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부활절 수양회 (김대한, 안베드로, 박대장부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김대한 목자)

 

말씀 / 고전 15 :1 ~ 11

요절 / 고전 15:3,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Happy Easter! 죽음 권세를 파하시고 부활하신 영광의 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이 시간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부활의 능력을 덧입고 봄 학기 생명력이 충만한 인생을 살길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이미 받았고 또 그 가운데 선 복음을 다시 알게 하고자 합니다. 바울은 지금 고린도 성도들에게 무슨 새로운 것이나 새로운 학설을 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바울 자신이 이전에 고린도 성도들에게 전했던 그 복음을 다시 Remind 시키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그들이 이미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2절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고린도 성도들은 바울을 통해서 받은 복음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굳게 지킨다는 것은 “꽉 붙들다”, “힘있게 붙들어 매다” 그런 뜻입니다. 즉 고린도 성도들은 바울이 전했던 복음 꽉 붙들어야 합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무엇을 붙들고 삽니까?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요즘 20~30대 직장인들이 제일 관심사의 1위는 연봉과 승진이라고 합니다. 2위는 연애와 결혼이고, 3위는 주식 예금 부동산 등 재테크라고 합니다. 젊은 시절 큰 비전과 꿈을 갖고 인생을 개척해야 하지만, 돈을 쫓고 돈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또한 스마트폰에 메여 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들은 다양한 애플리케이션과 인터넷을 수시로 이용해서 편리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에 너무 몰입하여 일상과 사이버 세상을 구분을 못하고, 불안해합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모바일 기기를 만지작거리고, 자주 확인을 합니다. 또 이를 통하여 사이버 폭력, 게임 중독, 음란물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스마트폰 사용을 절제를 시키니 자살 소동을 벌인 중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보다 생명처럼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생명의 복음 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죽을 듯 살 듯 하면서 또 스마트폰을 분신처럼 여기면서 복음을 헛되이 여기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받은 이 생명의 복음, 구원의 복음, 진리의 복음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확실하게 믿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이 복음으로 마지막 날, 구원에 이르는 축복된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 우리가 받은 복음은 과연 무엇입니까? 3,4절을 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첫째로 우리가 받은 복음은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셨습니다. 우리 인간의 근본 문제는 죄와 죽음의 문제입니다. 죄란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 없이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인간은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동물과 같은 육체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죄로 인하여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죄의 대가는 한번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후에는 무서운 심판이 있습니다. 불과 유황으로 활활 타는 지옥에 떨어져 영원토록 고통을 받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끔찍한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모든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물과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가 나음을 입고 평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심판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가리켜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이 이 소중한 십자가의 은혜를 굳게 붙들어야겠습니다. 나를 구원하신 십자가의 복음을 감사함으로, 찬양함으로 붙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희들이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십자가의 복음을 굳게 붙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받은 복음은 예수님의 부활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He rose again from the death!”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 나셨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일어나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몰아 내시고 영생의 문을 여셨다는 뜻입니다. 사망의 돌이 아무리 예수님을 가로 막아 놓아도,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어도 우리 예수님은 다시 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도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저희들이 이 부활의 복음을 굳게 지킬 수 있길 기도합니다. 부활의 복음을 확실하게 믿어서 구원과 영생에 이를 수 있길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받은 복음은 예수님의 은혜요 보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본 증인은 한 두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 열 두 제자, 오백여 형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도 바울에게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바울은 본래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음성으로 그를 불러 주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바울은 이 순간 예수님의 용서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광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 부활의 빛이 얼마나 강렬하든지 며칠 동안 눈이 멀어 버렸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체험한 바울은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은혜와 영광을 감당하기 위해서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했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 같이 10절을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그러나나의나된것은하나님의은혜로된것이니내게주신그의은혜가헛되지아니하여내가모든사도보다더많이수고하였으나내가아니요오직나와함께하신하나님의은혜로라" 사도 바울은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않다고 합니다. 