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디모데후서 2 강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


▯말씀 : 디모데후서 2:1-26

▯요절 : 디모데후서 2:3,4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오늘은 자매님들이 가장 듣기 싫어한다는 군대이야기를 좀 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들어본 형제들의 군대 축구이야기나 기합 받은 이야기와는 격이 다른 은혜로운 군대이야기입니다. 한번 들으면 가장 듣고 싶은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삶이 사단과의 치열한 영적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공격하여 삼키고자 합니다. 요즘은 쾌락과 물질주의 문화를 앞세워 우리를 유혹하고 죽이고자 합니다. 돈 때문에 부모를 죽이고 자살하고 몸을 파는 시대입니다. 얼마 전 뉴스에 우리나라가 포르노 1위 국가라고 보도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긴장을 풀고 살아가다간 완전히 사단의 밥이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거듭나야 합니다. 신자는 교회 와서 노래 부르며 교제 하다 돌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는 비결을 배워 사단과의 영적싸움에서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I.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고난을 받으라(1-13)

1절부터 3절까지에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가져야할 자세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 강해야 합니다(1). 1절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가운데서 강하고”.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섬길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강하라(Be strong)"고 명령합니다.  디모데는 청결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딤후 1:3,5). 그는 눈물이 많고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이 여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섬겨야할 예배소 교회는 각종 이단들과 복음진리를 파괴하고자 하는 악한 무리들이 많았습니다. 넘실거리는 죄악된 문화가 틈만 나면 어린양떼들을 유혹하여 죄에 빠뜨렸습니다. 어리다는 이유로 그의 영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의 큰 교회인 에베소교회를 책임지고 섬기고자 할 때 마음이 오그라지고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에게 ‘강하라’ 말하고 있습니다. 영적지도자는 강력한 사단과 가장 전면에 서서 싸워야하기 때문에 강해야 합니다. 착하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모세도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울 때 ‘강하고 담대하라’ 하였습니다. 다윗도 솔로몬을 왕으로 세울 때 ‘힘써 대장부가 되라’ 하였습니다. 영적지도자는 강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강해질 수 있습니까? 해병대 훈련이라도 며칠 받고 와야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 같이 2장 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란 무엇입니까? 첫째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심판받아 죽을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죄인들을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대속 제물로 내어주시고 구원하여주셨습니다.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생각하면 천하를 얻은 사람처럼 든든하고 강해질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목소리는 컸지만 매우 연약했습니다. 계집 종 앞에서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던 자였습니다. 이런 그가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덧입을 때 강한 자가 되었습니다. 자신을 죽이고자 핍박하는 종교지도자들 앞에서 담대히 복음을 전파하여 3,000명이나 회개하고 세례를 받게 하였습니다. 둘째는 ‘부르심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부르신 백성을 강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제사장 백성으로 부르시고 강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애굽 백성들은 메뚜기 재앙, 흑암 재앙, 장자 재앙으로 심판하셨지만 옆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아무런 재앙도 일어나지 않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마른땅 같이 건너게 하시고, 애굽 백성들은 모두 물속에 빠지게 하셨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블레셋과 에돔 족속 등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벌벌 떨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에 노예백성 이스라엘이 강한 백성이 된 것입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미디안 군이 무서워 몰래 동굴에 숨어서 밀 타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겁쟁이 기드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강한 군사(mighty worrier)가 되었습니다. 300명의 군사를 이끌고 해변의 모래와 같이 수많은 미디안 군대를 밀 타작하듯이 물리쳤습니다. 