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여름수양회 특강1

찾도록 찾으시는 사랑

말씀 / 누가복음 15:1-32

요절 / 누가복음 15: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2017년 여름수양회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너무 기대가 되지 않습니까? 앞에서 보니 기대하는 분도 있고 아직은 별로 와닿지 않는 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수양회를 사모하고 기대해야 합니다. 매년 하는 가장 큰 행사 정도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저녁 요회목자모임에서 프로그램과 강사들이 정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되면 꼭 전화기를 꺼놓거나 연락이 안되는 분들 있습니다. 혹시 내가 무엇을 맡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준비하는 수양회는 천국잔치입니다. 기쁨과 즐거움의 잔치, 죽었던 자들이 살아나는 생명의 잔치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에도 공통적으로 나오는 것이 바로 잔치입니다. “나와 함께 즐기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이처럼 여름수양회는 다함께 즐기고 기뻐하는 잔치임을 믿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전화기를 꺼놓지 말고 나에게 전화가 오기를 사모하며 기다릴 수 있기 바랍니다. 이렇게 기쁜 잔치에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동참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가 잃어버린 한 사람을 찾도록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새기고 수양회를 기쁨으로 준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듣고자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 왔습니다. 예수님이 준비하신 2017년 여름수양회에 참석하고자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웰컴!” 하며 두 팔 벌려 환영하셨습니다. 개회말씀으로 삭개오 말씀을 들려주시면서 세리들에게 큰 희망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며 교제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렸습니다. 당시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던 공인된 죄인들, 함께 상종할 수 없는 더러운 사람들이 수양회에 온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들과 함께 교제하는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너무 심각한 죄인들이라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세 가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첫 번째 비유는 잃은 양의 비유입니다.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어떤 목자에게 양 백 마리가 있었습니다. 목자는 백 마리 양들 모두에게 깊은 관심을 두고 각각 이름도 정해주었습니다. 수시로 양들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며 목자를 잘 따라 오고 있는지 체크하였습니다. “반석아, 종주야, 다윗이도 왔니? 뺀질아, ? 뺀질이가 보이지 않아목자는 한 마리의 양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평소 자기 마음대로 잘 다니던 뺀질이였습니다. 순간 목자의 마음에는 불안감이 엄습하였습니다. 부모들도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제시간에만 집에 오지 않아도 온갖 불안한 생각이 듭니다. 혹시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자기도 모르게 최악의 상황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집에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찾아 나섭니다. 목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4b을 다시 보겠습니다.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목자는 뺀질이가 없어진 사실을 알자마자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둔 채 무작정 찾아 나섰습니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며 혹시 오다가 어디 구덩이에 빠지지 않았는지, 옆길로 잘못 들어서지 않았는지, 늑대에게 잡혀가지는 않았는지 걱정하며 찾고 또 찾았습니다.

 

목자의 행동이 언뜻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 마리를 찾고자 99마리를 들에 방치해 놓는 것은 무모한 행동 같습니다. 잃은 양을 찾으러 간 사이에 늑대가 들에 있는 양들을 습격 하면 더 많은 양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차라리 한 마리 양을 포기하고 남은 99마리 양들을 잘 지키는 것이 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왜 목자는 남은 양들은 들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러 나갔을까요? 왜 누가 봐도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일을 하는 것입니까? 이것이 바로 잃은 양을 향한 목자의 마음입니다. 그 양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하나 없어지면 부모들은 앞뒤 계산하지 않고 찾으러 나갑니다. 다른 자식들은 그냥 집에 둔 채로 무작정 찾으러 나가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잃어버렸다는 순간에는 오로지 찾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지 잃은 자식을 찾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 물질, 남아 있는 다른 자식들 등 이런 저런 생각이나 계산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집에 있는 자식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식이 없어져도 똑같이 행동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얼마 전 세월호 인양 문제를 놓고 많은 말들이 오갔습니다. 어떤 정치인은 인양하는데 드는 비용이 천억이 넘는다며 그 돈을 그냥 바다에 쏟아 붓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비판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천억이면 수만명의 대학생 등록금이 해결되는데 왜 굳이 인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머리로 계산하면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심정은 어떠하겠습니까? 죽은 자식의 뼈라도 찾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만약 자기 자식이 그 배 안에 있었다면 비용 문제를 말하며 계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자식을 찾고자 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잃은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잃으면 앞뒤 계산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당할 고난이나 어려움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찾습니다. 찾을 때까지 찾도록 찾습니다.

