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여름수양회준비 특강 3

                                                                그리하면 무너져 내리리라

말씀: 여호수아 6:1-21

요절: 여호수아 6:5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여리고 성을 정복하는가? 가르쳐 줍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의 광야훈련을 마치고, 마침내 가나안 땅에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가나안에 입성하고자 할 때 처음으로 만난 성이 여리고 성입니다. 여리고성은 두 겹으로 된 성인데 바깥벽은 두께가 1.8m, 높이가 9.2m, 양쪽 벽 사이 공간이 4.6m 정도 되었습니다. 성벽의 꼭대기에는 집들이 지어져 있었습니다. 얼마나 견고한 성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변변한 무기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리고성을 정복할 수 있었을까요? 이는 인간의 전략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으로 이루어진 역사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 순종을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1절을 봅시다.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사람들을 두려워했습니다. ‘저렇게 높은 성을 쌓았으니 얼마나 대단한 백성일까?’ 그러나 실상은 여리고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계 최강 애굽 군대를 홍해바다에 수장시키고 탈출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그들은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여호수아서 2:9,1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하신 일, 즉 그들을 전멸시키신 일을 듣고 간담이 녹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너무 두려워 여리고 성을 굳게 닫고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적이 일단 눈에 보여야 싸우든지 말든지 할텐데,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2절을 같이 읽어 봅시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하나님께서는 여리고와 그 성 용사들을 이미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총사령관이 되셔서 승리를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전쟁은 이미 승리가 보장된 싸움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싸우시기 때문에 이길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 복음역사, 학과공부, 직장생활, 다가오는 여름수양회도 하나님이 친히 앞서가시며 이루십니다. 상천하지의 하나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이 친히 싸우시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낙심하지 맙시다. 거대한 여리고성만 바라보지 말고, 그 보다 더 크신 하나님, 더 강하신 하나님을 믿고 바라봅시다. 하나님이 반드시 승리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1:22,23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하나님은 이미 50명 이상의 양들을 우리 손에 붙이셨습니다. 김믿음 목자님에게 NH 직장을 주셨습니다. 천도전, 정겸손 목자님에게도 반드시 승리를 주십니다. 마가복음 11:24절에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믿고 기도했으면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리고성 정복을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작전 명령이 무엇입니까? 3-5절까지를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하나님의 작전은 너무 신기했습니다. 모든 군사들이 엿새 동안 매일 한 바퀴씩 성 주위를 도는 것입니다. 성을 돌면서 발로 찬다든지, 못으로 찍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땅굴을 파라고 하시든지, 밤에 특공대를 보내라고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작전은 너무나 신기합니다. 6절을 같이 읽어 봅시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 나아가라 하고

 

첫째로, 이 전쟁은 말씀을 앞세우는 전쟁입니다. 전쟁을 하는데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돕니다. 1-14절까지 언약궤란 단어가 10번이나 나옵니다. 언약궤는 십계명을 새긴 돌판을 넣어 둔 상자입니다. 언약궤를 앞세우고 돈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앞세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앞세우며 돌 때 하나님이 그 곳에 임재하십니다. 여리고 성이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 말씀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이 훨씬 강하십니다.

우리가 돕는 양들의 마음이 여리고성처럼 강해 보입니다. 너무나 견고해서 좀처럼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앞세우며 나아갈 때 어떤 완악한 마음도 무너져 내립니다. 고린도후서 10:4,5절에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영적 무기는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6:17). 하나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4:12). 하나님 말씀은 바위를 쳐서 부서뜨리는 불방망이와 같다고 했습니다(23:29). 세상에 그 어떤 견고한 사상도, 완악한 심령도, 하나님 말씀 앞에는 무너져 내립니다. 말씀 앞에 굴복합니다. 말씀의 능력을 믿읍시다.

