다. 권위가 있고 권세가 있습니다. 파워가 있어서 매사에 적극적인 인생을 삽니다. 왕의 내면성을 가지고 주위 사람을 돌아보고 풍성한 삶, 섬기는 삶을 삽니다. 우리가 과거에 죄의 노예가 되어서 쫌팽이 같은 인생을 살았는데 주안에서 왕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시고 왕같은 제사장으로 살게 하신 것을 찬양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주님께서는 속히 오리라는 말씀을 네 번이나 반복하여 하십니다. 이것은 주님의 재림이 반드시 있다는 것이고 또 재림의 긴박성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마지막으로 14절을 읽겠습니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앞에 말한 축복을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 즉 예수님을 믿고 그 십자가 밑에 나아가서 죄 씻음을 받는 자가 이런 축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15절에 보면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 살인자, 우상숭배하는 자, 거짓말하는 자는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다보면 우리의 두루마기가 자꾸 지저분해지고 더러워집니다. 매주 주일마다 교회 나오셔서 두루마기를 씻으시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정결케 되셔 다들 이 귀한 천국의 축복을 풍성하게 누리실 수 있길 바랍니다. 사도요한은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끝맺고 있습니까? “아멘 주 예수의 오시옵소서” 사도요한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이 너무나 사모가 되고 기다려졌습니다. 환상을 통해서 천국의 맛을 보았기 때문에 너무나 사모가 된 것입니다. 우리도 이처럼 귀한 천국에 다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땅에서 이 천국 맛을 보고 살아야죠. 우리가 다 천국의 시민으로 살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