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송년메시지 6 부

구원의 뿔, 돋는 해

말씀/ 누가복음 1:57-80

요절/ 누가복음 1:69,78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다사다난했던 2012년, 이제 일주일이 지나면 대망의 2013년이 됩니다. 미리 새해인사 해 볼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송년메시지를 정하는 과정에서 어떤 말씀이 좋을까하는 의논이 본부에서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날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 시대 가장 큰 문제는 첫째로 죄악 된 문화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로, 이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이 어둡고 싸늘해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이런 시대문제를 극복하고 생명구원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구원의 뿔이요 돋는 해가 되신 예수님을 의지하면 능히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원수 사단마귀를 멸하시고, 어둠의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예수님을 심령깊이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2013년에는 더 힘찬 생명구원역사, 빛의 역사를 이룰 수 있길 기도합니다.

 

Ⅰ. 구원의 뿔 되신 예수님(57-75)

 

57절을 보십시오. 사가랴 가정에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할머니 엘리사벳이 해선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이희철 목자님 가정이 결혼한 지 7년 만에 아들을 낳은 것은 우리 센터에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런데 40년 동안 아이가 없는 가정에 아이가 태어났으니 그 기쁨이 어떠하겠습니까? 이 큰 기쁜 소식에 이웃과 친족들은 하나님께서 크게 긍휼히 여기셨다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즐거워하였습니다. 이 후 팔 일이 되자 율법을 따라 아이에게 할례를 행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친척들이 함께 모여 지었다고 합니다. 친척들은 아이의 이름을 아버지를 따라 사가랴 주니어로 짓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벳이 듣고 “아닙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요한이라 할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엘리사벳은 천사가 사가랴에게 일러준 대로 순종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큰 갈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사가랴에게 이름을 어떻게 지을 지 물어보았습니다. 이때 사가랴는 서판을 달라하였습니다. 그리고 또박또박 ‘요한’이라고 썼습니다. 그러자 요한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벙어리였던 사가랴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열 달 동안 사가랴가 얼마나 말을 하고 싶었겠습니까? 말을 하기 좋아하는 귀남, 영혁 목동에게 이런 훈련을 주었다면 아마 엄청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가랴는 이 훈련을 통해 그동안 저지른 불신의 말, 불순종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과 순종의 자세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마음에 말할 수 없는 은혜와 평강이 임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마음에 성령 충만함이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 충만함 가운데 예언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67)예언이란 앞으로 이루실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가리킵니다. 그러면 사가랴가 예언한 하나님의 구속역사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이 구원의 뿔을 다윗의 집에 일으키십니다. 68,69절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먼저 사가랴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 백송을 돌보사 속량하셨다고 찬송하였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돌보지 않는다.’ 생각하였습니다. 그럴 것이 그들은 로마제국아래 식민통치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출애굽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들은 로마의 과도한 세금과 억압에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하나님이 무려 400년 동안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리셨다 생각하며 절망하였습니다. 오늘날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돌보지 않는다?”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는데 왜 정직으로 전환시켜주시지 않는가? 후배목자들은 빨리 결혼하는데 왜 하나님은 내게만 배필을 주시지 않는가? 왜 나에게는 양을 주시지 않는가? 왜 직장을 주시지 않는가? 왜 물질을 주시지 않는가? 왜 나에게 이런 질병을 주셔서 고통을 주시는가? 기도를 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으신 하나님을 볼 때 하나님이 나를 돌보지 않는다?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시간 사가랴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신다.’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속량하시려 예수님을 보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옛날 하나님은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아 보사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모세라는 인물을 보내셨습니다.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려 바로를 심판하셨습니다. 특히 10번째 장자재앙 때는 죽음의 사자를 보내어 애굽을 심판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은 속량하여 주셨습니다. 어린양의 핏 값으로 이스라엘은 애굽의 400년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들을 홍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신약시대에 오실 예수님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신약시대에 하나님은 사단의 권세아래 노예 생활하는 우리 인생들을 속량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를 어떻게 속량하십니까? 예수님은 구원의 뿔로 우리 인생들을 속량하십니다. 69절을 보십시오.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여러분 동물 중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동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자, 호랑이가 아닙니다. 바로 코끼리입니다. 아무리 사자, 호랑이라 할지라도 코끼리가 나타나면 슬슬 도망갑니다. 그 다음으로 싸움 잘하는 동물이 코뿔소입니다. 코뿔소는 평상시 온순하지만 화가 나서 들이받으면 큰 버스도 넘어진다고 합니다. 둘 다 공통점은 뿔이 있다는 것입니다. 뿔은 힘과 권세를 상징합니다.

