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가을 수양회 믿음의 사람들 -조지 뮬러(강영구)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브리서 111~2)

 

1. 믿기 전의 삶

구텐 탁! 구텐 아벤트!

(호흡) 인사유도! 다같이 인사하시겠습니다. 구텐 탁! 구텐 아벤트!

저는 독일사람 조지 뮬러입니다. 1805년생이니까 정확히 210년전 사람이.

아버지는 세금징수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14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날 밤 노름을 하고 술을 마신 뒤 여관에서 잠을 잤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성직자를 만들어서 편하게 노후를 보내실생각으로 저를 신학교에 보냈습니다.

 

2. 믿음의 삶을 시작하다.

아무 의미없이 20살이 되던 어느 날 친구가 소개해 준 어느 토요기도모임에 갔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성경을 읽고 찬양하고 예배를 드렸는데 예배를 드린 후 그곳 사람들이 무엇을 한 줄 아십니까?

(호흡) 당시에는 보기 드물게 그들은 기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무릎을 꿇고 간절히 사람을 처음 보았습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신학교에 다니고 저 사람보다 유식한테 왜 저렇게 기도하지 못할까라고 말입니다. 그 곳 사람들이 내가 모르는 어떤 기쁨으로 충만하였습니다. 토요기도모임이 매번 기다려졌고 계속 참석하면서 나 또한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세상에서 맛본 쾌락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평생 찾아 헤메던 보물을 발견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술집과 여인숙을 찾던 발길을 점차 끊었습니다. 거짓말하는 습관도 버렸습니다. 저는 어제의 뮬러가 아니었습니다. 기도의 사람 뮬러로 점점 변화되어갔습니다.

 

3. 말씀을 통해 기도의 삶 결단

저는 영국으로 건너가 18명이 있는 작은 교회 목회자가 되었고 그곳에서 다시한번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용도에 합당한 그릇으로서 준비를 갖추게 된다는 것을 깊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약속의 말씀을 당당하게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서른살이 되었을 때에 저는 100년전 고아사역에 헌신한 프랑케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고 고아들을 돌보는 집을 설립하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도록 인도하셔서 주택 한 채를 빌려 40명의 소녀들을 돌보기 시작하여 1만 명의 고아들을 신앙으로 보듬어 주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믿음의 기도가운데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4. 전하고 싶은 4가지 기도원칙

(호흡) 여러분! 제가 일생동안 몇 번의 기도응답을 받을 줄 아시나요?

제가 드린 5만 번이 넘는 기도는 전부 응답되었습니다. 제가 드린 기도가 전부 응답된 비결을 특별히 여기 계신분들께만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 내가 드린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 지금 기도하고 있는 일, 그리고 기도하고자 하는 일이 정말로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가를 늘 주의깊게 분별하였습니다.

둘째, 나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늘 확인했습니다. 는 내 소유가 아닌 십자가에 피흘림의 댓가, 값으로 산 주님의 것임을 늘 기억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는가? 6번에 걸친 고아원을 새로 설립하면서 인내로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손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하나님의 때가 도래했는지 항상 기도로 확인하였습니다.

넷째,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가? 하나님으로부터 기도응답을 받기위해 마지막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저는 고아사역을 평생 해왔기 때문에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것에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기도하였습니다. 불어나는 고아원 아이들이 마실 우유나 모포를 사기위해 고아원비품을 팔아야할 상황에 닥쳤을때도 사람과 환경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의지했을 때 신실하신 하나님은 나의 예상을 뛰어넘어 기적적으로 선한 사람들을 통해 필요한 것들을 풍성히 채워주셨습니다.

 

다음은 너무나 중요한 새벽기도에 대한 것입니다.