지금 고린도 성도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헛되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보배롭고 소중한 십자가의 복음을 받았으면서도, 서랍장 속의 골동품처럼 취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은혜를 헛되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받은 은혜인데 헛되게 합니까? 어떻게 이루신 구원인데 헛되게 믿습니까?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바울은 이 은혜를 감당하기 위해서 누구보다 열심을 내었습니다. 누구보다 많이 희생했습니다. 누구보다 많이 고생했습니다. 누구보다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누구보다 많은 매를 맞았고, 많은 핍박을 받았고,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이 너무나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복음을 너무나 당연시 여깁니다. 헛되이 여기고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에 목숨을 겁니다. 연애인 가십거리, 해외 명품 가방, 명품 차에 목숨을 겁니다. 아무것도 아닌 물건들이 자기를 빛내 보인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썩어 문드러져 없어질 것들입니다. 결국 죽으면 다른 사람들이 다 가져갈 것입니다. 바울이 바울 되게 하였던 것은 무엇입니까? 바울이 바울 되게 하였던 것은 복음을 귀하게 여기고 이를 오직 예수님의 은혜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 은혜에 대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결국 바울을 바울 되게 한 것은 예수님의 은혜였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그를 겸손하게 만들었고, 순수하게 만들었습니다. 속 사람을 강하게 만들었고, 그의 인생을 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얻은 구원의 은혜를 생명처럼 귀하게 붙들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 받은 귀한 복음 전하는 수고를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천사도 흠모 한다고 합니다. 하늘이든 땅이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가장 축복된 자입니다. 저희들이 바울처럼 그의 은혜를 헛되이 여기지 않고, 오직 은혜로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복음을 증거하는 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본문 말씀을 준비하면서 예수님 피 값으로 주신 귀한 복음을 다시금 붙들게 되었습니다. 죄인의 괴수 김대한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세상의 일에 치어 이 소중한 복음을 잃 버리고 있었습니다. 하루 하루 목숨 걸고 일을 하고, 의미 없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열심히 구르고 뛰지만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저의 모습은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직장 동료들은 그날의 주가와 상황만을 바라봅니다. 스마트폰을 보며 야동을 서로 공유하고 키득 키득거립니다. 이럴 때 삶의 무의미 하게 되고, 한 밤 중에 그렇게 늦게 퇴근하면서도 술집에 들어가 술을 마시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릅니다. 어디를 향하는지, 누구에 대한 분노인줄도 모르고, 눈물을 흘리며 주먹을 휘두릅니다. 저희 회사에서는 며칠 전 마케팅 담당 전무님이 뇌출혈로 쓰러지셨습니다. 회사 상황이 악화되고 매출이 떨어지니 스트레스와 실적 압박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단 일주일 만에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한 순간입니다. 입지적인 성과를 냈어도, 세상은 비정하고 무정합니다. 제가 좋아했던 직장 선배가 직장을 떠났습니다. 일도 열심히 하고, 실력 있고, 승진도 빠른 선배였습니다. 멋진 양복에 차도 비싼 차를 몰고 다녔습니다. 형수님도 우리 보현 목자님보다는 못하지만 참 미인이었습니다. 부족할 것이 없는 선배처럼 보였는데, 거래처에서 돈을 받고 룸살롱에서 술을 마시며 펑펑 쓰다가 감사에 걸려 권고사직을 당했습니다. 삶이 무의미하고 술과 쾌락으로 이를 채우고자 할 때 결국 패망의 길로 갔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잘나가고 성공하더라도 복음이 없으면 저렇게 의미 없이 살게 되는구나.’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 선배를 부러워하고 똑같이 살고자 했던 저의 모습에 애통이 회개를 하였습니다. 이런 자를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났습니다. 저는 회사에 다니면 다닐수록 힘들면 힘들수록 복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소망이 없는 곳인가 알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붙들어야 할 것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입니다. 세상의 돈이나 명예나 쾌락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십자가입니다. 또한 부활 소망을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도 죽음은 금방 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부활 영광이 있습니다. 저의 목자 동기들은 대부분 선교지에 나가있습니다. 구갈렙, 김엘리야, 송요셉 선교사들이 영국과 캐나다에서 주와 복음을 위해 생명을 걸고 복음 역사를 섬기고 있습니다. 구갈렙 선교사는 영국에서 집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면서도 꿋꿋하게 복음 역사를 섬기고 있습니다. 김엘리야, 송요셉 선교사는 8년째 캐나다에서 한국을 방문하지 못하고 있지만, 주님을 찬양하며 열심히 선교역사를 섬기고 있습니다. 지난번 캐나다에 방문했을 때 두 친구들은 얼굴은 해같이 밝았습니다. 제 친구들은 부활의 소망으로 주와 복음에 충성 되이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부활의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모든 사도보다 더 수고한 사도 바울처럼, 선교지에서 충성되게 섬기고 있는 친구들처럼 한 양을 도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회사를 통해 해외 주재원으로 나가, 선교 역사에 동참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어찌하든지 남은 인생을 주와 복음을 위해 부활의 증인으로 모든 평신도들 보다 더욱 수고하는 자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부활의 능력(안베드로 목자)

