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송년예배

구원의 뿔, 돋는 해

말씀 / 누가복음 1:57-80

요절 / 누가복음 1:69,78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오늘은 2012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한 해를 돌아볼 때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 은혜 밖에 남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새 해를 앞두고 기도하고 바라는 것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가랴는 하나님을 힘차게 찬송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그의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신 은혜 때문입니다. 그의 찬송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구원의 뿔, 돋는 해로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를 위해 구원의 뿔, 돋는 해로 오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은 세례 요한의 출생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천사로부터 아들 요한의 출생을 예고받은 엘리사벳이 드디어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웃과 친족들은 하나님께서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크게 긍휼히 여기시고 노년에 아들을 주신 것을 함께 즐거워했습니다. 마치 성하가 태어났을 때처럼 모든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성대한 잔치를 벌였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지 팔 일이 되자 율법대로 할례를 행했습니다. 친족들은 관례에 따라 아이의 이름을 사가랴jr로 짓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은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안됩니다. 요한이라고 해야 합니다.” 엘리사벳은 이미 천사를 통해 ‘요한’이라는 이름까지 받았기 때문에 ‘요한’이라 이름지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요한이라는 생소한 이름을 듣자 즉시 반발했습니다. ‘당신의 친족 중에도 이런 이름이 없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요!’ 결국 사가랴에게 서판을 주어 아이의 이름을 써 보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사가랴는 기다렸다는 듯이 서판에 ‘요한’이라고 썼습니다. 이를 본 사람들은 다 깜짝 놀랐습니다. 때마침 사가랴의 입이 열리며 혀가 풀려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본 사람들은 다 두려워하고 이 일이 온 유대 산골에 퍼졌습니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의 출생 과정을 보면서 주의 손이 함께 하심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세례 요한이 태어나는 것을 보면 온전히 하나님의 긍휼로 인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가랴는 10개월 동안 말 못하는 훈련을 받으면서 ‘요한’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며 거기에 순종하고자 준비했을 것입니다. 너무 늙어서 자녀를 낳을 수 없는 자신에게 요한을 낳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 천사에게 한마디 했다가 말을 못하게 된 자신, 아내 엘리사벳의 임신, 그리고 요한의 출생. 이 모든 일을 볼 때 사가랴는 자신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주권과 긍휼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에 그는 기꺼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아들 요한을 통해 이루고 싶은 자기의 꿈과 가문의 대를 잇게 되었다는 인간적인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장차 요한이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메시야의 오심을 예비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할 때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때도 아들 요한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76-78a) 사가랴는 아들 요한이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도 하나님의 긍휼로 영접했습니다.

 

우리도 올 한 해 하나님께서 나의 삶 매 순간마다 긍휼히 여기신 손길을 기억하고 나의 하나님을 찬양해야겠습니다. 목자님들을 볼 때 올 해를 드라마틱하게 보내신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김권능․준경 목자님 가정을 볼 때 이분들이 은혜와 기쁨이 충만한 가정을 이루기까지 단 한순간도 하나님의 긍휼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음을 기억합니다. 한충신 목자님이 풀타임 목자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윤쟌다르크 목자님과 결혼을 앞두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긍휼의 손길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많은 분들이 떠오르는데 각자 요절 심포지엄을 쓰시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 속에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하고 귀한 것인지 영접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가랴가 마침내 입을 열었을 때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68,69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68,69) 사가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신 은혜가 너무나 컸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백성들을 돌보시는 것은 주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찾아오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은 예수님의 오심을 말합니다. 요즘처럼 연말연시에 날씨도 추울 때 아무도 나를 찾아오지 않을 때 얼마나 마음이 힘들고 외롭겠습니까? 어제는 함모세 목자님과 시각 장애인 보호시설은 평화의 집을 방문하고 모금한 물질을 후원하고 왔습니다. 앞을 못 보시는 할아버지 여섯 분이 계셨는데 한 분 한 분 손을 잡아 드리며 따뜻하게 인사할 때 환하게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 한감사 사모님은 시아버님 장지까지 함께 해 준 김미숙 사모님의 손을 잡으며 너무나 기뻐하고 감사하며 위로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세상에서 외롭고 힘든 자들인데 예수님께 오셔서 함께 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속량하십니다. 속량하는 것은 노예를 팔렸던 자를 해방시키기 위해 값을 지불하고 사서 자유인으로 풀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그 백성을 돌보시며 속량하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 예수님은 구원의 뿔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 인생들의 구원의 뿔로 일으키셨습니다(69). 69절을 보십시오.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사람은 겉으로 보면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71) 당시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원수, 자신들을 미워하는 자를 로마제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해 줄 정치적인 메시야, 군사적인 메시야가 오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든 인류의 원수는 눈에 보이는 사람이나 나라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교묘하게 찾아와서 우리를 죄에 빠뜨리고 우리 내면을 더럽히고 영혼을 파괴시키는 사단이 진정한 원수입니다. 사단이 어떤 존재입니까? 요한계시록 12:3절에서 묘사하는 사단을 보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개나 됩니다. 우리가 하나 달린 머리로 뭔가를 이렇게 저렇게 해보려고 하지만 자신의 부족함에 탄식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반면 사단은 일곱이나 되는 머리에서 나오는 지혜로 우리를 농락하여 죄의 수렁에 빠트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이는 에덴동산에서 인간과 사단의 첫 번째 싸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사단은 단 한 번의 대화로 이브를 꼬셔서 아담과 함께 하나님께 죄를 짓게 했습니다. 이후 인간은 사단에 백전백패했습니다. 심지어 다윗도 정욕 앞에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이 나옵니다. 어려서부터 율법을 배우고 자란 유대 여인으로서 간음죄가 돌에 맞을 죽을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단의 주는 정욕의 짜릿하고 달콤한 유혹에 이끌려 간음죄를 범했습니다. ‘나는 괜찮겠지.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그것도 딱 한번뿐인데 별일 없을거야’ 생각하면서 죄를 지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사단의 거짓의 아비입니다. 사람은 그 누구도 사단을 간계를 당해낼 수 없습니다.

