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여름수양회 주제3(조에스라)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말씀 / 마태복음 28:1-20

요절 / 마태복음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우리는 어제 나바울 목자님을 통하여 십자가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 형벌은 인류가 고안해 낸 형벌 중에서는 가장 잔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26:39) 절규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 뒤의 부활 영광을 보시고 이를 순종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12:2에서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 앞에서 아담의 범죄로 사단에게 빼앗긴 만유회복의 꿈을 꾸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을 통해서 이를 성취하셨습니다. 이제 그 만유회복의 꿈을 제자들과 함께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원대한 꿈과 비전을 영접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 부활하신 예수님(1-15)

 

예수님은 십자가에 처형되시고 3일 동안 주검으로 묻히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사단이 장악한 굳은 바위 같은 사망권세를 일격에 깨뜨리셨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돌무덤을 열어 제치는 큰 지진이 나고 주의 천사는 무덤입구의 봉인된 큰 바위를 굴려 내서 그 돌 위에 걸터앉았습니다. 사망이 더 이상 힘쓰지 못하고 정복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했던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 시신에 향품을 발라 드리기 위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지진이 나고 주변이 어수선 하더니 천사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여인들에게는 무서움과 큰 기쁨이 임했습니다.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여기 빈 무덤은 인류의 최대의 적 사망이 정복되어버린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망이 왕 노릇하는 세상에서 사망이 사망선고 받는 극적인 사건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죽음이 정복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장차 나의 부활의 예표가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빈 무덤의 종교입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습니다. 때문에 우리도 말씀대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하기 까지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이는 모두 부활신앙으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발을 붙잡고 경배하는 두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가서 내(나의)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부활 후 예수님은 내 제자들이라고 부르지 않으시고 내(나의) 형제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제는 부모님의 피와 살을 나눠가져야 진정한 형제입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 때 한 예를 정하시고 제자들에게 피와 살을 나눠 주셨습니다. 그리고 실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살이 찢기시고 피 흘리시므로 피를 나눈 형제요 자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또 제자들은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살아나면 갈릴리에서 보자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기 원하셨을까요? 갈릴리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보잘 것 없는 시골입니다. 그러나 갈릴리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처음 만난 추억과 사랑의 스토리가 있는 곳입니다. 첫사랑과 첫사랑의 장소는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촌뜨기 어부에 불과한 제자들을 부르신 곳이 갈릴리였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모습을 이곳에서 다시 보이시고 인류 구속사역의 재출발을 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과 추억이 서린 갈릴리에서 인류구속의 큰 꿈을 심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고향이자 제자들의 고향 갈릴리는 꿈의 동산과 같았습니다. 갈릴리는 복락원을 꿈꾸는 재도약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4,5절은 에베소 교회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모든 민족을 제자삼기 위해서는 예수님과의 첫사랑이 회복되어야 된다는 영적인 깊은 뜻이 있습니다. 이번 여름수양회는 양들에게는 첫사랑의 장소가 되고 우리 목자들에게는 첫사랑을 회복하는 여름수양회가 되었음을 믿습니다.

 