 

작년 여름수양회 특강 강사로 오셨던 안승호 교수님이 계십니다. 전남대 수학과 교수이시고, 호남수학회회장이십니다. 이 분은 형님이 UBF목자셨고, 여러 번 전도했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전공이 수학이라 증명이 되지 않으면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 분의 마음은 논리적인 생각, 수학적 사고 때문에 여리고성처럼 완고했습니다. 그런데 나이 60살이 되었을 때 부부사이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모님이 남편을 의심하자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교수님은 너무 절망해서 교회를 찾게 되었고, 마침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부관계를 회복시켜 주시도록 기도를 했습니다. 그동안 자기 의와 성실로 똘똘 뭉친 여리고성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서 1: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복음이 조금씩 깨달아졌습니다. 수학박사로서 아무리 복잡한 수학문제도 술술 풀었지만 부부관계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말씀 앞에 심령이 녹아내리자, 부부관계가 신기하게 회복되었습니다. 60살이 넘는 나이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받고, 너무 감격해서, 한 달 만에 성경전권을 통독했습니다.

 

교수님이 얼마 전에 신앙간증집을 내셨습니다. <수학자가 찾은 진리> 교수님은 구원의 은혜에 감격해서 누구보다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지금 전남대 기독교수협의회 회장이십니다. 간증집에 후배 교수님이 이런 추천사를 쓰셨습니다. “어느날 혜성같이 나타나신 후 기독교수들의 기도회든, 예배든, 봉사든, 무슨 일이든, 언제든, 어디서든, 항상 계셔서, 든든하고, 유머도 풍부해 그 모습을 뵙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음에 평강이 됩니다얼마 전에는 저희 목자들에게 굴비백반도 사 주셔서 큰 감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바위를 쳐서 부서뜨리는 불방망이와 같습니다. 자기 의와 성실, 수학적 논리로 무장한 여리고성 같은 교수님의 마음도 말씀 앞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왜 예수님은 믿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열심히 전도하고 다니십니다. 사실 우리 자신도 과거에 교만과 이기심 때문에 마음이 여리고성처럼 높고 완악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임했을 때 굳게 닫힌 마음이 열렸습니다. 십자가 복음으로 말미암아 완악한 심령이 녹아내렸습니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151)” 어떤 완악한 마음도 십자가 앞에서 허물어집니다. 어떤 불신과 교만도 예수님의 사랑의 열기 앞에 녹아내립니다. 이번 수양회를 통해서 양들뿐 아니라 우리 리더들의 마음에도 이런 은혜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끝까지 십자가 복음을 앞세우며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이 전쟁은 기도와 찬양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6절을 보면, 여호수아는 제사장들로 하여금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불라고 했습니다. 나팔을 부는 것은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주님을 찬양하며, 기도하는 소리를 기뻐하십니다. 여리고성은 우상에게 제사하는 소리, 음란한 축제의 괴성들로 가득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심히 분노케 했습니다. 제사장들은 이제 나팔을 불며 여리고성 주위를 돕니다. 이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소리, 기도 소리로 성을 포위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찬송과 기도소리를 가장 무서워 합니다. 찬송과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는 파워 쏘스입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9:29절에서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들은 매를 맞고, 옷이 찢기고, 발은 차꼬에 채인 채로 깊은 감옥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한밤중에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열렸습니다. 사람들을 매고 있던 차꼬가 풀렸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유유히 걸어 나왔습니다. 기도와 찬송의 능력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어떤 사람은 문제를 만나면 무조건 이불 뒤집어쓰고 드러눕습니다. 하나님께 원망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상황앞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송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8:28).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며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이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 주십니다(33:3).

