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여름 특강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말씀: 로마서 6:1-23

요절: 로마서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어 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지난 주에는 여름 수양회 천국잔치가 있었습니다. 어제는 조투쟁 목자님과 까따리라 자매님의 결혼잔치가 있었습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삶이 늘 잔치와 같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탄과 치열한 영적인 전쟁을 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사단과의 치열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줍니다. 첫째는 우리 자신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해서는 산자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의의 무기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치열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을 배우길 기도합니다.

 

첫째, 우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로 여겨야합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로마서 5:20절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은혜를 더하려면 죄를 더 지어야겠네요하며 괴변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한 달에 소주 40병을 마시던 김형우 목자님이 변화되어 각 센터와 JBF여름수양회에 말씀강사로 초청을 받아 큰 은혜를 끼친다고 합니다. 더 은혜로운 강사가 되려면 한 달에 50병을 마시면 될까요?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By no means). 그럴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과거 우리는 죄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죄의 종노릇 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죄에서 죽은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죄에 대해서 죽은 것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는 줄 알지 못하느냐”.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죄에 대해서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우리도 함께 못 박혀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끌어 앉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손과 발에 대못이 박히실 때 우리도 함께 못 박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힐 때 우리도 함께 묻혔습니다. 함께 장사되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의 주 책임자로 수배를 받던 유병언 세모그룹 회장이 죽자 더 이상 경찰이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것처럼 죄에 대해서 죽은 우리를 죄가 더 이상 주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젊은 날 마니교 이단과 육신의 정욕에 빠져 살던 어거스틴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한 뒤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과거에 함께 놀았던 여인이 다가와 어거스틴, 어거스틴 왜 요즘 놀러 안 오는 거야하며 손짓했습니다. 어거스틴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여인은 계속 따라오며 어거스팅 왜 그래하며 치근덕거렸습니다. 그러자 어거스틴이 뿌리치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어거스틴은 이미 죽었소그러자 다시는 그 여인이 어거스틴을 유혹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죄에 대해서 죽은 자를 더 이상 죄가 주관할 수 없습니다. 사망이 더 이상 주장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음으로 죄의 호적에서 파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 우리와 놀았던 웹툰, 술과 게임이 다가와 정한 씨, 여호수아 오빠하고 부르면 당신이 알고 있는 과거 최 정한은 죽었소, 윤 여호수아는 죽었소선언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 이상 쫓아오지 못합니다.

 

4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심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와 함께 살아났습니다. 8절에도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아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살아난 것입니다. 그럼 무엇을 위해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일까요? 4b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우리의 옛 생명은 죄와 사단에게 종노릇하던 생명이었습니다. 어둡고 지저분한 생명이요, 비실비실한 병든 생명이었습니다. 죽은 생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옛 생명은 죽고 새 생명으로 태어났습니다. 빛된 생명으로 태어났습니다. 요한복음 1:4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말씀합니다. 앞머리를 내리고 어둠에 살던 황아라 목자님이 이젠 환한 빛이 되었습니다. 이방의 빛이 되었습니다. 왕따 당하고 게임에 빠져 어두운 인생을 살던 남요한 형제가 친구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스피릿 넘치는 댄싱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새 생명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어둠의 옛 생활을 벗고 빛 된 새 생명 가운데 살도록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은 것입니다. 이 시간에 옛 생활을 벗고 새 생명가운데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인가요? 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예수님과 연합되었기 때문입니다. 연합은 남녀가 하나가 되어 가정을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5:31,32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합니다. 브리스길라 목자가 저를 처음 보았을 때 시커먾게 병든 부담스런 비호감형 시골 아저씨였다고 했습니다. 저는 직업도 없이 풀타임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복도를 지나가다 목자님이 불러 엄겹결에 브리스길라 목자와 정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아침마다 발효 요구르트에 견과류와 블루베리, 꿀을 얻어먹고 건강한 새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중충한 옷을 벗고 칼라풀한 옷으로 단장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병들고 직장도 없는 저를 NO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이렇게 같은 죄인들끼리 연합하여 사는 것도 신비스럽고 축복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연합하여 살고 있습니다. 이 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이 보다 더 신비스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과거 우리는 간음하다 잡힌 여인과 같았습니다. 머리를 풀고 괴성을 지르는 귀신들린 자와 같았습니다. 이런 자들을 하늘나라 황태자 되신 예수님께서 신부로 맞아 주신 것입니다. 우리와 연합해주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죄의 종에서 하늘나라 황태자, 황공주가 되었습니다. 발효 요구르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영혼과 골수까지 윤택케 하는 made in heaven표 생명의 양식을 날마다 먹고 살고 있습니다. 기쁨이 넘치고 생명력이 충만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가정의 상처로 거미줄에 걸린 먹이 감 같던 강은혜 목동님이 황공주가 되어 댄싱을 하며 행복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인 모습입니다. 이 시간 허물지고 비천한 죄인들을 신부로 맞아 연합해주신 예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립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하여 황공주 황태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옛죄악된 습성 때문에 새 삶이 어색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옛 생활로 돌아가도록 사단이 부추깁니다. 이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 같이 11절을 큰소리로 읽겠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니라”. 여기서 여길지어다(count)가 중요합니다. 자신을 어떻게 여기느냐에 따라 삶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옛날, 한 호랑이에게 사랑스런 새끼 호랑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힘이 없고 연약한 새끼 호랑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빠 호랑이에게 아빠 왜 나는 형제들과 달리 이렇게 힘이 없고 비실비실한 거야 나 아빠 새끼 맞아하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빠는 응 너는 내 사랑스런 새끼란다하며 안아 주었습니다. 그 뒤에 또 새끼 호랑이가 다가와 아빠 왜 나는 고양이보다 힘이 없어 정말 호랑이 새끼 맞아반복해서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빠 호랑이가 야 이 개 새끼야 아빠가 호랑이 새끼라고 말하면 그런 줄 알어하며 호통을 쳤답니다. 자신을 호랑이로 여기지 않을 때 아빠에게까지 개 새끼 취급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호랑이 새끼로 여긴 다른 호랑이 들은 동물의 왕으로 폼을 잡고 살았을 것입니다.