저는 남도 끝자락 강진 시골의 빈농의 첫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초등시절은 검정고무신에 책은 보자기에 묶어 다녔습니다. 1때까지 호롱불을 켜는 시골오지였습니다. 초등1년 토끼에게 먹일 풀을 뜯다가 책보자기를 잃어버려 1년 동안 책 없이 학교에 다녔습니다. 당시 형편은 선생님도, 부모님도 책을 구해 주질 못했습니다. 헌책은 내용이 바뀌어서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책을 잘 읽고 쓰지 못해 지진아 그룹에 속하여 오후까지 남는 나머지 공부그룹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첫아들에 대한 기대감과 더불어 아버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주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았고 이런 일은 나를 소심하게 하였습니다. 초등6학년 압도적인 표차이로 반장에 당선되고도 선생님을 찾아가 울면서 반장을 못하겠다하고 사퇴할 만큼 소심했습니다. 중학교 때에는 1학기가 다 지나야 내가 같은 반 친구라는 사실을 아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동네에 사람이 죽으면 며칠 동안 밤잠도 설치고 밥도 먹을 수 없는 정도의 사망권세에 시달렸습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양동시장의 장례용품점의 관이나 상여를 보는 날이면 밥맛을 잃고 잠을 설쳤습니다. 노래는 슬프고, 이별하고, 쫙 가라앉은 트로트 노래를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TV 가요무대의 노래를 들으며 심취하여 있으면 엔젤라 동역자가 왜 그런 청승맞은 노래를 감상 하냐며 핀잔을 받고서야 채널을 돌리기를 잘합니다. 이런 비천한 자에게 주님은 대학 4학년 해남 마산 동초등학교 여름수양회를 통해 찾아오셨습니다. 23:34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죄사함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또한 부활절 말씀을 통하여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이 말씀들을 통하여 부활신앙을 영접케 되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함을 덧입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저에게 작은 믿음 하나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가정복음화의 비전과 꿈이었습니다. 5대째 종손인 저를 택하신 하나님은 기도의 지경을 넓혀가셨습니다. 현재 조씨 가문 조은집 신앙공동체 모임을 결성하였는데 30여명의 친지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작은 소원과 믿음을 통하여 역사하셨습니다. 그리고 선교사, 목사, 권사, 집사, 목자 등 교회의 직분을 주셨습니다. 특히 저희 부부는 믿음의 명문가정인 조나단 에드워드 가문 같은 가정으로 축복하시도록 꿈꾸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저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은혜와 많은 축복을 잊고 있습니다. 나의 무디어진 영적상태와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살기보다 세상적 가치관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이 저를 힘들게 합니다. 신앙초기 현실은 핍박과 환경적으로 각박하였지만 그때는 양의 영혼을 위해 가족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면 심령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IMF로 실직한 후 생활고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광야 같은 삶이 찾아 왔습니다. 당시 도전했던 일들이 많았습니다. 양봉으로부터 시작하여 전국 아파트를 돌며 돈까스 장사, 전국 축제장을 돌며 오꼬시(쌀강정)장사, 길거리 자판 과일장사, 소프트웨어 영업사원, 카드회사 채권추심, 건축사업, 전기공사 막노동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보았지만 돈벌이가 탐탁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한 동안 일이 없을 때면 아내와 아이들이 다 학교 간 후 아파트 베란다에서 출근하는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쓸쓸함과 슬픔이 밀려오곤 하였습니다. 30대 후반부터 시작 된 일정치 않은 직업과 안정되지 않은 직업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어 하소연 같은 기도를 많이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2001년 주말수양회 말씀을 준비하면서 구약의 요셉의 하나님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요셉은 인생이 풀리지 않을 때에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저도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붙들고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11:13) 이 말씀을 통하여 나그네 인생관을 영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광야 같은 제 인생길에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시고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번 말씀을 통하여 첫사랑의 예수님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첫사랑을 회복 하고 부활소망으로 제2의 인생을 살도록 하십니다. 믿음의 선진들과 같이 나를 통한 모든 민족을 제자 삼는 믿음의 삶을 꿈꾸게 하십니다. 하나가 그 천을 이루겠고 나 한 사람을 통하여 믿음의 후손을 하늘의 별처럼 허락하셨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실버 선교사를 꿈꾸고 있습니다.

 

.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16-20)

 

복음서의 제자들은 꿈을 꾸지 않았습니다. 다만 세상적 욕망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랐을 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자 모두 충격을 받고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숨어 지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두 마리아 자매로 부터 예수님 부활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반신반의 하듯 갈릴리로 모여 들었습니다.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사람은 보여주면 다 믿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부활을 보여줘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꿈꾸지 않는 제자들과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향해 소망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받지 않고 믿음이 심겨지지 않는 양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어느 정도 돕다가 기도제목에서 빼어버립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그렇게 도우셨다면 3명 정도의 제자 외에는 남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까지 의심하는 제자들도 믿어 주시고 하나님 나라에 올라가셨습니다. 믿음이 제자를 키우고 양성하는 비결임을 배울 수 있습니다.

 

