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317일 신입생환영예배2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

 

말씀/ 요한복음 4:1~29

요절/ 요한복음 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기 사슴과 낙타가 있습니다. 사슴은 멋있는 뿔과 예쁜 눈, 긴 목, 날씬한 다리로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많은 사람이 사슴과 같이 멋있는 인생을 살기를 원합니다. 반면 낙타는 울퉁불퉁한 등, 못생긴 외모 때문에 사람들은 낙타와 같은 인생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낙타는 가뭄의 때에 그 진가를 드러냅니다. 낙타는 잘 알다시피 등에 물주머니가 있어서 몇 달을 거뜬히 버틸 수 있습니다. 심지어 사막도 물을 안마시고 한 번에 횡단합니다. 반면 사슴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뭄이 되어 물을 못 마시면 몇 날이 못 되어 죽고 맙니다. 오늘 말씀은 사슴과 같은 삶을 사는 여인과 낙타와 같은 삶을 사시는 예수님의 만남이 나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간구하였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의 목마름을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영생수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심령에 목마름이 채워지고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 여기오신 여러분들도 영생수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더 이상 목마르지 않는 인생, 기쁨과 만족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고자 하셨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유대에서 갈릴리로 갈 때 사마리아를 거치지 않고 멀리 돌아서 갔습니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원래 하나님만 섬기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시대이후 우리나라처럼 북이스라엘-남유다로 나눠졌습니다. 이때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금송아지를 신처럼 숭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때문에 진노하시고 앗수르를 통해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셨습니다. 이때 앗수르는 북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에 자기 민족을 이동시켜 민족을 말살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사마리아지방은 혈통과 신앙이 혼합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남과 북이 통일이 되었지만 사마리아 지방은 다른나라취급 이방인취급을 받았습니다. 같은나라 사람이지만 아무도 그곳을 지나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소외되고 무시받는 사마리아를 통과하고자 하셨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He must needs go through Samaria). 예수님은 Must 즉 강한 의지를 가지고 사마리아에 가시고자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곳에 전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그들에게 선물로 주시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장정 65Km나 되는 거리를 걸어서 12시간 만에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셨습니다. 때는 유대시간 6시 현대시간으로 바꾸면 정오 12시였습니다. 세계적인 여행가 한비야에 의하면 중동의 가장 뜨거운 정오시간은 섭씨 50도까지 오른다고 합니다. 계란을 깨서 바위에 올리면 그대로 익어버리는 온도입니다. 예수님은 장시간 여행 때문에 지치고 피곤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너무나 목이 마르셨습니다. 그래서 우물가에 털썩 앉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때 우물가를 향해 멀리서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오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50도가 넘는 정오에, 그것도 여인 혼자서 물을 기르러 오는 것일까요? 당시 여인들은 서늘한 아침, 저녁 시간에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물을 길르러 왔습니다. 우물가에 앉아 수다를 떨면 그렇게 좋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왜 이 좋은 아침저녁시간을 피하여 정오에 그것도 혼자서 오는 것입니까? 18절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너에게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이 여인은 그동안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치운 경력이 화려한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모자라 현제 한 남자와 동거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여인은 우물가 사랑방에 단골로 올라오는 이야기거리가 되었습니다. 글쎄 이 여편네가 또 이혼했다네~ 벌써 몇 번째야? 진짜 서방잡아먹는 여편네야, 아주 여시 중에 백여시야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이 이곳에서 날마다 난도질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 우물가는 정말 오기 싫은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어떡합니까? 살기위해 물을 먹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여인은 입술을 깨물고 한 많은 우물가를 향해 오늘도 터벅터벅 피곤한 발걸음으로 이곳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여인을 보시고 예수님은 전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겸손히 여인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여인이여 물 좀 주시겠습니까?” 그런데 이 여자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9절을 보십시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우리 현숙한 박루디아목자님이라면 물을 그릇에 가득채워 얼마나 목마르세요? 여기 물 있습니다. 천천히 드세요하며 그릇에 가랑잎을 띄워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어찌하여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며 부탁하기 민망하게 톡 쏘아 붙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러나 여인의 반응에 상처받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선물을 주고자 하셨습니다. 우리 다함께 10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자들은 선물을 참으로 좋아합니다. 저도 제 아내에게 자주는 아니지만 깜짝 선물을 주면 한 달 동안 식탁 반찬이 달라집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선물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냥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인은 귀가 더 솔깃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선물을 준다하는 예수님이 과연 어떤 분이신가?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선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10절에서 생수라고 하셨습니다. 생수라고 하니 마트에서 파는 천원짜리 값싼 물이 아닙니다. NIV 성경에서 생수는 “Living water" 즉 살아있는 물이라고 했습니다. 이 생수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능력을 주고, 생명을 주는 천국의 하늘의 물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생수를 그냥 우물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래서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하며 또 예수님을 무시하였습니다. 다만 달라진 점은 예수님을 주여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이를 볼 때 그녀가 예수님이 주시는 선물에 관심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아직 분이 덜 풀렸는지 예수님께 나머지 분풀이를 하였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남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다른 남자와 비교하는 말입니다. ‘옆집 남편은 잘도 도와주더만 당신은 왜 이 모양이야?’ 