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말씀: 누가복음 11:33-41

요절: 누가복음 11: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오늘 말씀은 우리의 내면을 돌아보도록 권면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외모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그래서 성형수술을 많이 합니다. 방학이 되면 성형수술하러 오는 여고생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신자가 소천해서 하나님 나라에 갔습니다. 그런데 천사들이 한국 사람들은 한 곳으로 모아 줄을 세우더랍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한국 사람들은 하도 성형수술을 많이 해서 신분증과 일일이 대조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외적인 모습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의 내면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속을 들여다보고 어둡지 않는가 보라? 내면을 점검해 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속사람을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요?

 

3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등불을 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어두운 곳을 밝혀서 두루두루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등불은 높은 곳에 둡니다. 우리 예배당도 전등을 바닥에 두지 않고, 높은 천장에 둡니다. 우리 몸의 눈도 가장 위쪽에 있습니다. 눈이 만약에 배에 있다거나, 발에 있으면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하나님은 가장 높은 위치에 눈을 배치하셨습니다.

 

3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예수님은 눈이 몸의 등불이라고 하십니다. 눈이 성해야 우리 몸을 바른 곳으로 인도합니다. 눈이 나쁘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서 온 몸이 어둡게 됩니다. 그래서 옛말에 몸이 열 냥이면 눈이 아홉 냥이라고 했습니다. 안과의사이신 온갈렙 목자님은 처음에 눈이 별 것 아닐 것 같아서 안과를 선택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막상 눈에 대해 공부해 보니 사람 눈이 너무 신비하고 정교했다고 하셨습니다. 갈렙 목자님은 백내장 수술의 권위자입니다. 눈에 뭐가 끼어서 잘 안 보이는데 백내장 수술을 해서 잘 보이게 해 줍니다. 그러면 환자들이 그렇게 기뻐한다고 합니다. 육신의 눈도 그렇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님은 마음의 눈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35절을 같이 읽어 봅시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네 속에 있는 빛이것은 마음의 눈을 가리킵니다. 영적인 분별력을 의미합니다. 육신의 눈이 아무리 2.0, 2.0이어도 마음의 눈이 제로인 사람이 있습니다. 영적인 눈이 어두워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객관적으로 알지를 못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추한 죄인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합니다. 자기는 겉보기에 멋있고, 세상에서도 잘 나가고, 인정받기 때문에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겉보기에 별 볼일 없는 사람을 무시하고, 레이저가 나오는 눈으로 쏘아보기도 합니다.

 

사도바울이 과거에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빌립보서 3:5,6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3:5,6)” “나는 흠이 없는 자로다” “I am faultless” 흠 잡을 데가 없는, 무결점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인성적으로, 대인관계 면에서, 학문적으로도.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요즘 신임장관들 청문회 하면 얼마나 흠이 많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흠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가 정말 흠이 없는 자였습니까? 디모데전서 1:13, 15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요 -- 죄인 중에 괴수니라”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니라” “I am the worst” “나는 가장 저질이다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흠이 없는 자로다했던 사람이 어떻게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합니까? 이는 바울이 과거에는 영적으로 눈이 멀었다가 후에 영적인 눈을 떴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눈이 어두웠다가 밝아져서, 밝히 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마음의 눈이 밝아졌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강력한 빛으로 그를 비추었습니다. 그 빛이 얼마나 강력하던지 순간적으로 눈이 멀었습니다. 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영의 눈을 떴습니다. 바울, 그 속에 있는 빛이 밝아졌습니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고, 음란하고, 위선적인 자인가? 자기 발견을 했습니다. 또한 이런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의 주요, 그리스도이신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눈이 밝아지자, 이전에 세상에서 자랑하던 모든 것이 배설물로 보였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게 보였습니다(3:8).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보였습니다(2:3). 나사렛 예수가 이단의 괴수인줄 알았는데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밝히 보게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마음의 눈을 밝히셨기 때문입니다(1:17,18).

