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
2010년 디모데후서 3 강(김전도 목자)
성경의 유익
▯ 말씀 : 디모데후서 3:1-4:8
▯ 요절 : 디모데후서 3:16, 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 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세 번째 시간입니다.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어떤 자세로 목회를 감당해야 하는가를 자신의 삶을 본보기로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함께 볼 3,4장은 성경의 유익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성경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고 성경을 사랑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Ⅰ. 성경의 유익(3장)
1절을 보십시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말세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를 말합니다. 말세의 특징은 고통하는 때입니다. NIV 성경은 ‘고통하는 때’를 'terrible times'로 표현했습니다. 이는 견딜 수 없는 심각하고 비참한 일들이 일어나는 때라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볼 때 세상은 날이 갈수록 발전해 가고 있습니다. 의학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살기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고통하게 됩니까? 1-9절은 말세가 왜 고통하는 때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여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여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사도 바울은 무려 19가지에 이르는 죄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1:28-32절에서도 이와 같은 인간의 죄악된 모습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은 말세의 때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4b, 롬1:28a) 사람은 사랑하는 대상에 따라 삶의 모습이나 열매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말세의 때는 노아시대처럼 죄가 관영한 시대입니다. 돈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범죄가 끊이지 않습니다. 요즘 졸업 시즌이 되자 졸업축하를 빙자한 학교 폭력과 청소년들의 탈선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아마존의 눈물’이라는 다큐에서 보는 것처럼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자연이 무참하게 파괴되고 사람들이 고통을 겪습니다. 성적으로도 타락하여 소돔, 고모라를 방불케 하는 것이 오늘날의 모습입니다. 말세의 때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어둡고 음울한 공동묘지를 지나는 것 같습니다.
5-7절을 보십시오. 말세의 때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거짓 교사들이 득세합니다. 에베소 교회에는 영지주의 이단들이 침투해 왔습니다. 당시 귀부인들은 새로운 학문이나 철학, 예술에 능한 학자들을 집에 초청해서 배우는 일이 많았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이런 풍습을 이용해서 여인들을 미혹했습니다. 오늘날도 여호와의 증인 같은 각종 이단들이 집집마다 방문하여 사람들을 미혹하려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미혹을 끌려 배운다 해도 끝내 진리에 이르는 지식에 이를 수 없습니다. 8-9절을 보십시오. 얀네와 얌브레는 출애굽기에서 모세를 대적했던 애굽의 술사들을 말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거짓 교사들과 이들을 대비시키며 그들이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마음이 부패하고 믿음에 관해서는 버림받은 자들입니다.
이처럼 말세의 때를 사는 것은 큰 고통입니다. 이러한 때에는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기 삶에 대해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사도 바울은 복음의 교훈을 가르쳤고 자신이 가르친 복음에 따라 살았습니다. 복음이 그의 삶의 행실, 즉 그의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는 오로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끝까지 믿음을 지켰고 온갖 핍박, 고난에도 오래 참았습니다. 또한 사랑과 인내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바울은 전도여행 중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에서 받은 박해를 디모데에게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루스드라에서는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은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셨습니다. 그는 다시 그 성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며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하여 믿음으로 살도록 권하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니라.”(행14:22b) 그는 본문 12절에서도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하는 것은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핍박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신자들이 핍박을 받는 이유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고, 그리스도에게 속했기 때문입니다(요15:18-20).