 

말씀 / 고린도전서 15:12-34

요절 / 고린도전서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여러분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예수님이 왜 부활하셨고 우리 인생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분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셨습니다. 그런데 부활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죄사함을 받아도 우리는 여전히 사망의 그늘에 눌려 있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여전히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나 복음전파는 모두 헛것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 부활이 없으면 근본적으로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우리 인간들을 가장 불행하게 하는 문제는 이성문제도 아니고, 경제문제도 아니고, 바로 죄 문제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는 사망의 그늘에 앉아 비참한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에게 사도바울은 무엇이라고 선포합니까? 20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에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부활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24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예수님은 그 동안 사단에게 빼앗겼던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빼앗아서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게 됩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악한 세력들을 멸하십니다. 우리는 죽음을 정복하신 예수님의 통치를 받기 때문에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능력이 우리들에게 임하면 위대한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학생 형제, 자매들은 중간고사 장애물도 두려워하지 않고 부활신앙으로 도전하여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으로 덧입고 영적인 투쟁할 때 요회나 파트에 배가 역사를 능히 이룰 수 있습니다. 각자 앞에 있는 크고 작은 장애물을 부활신앙으로 도전하여 극복하고 승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원수 죽음을 이기시고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부활의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그러면 부활신앙으로 충만한 사도바울은 어떤 인생을 살았습니까? 31절을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 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사도바울은 날마다 죽고 날마다 부활하는 능력을 체험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살면 복음 전파와 선교요 죽으면 부활이다. 바울처럼 분명한 부활신앙이 있을 때 세상이 두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정말로 그렇게 했습니까? 정말로 그렇게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을 뻔했지만, 깨어나서 다시 성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로마행 배를 타고 오는 바닷길에서 풍랑을 만나 거의 죽을뻔 했는데, 난파된 섬에서 독사에게 물렸는데도 살았습니다. 수많은 감옥행과 채찍질을 당했습니다. 그의 인생은 그의 고백처럼 정말로 날마다 죽었다가 날마다 다시 살아났습니다.