예레미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를 때 그는 ‘나는 아이라 말할 줄 알지 못하나이다’ 하며 어리 양을 피웠습니다. 이런 그가 백성들의 죄를 뽑고 말씀을 심는 강하고 담대한 하나님의 종이 된 것입니다. 영국의 구 갈렙 선교사님은 작은 키와 왜소한 체격 때문에 사람들이 비웃으며 쳐다볼까봐 대로를 피해 소로로 다니던 자였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고자 아무도 등교하지 않는 시간에 골목으로 등교를 하던 겁쟁이었습니다. 이런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강한 자가 되었습니다. 인턴목자가 되어 수많은 사람 앞에서 담대히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지금은 세계를 호령했던 대영제국의 대로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면 어떤 연약한 자도 강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강한 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둘째, 충성된 자를 세워야 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충성된 자에게 복음을 부탁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어떤 자가 충성된 자입니까? 忠誠이란 단어를 한자로 풀어보면 충은 가운데 中 마음 心, 성은 말씀 言 이룰 成으로 되었습니다. 마음을 중심에 두고 말씀을 이루는 사람, 약속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로마 교황청 근위대는 스위스 군인들이 맡고 있답니다. 그 이유는 스위스 군대의 충성심 때문입니다. 프랑스 혁명 때 루이 16세를 지키던 프랑스 군인들은 시민군의 공격을 피해 모두 도망 같습니다. 786명의 스위스 군대만 남아서 왕을 호위하였습니다. 시민군은 용병들에게 너희 나라 왕도 아니니 순순히 비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위스 군대는 우리는 왕을 지키기 위해서 고용된 군인이기 때문에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비껴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스위스 용병과 루이 16세는 시민군의 공격에 죽게 되었습니다. 이후 로마 교황청은 충성된 스위스 군대를 근위대로 선발하여 지금까지 500년 동안 지키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약속을 지키는 자가 충성된 자입니다. 모세도 충성된 종이었습니다. 홍해를 건넌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고를 치며 ‘신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겠습니까’하며 출애굽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를 환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 못가서 물이 없다고, 고기가 없다고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애굽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부르게 삼겹살 얻어먹고 잘사는 우리를 이런 광야로 끌고 와서 쌩 고생을 시키느냐, 언제 너 보다 우리를 인도해주라고 했느냐 하며 쓴 소리를 내며 불평을 하였습니다. 죽을 위험을 무릎 쓰고 인도한 백성들이 이런 소리를 하면 정내미가 떨어져 보기도 싫을 것입니다. 목자 못해먹겠다고 사표를 내도 수십 번 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런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40년 동안 광야 길을 인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충성된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은 능력 있는 사람이나 머리만 좋은 사람보다는 충성된 사람을 쓰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충성된 자에게 복음을 부탁하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백부장처럼 충성되고 믿음 있는 사람을 만나서 부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공장에서 아이팟 찍어 내듯이 충성된 사람을 찍어 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충성된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훈련하여 충성된 자로 키우셨습니다. 25년 동안 아브라함을 충성된 믿음의 조상으로 키우셨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충성된 자를 키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충성된 자를 키우기 위해선 때론 책망도 하고 훈련도 시켜야 합니다. 유모처럼 섬겨야 합니다. 나이어린 연약한 디모데가 이런 일은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복음은 충성된 자에게 맡겨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역사는 생명을 살리는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다루는 중요한 수술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는 것처럼 생명을 주는 복음도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희에게도 충성된 자에게 복음을 맡기도록 말씀하십니다. 요즘 신세대 양들은 쉽고 편하고 즐거운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이익이 안 되는 곳은 미련 없이 떠납니다. 이런 양들을 충성된 제자로 키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충성된 자를 키우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복음을 가르칠 자가 없게 됩니다. 더 이상 복음이 전파될 수 없습니다. 요즘 힘들고 돈이 안 된다고 흉부외과 지망생이 없다고 합니다. 흉부외과 의사를 키우지 못하면 심장 수술을 다른 나라에 가서 받아야 합니다. 