 

잃어버린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본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나 잃은 양과 같던 자였습니다. 이사야 53장 말씀과 같이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제 길로 떠난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우리들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한명쯤은 괜찮다며 포기하고 남은 자들을 잘 키우고자 하지 않으셨습니다. 잃어버린 나 한 사람을 애타는 심정으로 찾고 찾으셨습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을 잃으셨을 때부터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찾으신 하나님은 동일하게 우리도 바울아 어디 있느냐, 은진아 어디 있느냐애타게 찾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찾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까지 이 땅에 보내어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910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하나님은 심지어 잃어버린 나 한사람을 찾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습니다.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제 길로 간 우리의 모든 죄악을 예수님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54:6) 이렇게 까지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토록 잃은 자를 찾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자를 찾도록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렇게 애타게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할 때 우리 또한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고 또 찾아야 합니다. 준비된 천국잔치인 수양회에 잃은 양들을 초청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몇해 전 여름수양회에서 발표한 승리 목자님의 소감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잃은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잃은 양들을 찾기 위해 비싼 돈을 들여 승용차까지 렌트하였습니다. 요나단 목자님과 함께 양이 있는 전국 방방곡곡으로 찾아 다녔습니다. 저는 이 소감을 들으면서 찾도록 찾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고 정말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승리목자님과 식사를 하면서 이렇게 훌륭한 분이 양 때는 도망치고 숨어 버려서 목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수양회도 가기 싫어서 잠적했었다는 사실을 듣고는 더 놀랐습니다. 지금의 모습을 볼 때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승리 목자님을 당시 일대일 목자님과 요회 목자님이었던 김엘리사 목자님은 찾도록 찾았다고 하였습니다. 집에 숨고 도서관에 숨어 있는데 계속 찾아와서 수양회에 초청하니 갈 수 밖에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 목자님들이 찾도록 찾지 않았다면 지금의 승리 목자님은 없었을 것입니다. 윤복음 목자님은 더했습니다. 무려 2년 동안이나 목자님들을 요리 조리 피해가며 숨었습니다. 찾아도 계속 숨는 양을 생각하며 포기 할 법도 한데 쉬펜스버그의 폴린 선교사님을 비롯한 목자님들은 포기치 않고 숨을 때 마다 찾고 또 찾았습니다. 그럴 때 결국 찾게 된 노소정 자매님이 말씀에 은혜를 받고 지금은 과기원 역사를 앞장서서 섬기는 윤복음 목자님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양을 찾은 목자의 기쁨은 어떠할까요? 5,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잃은 양을 찾아낸 목자는 너 때문에 생고생을 했다며 양의 모가지를 비틀어 잡고 질질 끌고 오지 않았습니다. 무등을 태우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돌아왔습니다. “뺀질이를 찾았어! 그토록 찾던 잃은 양 뺀질이를 찾았다 만세!” 찾은 것으로 인해 너무 기뻐 집에 와서는 친구들과 이웃들을 다 불러 모아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양 한 마리 가격이 얼마나 하겠습니까? 양 한 마리를 위해 잔치를 벌이는 것은 양을 위해 소를 잡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왜 이런 잔치를 벌이는 것입니다. 너무 기쁘기 때문입니다. 양을 찾은 기쁨은 어떤 가치와도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은 이 땅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7절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잃어 버린 한 영혼을 찾을 때 하늘에서도 기쁨의 잔치가 열립니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할 때 예수님은 너무 기뻐하십니다. “예수님 기뻐 노래하시리 잃어버린 영혼 돌아올 때, 예수님 기뻐 춤추시리 잃어버린 영혼 돌아올 때주님이 기뻐 노래하시고 기뻐 춤추시는 모습 상상이 되십니까?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할 때 예수님은 너무 기뻐 덩실덩실 춤을 추십니다.