 

33,34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우리의 인생은 결코 오늘 내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이렇게 외치는 자들은 모두 거짓 친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히려 깨어 의를 해하고 죄를 짓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장차 부활의 그날에 주님께서 씌워주실 승리의 면류관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 거룩한 나그네 인생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소극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 단계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깨어 의를 행하는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저는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자식 뒷바라지 하시느라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나름 열심히 공부해서 전남대 법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처음에는 세상을 다 얻은 양 정말로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대학 입학의 성취감? 행복감은 1학년 1학기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대학 입학 후 목표가 없어져서 더 이상 투지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온통 딴생각만 했습니다. 날마다 허무한 생각에 빠져 인생이 허무하고 부질없게 느껴졌습니다. 혼자서 어두컴컴한 비디오방에 앉아서 중국영화에만 빠져 현실과 영화 속을 분간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또 정욕은 병처럼 깊이 뿌리내려 혼자 있으면 야동에 빠져 음란한 상상과 정욕행위를 수도 없이 반복하고 그때마다 제 자신이 저주스러웠습니다. 남들에게 혹시 이런 모습을 들킬까봐 자신을 포장하고 거짓 행동을 했습니다. 1학년 때부터 성경공부를 하면서 저의 죄문제를 알게 되고 예수님의 죄인을 향한 뜨거운 사랑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어렸을 때부터 틈탄 정욕의 세력은 성인이 되어서도 저를 비참하고 무기력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저를 더럽다고 하지 않으시고 정욕으로 인해 상처받은 내면을 치유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저도 캠퍼스 목자로 살고자 저희 가정은 보건대 개척파트에서 동역하며 섬기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회사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개척역사에 적극 동참하지 못했습니다. 동역자들이 캠퍼스 전도모임을 해도 빠지기 일수였고 어쩌다 참가해도 양들에게 아무말도 건네지 못했습니다. 양들이 부담스럽고 상처받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저는 저에게 주어진 ‘베드로’라는 이름이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이보다 더 맞는 이름도 없습니다. 베드로가 계집종 앞에서 에수님을 세 번 부인한 것처럼 저도 아버지의 핍박에 예수님을 쉽게 부인했습니다. 양들이 부담스러워 쉽게 다가가 말을 건네지도 못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그는 사도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단 한명의 계집종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던 그가 3천명이나 되는 유대인들 앞에서 주님을 증거하고 그들을 회개시켰습니다. 부활의 능력은 이와 같이 물고기 잡던 베드로를 생명을 살리는 목자의 삶을 살게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금 이 시간 나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말씀에 순종하여 사도 바울과 같이 베드로와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는 삶을 살길 기도합니다.

부활신앙을 덧입으면 어떻게 됩니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두려워하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앞으로 나가 도전하게 되고 모든 능력을 집중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승리를 주십니다. 우리 모두가 부활의 권능을 덧입고 사도바울과 같이 날마다 승리하는 인생을 살길 기도합니다.

 

 

 

 

 

 

 

 

 

 

 

 

 

 

 

 

 

 

 

 

 

 

 

 

 

 

 

 

 

 

 

 

“부활의 영광”(박대장부 목자)

 

말씀 / 고린도전서 15:35∼58

요절 / 고린도전서 15: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우리는 1강과 2강을 통하여 예수님의 부활의 역사적 사실과 부활 신앙의 능력을 배웠습니다. 그런데도 부활을 믿지 못하고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떤 몸으로 오느냐 질문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본문 말씀은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인 동시에 부활의 소망을 가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저희가 말씀을 통해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내에는 육신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영혼의 불멸에 관해서는 인정했지만 육체의 부활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는가 묻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36-38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36)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37)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38) 사도 바울은 '씨앗'의 비유를 들어서 '부활의 원리'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어떤 씨앗이든 땅에 심으면 그 씨 자체는 죽고 썩어 없어지지만 대신 파릇파릇한 새싹이 대지를 뚫고 나와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부활하게 되는 것도 이와같은 원리입니다. 죽은 사람의 육체도 씨앗처럼 땅에 묻히면 썩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 썩은 육체 대신에 전혀 새로운 형체의 신비로운 모습으로 다시 나타납니다. 씨앗을 각양각색의 꽃으로 변형시키신 하나님께서 우리 육신도 각자마다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부활시켜 주십니다.