 

우리도 과거에 죄로 말미암아 영적인 눈, 마음의 눈이 어두웠습니다. 영적인 소경으로서 내게 무엇이 문제인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빛으로 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9:5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한복음 8:12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예수님이 빛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인들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밝혀 주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어둠이 사라지고 빛 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3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빛 되신 예수님이 우리 마음을 비추셔서 온 몸이 밝아지면 우리 인생 전체가 밝아집니다. 온전케 됩니다. 얼굴도 밝아지고, 생각도 밝아집니다. 옷 색깔도 밝아지고, 안경테도 밝아집니다. 얼굴에 기미가 사라지고 피부도 좋아집니다.

 

천도전 목자님은 과거 마음의 눈이 어두웠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형을 이해하지 못하고 구박하던 방구석 핍박자였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무기력하게 사는 자신의 어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대학 입학과 함께 광주로 와서 형과 함께 살며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말씀의 빛이 그의 마음을 비추었습니다. 시편 119:105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말씀처럼 말씀공부를 통해서 비로소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형과 함께 원룸에서 인터넷 만화에 빠져, 같이 어둠 속에서 헤맬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대일 말씀공부와 파트모임, 주일예배, 그리고 수양회 등을 통해 영적인 빛이 임하였습니다. 그때 점점 내면의 어둠이 물러가고 밝아졌습니다. 마음에 기쁨이 임하였습니다. 그때 얼굴에서 빛이 나고, 특히 이마에서 광채가 났습니다. 지금은 형보다 더 빛이 납니다. 부담스런 사자 머리도 잘랐습니다. 방구석 핍박자가 변하여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열심히 전도하는 빛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시골에서는 그가 목사가 되기 위해 목사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줄 아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실은 공무원시험 준비하고 있는데 입만 열면 예수님 얘기하니까 목사 후보생인줄로 아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의 역사는 세상의 빛되신 예수님께서 그의 마음을 밝히 비추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번 여름 수양회를 통해서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의 빛이 강력하게 임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각박한 세상에 살면서 영적인 눈이 많이 어두워졌습니다. 세상은 죄로 말미암아 영적인 미세먼지로 가득합니다. 우리 마음의 영적인 센서가 무뎌져서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양회 말씀을 통해서 빛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 내면에 죄의식, 원망, 불평, 두려움, 염려 등이 사라지고, 은혜와 기쁨, 소망의 빛이 힘있게 비출 것을 믿습니다.

 

복음성가에 이런 찬송이 있습니다. “주님 당신은 사랑의 빛. 어둠 가운데 비추소서. 세상의 빛 예수 우리를 비추사 당신의 진리로 우리를 자유케 비추소서. 우리 위해. 비추소서요즘 세상을 돌아보면 온통 어두움 천지입니다. 북한은 틈만 나면 미사일을 쏘아대죠. 경제는 어렵고, 취직문은 좁고, 흉악범죄는 늘어나고, 청소년 문제는 심각합니다. 사람들은 갈수록 마음이 어두워지고 심령이 오그라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볼 때 소망의 빛이 보입니다. 요한복음 9:5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우리가 적극적으로 빛 되신 예수님께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임할 때 영적인 눈이 깨끗해집니다. 시편 19:7,8절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순결하여 우리 눈을 밝게 해 줍니다. 말씀은 우리 영혼의 떼를 닦아내는 세정제와 같습니다.

 