 

우리가 준비하는 여름수양회가 바로 이런 기쁨의 잔치임을 믿습니다. 그래서 여름수양회는 더욱 많은 시간과 물질, 정성을 쏟아 부어 준비를 합니다. 초청 티켓만 봐도 좀 고급지지 않습니까? 비싼 물질과 정성을 들여 고급스럽게 만듭니다. 그런데 제가 티켓 초안을 만들어 자랑하는 마음으로 다른 센터 목자님에게 보여주니 요즘 이렇게 만들어 전한다고 양들이 오나요? 괜히 돈만 쓰는 것 같은데이렇게 말해 충격을 주었습니다. 계산해보면 손해라는 것입니다. 말씀강사들은 어떠합니까?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한 달 동안 밤잠을 설치며 말씀을 준비할 것입니다. 소감, 특송, 드라마, 율동 등 각종 섬기는 종들 또한 온 정성을 다해 준비할 것입니다. 실무자들은 머리를 싸매고 홍보판을 만들고 수양회 베스트 환경과 간식 등을 위해 고민할 것입니다. 목자님들은 전국 방방곡곡으로 양들을 찾으러 심방도 다닐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한다고 돈을 많이 번다거나 수백명의 양들이 몰려와서 회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문기자들이 찾아와 우리의 헌신과 노고를 세계만방에 알려주는 것도 아닙니다. 인풋에 비해 아웃풋을 생각하면 수양회를 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비효율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잃은 자 한 사람을 찾는 기쁨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죄인 한 사람이 수양회 참석하여 회개함으로 예수님 기뻐 춤추시고 천국에서 잔치가 벌여진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수양회가 사모가 됩니까? 수양회는 부담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우리가 이 기쁨을 알고 잃은 자들을 찾도록 찾아 수양회에 함께 참석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이번 수양회가 그 어느 때보다 기쁨이 충만한 천국잔치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비유는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입니다.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드라크마는 로마 화폐 단위로서 일군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은전입니다. 요즘 시세로 10만원 정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인에게 있어 열 드라크마는 단순히 가격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 풍습에 따라 결혼할 때 신랑이 열 드라크마를 엮어 만들어 준 목걸이였기 때문입니다. 여인에게 있어서 이 목걸이는 평생 간직해야 할 사랑의 징표였습니다. 그런데 이 중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렸으니 여인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혹시 이 사실을 신랑이 알게 되면 그 신랑의 마음은 또 어떠하겠습니까? 저는 신혼 때 동역자에게 생일선물로 1년간의 사진들을 모아 편집하여 책으로 만들어 준 적이 있었습니다. 비싼 선물 상자에 솜과 리본까지 넣어 예쁘게 포장하여 사랑의 징표로 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집을 정리하다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한 구석에 먼지만 소복이 쌓여 있는 한 상자를 보았습니다. 제가 준 선물이었습니다. 먼지 쌓여 있는 상자를 한참동안 바라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달래느라 힘들었습니다. 동역자도 이 일을 지금 처음 듣는 것입니다. 이제 제 마음을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상자가 어디 있는 찾겠죠? 그리고 먼지도 닦고 정성을 다해 관심을 둘 것입니다. 여인에게 있어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남편의 사랑이 알알이 담겨 있기에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면서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았습니다.

 

우리도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면 부지런히 찾아내기까지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개척 목자님이 카자흐스탄에서 돌아올 때 제가 터미널로 마중을 나갔는데 얼굴이 상당히 어두웠습니다. 알고 보니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개척 목자님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핸드폰을 찾도록 찾아다녔습니다. 버스에 두고 내리지는 않았는지 안내 데스크에 문의도 하고 여기저기 수소문하였습니다. 저는 옆에서 볼 때 좀 답답하여 좋은 폰이 아니면 그냥 잊고 새로 하나 맞추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런데 목자님은 중요한 것이 많이 들었다면서 포기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마히람 목자님과 막 결혼하고 온터라 중요한 사진들이 그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그 핸드폰이 인천공항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비싼 차비와 시간을 들여 다시 인천공항으로 가서 폰을 찾아가지고 왔습니다. 옆에서 볼 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물건이라도 사연이 담겨 있으면 본인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물건이 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십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보잘 것 없어 보이고 연약해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에게는 너무나 귀한 영혼입니다. 물리적으로 한 드라크마가 10만원의 가치가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이 보실 때 구원받은 한 드라크마와 같은 영혼은 수천억이 넘는, 아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도 부지런히 잃어버린 드라크마와 같은 한 사람을 찾고 찾으시는 것입니다.