 

또 뿔은 힘과 능력을 상징하는데 사단은 열개나 되는 뿔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단은 그 뿔로 우리를 마구 찔러댑니다. 마가복음 5장에서 거라사 광인이 6천 마리 군대 귀신에 들려있었습니다. 군대 귀신에 잡힌 그는 쇠사슬로 묶어도 그것을 끊을 정도로 힘이 대단했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빽츄리온 백부장도 군대 귀신에 잡힌 그를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2주전에 미국 코네티컷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은 어머니가 종말론에 빠져 있었고 총기 수집광이었습니다. 그는 어머니에게 총 쏘는 훈련을 받았으며 게임에 빠져 지냈다고 했습니다. 결국 어머니를 먼저 총으로 쏴 죽이고 인근 초등학교에서 27명의 귀중한 생명을 해치고 자신도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이런 끔찍한 일도 결국은 사단이 뿔에 찔려 자아를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정욕의 뿔에 찔려 성범죄 뉴스가 나오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얼마 전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한 검사는 서울 공대 전자과를 졸업하고 변리사 시험을 차석으로 합격한 수재였습니다. 로스쿨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검사시보로 발탁된 유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단의 음란의 뿔에 찔려 유부녀와 성추문에 휘말려 날개가 꺾인 새처럼 곤두박질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사단은 죄의 뿔로 사람들을 이리저리 열심히 찔러대고 있습니다. 정욕의 뿔, 쾌락의 뿔, 물질의 뿔, 권력의 뿔, 명예의 뿔로 찔러 우리를 사로잡아 버립니다. 이처럼 사단은 끊임없이 우는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이 사단에 한번 붙잡히면 아무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죄로 인해 병들고 무서운 세상에서 누가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습니까? 69절을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의 구원의 뿔로 보내주셨습니다. 구원의 뿔 예수님은 열개의 뿔을 가진 사단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십니다. 구원의 뿔 예수님은 전쟁터에서 원수를 무찌르고 승리를 가져오는 강한 용사와 같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사단을 박살내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메시야, 그리스도로서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이미 사단을 이기셨습니다. 사단은 물질, 명예, 권력 등 사람들이 가장 유혹을 받기 쉬운 것들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단호하게 이를 물리치셨고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거라사 광인을 붙잡고 있던 6천 마리 군대 귀신도 말씀 한마디로 쫓아내시고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간음죄로 돌에 맞아 죽을 여인의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도록 새로운 인생을 주셨습니다. 돈의 노예 세리 레위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고 예수님을 따르며 복음을 전하는 성(St.) 마태가 되게 하셨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무덤 속에 있던 나사로를 “나사로야 나오라”(요 11:43)말씀으로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처럼 죄와 죽음이 사람을 붙잡을지라도 예수님은 그 사단을 이기는 더 강한 구원의 뿔이십니다. 구원의 뿔 예수님 앞에서는 그 어떤 대적도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삼상 2:10) 우리의 구원의 뿔,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구원의 뿔 예수님의 은혜 안에 거할 때 누리는 또 하나의 축복이 있습니다. 74, 75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죄 아래 있던 우리는 죄로 인해 더럽고 추하여 수치심과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구원의 뿔 예수님으로 인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거룩하고 흠이 없는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 앞에 때를 따라 담대하게 나아가 은혜를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단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심판하시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여러가지 죄의 뿔로 우리를 찌른 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항상 말씀과 기도로 무장해서 전투적으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새 해에도 말씀과 기도를 통해 구원의 뿔 예수님의 능력을 덧입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주님을 종신토록 성결과 의로 두려움 없이 섬기는 은혜를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돋는 해로 오십니다(78). 78, 79절을 보십시오.