우리도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받는 고난이 많습니다. 우리 목자님들은 직장에서 죄악된 문화에 동화되기를 거부합니다. 그럴 때 미움과 박해를 받습니다. 인사상 불이익을 받기도 합니다. 또한 날이 갈수록 음란해지고 쾌락적인 문화에 유혹을 당하기 쉽습니다. 이런 가운데 믿음을 지키고 경건하게 살고자 투쟁합니다. 학생 목자님들도 캠퍼스에 만연한 물질문화, 쾌락문화, 이기적인 분위기를 이기고 믿음으로 살고자 투쟁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연애도 한번 안하고 캠퍼스 생활을 하는 것을 매우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가운데 참고 믿음을 지키며 경건한 삶을 살고자 투쟁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복음 진리를 붙들고 세상 문화와 구별되어 사는 것이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12). 우리가 말세의 때를 이기는 자가 되는 비결은 바울의 간증과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복음을 확실하게 붙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붙들고 살 때 이 시대를 밝히는 빛과 소금으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만을 붙들고 믿음으로 경건하게 살아온 것을 간증한 바울은 디모데에게 권면했습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14a) 말세가 되면 사람들은 더욱 악해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합니다(13). 그러나 디모데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합니다. 여기서 배우고 확신한 일은 복음을 말합니다. 바울이 전해 준 복음은 디모데가 어렸을 때부터 배운 성경의 진리와 일치한 것이었습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웠습니다. 믿음이 신실했던 어머니와 할머니에게서 배운 말씀은 그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알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어떤 책입니까? 16a를 보십시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책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것은 “God-breathed”로서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 넣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 넣으셨을 때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사람의 손을 빌어 말씀을 기록하게 하시되 그 안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때문에 기록된 문자 하나 하나가 살아 있는 생명체입니다. 성경은 이처럼 하나님이 성령의 감화감동하심으로 기록하신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기록된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절대적인 권위를 가집니다. 칼빈은 이것을 ‘성경의 신적권위’라고 했습니다. 때문에 성경 위에 어떤 권위도 있을 수 없고 오직 성경만이 최고의 권위, 신적인 권위를 갖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성경은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벧전1:23)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한 베드로는 약 2천년 전에 죽었지만 그 말씀은 지금도 살아있고 항상 있습니다. 그 말씀이 지금도 능력으로 역사하여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들, 모든 이론과 사상들을 무너뜨리며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예수께 복종하게 하고 있습니다.(고후10:5) 이처럼 살아있고 신적인 권위가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동을 받습니다. 말씀이 우리 마음에 스며들 뿐만 아니라, 골수에까지 새겨집니다. 성경의 강력한 힘은 그렇게 잔인하고 살기등등하던 바울이 회심하여 새 사람이 되게 하였습니다. 성경의 힘은 바울로 하여금 목숨을 걸고 반대했던 교리를 목숨을 걸고 지키게 만들었습니다. 사탄은 지금까지 교묘한 방법으로 성경을 파괴하고 말살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은 다 허사가 되었습니다. 프랑스 최고의 계몽주의자임을 자처했던 볼페르는 100년 후면 성경은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100년 후 하나님은 그의 집을 성경을 찍어내는 성서공회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신적권위, 우월성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선생으로서 자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은 우리에게 매우 유익합니다. 15-17절을 보십시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첫째, 성경은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작년 한해에 4만2191종의 신간도서가 출판되었고 1억 621만 4701부의 책이 발행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책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 어떤 책도 근본적으로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주지 못합니다. 칸트, 데카르트, 니체의 철학서적을 읽고 세익스피어, 톨스토이 같은 대 문호들의 문학을 접할 때 교훈과 감동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요즘 나오는 실용서들을 통해 실생활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책들이 우리 영혼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해 주지는 못합니다. 오직 성경만이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롬1:16절은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말씀으로 구원받고 변화되어 위대한 믿음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또 여기 모인 우리도 성경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지혜와 능력을 덧입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한 구원의 역사를 지금도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한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굳게 붙들어야겠습니다. 또한 이 구원의 지혜를 열심히 나누어 주어야겠습니다.
둘째, 성경은 교훈하기에 유익합니다. NIV 성경에 교훈은 teaching, 가르침이라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은 나라를 잃고 포로가 된 슬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믿음으로 살고자 결단하며 투쟁할 때 그를 지혜의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왕의 꿈을 해석하고 장래 일을 예언했습니다. 우리는 다니엘과 같은 지혜를 덧입기를 원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지혜가 부족할 때 꾸짖지 않고 후회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합니다.(약1:5)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가 구원을 얻는 복음을 지식을 알게 하십니다. 또한 솔로몬처럼 지혜롭게 하사 세상에서도 인정받게 하십니다.
셋째, 성경은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죄인인 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공부할 때 내가 왜 죄인지, 어떤 죄인인지 깨닫고 회개할 수 있습니다. 저처럼 자기가 착하고 의롭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들은 죄인식을 잘 하지 못합니다. 말씀 앞에 명백히 드러나는 죄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지나간 일입니다’하며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를 자백하게 하고 회개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또한 죄를 책망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책망을 받은 사람이 바르게 되도록 하는 힘이 있습니다. 제가 학생회 때 한 목자님은 전봇대에다가도 치마만 입혀 놓으면 음욕이 타오르는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통해 정욕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고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욕죄에서 온전히 자유롭게 되기까지 십자가 복음을 붙들고 피흘리는 투쟁했다고 했습니다. 그랬을 때 거룩하고 정결한 영으로 목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우리 내면의 죄를 회개하게 하여 우리가 거룩하고 경건한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줍니다. 고질적인 죄문제가 있다면 우리를 책망하고 바르게 하며 의롭게 하시는 성경 말씀을 힘있게 붙들기를 기도합니다.