갑자기 심장질환이라도 발생하면 수술도 받지 못하고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가르칠 충성된 자를 키우지 못하면 복음을 듣지 못해서 죽어가는 사람이 많아 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충성된 제자를 키워서 복음을 맡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희가 힘들지만 충성된 자를 키워서 복음을 부탁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옛말에 큰 인물 밑에서 큰 인물이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충성된 자도 하늘에서 뚝 떨어질 수 없습니다. 충성된 자 밑에서 나오기 마련입니다. 저희가 먼저 충성된 자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셋째,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다 같이 3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고난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이는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임을 일깨워 주는 말입니다. 목자는 양들 고민 들어주고, 밥 사주는 마음씨 좋은 선배만은 아닙니다. 사단과 싸우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라는 분명한 자기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형제들은 머리 깍고 신병교육대 입소하면서 ‘나는 이제 군인이다’라는 자기 인식을 합니다. 군인으로써 자기 인식이 있기 때문에 꿀 같은 새벽 단잠을 포기하고 아침 6시에 기상합니다. 요즘 같은 추운 날에도 웃통을 벗고 군가를 부르며 알통구보를 합니다. 상관이 지시하면 ‘네 알겠습니다’하며 절대 복종합니다. 피가 튀고, 알이 베이고, 이가 갈린다는 PRI 유격 훈련도 받습니다. 이것은 보통 군인들의 훈련입니다. 그런데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공수특전사다’라는 인식을 하는 군인들은 더 혹독한 훈련을 받습니다. 부안에서 수원까지 400km 천리 행군을 해야 합니다. 공수강하 훈련, 수중 침투 훈련, 장거리 구보 등 상상을 초월하는 혹독한 훈련도 받아 냅니다. 그러나 ‘나는 공익이다’라고 인식하는 군인은 어떻게 생활합니까? 일요일이면 해가 중천에 뜨도록 늦잠을 잡니다. 아무리 근무지에서 너희들 고생은 공수특전단에 비하면 1/100도 안돼 라고 하며 열심히 하도록 책망하지만 별로 변화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을 공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나를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자신을 최우수 학생으로 인식하는 학생은 밤을 새서 공부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라고 인식하면 힘든 영적 훈련을 감당 할 수 있습니다. 1960년초에 우리 모임은 한국과 세계 지성인들을 변화시킬 영적사관생도들을 양성하는 사관학교라는 분명한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회 때 마다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군이다’하며 선서를 하였습니다. 모두 다 나는 영적 장군이라는 자기 인식이 있었습니다. 이럴 때 이름 대신 ‘순종, 강건’과 같은 훈련 명을 붙여 부르는 이름 훈련, 영어 공부 훈련, 권투 스파링 훈련, 메시지 훈련, 팬티만 입고 전망대까지 뛰어 같다 오는 훈련, 죽은 개 훈련(Dead Dog Training), 예배나 모임에 늦으면 손들고 서있는 힘들고 자존심 상한 많은 훈련을 감당하였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훈련을 통해서 세계 각국의 캠퍼스를 개척하고 섬길 영적 장군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힘들고 자존심 상한 훈련을 ‘나는 목자에게 사랑받고 섬김 받기 위해서 태어난 양이다’ 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이 시대 캠퍼스를 변화시킬 영적 장군이다라는 자기 인식이 있었기에 힘든 훈련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나는 그리스도예수의 좋은 군사다, 영적 장군이다’ 라는 자기 인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새벽기도 훈련, 소감 훈련, 피싱 훈련, 전공 감당훈련, 직장훈련 등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훈련을 혼자 감당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나와 같이 고난을 받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입니다. 그는 누구보다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옥에도 갇히고 매도 수없이 맞았습니다. 여러 번 테러를 당하여 죽을 뻔 하였습니다. 배가 파선하여 일주야를 바다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자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를 때가 셀 수없이 많았습니다. 양들 때문에 항상 눌리고 염려가 많았습니다(고후 11:23-27). 이렇게 고생을 하면 ‘고생’이란 말만 나와도 진절머리가 날것입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고생했을지라도 자식에게 만큼은 고생을 물러주고 싶지 않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적극적으로 고난을 받으라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난을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영적싸움을 할 때마다 승리하는 기쁨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권면합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모범을 보이며 사랑하는 후배들아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고난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로 말미암아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고난 받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시 119:71). 