 

1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여호수아는 제사장들이 나팔은 불되 다른 말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했을까요? 말이 많아지면 인간적인 소리가 나오게 됩니다. “왜 꼭 엿새 동안이나 돌아야 해?” “왜 모두가 다 돌아야 해? 파트장들만 돌면 안 돼?” “꼭 이 방법 밖에는 없어?” 별의별 인간적인 말들이 다 나올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적인 말, 부정적인 말을 하면 사탄이 역사합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침묵하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수학여행 온 것이 아닙니다. 관광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상황입니다. 이때는 긴장하고 집중해야 합니다. 침묵하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힘있게 외쳐야 합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복음역사 섬기다 보면 짜증나고 힘들 때도 많습니다. 꼭 더운 때 수양회를 해야만 하는가? 34일해야만 하는가? 매번 힘들게 양들을 초청해야만 하는가? 불평이 목에까지 올라와도 참아야 합니다. 이해가 잘 안 되어도 인내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외쳐야 합니다. 찬송할 때는 크게 불러야 합니다. 기도할 때는 소리 높여 부르짖어야 합니다. 메시지 전할 때는 힘있게 외쳐야 합니다. 메시지 들을 때 아멘으로 크게 화답해야 합니다. 그때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십니다.

 

셋째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묵묵히 순종해야만 합니다. 여호수아의 방향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12절을 봅시다. 여호수아는 아침에 일찍 일어났습니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멨습니다. 다른 제사장 일곱은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 섰습니다. 그 앞에는 무장한 자들이 섰습니다. 마침내 성 주위를 돌기 시작합니다. 1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 둘째 날에도 그 성을 한번 돌고 진영으로 돌아 오니라. 엿새 동안을 이렇게 행하니라” ‘엿새 동안을 이렇게 행하니라하루 이틀도 아니고, 엿새 동안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합니다. 그때까지 여리고성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성 주위를 돌다보니 다리도 아프고 피곤합니다. 뭔가 좀 벽에 금이라도 가야 의욕이 생기는데 아무 징조도 보이지 않습니다. 회의가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14b절 말씀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엿새 동안 이같이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방향에 묵묵히 순종했습니다. 인내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매일 매순간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일 양식 먹는 것, 매일 새벽기도 하는 것. 매일 성경 읽는 것. 매주 캠퍼스 올라가 전도하는 것. 매주 안 빠지고 예배드리는 것. 이것이 무섭습니다. 공부를 하든, 운동을 하든, 기술을 배우든. 매일 꾸준히 줄기차게 감당해야 합니다.

 

몇 년 전에 골프선수 신지애 선수가 와서 신앙간증을 했습니다. 이 분은 키가 너무 작아서 스윙하는데 절대적으로 불리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님인데 실의에 빠질 때마다 말씀을 읽어주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신선수는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7천 번씩 스윙연습을 했다고 했습니다. 옆에 누구와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 매일 7천 번씩 스윙연습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인내의 훈련입니다. 그런데 신선수는 이를 묵묵히 감당했습니다. 그때 단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미국여자골프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을 해서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또 우승 상금을 많이 기부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매일매일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매일 양식 먹는다고 성자가 되는가? 매주 전도한다고 꼭 좋은 양을 만나는가? 매일 기도한다고 세상이 바뀌는가? 뭔가 하나님이 번쩍 하고 나타나셔야 하는 것 아닌가? 뭔가 획기적인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저런 생각들이 듭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매일매일 하나님의 뜻에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15,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일곱째 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도니 그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날 뿐이었더라.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사람들이 처음에는 의욕을 가지고 시작하지만 뒤로 갈수록 점점 의욕이 떨어지기 쉽습니다. 특새제도 첫 번째 주, 두 번째 주까지는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참여도가 점점 떨어집니다. “뭐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아닌가?” 그러나 이들은 어떠했습니까? 매일 변함없이 순종했습니다. 15절을 보니까 일곱째 날 새벽에일어났습니다. 마지못해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큰 기대감을 가지고, 순종했습니다. ‘전과 같은 방식으로’ in the same manner. 똑같은 자세, 똑같은 마인드, 똑같은 스피릿으로 순종했습니다. 일곱 번 돌았다는 것은 온전한 순종을 의미합니다. 7은 완전수입니다. 오늘 본문에 일곱이라는 숫자가 많이 나옵니다. 제사장 일곱, 양각 나팔 일곱, 일곱째 날, 일곱 바퀴. 일곱이 네 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순종을 기뻐하십니다. 사무엘상15:22절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순종하면 됩니다. 순종하되 적당히, 순종하는 체 하지 말고, 절대적으로, 마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16절을 봅시다. 마침내 일곱째 날, 일곱 바퀴를 다 돌았습니다. 제사장들은 일곱 양각 나팔을 힘있게 불었습니다. 이때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이때 백성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2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백성들은 여호수아의 방향에 따라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 여리고성아! 무너져라그러자 마침내 성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크고 견고한 여리고성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5절에서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라하셨는데, 그 약속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로서 무엇이 드러났습니까?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드러났습니다. 여리고성은 강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더 강하십니다. 여리고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더 높으십니다. 여리고 성이 위대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더 위대하십니다. “위대하고 강하신 주님. 우리 주 하나님. (할렐루야) 위대하고 강하신 주님. 우리 주 하나님. 깃발을 높이 들고 흔들며 왕께 찬양해. 위대하고 강하신 주님. 우리 주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 나올 때 하나님은 홍해바다를 가르셨습니다. 이제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는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셨습니다. 홍해사건 때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것은 별 것 없습니다. 하나님의 방향에 순종한 것 뿐입니다. 출애굽기14:16절에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령하셨고, 모세는 순종했습니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었습니다. 그때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여리고성도 백성들이 순종해서 돌았을 때 마침내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은 순종을 기뻐하시고, 순종한 자를 통하여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체험하길 기도합니다.