 

요한계시록 12:3절에 보면 사단은 뿔이 10이 있습니다.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사단은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고 하였습니다. 머리가 일곱이니 얼마나 똑똑하겠습니까? 또 뿔이 열이니 그 힘이 얼마나 강하겠습니까? 사단은 에덴동산에서 지금까지 이 똑똑한 머리와 강력한 뿔로 우리 인간을 공격해 왔습니다. 에덴동산에서는 그 똑똑한 머리로 아담과 이브를 꾀어 선악과를 따먹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인간과 자연은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단의 뿔에 찔려 남자는 저주를 받아 열심히 땅을 일구어야 음식을 얻게 되었고, 여자는 저주를 받아 해산과 육아의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땅도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 땅뿐만 아니라 자연만물이 이 사단의 뿔에 찔려 썩어짐에 종노릇하며 탄식하고 있습니다(롬8:22). 결국 죽음으로 인생을 마무리해야하는 슬픈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사단의 뿔에 찔린 인간은 사단의 종이 되어 다른 사람을 찌르고 파괴하는 불의의 병기가 되었습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은 동생 아벨을 돌로 치는 무서운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노아시대에는 힘센 사람은 약한 사람을 쉽게 죽이고, 원하는 여인은 마음대로 취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영성을 잃고 짐승처럼 육체가 되어 그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별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는 뉴스를 통하여 총으로 수십 명을 죽인 소식, 폭탄테러를 일으킨 소식, 자기 자식을 죽이고 강에 버린 사람, 계모가 소금밥으로 배다른 자식을 죽인 소식, 자살한 사람, 성폭행을 저지른 소식…. 등 수없이 슬픈 소식을 듣습니다. 왜 이런 슬픈 소식이 세상에 가득한 것입니까? 사단이 그 간교한 머리로 배후에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강력한 뿔로 사람들을 찌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제 우리가 고통하고 슬프고 절망에 빠진 이유는 모두 사단마귀의 간교에 넘어지고 강력한 뿔에 찔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를 하나님이 돌아보셨습니다. 돌아보셨다는 말은 영어로 "He has come" 즉 찾아오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찾아오셨습니까? 69절을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하나님이 친히 다윗의 자손가운데 육신을 덧입고 찾아오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속량하기 위함입니다. 속량이란 노예를 값을 치르고 해방시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노예 된 우리를 해방시키기 오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사단을 이기기 위해 어떤 모습으로 오셨습니까? 구원의 뿔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요한계시록5:6절은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예수님은 사단마귀를 이기기 위해 7뿔이 달린 어린양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어린양은 동물 중에서 가장 약한데 어린양과 강력한 뿔은 잘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 예수님의 모습 속에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첫째, 죽임 당한 어린양의 모습입니다. 이는 우리 죄인들을 감당하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어린양은 아주 약한 존재입니다. 또한 아주 순종적입니다. 그래서 도살당하러 끌려갈 때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우리 인생을 구원하기 위해 어린양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세례요한은 그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실제적으로 마구간에서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상처가 많으셨습니다. 가난한 식민지 백성으로서 많은 슬픔과 운명, 가난, 아픔을 겪으셨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의 수많은 문제와 아픔을 다 이해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실수, 상처를 다 이해하십니다. 심지어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다 이해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죽임당한 어린양의 모습으로서 묵묵히 우리 죄악을 친히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십니다. 이는 우리 인생들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사단의 권세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하기 위함 이었습니다. 저희가 연약하고 죄악 된 내 자신에 실망할 때 죽임 당한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을 날마다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느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뿔의 모습입니다. 이는 우리의 대적 사단마귀와 싸우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을 향해서는 한없이 돌보시고 감당하는 모습을 취하시지만, 사단 마귀에 대해서는 이와 반대로 아주 전투적인 모습을 취하십니다. 마치 부모님들이 우리를 대해서는 한없이 사랑의 모습, 감당하시는 모습을 취하시지만, 우리를 해하는 어떤 세력에 대해서는 전투적인 모습을 취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어릴 적 무서움이 많았습니다. 특히 TV에서 방영되었던 ‘홍콩 할매’에 대한 공포 때문에 저녁에 화장실을 못 갔습니다. 결국 마당에 불을 환히 켜놓고 구속에서 응가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이런 저를 나무라시지 않으셨습니다. 아침이면 말없이 응가를 치워주셨습니다. 저는 이런 모습 속에 부모님의 속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무서운 개가 저를 물려고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무서워 뒤도 안보고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를 보고 아버지가 뒤 쫒아와 개를 사로잡고 개를 정말 개 패듯이 패버렸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통해 아버지의 또 다른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우리 인생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감당하시는 모습을 취하시만, 사단마귀에 대해서는 아주 전투적인 자세를 가지십니다. 마가복음 5장에 보면 귀신들린 거라사 광인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이 사람을 귀신과 동일하게 취급하여 고랑과 쇠사슬로 메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과 귀신을 불리하여 보셨습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네 이름이 무엇이냐”하며 자신의 참된 존재가 누구인지 알려주셨습니다. 반면 배후에 잇는 귀신에 대해서는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서 나오라’며 귀신과 싸워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사단마귀와 싸워주시고 멸망시키기 위해 이 땅에 찾아오셨습니다.