넷째,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을 받고 변화가 되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조상 아브라함도 처음에는 허물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어 점점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창세기 22장에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번제물로 드렸습니다. 이때 비로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3)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순종했고,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배웠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순종함으로서 더 깊은 하나님의 세계를 체험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저는 학생회 사도학교를 인도하면서 말씀이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게 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말씀공부를 하면서 믿음을 배우고 믿음으로 살고자 투쟁하는 학생회 목자님들의 모습이 자랑스러웠습니다. 학생회 목자님들이 올해 말씀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할 것을 믿습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힘입니다.
다섯째, 성경은 사람이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앞서 우리는 말세의 때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음으로 행하는 무수한 죄악들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죄로 인해 선한 일을 행할 의지도 힘도 없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악할 뿐입니다. 소돔, 고모라에 의인 10명이 없어 멸망했던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굽어 살피실 때 사람은 어리석고 미련한 것을 찾을 뿐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사람을 변화시켜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이를 볼 때 말세의 희망이 무엇입니까? 성경입니다. 말세에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시대에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일이켜 세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말세의 때 많은 사람들을 옳은데로 돌이킬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그런 사람을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의 절대적인 능력을 확신하고 사랑함으로 성경을 열심히 읽고 공부해야겠습니다.
Ⅱ. 말씀을 전파하라(4장)
4:1, 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는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사도 바울은 말씀을 전파하라고 강한 어조로 명령하고 있습니다. ‘전파하라 preach’는 것은 대중 앞에서 선포하라는 의미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말씀 전파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최종적으로 남기신 최고의 명령입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8-20a)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 승천하시기 직전 또 명령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이처럼 말씀을 전파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언이요 모든 신자들이 목숨을 걸고 순종해야 하는 최고의 명령입니다.
말씀 전파가 이렇게 중요한 것은 말씀이 생명을 살리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13-15절에서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한 이를 어찌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지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다시 말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있어야 사람들이 말씀을 들으며, 듣고서 믿으며, 믿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전도의 미련한 방법을 통해 믿음의 역사,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셨습니다(고전1:21). 그러므로 전도자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 전파에 항상 힘써야 합니다.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를 섬기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말씀을 전파하기에 좋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합니다. 이는 복음 전파에는 때가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숨 쉬는 것을 때를 가리면서 하지 않습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때를 가리지 않고 숨 쉬며 살아갑니다. 신자들에게 복음 전파는 숨 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믿음의 삶에서 말씀 전파를 뒤로 미뤄도 될 만큼 중요한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요즘은 취업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취업하고 나서 말씀을 전해야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안한 세상에 직장에서 성과를 내야하기 때문에 말씀을 전할 시간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원 실험과 논문이 급하기 때문에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아이들 때문에 지금은 할 수 없다고 합니다. 풀타임들은 그래도 시간이 많기 때문에 풀타임들더러 열심히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말씀을 전해야 할 때 헌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말씀 전파를 최우선 순위, 나의 영적 생명을 유지해 주는 호흡과 같은 것으로 여기지 않으면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할 수 없습니다. 해야 되는 것을 알면서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만 받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을 전하고자 항상 힘썼습니다. 감옥에 갇혔을 때는 간수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면회 온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편지를 써서 흩어진 성도들과 교회에 말씀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듣고 배운 말씀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지금까지 배운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배우고 확신한 말씀을 나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전하면 됩니다. 