 

1980년대 우리 자매 선교사님들이 캐나다에 선교사로 많이 나갔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영어가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아무리 명문대를 나와도 영어회화는 많이 부족했습니다. 더구나 선교사님들은 대부분 고졸 출신이었습니다. 초등학교만 나온 분도 있었습니다. 이때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마가복음 9:23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말씀 붙들고 영어에 도전하도록 방향을 주셨습니다. 중학교 1학년 영어교과서부터 고등학교 3학년 영어교과서까지 매일 한과씩 외우도록 방향을 주었습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저녁에 돌아와서 영어를 외웠습니다. 매일 시험보고, 틀리면 벌금을 물었습니다. 너무 무식하고 무모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선교사님은 단순하게 순종했습니다. 그렇게 2, 3년 했을 때 우리 선교사님들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게 되었습니다. 그 잘나고 똑똑한 캐나다 대학생들이 한국 자매 선교사들과 말씀을 공부하고 회개하고 복음을 영접했습니다. 그 현지인 목자들이 지금 목자가 되고 성경선생이 되어서 캐나다 역사를 계승해 가고 있습니다. 제가 5년 전에 캐나다 워털루 UBF에 갔는데 Andy Stumpf 목자는 대학에 철학과 교수였습니다. 현지인 학생이 우리 한국 선교사님과 성경공부를 하고 철학과 교수 목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상식과 이성을 초월한 믿음의 역사요,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찬송합니다. 하나님을 믿읍시다. 믿고 순종합시다.

 

우리 앞에는 여러 종류의 여리고성이 버티고 있습니다. 가까이는 여름수양회 초청역사가 있습니다. 직장 구하는 것이 여리고성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목표 학점을 얻는 것, 크고 작은 가정 문제, 직장 문제들이 여리고성처럼 보입니다. 좀처럼 변화되지 않는 우리자신의 내면이 여리고성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주님의 방향에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15절 말씀처럼 전과 같은 방식으로매일 여리고성을 도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일 기도하고, 매일 일용할 양식하고, 매일 성경 읽고, 매주 캠퍼스 올라가서 전도하고, 매일 어학공부하고, 줄기차게 사명을 감당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리고성을 무너뜨려 주십니다. “그리하면 무너져 내리리라믿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큰 능력을 체험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