제가 92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품에 안길때까지 5만 번 이상의 기도응답을 받게 된 비결은 바로 다름아닌 새벽기도였습니다. 새벽에 일어나면 아침식사 전에 오랫동안 기도할 수 있었고 귀한 묵상에 잠길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잠에서 깨면 즉시 일어났습니다. 즉시 일어나지 못하면 또 다시 잠들게 됩니다. 처음에는 피곤하고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처음 얼마동안만 그렇지 며칠 지나니까 한두 시간 잤을 때 보다 훨씬 더 힘이 나고 생기가 넘쳤습니다. 한번 궤도에 오르자 저는 항상 같은 시간에 자고 같은 시간에 일어났습니다.

이것들은 제가 하나님 품에 안길때까지 지킬려고 노력하였던 것들이니 여기에 오신 목자님들께서도 저처럼 기도한 모든 것을 신실하신 우리 주님께 응답받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5만 번 이상의 기도응답 받은 것을 다 이야기 할려면 시간이 부족합니.

하나님의 은혜로 40명에서 시작하여 40년이 넘게 1만명의 고아들을 돌보면서 대부분 기부를 받아 사역을 하였습니다. 오직 기도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필요한 것을 공급받겠다는 믿음으로만 나아갔습니다.

나는 6펜스를 받을 때나 1만 파운드를 받았을 때나 동일하게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오직 기도와 믿음으로 고아들을 돌보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눈에 보이는 증거를 발견할 수 없을 때에도 기도의 응답이 오는 중이라고 믿음으로 확신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열심히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인내하며 계속 기도하는 것은 더욱 기뻐하십니다. 447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드리고 인내하며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기도한 후 응답 받은 적도 있습니다. 뉴비전 파트도 새벽기도를 계속드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끝까지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받게 되어 있습니다. 강청하는 기도는 기필코 기필코 응답됩니다.

 

안녕하십니까? 기도의 사람, 믿음의 사람으로 살다 간 조지뮬러를 통해 기도의 묘미를 맛보고 있는 강영구 목동입니다. 저는 자녀들을 통해서이긴 했지만 조지 뮬러처럼 저 역시 UBF를 알게 되어 말씀공부와 일용할 양식, 주일말씀, 그리고 절묘한 타이밍에 하는 바이블카페와 수양회에 발길을 돌렸습니다. 말씀이 꿀처럼 달았고 너무 기다려졌습니다. 잔잔한 바다로 이끌려 나가는 배에 올라탄 것처럼 느껴졌고 그 동안 앉아 있었던 곳이 무덤사이였고 무덤 속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나를 너무나 잘 아시고 다시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도전과 결단을 통해 삶이 하나씩 변화되어갔습니다. 그것을 일일이 다 소개하기에는 또 시간이 부족합니다. 가장 도전적이고 감격스러운 것 한 가지는 새벽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제가 가장 필요하고 도전해야 할 것이 기도였음을 아셨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정할 때 부터 손양원, 김 구, 장기려, 윌버포스 등 쟁쟁한 믿음의 사람들을 놓고 기도하였지만 결국 기도의 사람 조지뮬러를 결정하게 된 것도 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박마가 목자님의 새벽기도 투쟁하는 소감을 듣고 처음에는 일용할 양식을 새벽에 센터에 와서 먹어야 겠다고 작은 결단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와서 보니 합심기도라는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자신의 영적인 삶과 가정과 믿음의 동역자들을 위해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한 적은 없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양들과 목자님들을 위해 날마다 같은 기도를 하면서 처음엔 어색하였지만 한 분 한 분 변화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고 아직 변화되지 못한 분들을 위해서는 다시 주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조지뮬러처럼 14개월 이상, 수천번 아니 10년이 걸려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끝까지 기도해야 함을 알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신실하신 주님께서는 새벽에 들려주시는 말씀을 통해 기도의 영역을 넓혀 주셨고 기도하는 가운데 기도할 것을 생각나게 하시고 훈련시켜주셨습니다. 더 크고 비밀한 세계로 인도하시기 위해 하나님을 먼저 구하고 기도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조지뮬러에게 기도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조지뮬러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입니다. 믿음과 기도의 사람 뮬러처럼 저와 여러분이 그렇게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한마디. 우리로 먼저 기도하게 하신 후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2015 가을수양회 믿음의 사람들 - D.L무디(최해정)