 

사실 우리의 지혜로는 사단의 모략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사단의 강력한 죄의 뿔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략과 지혜의 신을 덧입은 예수님을, 사단보다 강력한 뿔을 가지신 예수님을 심령에 구주로 영접하면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친히 싸워주십니다. 아멘! 나의 힘으로는 정욕의 세력을 이길 수 없고, 미움의 세력을 이길 수 없습니다. 탐심의 세력, 거짓의 세력, 안인과 게으름의 세력을 이길 수 없습니다. 새해에 결단하지만 작심삼일에 실패하고 맙니다. 그러나 나는 할 수 없고 나는 이길 수 없지만, 기도로서 예수님을 의지하면 예수님께서 친히 나를 대신하여 사단마귀와 싸워 주십니다. 비록 죄에 넘어질지라도 예수님은 나의 모든 죄와 허물을 이미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이 사실을 믿음으로 붙들면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게 되면, 우리는 사단에 대해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15)하며 승리의 찬가를 부를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모든 은혜는 오직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할렐루야 찬양합니다.

 

그러면 구원의 뿔이 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74, 75절을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종신토록 주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구원의 뿔 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원수 사단마귀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요한1서 4절은 말합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가 날마다 믿음으로 예수님 앞에 나가면 감히 우리가 사단에 대하여 승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종신토록 성결과 의로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거 우리는 거짓되고 음란하고 더러웠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님께서 보배피로 나를 깨끗이 씻어주셨기 때문에 이제는 성결하고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과거 우리는 거짓되고 불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의롭다 칭하셨습니다. 또한 우리는 과거 내 자신의 죄로 인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장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몸을 찢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갈 새롭고 산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면 이제는 떳떳하고 당당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원이가 베드로목자님에게 아빠하며 달려가는 것처럼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며 언제든지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 섬기는 것이 아니라 종신토록 영원히 섬기게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5년 동안 섬기는 것도 큰 영광인데 만왕의 왕 하나님을 종신토록 섬기는 것은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저희에게 이런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할렐루야 찬양합니다.

 

Ⅱ. 돋는 해 되신 예수님(76~80)

 

사가랴는 또한 장차 태어날 아이가 어떤 사역을 감당하게 되는 지 예언하였습니다. 76~78a절을 보십시오.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장차 태어날 세례요한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예수님 앞에 가서 그 길을 준비합니다. 군대에서 장관이 그 부대에 온다고 하면 그 부대는 몇 달 동안 그 길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세례요한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입성할 수 있도록 그 길을 준비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합니까? 사람들에게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동안 율법에 갇혀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오해한 것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죄 사함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다시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파하였습니다. 한번은 회개하지 않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이 오시기 위해서는 우리도 준비를 해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죄를 깨닫고 죄의 길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깨닫든 것은 내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성경께서 도우실 때만 가능합니다. 성령께서 오실 때 교만으로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불신으로 불순종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탐욕으로 불평하고 하나님보다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죄를 깨우쳐 주실 때 전에는 아무런 문제도 안 되는 것이 큰 죄로 깨달아지고 눈물로 애통히 회개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죄를 회개할 때 하나님은 어떤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까? 우리 다함께 78~7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 하시리로다 하니라” 우리가 죄를 회개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심령에 위로부터 NIV성경에서 보면 "from heaven" 하늘에서부터 돋는 해처럼 빛을 보내어주십니다. 이 빛은 요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빛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나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1:4,9) 이처럼 우리가 회개할 때 예수님은 그 심령에 돋는 해처럼 임하여 우리 심령에 생명의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아무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라 할지라도 그들을 구원하여 우리의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여러분은 혹시 흑암에 앉아보신 적이 있습니까? 얼마 전 동지가 있었습니다. 동지는 일 년 중 가장 어둠이 많은 시기입니다. 그런데 이 지구상에서 가장 어둠이 긴 지역이 있습니다. 혹시 아십니까? 바로 북극입니다. 북극의 동지는 하루 24시간 내내 밤이 지속된다고 합니다. 이 동지를 기준으로 앞뒤 몇 달은(춘분과 춘분사이는) 낮보다 밤이 깁니다. 아니 거의 해가 뜨지 않습니다. 저는 얼마 전 북극을 대상으로 하는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그린란드에 사는 사람들이 이 어둠의 시절을 지내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지 보았습니다. 또한 그들이 얼마나 빛을 기다리는지 보았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빛을 기다리는지, 봄이 오는 시기에 그들은 함께 모여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찬양을 부른다고 합니다. 그 찬송이 찬송가428장입니다. ‘내 영혼에 햇빛 비니니 주 영광 찬란해 이 세상 어떤 빛보다 이 빛 더 빛나네~ (3절내 영혼에 봄날 되어서 주 함께 하실 때 그 평화 내게 깃들고 주 은혜 꽃피네) 주의 영광 빛난 광채 네게 비춰주시옵소서 그 밝은 얼굴 뵈올 때 나의 영혼 기쁘다)’