김미숙 사모님은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자매와 대화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자매가 올해 광주과기원에 입학하여 과기원 모임과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선은진 목자님은 바쁘고 팍팍한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도 믿음의 본을 보이며 열심히 생활했습니다. 그럴 때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며 여러 자매님들을 초청하였습니다. 곽재우 목자님은 병원을 운영하면서 관계성 맺은 분들을 적극적으로 초청했습니다. 그럴 때 전경석 형제님이 예배와 일대일 말씀공부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각자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특히 우리는 지난 1.24 전도축제 때 가족, 직장 동료 할 것 없이 열심히 초청 역사를 섬겼습니다. 그럴 때 192명이 예배에 참석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것을 기뻐하시고 축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3월에 다시 전도축제를 갖고 말씀전파에 힘쓰고자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전함으로 하나님이 이루실 더 큰 역사를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설 연휴가 가족, 친지, 선․후배,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2009년 신년예배 때 이 말씀을 전했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니 하나님은 말씀대로 많은 은혜를 주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보건대 개척 역사를 통해 개척정신을 배우게 해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를 통해 리더들이 개척자로 자원하여 섬기는 역사가 있었고 정주혜 자매님이 보건대 믿음의 어미로 자라가게 도우셨습니다. 또 여름수양회를 준비하면서는 예배 후 전동역자들이 캠퍼스에 나가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윤영건 형제를 보내 주셨습니다. 영건 형제는 피싱 3주만에 여름 수양회를 참석하여 말씀을 잘 알 수 없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앉아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영적으로 성장하여 유럽 여행이 끝나면 장막 생활을 하며 예수님의 제자로 훈련 받을 예정입니다. 영건 형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박효근, 차건호 형제, 이보영, 배정심, 문여울, 박루디아jr 자매님 등 많은 양들을 보내 주셔서 말씀으로 키워가고 계십니다. 이를 통해 말씀에 갈급한 영혼들이 많이 있고 그들은 말씀을 전해 줄 목자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느헤미야 목자님은 지난 3주 동안 멕시코, 베네주엘라, 시카고, 어바나 샴페인 등 아메리카 일대를 순회하며 말씀을 전하고 성경 강의를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큰 은혜의 역사가 있었다고 소식을 알려 오셨습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와 장소, 인종을 초월해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변화 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특히 멕시코는 지난 20년동안 남아메리카 33개국 중 30개국을 개척하고 그중 10여명의 현지인들이 선교사로서 개척 역사를 섬기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 만이 구원의 능력입니다. 이방 땅에서나 우리 캠퍼스에서나 양들은 마게도냐 사람처럼 ‘와서 우리를 도와주세요.’ 하며 목자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올해도 열심을 품고 말씀 전파에 힘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개인적으로 작년에는 12명의 양들을 일대일 말씀공부로 도울 수 있었습니다. 그 중 박상명, 곽도현 두 형제를 남겨 주셨습니다. 제가 한 달 동안 입원하여 역사에 동참할 수 없을 때는 동역자들이 더욱 합심 동역하게 하심으로 역사를 견고히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파트에 제자양성과 새로운 동역자들이 서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올해도 제가 하나님의 복음을 붙들고 힘써 말씀을 전파하는 전도자의 직무를 다하기를 기도합니다. 구체적으로 12명 형제들을 매주 일대일하고 제자로 남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파트에 80명 예배, 100팀 일대일 역사를 이룸으로 2011년에는 한 부를 개척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 4절을 보십시오. 말세에 사람들은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귀가 가려워서 드라마, 영화, 개그프로그램 같은 허탄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시 분명하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디모데는 말세의 때 모든 일에 신중하게 대처하면서 적극적으로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전도자의 일, 영혼을 책임지는 목자의 직분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일을 위해 자신을 드렸습니다. 6, 7절을 보십시오. 그는 자신을 전제로 부어 드렸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아낌없이 양들과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드렸습니다. 모든 겸손과 눈물로 양들을 섬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대적자들에게서 복음을 지키고 양들과 교회를 지키는 영적인 싸움이었습니다.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는 선한 싸움을 싸우되 달려갈 길을 마치기까지 싸웠습니다. 그의 선한 싸움은 이제 그 끝이 가까워 오고 있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실 의의 면류관을 소망했습니다. 그가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상급을 바라볼 때 그는 어떤 순간에도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믿음의 싸움을 다 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 바울의 모습은 하나님 나라의 개선문을 향해 위풍당당하게 나아가는 개선장군의 모습 같습니다. 우리도 말세의 때 사도 바울과 같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하나님 나라 상급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다 싸우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3강에 걸쳐 디모데후서 말씀을 통해 목자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을 믿고 그 말씀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세의 고통하는 이때에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되고 유일한 희망인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충성되게 지키고 전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