 

앞에서 나온 잃은 양은 자기가 힘들 때 음매 나 여기 있어요 음메하며 소리라도 낼 수 있는 양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나오는 드라크마는 무생물입니다. 온전히 찾는 사람의 노력으로만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잃어버린 자라는 개념조차 없는 양들을 보면 우리는 소망을 두기 힘듭니다. 아무리 찾고 찾아도 전혀 복음에 대해 관심이 없고 목자들의 말에 콧방귀를 끼면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사탄은 해도 안될 것 같으니 괜히 힘 빼지 말고 늘 그랬듯이 양 없이 참석하라고 송사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해 부지런히 찾아다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의 등불을 켜고 초청의 빗자루 질을 부지런히 하다보면 찾게 된다고 소망의 말씀을 해주십니다. 아무리 소망이 없어 보이는 양들도 하나님께서 너무나 찾으시는 귀한 영혼임을 알고 부지런히 드라크마와 같은 영혼들을 찾아야겠습니다. 또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곳은 집안입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영혼들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당장 핸드폰만 열어서 양들 명단만 봐도 초청할 양들이 눈에 보입니다. 작년, 혹은 재작년에 관계성 맺었다가 끊어진 양들도 가까이에 있는 양들입니다. 우리가 말씀의 등불을 켜고 초청의 빗자루로 그 동안 양들에게 쌓인 먼지들을 열심히 쓸어서 양들을 찾아 초청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잃은 아들의 비유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둘째가 자신에게 돌아올 분깃을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두 눈 멀쩡히 뜨고 살아계시는데 유산을 미리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돈을 챙겨 아버지를 떠났습니다.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 아들의 행동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정말 괘씸하고 불효막심해 보입니다. 이 아들이 나가서 잘 된 것도 아닙니다. 허랑방탕하게 살다 쫄딱 망합니다. 흉년까지 들어 돼지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됩니다. 이런 아들은 돌아와도 문전박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호적에서 파버리고 부자간의 연을 끊어버리는 것이 더 나아보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아버지는 어떠합니까? 2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아버지는 아들을 문전박대하지 않았습니다. 외면하지도 않았습니다. 멀리서 걸어오는 아들을 향해 아버지가 먼저 달려갔습니다. 그리고는 불쌍히 여기며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은 너무나 애타게 둘째 아들을 기다린 모습이었습니다. 애타게 찾고 찾다가 아들을 마침내 찾게 된 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첫째 비유와 둘째 비유에 비하면 세 번째 비유에서의 아버지는 수동적으로 보입니다. 그냥 기다리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있어서 둘째 아들은 잃은 자였습니다. 24절과 32절을 보면 잃었다가 얻었다는 말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아무리 못났고 아버지의 속을 썩였어도 잃은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애타는 심정으로 찾고 또 찾았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둘째가 집을 나간 뒤로부터 한 시도 아들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걱정이 되어 아들 친구들 연락처를 찾아 연락도 하고 함께 놀던 PC방 친구들에게 둘째 아들 소식을 묻기도 했습니다. 아들의 일기장을 살펴보면서 아들이 어디로 가고 싶어 했는지 알아내어 그 곳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매일 간절히 기도하며 제발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만을 바라였습니다. 꿈속에서라도 아들을 만나거나 집안의 아들의 물건을 만지며 지난 날 함께 운동하고 소풍을 갔던 즐거운 일들을 추억할 때면 아들을 향한 그리움으로 인해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아들을 향한 애타는 심정으로 아버지는 아들을 찾고 또 찾았습니다.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심정은 양이나 드라크마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양도 사랑스럽고 드라크마도 귀하지만 자신을 꼭 빼닮은 자식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식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투자해서 찾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1991년도에 대구에서 개구리를 잡으러 나간 다섯 명의 초등학생이 실종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일명 개구리 소년사건인데 전 국민의 관심 속에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벌였으나 11년 만인 2002년에 사늘한 유골로 돌아왔습니다. 11년간 부모들은 정말 애타는 심정을 자식을 찾았습니다. 다니는 직장도 그만두고 전국을 돌면서 전단지를 뿌렸습니다. 살고 있는 집도 다 팔아 자식을 찾는 비용으로 충당해야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더라도 잃어버린 자식만 찾을 수 있기만을 바라였습니다. 만약 이렇게 힘들게 찾던 자식을 찾게 되었다면 그 기쁨과 감격이 어떠하겠습니까?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찾았던 아들이 돌아왔을 때 너무 기뻐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면서 아들로서의 지위를 단번에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베풀며 말하였습니다. 우리 2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아버지의 기쁨은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다시 살아났을 때의 기쁨이었습니다. 잃어버렸던 아들을 다시 찾은 기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탕자와 같은 영혼들을 애타게 찾고 계십니다. 이사야 4915절은 말합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아무리 하나님 속을 썩이고 하나님을 잊은 채 함부로 살았을 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아니하십니다. 그리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십니다. 둘째 아들이 유일하게 잘한 것은 돌이켜 회개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고자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도 돌이켜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잔치를 벌이시고 아들로서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 잔치는 돌아온 아들을 살리기 위한 최고의 잔치입니다. 살진 송아지는 대속 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5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하나님은 탕자 같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님까지 대속제물로 내어 주시고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탕자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투자 하신 것입니다. 이번 수양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잃은 자를 찾으십니다.