 

something ! /nothing ! /everything !

something / 모세는 처음 40년 동안에 자신이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nothing/ 그 다음 40년 동안에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nothing)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40년 동안에는 아무것도 아닌 자(nothing)을 하나님이 들어 쓰시면 권능자

everything이 될 수 있음을 아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nothing에서 everything이 된 드와이트 라이먼 무디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D.L무디 라고 부르죠. 저는 1873년 매사추세스 노스필드에서 태어나 9남매 중 6번째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사고로 제가 4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홀로 9남매를 극심한 가난 속에서 신앙으로 키워내셨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때 학업을 중단하고, 생활전선에 뛰어 들어야만 했습니다. 소 젖 짜는 일부터 시작했죠. 17살땐 삼촌이 일하시는 구둣방에 가서 일자를 구했습니다. 삼촌은 주일학교에 나오는 조건으로 일자리를 주셨습니다. 성공 하고 싶었던 저는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주일학교에서 에드워드 킴볼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의 배려심 깊은 모습에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주일학교에 몸만 왔다 갔다하는 저에게 어느날 구둣방으로 킴볼 선생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너무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그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차근차근 말씀해주셨습니다. 많이 들었던 말씀이였지만, 오늘은 왠지 새로운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요한복음 316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자 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구둣방 뒷방에서 선생님과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은 형언 할 수 없는 큰 기쁨과 새마음을 주시고, 모든 근심과 걱정과 피곤까지 다 사라지게 하셨습니다. 성공 밖에 몰랐던 자를 하나님은 영적 소원을 주셨습니다.

 

19살 때 시카고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 곳에서 봉사를 시작하면서 18명의 아이들을 전도해 처음으로 주일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학력도 부족하고, 문법도 모르고, 언변도 뛰어나지 않는 제가 말씀을 가르칠 순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가르칠순 없어도 사람들은 불러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년 동안 내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믿을 수 없었습니다. 또 어느 누구도 나에게 어떤 일을 해보라고 제안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님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었습니다. 처음엔 머릿수만 채우기 위해 아이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젊은 교사가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각혈이 심해서 뉴욕으로 가야 하는데 자기반 아이들이 아직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해 근심이 되어 찾아 온 것입니다. 저는 아이들의 회개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이 계기를 통해 젊은 교사와 함께 그 반의 아이들을 모두 심방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지 묻고, 구원에 이르도록 기도해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아이들을 많이 모으는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간절하게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로 18명의 주일 학생이 1500명이나 회심하게 하는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저는 23살에 성공하고자 했던 야망을 내려놓고, 모든 시간을 하나님을 위한 사역에 헌신하기로 결단 했습니다. 하루에 한명 복음 전하기. 결단 했습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성경을 공부하고,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느 날 대학교에서 설교 후 교수 한사람이 모든 청중 앞에서 문법이 50군데나 틀렸다며 설교 할 자격이 없다고 비판을 줬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좋은 충고 감사합니다. 저도 제 자신이 부족하고, 실수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받은 재능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충분한 문법 실력을 갖추신 당신은 그 실력으로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이 말을 들은 교수님은 다음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고, 그 대학교에도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선 촌놈에, 문법도 엉터리인 저를 40년 동안 100명이 아닌, 100만명 넘는 사람을 예수님꼐 인도하는 자로 사용해주셨습니다. 저는 목사도 아닙니다. 평신도 입니다. 여기 계신 형제 자매님들! 초등학교 안나오신 분 계십니까? 학벌도, 집안도 더 좋은 형제 자매님들 몇 명 전도 하셨습니까? 학사님들, 박사님들 전도 몇 명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100명이 아닌 100만명도 전도 할 수 있습니다. 무디의 하나님이 바로 여기에 계십니다. 나는 안되지만, 전지전능하신 everything의 하나님을 믿고 도전 합시다! 전도 합시다!