18~2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현실가운데서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보시지 않고 언젠가 변화될 소망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통한 모든 민족 복음화를 꿈꾸셨습니다. 그럼 18~20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성서학자들은 이 구절을 예수님의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이라고 말합니다. 지상명령 속에는 제자들을 통한 인류구속의 꿈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꿈꾸는 자를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당시 제자들은 인류구속의 꿈을 꾸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시골 갈릴리 제자들은 예수님과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를 여행한 것 외에는 국경을 넘어 본적이 없었습니다. 전라북도 정도의 크기의 땅을 벗어난 적이 없는 제자들에게 세계선교의 비전을 심는다는 것은 언어도단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제자들에게도 성령께서 임했을 때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하는 위대한 선교사들이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핍박자 사울을 사로잡으셔서 이방인을 위한 그릇으로 쓰셨습니다. 사도행전 19:21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하나님은 젊은 청년 바울의 꿈을 사용하시고 AD313년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는 복음화를 실제 이루셨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모든 민족 복음화의 명령을 영접하신 실버선교사님 들이 있습니다. 임이삭 선교사님은 교직 5년을 남겨두시고 명퇴를 결정하셨습니다. 선교사님은 아직도 건강한 노후를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보내야 의미 있는 인생이 될까를 고민하셨습니다. 키르키스탄의 김갈렙 선교사님과 말씀을 나누시던 중 키르키스탄에 대한 선교의 꿈과 비전이 생기셨습니다. 선교사님은 사모님인 리브가 동역자가 실버선교사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뜻으로 알겠다고 기도하셨는데 사모님도 쾌히 선교사의 비전을 영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58세에 시작된 세계선교의 결단을 받으시고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끝날 인생을 오시공대의 한국어 교수로 신분을 상승시키셨습니다. 또 오시에 젊은이들에게 복음과 함께 장학회를 설립하여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고 계십니다. 울란 형제는 이삭선교사님이 키르키스탄의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그곳에 한국의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었고 오시의 벚꽃 길 조성을 위해 3만 그루의 가로수길 조성의 꿈을 꾸고 계십니다. 신아브라함 선교사님께서도 정년 후 노년에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풍요의 가면을 쓴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선교사로 살고 계십니다. 탄자니아에서 풍토병과 부족한 음식으로 배를 주려가시며 그 곳 어린 영혼들에게 복음과 함께 수학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꿈꾸는 자를 쓰시고 믿음 있는 자를 좋아하십니다. 오늘날 교회에게 주신 꿈이 모든 민족복음화입니다. 이는 모든 민족을 복의 근원으로 세워가라는 명령이십니다. 하나님은 구약에서 꿈꾸는 요셉을 쓰셔서 큰 민족 이스라엘을 만드셨습니다. 신약에서는 꿈꾸는 바울과 그 제자들을 쓰셔서 초대교회가 복음으로 로마를 정복케 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와 우리에게 동일하게 주신 꿈이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것과 땅 끝까지 복음의 증인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꿈을 꾸면 에너지가 집중합니다. 제자들이 오순절 성령체험을 한 후 세계선교의 꿈이 임했습니다. 베드로가 한 번의 설교로 5000명을 회심시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베드로의 믿음과 꿈을 쓰셔서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신 것입니다. 믿음과 꿈이 없으면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에너지가 발산하지 못합니다. 꿈이 있으면 요셉처럼 시련과 고난가운데서도 인내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믿음과 꿈이 있으면 주변의 자질구레한 사건들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무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상명령으로 주신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목적가치의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저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갈릴리 촌뜨기들을 부르셔서 세계를 변화시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꿈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12제자의 면면을 보면 어부요 학식이 없는 필부들이었습니다. 하나님 역사는 지식이 아니요 믿음과 꿈으로 섬기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인 조건으로는 여기에 계시는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제자들보다 몇 배나 유능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보잘 것 없는 제자들을 부르신 것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이 함께하시면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놀라운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영적인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능력의 소스가 누구에게 있는지를 18절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내가 믿음으로 영접하고 믿음의 일을 시도하면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권세로 친히 앞서 일하신다는 뜻입니다. 나는 믿고 꿈꾸고 기도하고 행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대로 일하십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있으니 우리는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든든합니다. 우리가 꿈꾸고 기도하는 것은 돈도 들지 않습니다. 세금도 내지 않습니다. 다만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수는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예수님께 미치고 복음에 미쳐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촌놈들에게 지상명령을 주신 것은 너희의 활동무대가 이런 촌구석이 아니라 글로벌이라는 비전과 꿈을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한 민족은 무엇일까요? 25:23에서 리브가에게 말씀합니다.“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한 민족은 한 영혼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내가 한 민족을 이루게 됩니다. 내 자녀가 또 한 민족을 이루게 됩니다. 나의 자녀가 수 백 년 후 한 민족이 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자녀와 양을 예수님의 제자로 잘 세우면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이 됩니다. 그러나 죄악 가운데 버려두고 세상풍조를 좇아 살게 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민족이 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빌립집사는 핍박을 피하여 흩어졌는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광야로 나갔습니다. 그 광야에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를 통하여 에티오피아가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것도 모든 민족을 제자 삼는 해외 선교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영접한 제자들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례를 베푸는 영적의미는 이 사역위에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셔서 사단에게 빼앗긴 실낙원을 복락원으로 회복하신다는 의지가 숨어있습니다. 곧 모든 민족복음화를 통한 인류 구속역사가 예수님께서 제자를 삼으라는 진정한 목적입니다.