 

우리는 몇 년간 정말 마음을 다해 돕던 양들이 떠나면 인간적으로 괘씸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런 양들은 싹수가 없다며 소망을 끊고 마음을 닫아 버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양들에게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고 싶은 이탈 본능이 있습니다. 아버지 집 안에서 말씀으로 잘 성장하면 좋을 텐데 자꾸 세상으로 눈을 돌리고 떠나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런 양들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배후에 양들을 유혹하는 사탄의 세력이 있음을 알고 연약하고 유혹에 약한 양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아무리 소원이 없어 보이고 세상물에 빠져 더러워져 있을지라도 그들이 이해하고 찾고 찾아서 주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 과정이 힘들지라도 그렇게 떠난 양이 돌아올 때 죽었다가 살아나는 기쁨, 천하를 얻은 것보다 더 귀한 기쁨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마음을 다해 돕던 조투쟁 목자님이 탕자처럼 떠났을 때 인간적으로 매우 괘씸하였습니다. 수시로 밥 사주고 군대 면회까지 가주고, 집 근처까지 가서 일대일 해주고 그의 중국집을 찾아간 횟수가 몇 번인데 아무 말 없이 떠나버린 그를 생각하면 소망을 끊고 마음을 닫아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 목자님의 권면과 불쌍히 여기는 심정이 생겨 다시 찾고 찾아서 그의 집으로 갔을 때 그는 탕자와 같이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죄를 많이 짓고 턱선이 사라질 정도로 살이 찌고 눈이 동태눈처럼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가 단번에 수양회 등록을 하고 여름수양회에 참석하였을 때 저는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투쟁이를 찾았다!” 무등을 태우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지만 너무 무거워 그렇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와 말씀공부를 하면서 그 때 참석한 수양회에서 가장 큰 은혜를 받은 것이 무엇이었는가 물어보니 돌아온 탕자 팀 드라마였다고 하였습니다. 드라마에서 탕자 역을 맡은 기대연 목자님이 돼지우리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회개하며 펑펑 우는 연기를 보면서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눈물이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기대연 목자님의 혼을 담은 연기가 한 영혼을 살렸습니다. 수양회 드라마도 잘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양들이 다시 돌아오면 어떻게 해서든 은혜를 받습니다. 또한 양들이 어디선가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하며 목자들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심방 와서 밥 한끼 사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를 알고 적극적으로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아 나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도 잃은 자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목자님들을 통해 저를 찾도록 찾으셨습니다. 양 때 수양회에 가기 싫어 목자님의 연락도 받지 않고 숨어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일대일 목자님이신 신스데바나 목자님은 삐삐 음성 메시지에 수양회 꼭 가야 한다며 안오면 저희 집을 찾도록 찾아서 데리러 가겠다고 반협박을 하였습니다. 저는 정말 찾아올까 두려워서 수양회에 참석하였고 그 수양회에서 심히 기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큰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과MT를 장성 수련원에서 하고 있는데 스데바나 목자님은 수련원까지 전화를 해서 내일이 주일이니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자신이 차를 몰고 수련원으로 오겠다고 또 반협박을 하였습니다. 