이런 말을 들으면 남자들은 살고싶은 의욕이 뚝 떨어집니다. 여인에게 예상치 못한 원투펀치를 받은 예수님은 큰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남자는 대화를 진행하고 싶지 않습니다. ‘상종 못할 여자네하며 지나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우리 요절말씀 13,14절을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은 야곱의 우물물과 영생수를 비교하셨습니다. 그러면 야곱의 우물물과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수와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먼저, 야곱의 우물물은 마셔도 또다시 목마릅니다.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이 치열한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목마른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 목마름을 해갈하고자 야곱의 물, 세상의 물을 찾습니다. 돈의 물, 사랑의 물을 찾습니다. 권세와 명예의 물, 지식과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의 물을 찾습니다. 게임과 도박, , 담배, 섹스 등 육체적 쾌락의 물을 찾습니다. 아름다움과 쇼핑의 물을 찾습니다. 이런 물은 우리에게 잠시 기쁨을 줍니다. 즐거움을 줍니다. 쾌락을 줍니다. 그러나 야곱의 물의 한계가 무엇입니까? 다시 목마르게된다는 것입니다. 좋은집, 좋은차, 명품백을 사도,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가도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다시 목마릅니다. 성형수술을 해도, , 담배를 해도 기쁨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또다시 목마르기 때문에 더 더 그런것들을 찾습니다. 또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기 위해 연애인들이 얼마나 노력합니까?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을 때 살맛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대아래 내려올때는 너무나 곤고하고 허무하다고합니다. 또 자신의 모든 것을 쥐어 짜서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지치고 피곤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형돈씨처럼 공황장애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 내면의 목마름을 채울 수 없습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사람은 영적인 존재로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파스칼은 모든 사람에게는 오직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하나님이 만드신 공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몸에는 아까 이야기한 낙타처럼 하나님만이 채울수 있는 공간, 하나님이 만드신 공간이 있습니다. 이 공간이 채워지지 않으면 이 세상 그 어떤것으로도 채워도 인간은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영생수는 우리 내면의 공간을 충분히 채울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처럼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 영원한 만족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 생수는 바로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영혼의 만족을 주십니다. 창세기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생기, 즉 성령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그때 흙이 일어나고 말하는 생령, “Living soul” 즉 영혼을 가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동물과 달리 영혼이 있습니다. 이 영혼을 통해 사람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2장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은 이 교제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무한한 행복을누리며 살았습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 오래참음과 양선과 충성과 절제, 거룩함과 의로움 영광이라는 차원높은 행복을 누렸습니다. 성령님은 또 우리 삶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줍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 필요한것을 다 채워주셨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믿을 때 성령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천국에 갈때까지 함께하여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 영생수를 마실수 있습니까? 참된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여인은 갑자기 예배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전에 여인은 남자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참된 남편을 찾아 방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다른시각에서 보면 예배의 대상을 찾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참된 예배의 대상을 찾고 다닙니다. 나의 인생 모든 것을 드려도 아깝지 않을 것을 찾습니다. 자신의 모든 젊음을 바쳐 헌신할 만한 그 무엇인가를 찾습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와 같은 사상일수 있고, 물질, 명예, 지식일수 있고, 사랑일수 있고, 쾌락일수 있고, 그것이 나 자신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 인생의 참된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두가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우리 피조물의 예배의 대상이십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3번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육신의 아버지만이 우리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하늘의 아버지가 계십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분, 뼈와 살과 피를 주시고, 생각을 할 수 있는 지혜주시고, 영혼을 주신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태초에 설계하시고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가장 잘 아십니다. 나의 개성이 무엇인지, 장점이 무엇인지, 나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내가 고민하는 것, 고통이 무엇인지 상처가 무엇인지 가장 잘 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그렇게 잘 아신 것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부족한 면을 잘 채워주시지 않겠습니까? 채워줄 수 있습니다. 23절을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하나님은 지금도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하나님께 애배하는 자들에게 영생수를 부어주십니다. 여기오신 신입생들이 1:1 성경공부와 주일예배를 통해 영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8,29절을 보십시오. 사마리아 여인이 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이는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그동안 소중하게 여기던 물동이를 버렸습니다. 또 사람들을 피해 다니던 그녀가 동네에 달려가 예수님을 증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변화된 것입니까? 그녀가 남편문제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자 심령에서 영생수가 터진 것입니다. 영생수가 터지자 물동이가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영생수로 마음의 상처가 치료되고 기쁨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쁨을 혼자서 누릴 수 없어서 열정적인 복음증거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영생수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아멘