북극의 밤이 그토록 시리고 어두운 것처럼 사단의 통치하에 있는 세상은 흑암과 어둠이 가득합니다. 어둠의 세력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우리는 심령이 어두워집니다. 불신의 세력에 사로잡히면 삶이 우울해 지고,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불의에 사로잡히면 연약한 자신에 절망하고 삶의 의욕이 희미해집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어둠을 이겨보고자 음악도 듣고, 맛있는 음식도 먹어보고, 책을 읽고, TV나 게임을 해봅니다. 새해에는 무등산에 올라가 일출도 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으로는 근본적으로 우리 맘에 역사하는 어둠의 세력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오직 돋는 해되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어둠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단 우리 속에 역사하는 어둠의 문제를 그 앞에 고백하면 예수님께서 우리 심령에 돋는 해처럼 찾아와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역사하는 어둠의 문제와 싸워주십니다. 구원의 뿔 되신 예수님이 우리 속에 역사하는 사단마귀와 싸워주신 것처럼, 돋는 해 되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 역사하는 어둠의 세력과 싸워주십니다. 돋는 해가 비취면 어둠이 걷히고 밝아집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빛이 임하면 우리 안에 어둠의 세력이 도망가게 됩니다. 막연한 장래로 인해 마음이 어둡고 불안한 사람이 장래에 대한 자신감이 생깁니다. 도저히 돌파구가 안보이던 삶에 돌파구가 보이고 길이 보입니다. 특히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나이다(시119:105)." 말씀처럼 말씀을 붙들면 그 말씀이 우리 인생의 길을 환히 밝혀 주고 우리를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십니다. 저는 삶이 힘들고 지칠 때 자주 부르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찬송가 445장입니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캄캄한 밤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의 길 되시고 나에게 밝은 빛이 되시니 길 잃어버릴 염려 없네, 광명한 그 빛 마음에 받아 찬란한 천국 바라보고 할렐루야 힘차게 불러 날마다 빛에 걸어가리. 하늘에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태산같이 보이는 문제, 험한 계곡을 지나는 듯 한 상황에 처할 때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 나갈지 막막할 때 약속의 말씀을 붙들어 보십시오. 그 말씀이 우리 심령에 빛으로 밝혀줄 것입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지켜주고, 그 말씀 속에서 예수님의 찬란한 빛이 우리 심령에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이 맘속에 차고도 넘칠 것입니다.

 

또한 돋는 해가 비추면 식물과 동물들이 기지개를 피고 깨어나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생명의 빛이 임하면 우리 안에 잠재되었던 가능성들이 기지개를 펴고 깨어나게 납니다. 전에는 자의식 때문에 소심하게 살았던 사람이 얼굴이 쫙 펴지고, 환해져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힘차게 율동도 하고 연극도 합니다. 돋는 해는 날마다 새롭게 떠오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빛이 임하면 과거에 아무리 실패하였다 할지라도 다시 박차고 일어나 도전하고 개척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또한 돋는 해는 치료하는 힘이 있습니다. 의학적으로도 돋는 해는 우리 몸을 튼튼하게 합니다. 비타민 D를 합성하여 어린아이들은 구루병이 안 생기게 하고, 노인들은 관절 병이 안 생기게 합니다. 햇빛을 많이 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심장이 튼튼하고, 심혈관 질환이 더 적게 생긴다고 합니다. 심리적으로도 햇빛을 많이 받으면 우울증이 덜 생깁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빛을 많이 받은 사람은 영육 간에 건강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치료의 광선을 발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돋는 해는 또한 지구의 온도를 따뜻하게 해줍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빛이 임하면 얼음같이 차갑던 사람이 변하여 사도바울처럼 마음이 따뜻하고 열정적인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저희가 이 돋는 해되신 예수님을 새해에는 풍성히 받아 누리므로 밝고, 건강하고, 열정과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이 시대는 점점 사단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점점 사단은 그 강력한 뿔로 사람들을 찌르고 멸망의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어둡고 시립도록 차가워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구원의 뿔이요, 돋는 해되신 예수님만이 시대의 희망이요 소망임을 믿습니다. 저희가 다가오는 2013년에도 ‘이 시대가 너무 죄악 되다, 어둡다’ 탓하지 않고, 구원의 뿔이요, 돋는 해 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줄기찬 생명구원역사, 빛의 역사를 이룰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운데 종신토록 성결과 의로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날로 늘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