저는 정말 다음날 올 것 같아 그 날 밤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다행히 오지 않았지만 그 뒤로 예배에 오지 않으면 찾을 때 까지 찾을 것 같아 한번도 빠지지 않고 예배에 참석하였고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힘들 때 마다 목자님들은 찾도록 찾아서 어떻게 해서든 저를 주님께로 데려다 놓았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잃어버린 자에서 찾은 자가 되었습니다. 소망 없던 자를 크신 사랑으로 영접해 주시고 풀타임 목자의 삶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저를 찾도록 찾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저도 양들을 찾도록 찾는 인생을 살고자 결단하였습니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생각하며 인생 전체를 드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자 결단하였습니다. 양들을 수양회에 초청하기 위해 강원도 철원까지 심방하기도 하고 서울, 전주, 목포, 순천 등 각 지방을 돌아다녔습니다. 때로는 양의 부모에게 쌍욕을 들으면서까지 양을 수양회 초청하고자 집에 찾아가기도 하였고 아무 말 없이 군대에 간 양의 주소를 알아내고자 무작정 국방부에 전화하여 그 아래 부대, 또 그 아래 부대로 계속 연결해 가며 찾도록 찾아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찾아낸 번호로 양과 통화가 되어 너무 기뻤지만 모르는 사람 취급하고 전화 잘못 걸었다며 안면 몰수하는 양의 모습으로 인해 가슴에 대못이 박히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주님이 이런 나의 모습을 통해 기뻐하실 것을 생각하니 내면에 기쁨이 있었습니다. 또 이렇게 찾고 찾을 때 조투쟁 목자님을 찾게 하시고 소망 없던 자가 이제는 선교사 후보가 되는 기적까지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찾도록 찾다보면 반드시 찾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모든 비유에서 결국은 다 찾았습니다. 문제는 찾을 때 까지 찾지 않는 것입니다. 요즘 저도 찾을 때 까지 찾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찾다가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강하였습니다. 찾아가면 맨날 바쁘다고 하고 말도 많고 별로 소원도 없어 보이는 양들을 계속해서 찾아갈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돕는 양들이라도 우선 잘 크고 성장하면 좋은데 이것만 해도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파트 수양회 차트 판을 보니 적힌 양들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파트는 등록유무를 떠나서 양들 이름이라도 적혀 있는데 이름조차 적을 양이 없는 것 같은 파트 현실을 생각할 때 제가 얼마나 안일하게 있었는지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시 부지런히 양들을 찾도록 찾아야겠습니다. 저만 찾는 것이 아니라 동역자 모두가 찾도록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찾는 자의 기쁨을 알도록 권면하고 도와야겠습니다. 그리하여 함께 양들을 찾도록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직 수양회가 한 달이나 남았습니다. 지금부터 찾도록 찾으면 반드시 찾게 될 양들이 있음을 믿습니다. 제가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덧입고 끝까지 초청역사를 힘 있게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수양회는 잃어버린 한 사람을 찾는 역사입니다. 한 사람을 찾기 위해 가슴앓이하고 진심을 드릴 때 우리는 나를 찾도록 찾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찾아서 수양회에 참석할 때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수양회 역사는 시작입니다. 내일부터는 특새제도 하면서 기도를 제단도 쌓을 것입니다. 우리가 다가오는 여름수양회를 행사로 생각하며 부담스러워 하지 말고 한 사람을 찾도록 찾아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함께 즐기는 천국잔치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