 

말씀을 통해 저의 삶을 돌아봅니다. 저는 예수님을 만나기전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에 목마른 인생을 살았습니다. 어릴적 저희 집은 돈 문제 때문에 부모님이 자주 싸우셨습니다. 아버지는 알콜중독자셨고, 어머니는 찾아가는 미용서비스, 화장품 장사로 돈을 버셨습니다. 부모님의 보살핌이 적었던 저는 행복해보이는 옆집을 동경하며 이런 가정에 태어난 것이 너무나 원망스러웠습니다. 저는 사랑받지 못한 내면을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서 받고자 하였습니다. 오락부장을 하며 친구들에게 우수꽝스러운 행동으로 즐거움을 줄 때, 체육부장으로 운동을 잘할 때, 무엇보다 성적이 올라가 전교 30등에 들어가서 명문대 준비반에 들어갈 때 친구들과 선생님으로부터 받는 인정과 칭찬은 제게 삶의 의미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인정과 칭찬을 받는 삶은 항상 피곤하였습니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준비해야했고, 운동을 못해 질때면 피곤해 하였고, 엇보다 성적이 떨어지면 여지없이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특히 수능을 2번이나 실패해 보건전문대에 들어갈 때 주변사람들의 무시하는 듯한 시선이 저를 너무나 괴롭게 하였습니다. 또 저는 외모에 목마른 삶을 살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좋은 옷, 멋있는 헤어스타일, 명품을 좋아했습니다. 머리를 염색하고, 목거리, 반지, 찢어진 청바지를 통해 주변으로부터 이목받는 것이 좋았습니다. 특히 차인표, 박신양과 닮았다는 말을 들을때는 하늘을 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중학교때 계단에서 굴러서 코뼈가 주저 앉은 사건은 제게 깊은 외모컴플렉스를 갖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성형수술을 하였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3번이나 수술하지만 그것도 만족하지 못해하였습니다. 또 저는 여자친구를 통해 참사랑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한때 박신양, 차인표를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나 좋다는 여자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외모가 되면, 성격이 안좋고, 외모 성격이 되면, 공부를 못하고, 외모성격 공부가 되면 집안이 안좋고... 이렇게 더 좋은 여친을 만나기 위해 많이 헤어지고 만나야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혈질인 성격, 불우한 가정배경, 전문대생이란 열등감에 병든 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여자가 있을까?하는 불신 때문에 여자들을 깊이 사귈수 없었습니다. 저는 또 학벌과 성공 그리고 돈에 목마른 삶을 살았습니다. 가난한 가정을 일으켜 세우는 길은 성공밖에 없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공부했지만 전문대에 들어올 때 내 인생은 3류다라는 생각에 깊이 절망했습니다. 그래도 포기치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과수석을 여러번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전대, 교육대, 과기원에 다니는 친구들과 항상 비교하면 열등감에 시달렸습니다.