 

안녕하십니까? something인생을 살다가 하나님을 만나 everything인생을 살게 된 최해정 목동입니다. 어린시절엔 내가 하면 되고. 내가 안하면 안되는거지. 신이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던 저를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nothing 아무것도 아닌자라는 것을 철저하게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everything의 하나님을 배우게 하십니다. 이번 믿음의 심포지움을 준비하면서 많은 괴리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무디의 책을 읽으며 무디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와 사랑에 울다, 웃다, 탄식하다가도. 정열이가 일어나는 순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각종의 집안일과 육아로 지치게 되었습니다. 이런 내가 무슨 전도야...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예전 집 냉장고 앞에 포스트잇으로 전도 100. 붙여 놨던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everything의 하나님은 100명이 아닌 100만명 전도도 가능하게 하시는 분임을 새롭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또 무디의 인생을 보며 열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무디는 전도의 열정. 성경을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열정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저는 아이들에게 열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정과 시간은 늘 두 번째 였습니다. 제것 할 것 다하고, 비는 시간에 나가길 잘하였습니다. 먼저 그 시간을 비워두지 못했습니다. 회개해야겠습니다. 하나님. 저는 전도를 좋아합니다. 제가 전도를 좋아하는 이유는 전도를 할 때마다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휙 지나갈 때 그 민망함도, 부끄러워서 말을 걸까말까 망설이는 제 마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이 제게 주신 은혜들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전도를 하다보면 저절로 심정이 생기고, 기도하게 됩니다. 저 학생에겐 어떻게 말을 걸까요? 무슨 말씀을 전할까요? 하나님 저 학생은 어때요? 하나님 함께 해주세요.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한 사람에게 라도 말씀을 전하면 마음에 큰 기쁨이 옵니다. 이 말씀이 언젠가 역사하게 될 거라는 믿음과 확신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저의 운명주의와 실패의식. 안일과 탐심. 자기중심적인 모습. 외로워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자 했던 모습들을 회개하고 everything의 하나님을 붙들길 기도합니다. 무디의 인생은 저보다 훨씬 가난하고, 학벌도 짧고, 문법도 모르는 부족하고 연약한 인생이였지만, 그 가운데서도 everything의 하나님을 붙들 때 미국과 영국을 영적으로 깨우는 100만명의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저도 그 everything의 하나님을 붙들고, 믿고, 기도 할 때 하루에 한명에게 복음 전하기 motto로 많은 사람들에게, 요한일서 416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을 전하는 목자로 살길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독생자 아들 예수님을 내어 주시기까지. 그 생명을 다 내어 드리기까지.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한마디. something ! /nothing ! /everything !/

하나님 사랑을 전하자.

 


2015 가을 수양회 믿음의 인물 - 안이숙 (박삼영)

 

사무엘상 15:22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나같이 보잘 것 없고, 쓸모도 없고, 미천한 것이 온 천지를 만드시고 지으시고 주장하시고 지금도 살아 계신 그 분을 증거 하는데 앞장설 수 있도록 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고통의 짐은혜의 날개로 믿고, 순종 하며 살고자 한 안이숙 입니다.

 

저는 1908년 평안북도 박천에서 무역상을 경영했던 집안의 넷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의 상당한 재력으로 풍요롭게 자라난 저는 아들이 없어 가문의 대를 잇지 못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불협화음을 경험하며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몸이 너무나 약했던 저는 어머니의 믿음의 기도로 잘 자랐습니다. 그리고 유난히 일본어를 잘했습니다. 어찌나 잘했는지 일본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도무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이러다가 친일파가 되는 거 아닌가 하고 어머니는 이를 굉장히 걱정했습니다. 그 당시 드물게 여자의 몸으로 일본 유학을 떠났으며, 일본 경도여전과 귀족학교인 동경 가정 학원 연구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습니다. 21살에 귀국하여 대구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처 평북 선천 사립보성여학교에서 음악 및 일어교사로 교편생활을 했습니다.

