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onUBF 컬럼

양선(良善, Goodness)은 문자적으로 보면, ‘어질고 착한 마음으로 선을 베푼다’는 뜻이다. 표준 새번역에서는 ‘선함’, 공동번역에서는 ‘선행’이라고 번역하였다. 결국 다섯 번째 열매인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구제나 봉사와 같이 생활 속에서 선을 베푸는 행위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도와주고 행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피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인 행선을 가리킨다. 자비는 ‘선한 마음의 표현’이며, 양선은 ‘선의 행동적 표현’을 말한다. 양선은 행동하는 사랑이다. 자비는 하나님의 속성이다. 예수님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고 하였다(마19:17). 양선도 하나님의 속성이다. 선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누가복음 10장 25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은 영생에 관해 질문을 하던 율법사에게 예를 들어 설명한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옷이 벗겨지고 두들겨 맞아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고 한 레위인도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던 중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다. 이튿날에는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주면서 이 사람을 돌보아 주고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다. 이것이 자비의 행동인 양선이다.
예수님은 율법에 기록된 바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한 것처럼 이를 행하여야 살고 영생을 얻는다고 말한다. 세 사람 중에 자비를 베푼 자가 참 이웃이기에 이와 같이 행하라고 말한다. 연말연시가 되면 구세군의 종소리 울리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진다. 대선이 끝나자 어려운 경제 상황에 물가가 기다렸다는 듯이 오르고 사람들의 마음도 움추려든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십시일반 이웃돕기 성금을 내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가난이 무엇인지 이웃 사랑의 실천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다. 물론 익명의 기부자로 1억의 거액을 낸 사람도 있다. 주민센터 앞에 어려운 이웃에 전달하라고 라면 박스를 몰래 놓고 간 사람도 있다.
마태복음 12장 19,20절을 보라.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사실 양선의 마음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마음이다.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옷을 입으라고 말씀하신다(골 3:12).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신다고 하였다(삼하22:2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고 한다(눅6:36).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라고 하였다(약4:17). 하나님은 우리를 양선으로 보살펴주신다. 우리도 더 어려운 이웃에게 양선을 행하여야 한다. 다미엔 신부가 그랬고 테레사 수녀가 그렇게 했다. 성직자만 행하는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엔 알게 모르게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하버드대 한 학생이 아프리카에 있던 슈바이처 박사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자 했다. 그런데 환영은 커녕 박사를 만날 수도 없었고 만나주지도 않았다. 그는 몹시 실망하여 귀국을 준비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큰 비가 내려 마을이 온통 물에 잠기게 되었다. 그때 한센병을 앓는 한 아이가 물에 빠진 것을 보고 황급히 뛰어들어 구해주었다. 그제야 슈바이처 박사가 그를 불러 말했다. “내가 며칠 동안 자네를 지켜보니 전혀 나를 만날 준비도 안되었고 만날 가치도 없었네. 그런데 아이를 구해주는 것을 보고 자네에게 긍휼의 마음이 있는 것을 보았네.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의사나 약이 아니라 긍휼의 마음일세.” 갈수록 어려운 현실과 마음의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정말 세상을 치유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자비의 마음, 긍휼의 마음, 양선의 마음이다.
초대교회에 성령의 임재가 불같이 임했을 때 가장 큰 열매가 바로 양선의 열매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행2:44,45). 초대교회는 생명을 걸고 그렇게 복음을 나누고 사랑과 물질을 나누며 더불어 살아갔다. 나도 이를 조금이라도 실천하기 위해 애쓴다. 언젠가 집안을 정리하다 신문지 폐지와 버려야 책, 자전거 고철 등이 많았다. 나는 땀을 뻘벌 흘리면서 모으고 꾸려 차에 가득 실어 고물상에 내다팔았다. 수고한 댓가에 비해 액수는 3만 3천원 정도였다. 나는 이번 연말에 여기에 더 보태고 보태 독거노인을 돕는데 사용했다. 갈수록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보면 불쌍한 마음과 여린 마음으로 눈물이 그렁인다. 우리 사회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은 성령의 여섯 번째 열매로 ‘양선’을 말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2012122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