 

무엇을 해도 목마름이 해결되는 제게 그러나 98년 대학교 1학년때 예수님은 제게 찾아와 주셨습니다. ‘한번 교회에 같이 안다닐래요?’하며 한 예쁜 선배가 교회에 초청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의사 사모님과 성경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사모님은 세상 사람들과 많이 달랐습니다. 항상 겸손하였고, 맛있는 것을 사주며, 고민을 들어주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저는 말씀공부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마냥 사랑해주는 것이 좋아 계속 성경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러던중 오늘본문 말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저는 이 말씀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내가 힘들고 지칠때마다 찾던 인정과 칭찬의 물, 게임과 음란비디오의 물, 아름다움의 물, 학력과 성공, 돈의 물이 정말 나의 목마름을 다 채워줬는가? 물어봤을 때 사마리아 여인처럼 남편이 없나이다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계속된 성경공부를 통해 저는 저를 지으시고 심히 기뻐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저는 그동안 제가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성격도 좋고, 외모도 되고, 학력, , 성공이 있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못생기고, 전문대생이고, 아무리 노력해고 흑수저인 저를 있는 그대로 심히 좋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귀한 존재다 하셨습니다. 아버지를 폭행한 패륜아, 그래서 아버지가 농약을 먹고 자살시도하게 만든 패륜아, 남의 것을 도둑질하고, 야동을 즐기며, 사람들을 정죄판단하기를 잘하는 교만한 이자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말씀하셨습니다. 이 자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한다 하셨습니다. 나를 너무나 사랑하사 성령님을 보내주시고, 세상끝날때까지 나와함께 하신다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저는 그동안 거짓남편을 버릴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외모를 가꾸는 스트레스가 없었습니다. 학력에 낮아도, 성공하지 못한 흑수저여도, 가진 것이 없어도, 세상사람과 비교하며 목마르지 않았습니다. 왠지 모르는 포만감으로 얼굴이 싱글벌글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내안에 계신 성령님은 제가 기도할 때 필요한 것을 채워주셨습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혀있던 제게 높은 자존감을 주셨습니다. 더 이상 주변사람들과 비교하며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고, 내가 얼마나 귀한자인지 알어? 하며 근거있는 자신감에 제 동역자까지도 두손두발 들 정도입니다. 패배주의에 절망하던 제게 개척하고 정복하고 다스릴 도전스피릿을 주셔서 전공을 승리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대학교수의 비전가운데 박사과정을 밟게 하셨습니다. 화평하는 마음을 주셔서 아버지와 화해하고 교회에 같이 다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더러운 야동을 버리고, 거룩과 순결이 주는 차원높은 기쁨을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변화되지 않을 것 같던 혈기가 많이 죽고 온유한 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돈돈하며 내것만 챙기던 이기적인 자가, 주머니를 털어 이웃을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심해서 사람들앞에서 한마디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던 자가 이렇게 많은 대중앞에서 스피릿있게 말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바로 영생수 되신 예수님때문임을 이 시간 힘있게 고백합니다. 이시간 영생수되신 예수님을 할렐루야 찬양합니다. 이곳에 오신 여러분들도 영생수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기쁨과 만족이 충만한 인생, 새롭게 되는 인생, 능력있는 삶을 살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