 

특별히 19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라는 말씀을 깊이 묵상해보았습니다. 본문말씀을 준비하면서 제자신과 저희 교회가 제자 삼는 방법과 예수님께서 12제자들을 어떻게 삼았는지 비교하여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열심과 자기 의로 제자 양성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변화되지 않고 양이 떠나기라도 하면 절망하고 상처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도와 믿음으로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셨습니다. 곧 제자에게 세례를 베풀라는 영적의미는 성삼위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 영혼에 내주하셔서 친히 도우시고 인도하시게 됩니다.

 

저는 1995년에 도왔던 영국의 구갈렙(창규) 선교사를 기억합니다. 그가 양일 때 도우면서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눈물이 많고 수줍음을 여자보다 잘 타는 남자였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 집의 뒷문으로 나와 혼자 학교에 다니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들어가니 사람이 변하였습니다. 말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여 리더요 인턴목자가 되었습니다. 대학졸업이 가능할까 생각했던 사람이 대학원을 진학하고 선교사로까지 살며 삼성 영국지사에 입사하는 등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자 하는 구갈렙 선교사님의 인생을 축복하심을 보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도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돌이 되셨습니다. 사실 저는 아이들을 향하여 믿음 없다고 신앙생활을 잘 안한다고 책망도하고 잔소리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하여 볼 때 예수님은 잔소리보다 비전과 꿈을 심으셨습니다. 그리고 성삼위 하나님께 의탁하셨습니다. 제가 현실의 자녀를 보기보다 변화될 모습을 보는 꿈과 비전의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잠언 2918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킹제임스 버전의 성경은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번역했습니다.” 현재 물질적 축복이 마음을 부패하게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자가 되어있음을 보게 됩니다. 저와 한국교회가 동일한 선상에 놓여있습니다. 물질과 환경을 의지 하며 방자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비전과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깊이 회개합니다.

 

또 저는 여호수아 팀들을 돕고 있습니다. 이 분들은 나보다 몇 배 훌륭한 분들입니다. 실은 대장부목자님은 매주 나를 챙겨서 말씀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저 혼자 1시간 넘게 조잘대는 지루한 1:1말씀을 인내하고 섬겨 주고 계십니다. 박대장부, 박현민, 유수웅, 천열정 목자님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한 민족을 이루는 인생들로 축복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 학사님들이 CBF 양들을 돕는 것도 한 민족을 돕는 것입니다. 이들이 또 믿는 민족의 조상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믿음과 섬김 그리고 십자가의 희생으로 제자들을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를 통하여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는 세계복음화 비전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1명을 통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해변의 모래와 같은 믿음의 자손을 보셨습니다. 이것이 믿음이요 비전입니다. 내가 돕는 양을 보면서 그가 한 민족이 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꿈을 꾸는 것입니다.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지 그의 허물과 잘못을 탓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나라의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 로버트 토마스 목사는 조선 땅을 채 밟기도 전에 대동강에서 목 베임을 당하였습니다. 처형 직전 간절히 기도하고 12살짜리 최치량에게 3권의 성경책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조선 땅에 충만한 복음이 전해질 것을 믿고 순교하였습니다. 그 믿음대로 최치량 통하여 전해진 성경이 방의 벽지로 사용되었을지라도 토마스 선교사의 죽임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영접하고 장차는 평양 장대현교회를 이루고 평양 대 부흥의 씨앗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이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의 조선을 향한 꿈과 비전이 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토마스 선교사의 비전과 꿈을 친히 이루시고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보았을 때에 우리 믿음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이 땅에 성육신으로 오신 목적이 사단에게 빼앗긴 만유 회복입니다. 그 만유회복을 나를 통하여 하시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나와 같이 복음을 영접한 제자를 키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이십니다. 또 이것이 십자가에서 피어난 인류구속의 비전이요 꿈입니다. 나 한사람이 무슨 영향력이 있을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 영혼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례를 베푸시므로 하나님나라의 소망을 나에게 투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럼 오늘 말씀인 오늘 말씀 18-20절 말씀의 의미를 새기면서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