우리가 수양회에서 말씀 듣고 은혜를 받으면 심령에 눈물이 고입니다. 그때 세상에서 찌든 떼가 벗겨지고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고백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병들어 어두워진 내 영혼의 시력은 통증과 슬픔을 동반한 당신의 치료의 안약에 의해 나날이 더 밝아져 갔습니다그는 세속의 떼가 묻어 영적인 시력이 약해집니다. 그러나 통증과 슬픔을 동반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치료의 안약이 되어 그의 눈을 밝게 해 주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이 주님의 은혜가 이번 수양회때 풍성히 임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지금 수양회 강사들이 말씀의 등불을 밝히고자 엄청 투쟁하고 있다고 합니다. 박마가 목자님은 아예 집에를 들어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엄청 기대가 됩니다. 또 우리가 영적인 눈이 밝아지기 위해서는 죄를 진실되게 회개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죄가 우리의 눈을 가리우기 때문입니다. 시편 119:18절에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쌓아도 말씀의 깊은 세계, 영적인 세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나아가 진실되게 회개할 때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순수해지고 깨끗해집니다. 그때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이 보입니다. 우리가 이번 수양회를 통해서 기도하고 회개함으로 우리의 영적인 시력을 회복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37절을 봅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여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손을 씻지 않고 드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마도 너무나 일대일이 많아서 손 씻을 겨를도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아니 식사하기 전에 어찌 손을 씻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예수님을 정죄 판단했습니다. 그의 율법의 눈은 아주 밝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39,4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종교지도자들은 겉은 잘 보았지만, 속은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 안에는 온갖 탐욕과 악독이 가득했습니다. 물질에 대한 탐욕, 명예에 대한 탐심, 육신의 쾌락에 대한 욕망이 가득했습니다. 예수님을 시기하는 악독이 독사의 독처럼 가득했습니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의롭고 경건한 척 했지만 속은 탐욕과 악독으로 가득해서 악취가 났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도 겉보기에는 얼마나 말쑥하고, 젠틀합니까? 손도 잘 씻고, 샤워도 잘 하고, 옷도 잘 빨아 입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내면은 탐욕과 악독으로 갈수록 이기적이고, 사납고, 독해집니다. 돈 때문에 골프치고 나오는 사람을 납치해서 죽입니다.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있지도 않는 사실을 조작해서 유포합니다. 인간의 탐욕과 악독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탐욕과 악독을 제거할 수 있습니까? 4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자꾸 더 많이 가질려고 욕심 부리지 말고, 나누고 베풀고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깨끗해진다고 하십니다. 더 많은 지식을 쌓고 더 많은 소유를 늘여야 눈이 밝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있는 것을 퍼내고 나누고 베풀고 희생할 때 눈이 밝아집니다. 우리 몸도 자꾸 많이 먹어서 영양분을 쌓기만 하면 혈관에 찌꺼기가 끼어서 동맹경화 현상이 일어납니다. 피가 맑고 혈액순환이 잘 될려면 에너지를 발산해야 합니다. 운동을 하고, 땀을 흘려야, 피가 깨끗해지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적극적으로 구제하고, 베풀고 섬겨야 합니다. 그때 부패하지 않고, 경건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그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면 그 눈물이야말로 가장 귀한 영적 세정제가 됩니다. 한 영혼의 아픔과 고통에 참여할 때 내 마음이 순수해지고 거룩해집니다.

 

삭개오는 세리로서 물질에 대한 탐욕으로 가득했습니다. 그의 눈에는 하나님도, 불쌍한 이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돈만 보였습니다. 그는 돈의 흐름에 눈이 밝아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지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돈은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눈은 어두워 마음에 기쁨이 없었습니다. 친구가 없고 외로웠습니다. 이때 빛 되신 예수님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오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19:5)”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19:10)” 예수님의 사랑의 빛이 임하자 삭개오의 내면이 밝아졌습니다. 마음의 등불이 켜졌습니다. 탐욕의 비늘이 벗겨지고 돈 보다 귀한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불쌍한 이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마침내 오그라진 손을 펴서 구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19:18)” 그는 구제를 통해 탐욕의 떼를 벗기고 심령이 깨끗해졌습니다. 재산이 절반이나 줄었지만 이상하게 평안했습니다. 아까운 것이 아니라 행복했습니다. 진정한 치유는 많이 쌓는데 있지 않고 희생하고 베푸는데 있습니다.

 

41절을 다시 봅시다.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우리는 내가 가진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찾아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많습니다. 물질이든, 시간이든, 재능이든 이것을 나누고자 하면 얼마든지 나눌 수 있습니다. 이것들을 나누고 베풀 때 손해보고 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깨끗하고 순수해집니다. 영혼이 맑아집니다. 세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소망을 덧입게 됩니다. 사람들은 치열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탐욕스럽고, 악독하게 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베풀고, 섬기고, 구제하는 삶이 우리를 살아있게 합니다. 타락과 부패로 부터 우리를 지켜주고, 생명의 세계로 인도해 줍니다.