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사람들은 죄의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었습니다. 죄와 죽음의 세력에 갇혀 소망을 잃고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2012년에도 한국의 자살율은 여전히 세계 1위입니다. 심지어 대선이 끝나고 이 주 동안 무려 다섯 명의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가뜩이나 경제상황이 좋지 않는데 전문가들은 내년은 더 어려울 것이라며 제 2의 IMF가 오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는 희망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마치 죽음의 그늘이 뒤덮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인생들에게 예수님께서 돋는 해처럼 밝고 힘차게 임하셨습니다. 돋는 해는 희망을 상징합니다. 돋는 해는 생명을 공급해 줍니다. 길을 밝혀주고 치료하는 광선을 발합니다(말4:2). 돋는 해는 칠흑 같은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치고 세상을 환하게 밝혀 줍니다. 우리 마음에 예수님께서 돋는 해로 임하실 때 어두움의 세력은 순식간에 물러나고 우리의 심령은 생명과 평강과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호랑이처럼 포효하는 힘찬 인생을 살게 됩니다. 돋는 해가 위로부터 임할 때 우리는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기쁨으로 뛰놀게 됩니다. 인간 내면과 세상의 어두움은 너무 강하여 작은 빛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강렬하게 떠오르는 돋는 해 되신 예수님만이 능히 우리의 모든 어두움을 밝힐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어둠 가운데 살지 않아도 됩니다. 에베소서 5:8절에서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빛의 갑옷을 입고 빛이 자녀들처럼 살 수 있습니다. 어둠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돋는 해 예수님으로 인해 평강의 길을 갈 수 있게 됩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잘 대변하는 말이 있습니다. 최근 교수신문에서 2012년 올 해의 한자성어로 선정한 ‘擧世皆濁’(거세개탁)이 그것입니다. 온 세상이 모두 탁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바르지 않아 홀로 깨어 있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뉴스를 통해 볼 수 있듯이 현 정부는 대통령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불의함이 만연합니다. 바른 목소리를 내야 할 지식인과 교수들마저 제 역할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대선 결과에서도 보듯이 세대간 갈등, 계층간 불신, 불만으로 사회가 소란스럽습니다. 유난히도 강력범죄, 학교폭력 등 사회적 병리 현상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디를 봐도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처럼 혼탁한 세상에서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고자 믿음의 투쟁을 해왔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믿음의 승리를 주시며 열매도 맺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 주위에는 여전히 여러 가지 인생문제로 어둠의 그늘에 앉아 있는 자, 그 마음에 사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이들이 있습니다. 취업과 결혼, 건강, 가정 복음화, 장래방향, 제자양성 등 여전히 불안하고 힘든 현실을 볼 때 마음은 낙심이 되고 어두워집니다. 운명주의, 슬픔, 패배주의, 열등감, 마음의 각종 상처의 어두움이 우리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돋는 해로 임하시면 모든 어두움이 물러갑니다. 구원의 뿔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돋는 해로 임하신 예수님께서 어찌 우리를 도우시지 못하겠습니까? 예수님 안에 사는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 희망은 예수님의 부활로 세우신 참되고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돋는 해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을 마음 깊이 영접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뒤에 있는 것, 과거의 것에 얽매이면 롯의 아내처럼 소금기둥이 되어 움직일 수 없습니다. 롯은 하나님의 은혜로 소돔 고모라의 심판에 구원을 받았지만 두고 온 것을 잊지 못해 뒤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3,14) 그는 교회와 성도들을 무자비하게 핍박하던 자였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어 위대한 믿음의 역사를 많이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렸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푯대삼아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에게 2012년이라는 과거의 시간이 어떤 모습이었든지, 열매가 많든지 적든지, 하나님 앞에 잘 살았든지 그렇지 못했든지 그 시간은 희망찬 내일로 위해 뛰어 오를 발판으로 삼아야 합니다. 예수님이라는 인생의 근본 푯대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돋는 해로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2013년을 소망 가운데 시작하기를 기도합니다.