 

히브리서 11: 24,25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일제 말엽은 일본 천황 이데올로기 강화를 위해 신사참배가 강요 되던 때였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신에게 고개만 한번 숙이면 저는 계속 그 시대의 엘리트로, 공주로 살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이외의 어떤 신에게도 절을 하지 않겠다는 믿음으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신사참배를 거부하였습니다. 세상 황공주 같이 부족한 것 없고 풍족했던 제 삶은 그 후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일본 형사들의 눈을 피해 정처 없이 산골과 농촌마을로 숨어서 살아야 했습니다. 비로소 춥고 배고프며 서러운 내 민족의 삶을 피부로 느끼며 깨지고 낮아졌습니다. 그렇게 일본의 눈을 피해 숨죽이며 지내는 어느 날 평양성으로 가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평양으로 향했습니다.

 

에스더 4:16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전쟁터로 투입되는 많은 군인들이 어찌하여 제 눈에는 송장으로 보였는지요.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났습니다. 저 영혼들이 지옥으로 떨어져가고 있는데, 일본 지도자들에게 그 어리석음을 누가 경고할 것인가.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 때 네가 하라는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저는 나약한 여자입니다. 이름도 경험도 없는 약한 믿음을 가진 그냥 그런 평신도입니다. 이 땅에는 얼마나 경력이 많고, 훌륭한 부흥가와 학식 많은 건장한 목자들이 많습니까. 그들을 보내십시요매일 방황하고 기도하면서 초조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 마음속에는 비상한 결심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내 몸을 폭탄같이 던져서 내 유창한 일본말로 일본인 지도자들에게 경고하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죽어보자. 죽으면 죽으리라그 결단과 함께 초조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심령의 찬송이 터져 나왔습니다.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 누릴 영광일세 은혜로 주 낯을 뵈옵는 것 참 아름다운 영광이로다.’ 순교자의 영광을 찬양하며 주님의 음성을 따라 19402월 박관준 장로와 함께 귀신의 땅 일본에 건너갔습니다. 장관들을 만나 일본의 망국행동을 경고하고, 한국 기독교 박해에 항의했습니다. 또한 일본제국회의 때 의사당에서 저는 외쳤습니다. “일본은 유황불로 망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대사명을 전하고, 그 자리에서 체포 투옥되어 평양형무소에 이감 된 후 6년의 감옥생활을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21: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감옥생활은 정말 춥고 배고팠지만 저에게는 은혜의 연단소 였습니다. 이 안은 저에게 또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제가 감히 감당할 수도 없고 상종하고 싶지도 않은 이들이 가득하였습니다. 기생 출신에 사기범 전과자, 포주, 살인자까지.. 그들과 저는 한 방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들을 마음으로 받을 수 없었던 저는 나약한 저의 모습에 힘들어 엎드려 금식하고 기도하였습니다. 끊임없이 제가 죽고 그 안에 주님만이 살기를 소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은혜로 그들의 아픔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의 아픔이, 슬픔이 너무 가슴 아파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셨습니다. 저도 너무 추웠지만 그들의 동상에 걸린 발들을 제 신체 중 가장 따뜻한 가슴팍에 넣어 녹여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그들에게 줄 것이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쉴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잘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기생 출신 선화와 남편을 독살했던 16세의 소녀 사형수 화춘이가 변화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또 주님은 다들 꺼려하던 만주인 살인범과 자원해 한 방에서 생활하며 섬길 수 있게 해 주셨고 그녀가 구원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저를 괴롭히던 간수가 달라지게 하셨으며, 죄수들이 합심하여 기도해 도 치유해 주셨습니다. 1945년 하나님의 경고대로 일본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유황불이 떨어졌습니다. 저는 사형집행 몇 시간을 앞두고, 순교가 아닌 8.15 광복과 함께 817일 출옥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일본에 가기 전에 저는 이미 죽을 목숨으로 건너 간 것입니다. 죽었기에 그 일을 했지, 제가 죽기를 각오하고 갔더라면 못했을 것입니다. 죽어서 간 것입니다. 저는 지금 살아 있어도 이미 죽은 목숨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함께 역사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순종하십시오. 믿음의 순종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는 UBF 목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죽으면 살리라!”