 

미국 필라델피아 UBF에 노모세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이 분의 아버지는 도루코 면도날 회사에 평사원으로 입사해서 30년 동안 성실하게 근무하여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성실함을 이어받아 열심히 공부했고, 장차 성공한 기업가가 될 꿈을 꾸었습니다. 대학에 와서도 도서관에 살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영어회화 동아리, 독서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고, 유도부에 들어가 체력도 키웠습니다. 그런데 3학년 어느날, 유도부 시합을 하는데, 친구가 목뼈가 부러져 전신마비가 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 사고가 있기 한 달 전, 그 친구는 자신을 증인으로 여자 친구와 언약식을 했습니다. 평생을 같이 하자고. 그런데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으니 어떻게 합니까? 기가 막힐 일이죠. 병원에서 친구의 여자 친구는 그를 붙들고 오열했습니다. “앞으로 자신은 어떻게 하느냐. 노모세 선교사는 이 사건을 통해 인간의 노력과 성공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만난 UBF목자님을 찾아가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 기독교를 유대인의 건국신화로만 여겼는데, 이제는 성경말씀이 진리로 영접되었습니다. 친구의 사건을 통해서 세상 욕심을 내려놓자, 마음이 맑고 순수해진 것입니다. 마침내 말씀 속에 담긴 진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4학년 여름수양회에 참석해서 이사야 53장 말씀으로 십자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동안 세상출세만을 위해 달려온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 죄인인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자신을 위해 십자가를 못 박히신 예수님이 자신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했습니다. 마침내 그가 영적인 눈을 뜬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장막생활하며, 양들을 돕는 목자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시간과 물질을 드려 양들을 섬길 때 이전에 맛보지 못한 신기한 기쁨이 있었습니다. 졸업 후 미국 유학생 선교사로 나갔습니다. 힘든 박사과정 공부를 하면서도 열심히 미국 양들에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때 필립 브라운이라는 양을 말씀으로 도왔는데, 그가 복음을 영접하고 목자가 되었습니다. 필립 브라운은 그 후 잘 성장하였고, 이번에 워싱턴 UBF에 지부장으로 세움 받았습니다. 필립 브라운은 누나 사라 브라운을 데려왔고, 사라 브라운은 작년에 우리 센타 출신의 김요나 선교사와 선교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노모세 선교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논문들을 써서 공대로서 유명한 Drexel 대학에 종신교수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펠라델피아 UBF의 책임목자가 되어 많은 미국 양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가 만약에 세상 욕심만 가지고 살았다면 세상에서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영적인 눈은 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공부를 통해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마음의 눈이 밝아 구원의 세계, 영적인 세계를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희생해서 구제하는 삶을 살았을 때 다른 사람도 살리고, 자신의 삶도 풍성해졌습니다.

 

사실 구제에 있어서 가장 좋은 본을 보이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고린도후서 8:9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든 것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를 부요케 하시기 위해서 가난한 자가 되셨습니다. 하늘 영광 뿐 아니라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생명까지 십자가에서 희생하셨습니다. 이로서 탐욕과 악독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욕심과 악독으로 가득해 있다가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왠지 마음이 숙연해지고 깨끗해집니다.

 

요즘 우리 목자님들은 여름수양회에 한 양을 초청하기 위해서 열심히 양들을 심방하고, 만나서 밥 사주고, 놀아줍니다. 더운 여름에 사모님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맛있는 요리를 해서 양들을 먹입니다. 아까운 물질을 드려 비싼 커피와 팥빙수, 피자도 사주고 양들을 수양회에 초청합니다. 이것이 구제입니다. 이런 헌신과 땀과 눈물에는 아픔이 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땀과 눈물이 우리 마음을 순수하게 해 줍니다. 영의 눈을 열어서 영원한 하나님의 세계를 보게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세계, 부활의 세계,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해 줍니다. 이것은 세상의 금 은 보화가 줄 수 없는 하나님의 보화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도록 도전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내면을 밝힐 수 있을까요? 첫째로, 빛 되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말씀의 빛이 내 마음에 임해야 합니다. 말씀 앞에 진실되게 회개해야 합니다. 둘째로, 내가 가진 것을 드려 베풀고 섬기고 구제해야 합니다. 그때 이기심과 탐욕으로 더러워진 우리 마음이 깨끗해지고 맑아집니다. 우리가 이번 여름수양회를 통해 생명의 말씀을 듣고, 영의 눈이 밝아질 수 있길 기도합니다. 구제하는 삶을 통해 우리 마음이 깨끗해 질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로서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하늘의 기쁨을 맛볼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