 

우리는 부활의 때에 얼마나 영광스럽게 됩니까? 다함께 42-44절을 읽겠습니다. 시작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42)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43)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44)” 인간은 아담의 범죄 이후 썩을 존재요, 욕되고, 약한 육의 몸이 되었습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요, 흙으로 돌아갈 자들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인간은 질병과 노화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요즘 같은 환절기에는 감기환자들로 의원이 북적입니다. 평균수명은 늘어가지만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팽팽했던 피부가 쭈글쭈글 해지고, 주름살은 깊이 패이고, 근육은 점점 빠지고, 배만 불룩 튀어나오게 되었습니다. 뼈 속에서도 칼슘이 빠져나가 겉은 멀쩡하지만 안에는 구멍이 송송 나있는 골다공증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우리 몸은 연약하여 도무지 소망을 둘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소망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영광스러운 형체로 부활하신 것 같이 우리도 이제는 썩을 육체, 욕되고 약한 육의 몸이 아닌 썩지 않을 존재요,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한 영의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저같이 육신이 연약하여 비쩍마르고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사람도 소망이 있습니다. 그때엔 영원히 썩지 않고, 영광스러운 광채가 나며 슈퍼맨보다 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몸으로 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영광스런 부활의 몸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부활은 언제 이루어집니까? 51∼53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51)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52)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53)" 예수님께서 승리의 왕으로 천사장의 호령과 나팔소리로 재림하실 때 우리 성도들이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죽은 자들이 일어나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영접해 주시며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이 소망을 붙들고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에 사명인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지난주 안요셉 선교사님의 선교보고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선교사님은 명문대 출신에 외교관으로써 한나라의 대사에 오를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대사로써 선교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외교관을 사직하시고 현재 23년째 시카고 UBF 역사를 충성되게 섬기고 계십니다. 선교사님은 대학시절 성경공부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자 평생 훈련을 받았습니다. 또한 가장 귀한 예수님을 따르고자 외교관으로서의 체면도, 물질도, 정욕도, 출세욕도 다 버렸습니다. 선교사명을 좇아 중남미 각 나라를 떠돌며 복음을 전하는 나그네 인생을 살 때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중남미의 개척조상이요, 시카고 UBF 부흥역사의 밑거름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현재 중남미 수많은 나라들이 개척되고, 뭇별과 같이 많은 영적인 자녀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선교사님은 60세가 넘으셨지만 아직도 십대와 같은 스피릿으로 선교역사를 섬기고 계십니다. 이는 선교사님이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사명인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57~58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57)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는 줄을 앎이니라."(58)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부활의 소망을 좇아 살 때 가져야 할 자세가 무엇입니까?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 생각이 들고, 나도 좀 세상과 타협해서 인생을 즐기며 멋있고 폼나게 살아보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재미있게 즐기는 세상문화로 인해 젊은 날 사명인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요즘 세상은 돈이면 만사형통 안되는게 없기 때문에 가진 것 없이 밥걱정이나 하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캠퍼스 문화가 취업이 대세라 취직도 못하고 주의 일을 하는 자신이 왠지 어리석은 것 같아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나가던지 못나가던지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반드시 재림하시고, 우리는 부활하여서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을 믿고 끝까지 흔들리지 말고 믿음의 중심을 지켜야겠습니다. 