 

올 해를 돌아볼 때 구원의 뿔이요 돋는 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승리의 체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올 전반기까지만 해도 매년 제자양성 실패하는 현실이 올 해도 반복되는 같아 마음이 심히 어두웠습니다. 양들 초청 역사에 작년 겨울부터 봄까지 헌신했음에도 예배와 수양회에 데려올 양 한 사람 없었습니다. 리더들이 가장 많은 파트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생각할 때 부끄러움과 목자로서 자격이 없다는 사단의 송사에 죽을 것처럼 괴로웠습니다. 이렇게 한참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풀타임 목자들과 전도 세미나에 참석하여 힘을 덧입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전도, 할 수 있다! 전도, 하면된다! 전도, 해보자! 전도, 100명!’ 외치는 구호는 도전 스피릿을 주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을 붙들고 오로지 기도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예수님을 의지하는 기도는 힘이 있었습니다. 먼저는 저의 내면에 가득했던 실패로 인한 부끄러움과 사단의 송사, 패배의식과 운명주의의 어둠이 사라졌습니다. 대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면 능치 못 할 것이 없다는 확신과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특히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은 좋지만 예수님처럼 목숨을 버리는 목자가 되기는 싫은 마음을 회개하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전에는 마음에 안드는 동역자는 기도를 건너뛰거나 형식적으로 했었는데 예수님처럼 죽을 것을 영접할 때 날마다 모든 동역자와 양들을 위해서 전심으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를 크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차츰 파트에 동역의 그릇이 이루어졌습니다. 2년 넘게 죄로 인한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있던 유용사 목자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100일 새벽기도의 방향에 순종한 이춘호 목자님이 믿음으로 승리하고 취업하여 큰 기쁨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간절히 기도했던 박룻 목자 한 사람의 회복을 통해 큰 기쁨을 주시고 자매 역사에 대한 소망을 보게 해 주셨습니다. 또 마음이 순수하고 신실한 조용준 형제가 예수님을 만나고 제자로 자라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 모든 승리의 역사가 예수님께서 구원의 뿔, 돋는 해가 되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보이지 않게 부족한 저를 감당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동역해 주신 목자님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구원의 뿔, 돋는 해 예수님께 먼저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또한 함께 해 주신 모든 목자님들과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혈기와 짜증이 툭하면 튀어 나옵니다. 말구유에 낮아져 오신 예수님의 겸손과 섬김을 행하기보다 높아져서 지시하고 약자를 무시하는 교만한 모습이 쉽게 나옵니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깊이 있게 말씀을 연구하고 그 말씀에 제가 먼저 순종하기보다 쉽게 가르치고 훈계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새 해에는 말구유에까지 낮아져 오신 예수님을 배워 더욱 더 낮고 겸손한 마음과 몸가짐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겠습니다. 이를 통해 구원의 뿔, 돋는 해 예수님의 능력과 생명의 빛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사가랴는 오실 예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보면 소망이 없고 근심과 염려로 한숨만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를 돌보사 속량하신 예수님, 구원의 뿔, 돋는 해로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감사와 찬송이 나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자에게 비치고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구원의 뿔, 돋는 해 예수님이 우리의 참된 능력이요 소망이십니다. 사단이 활개침으로 죄와 어둠이 가득한 이 때에 구원의 뿔, 돋는 해 예수님을 온전히 의지해야겠습니다. 2013년 새 해에는 이 예수님을 말미암은 구원의 역사, 빛과 생명이 풍성한 역사가 우리 각자와 가정에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 모임에 그토록 간절히 기도하는 230명 예배와 300팀 일대일 역사를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올 해 힘든 영적 환경에서도 파트마다 소망스러운 양들을 보내 주시고 목동, 목자들을 세워 주신 것처럼 새 해에도 파트마다 학생 제자양성 역사가 왕성하게 일어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