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onUBF 컬럼

올해는 태풍이 유난히 잦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라기보다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일본으로 빠지지 못하고 한국으로 북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태풍이 찾아 온 것은 1950년과 1957년으로 각각 7개의 태풍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올해는 이미 4개의 태풍인 7호 카눈Khanun(태국-열대 과일이란 뜻), 14호 덴빈Tembin(일본-천칭자리란 뜻), 15호 볼라벤Bolaven(라오스-고원이란 뜻), 16호 산바Sanba(마카오-지명) 중 3개가 한반도를 직접 강타하여 피해가 엄청났다. 앞으로도 17호 즐라왓Jelawat(말레이시아-잉어과 물고기란 뜻)이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한다. 사실 태풍이 지나가면 인명과 재산 피해가 커서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태풍이 지난 뒤에 복구하면서 인정이 흐르고 사람의 마음은 더 강해지고 부실했던 건축물도 더 강하게 마련한다. 왜 태풍 이야기를 꺼내는가.
마태복음 16장을 보라.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축복하사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고 하셨다. 그런데 21절에 오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면서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크게 책망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신다.
폭풍이 지나고 태풍이 지난 뒤엔 아픔이 있지만 우리는 더 강해지고 성숙해진다. 우리는 흔히 자기부인, 자기십자가를 쉽게 이야기한다. 사실 주님을 보라. 폭풍과 태풍, 회오리 바람이 불어댄 수많은 고통과 고난, 그리고 십자가 죽음을 통해 급기야 부활의 영광과 온 인류를 죄가운데서 구원하시지 않았는가. 비로소 고난과 고통이란 피의 십자가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 되고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라(고린도전서 1:18).”는 의미 말이다. 참으로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 실천해야 한다.
한 청년이 부잣집 외동아들로 태어나 고생을 모르고 자랐다. 젊은 나이에 아버지가 운영하는 큰 회사의 간부로 일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만 회사가 부도가 나 문을 닫게 된 것이다. 한 순간에 망해버리고 가진 것 없이 거리로 나앉게 되었다. 이 청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고생을 해 본적이 없기에 갑작스런 사건과 변화에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다. 재기의 의욕도 사라지고 모든 게 무너졌다. 눈이 펑펑 내리던 연말이 다가오는 밤이었다. 청년은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며 추운 밤거리를 헤매다 어느 어두운 골목에 쓰러져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누군가 이 청년을 흔들어 깨우는 사람이 있었다. 연말에 복조리를 팔러 다니는 노인이었다. 노인은 동사 직전에 있는 이 젊은이를 깨워 근처 포장마차로 데리고 가 우동 한 그릇을 사주며 몸을 녹이도록 했다. 그런 후 싫다는 젊은이를 데리고 함께 복조리를 팔러 다녔다.
복조리를 다 판 노인은 청년을 데리고 어느 건물 앞으로 갔다. 그 건물은 예배당이었다. 노인은 지붕 위에 우뚝 서있는 붉게 빛나는 십자가를 가리키며 말한다.“여보게 젊은이, 자네 눈에는 저게 무엇으로 보이나”“아, 십자가 아닙니까?”“그렇지, 저건 분명 십자가일세, 그런데 자네는 저 십자가를 좀더 관심있게 바라보게나. 저게 무슨 다른 표시로 보이지 않나?”그러나 아무리 바라보아도 청년의 눈에는 십자가 외에는 다른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비로소 노인은 청년을 바라보며 말했다.“자네 눈에는 저게 더하기(+) 표시로 보이지 않는가? 자네는 지금까지 뺄셈만 하는 인생을 살아온 모양이군. 여보게 젊은이 이제는 정신 차리게.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게. 주님 앞에 나아와 믿음의 눈으로 십자가를 바라보게. 그러면 십자가 고난이 자네 인생에 분명히 더하기로 바뀔 걸세.” 이야기를 마친 노인은 그날 번 돈의 절반을 떼어 청년의 손에 쥐어주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시대를 보라, 최첨단 과학문명과 급변하는 환경,‘빠름 빠름 빠름’이란 광고 카피가 유행할 정도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넘어지고 깨지고 코가 납작할 때도 있다. 날이 흐려 아름다운 별이 보이지 않고 구름에 가려 해가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태풍에 집이 쓰러지고 물에 잠겨 망연자실할 때가 있다. 가난하고 게다가 취업도 안되고 하는 일마다 안될 때도 있다. 우리는 정말 절망적 상황이 닥칠지라도 내 인생의 마이너스라고 생각하는 십자가 고통과 고난을 플러스 인생으로 바꾸어 주시는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는 이롭고, 충고는 귀에 거슬리나 행동에는 이롭다.'(良藥苦於口而利於病 忠言逆於耳而利於行)고 하였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폭풍우가 지나고 나면 고요가 온다. 시대가 어렵고 경제도 힘들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십자가를 사랑하고 이를 꿋꿋하게 이겨 나간다면 반드시 십자가는 우리를 플러스 인생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육체적 고통은 물론이지만 더 힘든 고통은 몸보다 마음이나 정신, 그리고 영적인 고통이다. 부모가 자녀를 기르면서 겪는 고통을 생각해보라. 옛말에 아이가 어려서는 부모의 발을 밟지만 커서는 부모의 마음을 밟는다는 말이 있다. 고통은 문제가 드러나는 신호다. 이를 해결한다면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보약이 된다. 삶의 기술이란 고통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겨나가는 것이다. 우리 삶에 고통이 있는가. 그렇다면 오히려 감사하고 우리의 삶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라. 그것을 딛고 일어선다면 삶의 고통을 넘어 성취감과 행복한 건강을 추구하고 있을 것이다.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 고통,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인생을 더 건강하게 해주는 보약이 된다.
모세를 보라. 애굽의 왕자로 부귀와 명예와 권세를 누리며 호화로운 궁중 생활을 했다. 잘 나가는 인생이었지만 어찌되었나. 결국 유대인이란 사실과 울분의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다. 40세에 동족 이스라엘 백성을 돌아볼 마음이 생겼으나 십자가 고난없이 자란 그를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은 40년이 더 지난 80세였다. 모세가 광야에서 40년을 기다리며 지쳐있을 때 주님이 그를 찾았다. 모세는 입이 어눌한 자라며 쓰임받기조차 거부했다. 모세는 그렇게 미디안 광야에서 낮아질 때로 낮아지며 고생했다. 그런 연유로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12:3)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단번에 홍해를 건넜지만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40년이 걸렸다. 고생과 연단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빚어진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고 말한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플러스 인생을 생각하자. 2012092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