또한 이 땅에서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어야 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것이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일, 세상 일은 지내놓고 보면 허무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드린 진심과 헌신은 하나도 헛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다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땅에 사는 날 동안에도 생명의 열매를 풍성히 맺고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통해 부활의 소망을 덧입게 되어 감사합니다. 저는 과거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겁이 많던 자였습니다. 어린시절 약골이라 자주 아팠습니다. 찬바람만 불면 감기를 달고 살고, 속이 좋지 못해 식사를 잘 하지 못하여 영양부족으로 한의원을 찾아다니며 약을 많이 먹었습니다. 그때 인생이 왜 이렇게 아프고 고통스러운가 생각하며 인생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이라면 차라리 죽는 것이 편하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또 제가 어린시절 살던 곳은 시골이었는데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1km 정도를 걸어야 했습니다. 가로등도 없는 깜깜한 시골길, 묘지가 있는 곳 앞을 지나갈 때 바람소리라도 스르륵 나면 금방이라도 소복을 입은 귀신이 쫓아 올 것 같아 마음을 졸였습니다. 한번은 비오는 날 밤길을 걸어가는데 천둥번개가 ‘우르르 쾅쾅’쳤습니다.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죄의식이 들고 하나님의 심판의 소리라도 들은 듯 극심한 공포속에 패닉상태가 되었습니다. 우산을 쓰고 가다가 벼락맞을까 두려워 우산을 쓰는 둥 마는 둥 하며 비를 맞고 집으로 얼른 달려갔습니다. 또 초등학교 때 교통사고로 인한 친구의 죽음, 대학시절 장막에서 낮잠을 자다가 일어났는데 밖에 천둥번개가 우르르 쾅쾅 치고 있어서 벼락맞아 죽을 것 같은 두려움으로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사건 등 저는 과거 이처럼 연약함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벌벌 떨 수밖에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말씀이 제게 들어오자 저는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통해 죄씻음 받자 저의 마음에 평안이 찾아 왔습니다. 어둡던 얼굴이 해처럼 밝아지고, 부정적이던 생각들이 긍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죄의식과 죽음이 주는 두려움에 시달리는 인생이 아닌 자유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체험을 기초로 많은 후배들과 캠퍼스 양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보건대 개척역사에 쓰임받고자 할 때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복음역사에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셨습니다. 직장, 가정, 물질문제, 건강, 자녀, 가정복음화 등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올해는 직장생활 2년만에 대전에서 광주로 발령받게 하시고, 더욱 열심히 캠퍼스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 주셨습니다. 또 이처럼 부활절 말씀을 맡겨주심으로 최근 광주로 발령받으면서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느라 계속 피곤했었는데 부활의 말씀으로 힘을 덧입도록 도와 주심을 감사합니다. 출퇴근 시간 때 고린도전서 말씀을 듣고, 읽으며 밥맛도 좋아지고, 활력이 생겼습니다. 하루하루가 기쁘고 직장에서도 밝고 일을 열심히 하는 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부활의 소망과 영광을 바라볼 때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떨던 자가 변화되어 참 생명력 있는 인생을 살 수가 있었습니다. 작년 한해는 부활의 능력을 덧입고 외지학사로써 여러 한계적인 상황이 있었지만 신입생 OT와 동아리 홍보기간에 휴가를 내어 보건대 양들을 피싱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 박진수 형제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저는 지난 10년간 한명의 양도 목동으로 세우지 못했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이처럼 마음 밭이 좋고 순종적인 양을 보내어 주셔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진수형제가 휴학을 하고 장막생활과 캠퍼스 모임에 참석하며 예수님의 제자로 자라나는 것을 볼 때 감사가 됩니다. 제가 이에 머무르지 않고 부활의 능력을 덧입고 복음역사에 더욱 충성하는 자 되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말씀을 통해 부활의 영광과 부활의 소망을 가진 우리가 이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우리 인생은 한번뿐입니다. 이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겠습니까? 에콰도르의 순교자 짐 엘리엇 선교사는 대학시절 이런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영원한 것을 얻고자 영원할 수 없는 것을 버리는 것은 바보가 아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영원하지 않은 한번뿐인 인생을 허무한데 허비하지 말고, 영원한 천국을 얻고, 이땅에서 주님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데 전심을 다해야 겠습니다. 이런 삶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후배들에게 본이 되고, 무엇보다 하늘과 땅에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삶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땅에서 사는 날 동안 주의 일에 더욱 힘쓰며 일생 승리하는 부활의 증인들로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