저희가 훈련받는 고난을 통해서 이 시대를 이끌어갈 영적장군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고 말합니다. 한번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면 영원히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입니다. 졸업했다고 환갑이 되었다고 은퇴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나라 갈 때 까지 영원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살아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넷째, 자기 생활에 얽매여서는 안됩니다. 4a절을 보십시오.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군인은 군대 생활에 얽매여야지 사회생활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군인이 가족이 보고 싶다고 친구생일 잔치한다고 훈련 받다가 몰래 나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아바타 영화가 보고 싶다고 영화관에 몰래 나갈 수 없습니다. 나갔다가는 탈영병이 되어 감방에 가야 합니다. 얼마 전에 소말리아 해안 경비를 위해서 파송된 문무함 호 이환욱 하사에게 임종을 앞둔 아버지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아들아 국가의 부름을 받은 너는 나의 장래식 참석 대신 임무수행에 매진하라’. 과거 하사관 출신이었던 아버지는 국가의 부름을 받은 군인은 아버지 장래식보다 군대 임무를 먼저 해야 한다고 편지한 것입니다. 이처럼 군인은 군 생활에 충성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집한 국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집한 예수그리스도를 기쁘게 하기 위해 예수님께 메인 자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를 경기하는 자와 농부의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요." 경기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규칙에 따라 해야 합니다. 규칙대로 하지 않으면 1등을 해도 실격을 당합니다. 미국의 단거리 스타 메리어 존스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100m, 200m, 400m, 16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4관왕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2007년에 약물 복용 사실이 밝혀져 모든 메달과 6억원 상당의 상금을 박탈당했습니다. 그리고 위증죄 판결까지 받아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대신 달려준 것도 아니고 ‘더 크리어’라는 약물 좀 복용하고 뛰었는데 이렇게 된 것입니다. 이는 국제 육상경기 규칙에 위반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경기자는 경기 규칙대로 해야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도 말씀의 법도를 따라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법을 지켜서 싸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법을 지키며 싸워야 면류관을 얻게 됩니다.

 6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계속하여 농부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아마도 가장 수고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농부들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의 일군도 농부처럼 수고해야 합니다. 수고하지 않고 폭발적인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신실한 양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눈물로 씨를 뿌려야 기쁨으로 수확을 거둘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게으른 자는 좋은 수확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여름이면 덥다고 쉬고, 겨울이면 춥다고 자고, 날씨가 좋으면 날씨가 좋다고 논다면 수확기에는 비참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영적인 열매를 맺으려면 무수한 눈물과 땀과 피가 요구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전 생애를 통해서 참으로 열심히 수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말씀을 가르치고 권면하고 심방하며 개척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든 양무리들을 섬기시느라 많은 수고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도 수고하는 농부의 자세로 열심히 싸워야 합니다. 이럴 때 수확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7, 8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을 생각하고 기억하도록 말하고 있습니다. 9-13절에서 자신의 간증을 통해 복음의 일군들이 받게 될 영광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습니다. 현재도 감옥에 갇혀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얼마 후에는 순교를 당해야 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고난을 받은 목적은 택하신 자들의 구원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였습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주와 함께 고난을 받는 자들이 누리게 될 영광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주와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11-13).“


II.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라(14-26)