 

안녕하십니까. 매 시간 온전히 주님께 순종하기를 바라는 박삼영 입니다. 저는 약 15년 전 화학과 박사과정에 있던 언니의 전도로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15년 동안 한결같이 베스트의 길로 인도하시고 사랑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 주님께 저는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저의 구주이십니다!” 그리고 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분에 넘치는 은혜를 저에게 주셨는데, 저는 주님께 드린 것이 변명, 핑계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전 여자잖아요. 나이가 많잖아요. 새벽기도도 하는데... 이만큼 하면 됐죠. 많은 사람들은 저보다 못하는 것 같은데요~~ 라며 주님 앞에서 온전히 죽지 않고 제 전부를 드려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와 같은 여자이지만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신 안이숙 사모님을 보고 부끄러웠습니다.

 

안이숙 사모님의 인생은 기도, 말씀, 찬양, 그리고 순종이었습니다. 또한 천국 가는 길에 혼자 가지 않고 열심히 전도하며 섬기며 품으며 예수님께로 함께 하는 이들을 인도하였습니다. 천하다고 더럽다고 못 배웠다고 피하지 않고 낮아지다 못해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며 그들을 사랑으로 대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핑계대지 않고 늘 기쁨으로 감당하며 철저히 순종하셨습니다. 저는 천해서 피하고 더러워서 피하고 레벨이 맞지 않아 피하는 자입니다. 그들을 온전히 사랑하지 않는, 무엇보다 죽기까지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저를 더 사랑하는 죄를 쉬지 않고 범하는 자임을 고백합니다.

 

안이숙 사모님 어머님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믿음도 꼭 시험을 치러야 한다. 시험을 쳐 보아야 우리의 믿음이 참 믿음인지 거짓 믿음인지 알 수 있지. 따라서 시험을 치르지 못한 믿음은 모든 것이 흐리멍텅하고 똑똑지 못하고 자신이 서지 못하는 것이다.” 저의 믿음은 흐리멍텅하고 똑똑지 못한 믿음입니다. 그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 저는 결단합니다. 더욱 깨지고 낮아지겠습니다. 저의 시선으로 양무리들을 바라보지 않고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겠습니다. 그들의 아픔을 가슴으로 품고 죽기까지 사랑할 수 있는 어미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전도하는 목자로 다시 태어나겠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더욱 기도하고 더욱 말씀 사랑하며 더욱 더 하나님을 찬양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믿음을 주시고 온전히 죽어 순종케 하실 것을 믿습니다. 진정으로 그리 하실 것을 믿습니다.

 

한마디 : 핑계대지 않고 순종하겠습니다!



2015 가을수양회 믿음의 사람들 - 윤함애 (박희경)

 

그리스로를 위하여 받은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11:25~26)

 

안녕 하십니까! 저는 이기풍 목사의 아내 윤함애입니다. 저는 1879 황해도 윤진사댁 양반 가문의 딸로 태어났지요. 얼마나 부족함 없이 자랐겠습니까? 그런데 15살이 되던 해 저는 말라리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위해 당산나무에서 지성을 드리고 무당을 불러 굿을 했지만 아무 쓰 잘 데기 가 없었습니다. 18살이 죽기만을 바라고 있었을 차에 당시 언더우드 선교사의 조사였던 김채봉씨가 찾아와서 제 귀에 대고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한 마디를 남기고 바람처럼 사라졌습니다. 저는 그의 말이 너무나 마음에 남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다 꿈을 꾸었는데 어떤 분이 등불을 들고 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춰 주고는 방문을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분을 붙들려고 쫓아 나서다가 꿈에서 깼는데 그 때 굳었던 저의 몸이 풀리며 병이 나아 제2의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를 살려주신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싶어 마포삼열 선교사님과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그 후 주님을 영접하고 선교사님을 통해 세례를 받게 되었지요.

 

그런데 이 광경을 본 동네 사람들은 양 코베기가 처녀의 몸에 손을 대었다고 저의 아버지께

고자질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파평 윤씨 가문에 먹칠을 했다고 당장 가위로 저의 머리카락을 중과 같이 잘라버리고 방안에 감금 시켰습니다. 저는 제발 이 집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 때 파라 파라 땅을 파라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깜짝 놀라서 바로 나가 호미를 들고 어둡고 캄캄한 새벽에 담을 파기 시작 했지요. 3일동안 담을 판 작은 구멍으로 성경책 한권을 품고 집을 빠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보름 동안 산 넘고 강을 건너 굶주림으로 찾아간 끝에 평양에 도착하여 마포삼열 선교사님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지요. 마포삼열 선교사님의 소개로 저는 의사였던 게일선교사님 댁의 양녀로 입양되어 6년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산파술과 의학에 대한 상식을 배웠습니다. 저는 주를 위해 독신으로 살고자 결단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마포삼열 선교사님이 저를 부르시더니 갑자기 저에게 결혼을 권하였습니다. 그것도 총각도 아닌 애딸린 홀애비인 이기풍씨와 결혼을 해서 그가 신학을 잘 마칠 수 있도록 도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도저히 영접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래뵈도 내가 파평 윤씨 양반댁 귀한 딸인데 이런 저에게 장동건, 조인성은 아니더라도, 박마가 목자님 정도는 되야지. 애 딸린 홀애비에게 시집 가라는 것이 말이 되나요? 여러분!! 말이 되냐구요?? 저는 도저히 영접이 되지 않아 금식 기도 하였습니다. 그 때 함애야 함애야 니가 이 십자가를 져야한다. 네가 희생제물이 되어 이기풍을 훌륭한 주의 종이 될수 있도록 뒷바라지 해야한다.”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 순종하여 이기풍씨와 믿음의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기풍씨는 과거가 화려하였습니다. 그는 본래 평양의 깡패였습니다. 심지어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마포삼열선교사님의 턱을 돌로 때린 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에게 예수님은 찾아 오셔서 기풍아~기풍아~ 왜 나를 핍박하냐 너는 나의 증인이 될 사람이다말씀하셨고 남편은 그 때부터 회개하고 한국의 사도바울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 때부터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전도하였고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여 목사가 된 후에는 영적 불모지였던 제주도 선교를 자원하는 훌륭한 주의 종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제주도로 가는 배에서 모진 풍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며 한 달반 만에 구사일생으로 제주도 땅에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제주도는 대원군이 천주교 신자 일만 명을 학살한 일이 있어서 사람들은 영적으로 완악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가 전도를 하려고 하면 설러버려,설러버려, 야가기 끊어지갠이라고 외쳤고 이뜻은그만둬라~ 그만둬라 니 모가지가 날아간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예수라는 말만 나와도 많은 핍박과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잠 잘 방을 아무도 내어주지 않아 마구간이나 들에서 찬이슬을 맞으며 잠 잘 때도 있었고 심지어는 우리에게 돌을 던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무지몽매한 제주도 아낙네들 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산기가 있을 때 애기를

받아 주면서 그들과 가까워지고자 노력하였습니다. 한번은 의사도 포기한 11살의 앉은뱅이 아이를 집으로 데려와 보살피고,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는 도둑질에 미친 미치광이도 데려와 금식을 눈물로 기도 하였습니다. 그럴 때 앉은뱅이 소년이 낫고 미치광이가 온전케 되는 역사도 체험 하였습니다. 제주도에는 우상숭배와 미신으로 가득 차 집집마다 구렁이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이 구렁이들을 때려잡기 운동을 하다가 수시로 죽을 만큼 두들겨 맞았고 저는 그때 마다 십자가만을 바라보며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받으시고 남편을 몇 번의 죽을 고비에서도 살리시며 믿음을 연단하사 더욱 믿음이 강 한자로 빚어 나가셨습니다.