 군인이 최홍만 선수처럼 체격이 크고 힘은 셀지라도 사격 능력이 없다면 좋은 군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옳게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기 위해서 진정으로 힘써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해야 합니다(14-19). 말쟁이들이 서로 자기의 말이 진리라고 떠들지만 진리는 오직 하나, 성경 말씀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논쟁을 벌이기보다 이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해야 합니다. 여기서 ‘분변하다’는 말의 헬라어 원래의 뜻은 ‘바르게 자르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솜씨 좋은 재단사가 명품 옷을 만들기 위해서 천을 정확히 재단하는 것(correctly handles)과 같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한다"는 것은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하며 가르치는 것입니다. 말씀을 옳게 분변하는 능력이 있을 때 그릇된 이단 사상에 빠져드는 양들을 가르쳐 구할 수 있습니다. 문제 많은 양들에게 시기적절한 말씀을 주어서 회복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일꾼은 말씀 연구를 많이 해서 실력 있는 말씀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 역사는 말씀 연구에 비례합니다. 우리가 얼마만큼 말씀을 샘 파듯이 깊이 파서 주느냐에 따라 복음역사가 달라지게 됩니다. 오늘날은 구미를 당기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젊은 학생들이 돈맛, 쾌락의 맛에 푹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영혼은 늘 메마르고 곤핍합니다. 이는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영적 기근 때문입니다(아모스 8:11-13). 이들의 영혼을 충만이 채울 수 있는 참된 양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목자는 명장 요리사들처럼 말씀을 깊이 연구해서 양들을 맛있게 먹여야 합니다. 음식 맛만 좋으면 어디서든지 손님들이 몰려옵니다. 우리 목자들이 말씀을 연구해서 맛있게 양들을 먹인다면 양들이 몰려올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열심히 말씀을 연구해야겠습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일대일 말씀 노트를 정성껏 만들어 양들에게 주어야 겠습니다.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UBF목자는 성경도사, 달인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얼마 전 생활 달인 프로그램에서 눈을 가리고도 12개나 되는 전국 우편함에 우편물을 던져 분류하는 달인을 보고 감탄하였습니다. 이처럼 성경의 달인도 눈을 감고도 적절한 말씀을 찾아서 양들에게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저희가 빼어난 말씀의 종이 되어 이 시대 죄악된 세상문화에 길들여진 양들을 먹일 수 있길 기도합니다. 저는 지난번 샘 어거스틴 리 선교사님의 특강을 듣고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꾼이 되고자 소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2장 15절 말씀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를 올해 요절 말씀으로 붙잡았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안다는 말에 별로 읽은 흔적이 없는 휑한 성격 책으로 마음이 뜨끔하였습니다. 빨강색으로 밑줄을 그으며 성경을 읽은 고 이 사무엘 선교사님처럼 열정적인 인격을 만들고자 새 성경을 사서 빨강색으로 밑줄을 그으며 읽고자 하고 있습니다. 제가 올해 성경 일독을 감당하고, 주일 말씀 노트도 정성을 드려 준비하여 말씀을 분별하는 하나님께 인정된 목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둘째,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20-22). 큰 집에는 금 그릇, 은 그릇, 나무 그릇 등 여러 가지 그릇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그릇들이 다 귀하게 쓰이는 것은 아닙니다. 깨끗한 그릇을 귀하게 씁니다. 아무리 금 그릇이라도 더러우면 재떨이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깨끗한 그릇은 맛있는 음식을 담는 귀한 그릇으로 쓰임 받게 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깨끗한 그릇을 귀하게 씁니다(21). 깨끗한 그릇이 되기 위해서는 특히 청년의 정욕을 피해야 합니다(22). 정욕이란 청년의 성적 욕망 뿐 아니라 이기적인 야심, 헛된 영광을 구하는 마음 등도 포함해서 하는 말입니다. 청년은 정욕을 피하고 의와 믿음과 화평을 좇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말씀을 맡기고 말씀의 종으로 귀하게 씁니다.

 셋째, 온유해야 합니다(23-26). 하나님이 인정하는 일꾼이 되려면 가르치는데 있어서나 징계함에 있어서 온유해야 합니다. 감정대로 하거나 신경질 부리는 것은 절대 삼가야 합니다. 다투려는 자를 가르치고 거역하는 자를 징계하는 데까지 온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온유함으로 가르치고 징계할 때 그의 인격에 감화되고, 그가 가르치는 말씀을 통해서 사람들이 진리를 알고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좇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사단의 종으로 살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부르셨습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저희가 2010년은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예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 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