 

특별이 제가 기쁨으로 섬기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집이 없고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거지들과 손이 떨어져 나간 나병환자들 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따뜻하게 사랑으로 품고 밥을 해서 떠먹이며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집은 천국에 있습니다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로 인해 저희 집은 아침에는 거지 떼들로 낮에는 나병환자들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같이 불쌍함으로 밥을 손수 떠먹이며 기도해 주었고 그럴 때 그들이 주님을 영접하는 귀한 믿음의 자녀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저에는 42녀의 자식들이 있었지만 셋째아들과 넷째 아들은 거의 같은 시기에 전염병으로 죽었고 다섯째 딸도 전도에만 급급하여 딸이 아픈 것을 모르고 맹장이 복막염으로 변해 죽고 말았습니다. 저는 자식을 셋이나 잃었지만 하늘나라 소망을 붙들고 세상사람들처럼 울지않았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은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11:26) 저는 이 말씀을 붙들고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남편 이기풍 목사님을 내조하였고 제주도 선교에 힘을 다하였습니다. 그럴 때 깡패 이기풍이 한국 최조 선교사이기풍 목사가 되었고 13년간 고통의 땅 제주도에서 죄악 속에 죽어가 영혼들에게 복을 전하는 한국의 사도바울이 되었습니다. 이 시간 부족한 저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안녕 하십니까? 이기풍 목사님과는 다르게 저는 남편의 믿음의 외조로 이 자리에 서게 된 박마가 목자님의 아내 박희경 사모입니다. 심포지움을 감당하면서 믿음의 인물을 선정해 주신 방향대로 순종하여 윤함애 사모님의 훌륭한 믿음의 내조를 조금이 나마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분의 알아 갈수록 큰 감동과 은혜가 되었지만 요즘 세상에 아무리 신자라 할지라도 이런 분이 있을까? 설마 나에게 윤함애 사모님처럼 고난 당하며 살라는 것은 아니겠지?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윤함애 사모님의 삶속에 비추어 보니 공통된 부분이 있었습니다. 저 또한 하나님을 믿고 구원의 기쁨으로 믿음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내조의 여왕이라는 점이 같아 보였지만 저는 작은 고난에도 쉽게 포기하는 반면 윤함애 사모님은 고난에 대한 마음의 자세가 저와는 달랐습니다.

성경에서 고난에 대명사로 불리는 욥을 우리는 크리스쳔 이름으로 사용하지 않으려합니다. 그러나 윤함애 사모님은 슬픔과 고난 앞에서 오리려 말씀이 달라져 없어질 정도로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래서 고난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생기면, 그 믿음대로 순종하고자 무릎 끓어 부르짖었고 그 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신 방향에 감사와 기쁨으로 순종하여 승리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 영광을 위해서 남편을 내조하는 세상의 내조가 아니라 하늘나라 영광을 위한 영적인 내조로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헌신하며 섬겼을 때 이기풍 목사님이 조선 최초의 선교사가 되며 신사참배에도 굴하지 않으며 믿음의 중심을 지켜 내는 훌륭한 주님의 종이 될 수 있었습니다. 윤함애 사모님이 이기풍 목사님과의 결혼을 영접하고 숱한 고난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죽을 병에 걸린 자신을 성령의 능력으로 고쳐주신 은혜와 모세가 바로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던 것처럼 고난에 대한 분명한 영적 가치관과 하늘나라 상급을 바라보는 뿌리 깊은 신앙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윤함 사모님은 예수님 십자가 고난에 동참 하는 것을 영광과 감사함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남편을 통해 ubf로 인도되어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십자가 사랑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ubf목자요 캠퍼스 복음화와 세계선교 역사에 저를 부르고 계십니다. 이길은 제가 그동안 살아온 안락한 길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 길은 고난의 길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길에는 구원이 있고 생명이 있고 영원한 하늘나라 축복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 십자가 고난에 동참 하는 것을 영광과 감사함으로 여기고 헌신도 섬김도 사랑도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캠퍼스의 그늘진 영혼들을 예수님 십자가 사랑으로 품는 목자로 살아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