출애굽기 19:6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말씀을 주십니다. 이 말씀은 너희는 노예백성이 아니라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이다는 말씀입니다. 노예 백성을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신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요 은혜입니까? 그러므로 자신을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여기고 그에 맞는 품위 있는 생활을 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배가 좀 고프거나 길이 험하면 애굽에서는 실컷 고기 얻어먹었는데..., 축제도 구경 다녔는데...’ 하며 과거 애굽의 노예로 다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들은 몸은 출애굽하였지만 내면은 아직 출애굽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통해서 400년 동안 몸에 벤 노예근성을 빼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내면성을 갖도록 훈련하셨습니다.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여기도록 훈련하신 것입니다.

사랑스런 자녀들이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사는 모습을 보면 부모는 뿌듯합니다. 그런데 못된 친구들 따라다니며 과자 사주고 굽신 거리며 쪼다처럼 살면 속에서 불이 납니다. 과거 우리가 죄에게 얻어맞고 굽신거리며 종처럼 살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신 창조주 하나님은 속에서 불이 났을 것입니다. 한번 발 딛은 조폭세계에서 나올려면 손가락 몇 개를 잘라야 내 보내준다고 합니다. 한번 들어간 죄의 세력에서 나올려면 죽어야만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 대신 죽게 하신 것입니다. 6절을 보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의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죄에서 나와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황태자 황공주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죄의 세력으로 들어가려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죄의 소욕 때문에 죄를 짓더라도 나는 죄에 대해서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자로 여겨야 합니다. 죄에게 나가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가면 하나님은 사랑스런 아들로 영접해 주십니다. 우리는 날마다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자로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 죄의 세력을 이길 수 있습니다.

 

둘째로, 나의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1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같은 칼이라도 일급요리사 손에 들어가면 맛있는 스시를 만들어 내는 명품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조폭에게 들어가면 흉악한 살인 무기가 됩니다.

이처럼 우리 자신을 누구에게 내어 주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을 죄와 율법에 내어줄 때 예수님을 믿는 자를 잡아 죽이는 불의의 무기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셋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때 생명을 살리는 의의 무기가 되었습니다. 아시아로부터 유럽까지 수많은 나라에 생명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병자들이 낫고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요즘 북한에서 실험하는 핵폭탄 하나면 1,000만 서울 시민을 한 번에 죽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한 도시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 대륙을 살리는 핵폭탄 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1990년 초반에 평양 시장 상인들을 갈취하고 폭행을 일삼던 김익두란 청년이 여 선교사가 건네 준 전도지에 적힌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는 말씀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는 죄에 내주었던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럴 때 1950년 인민군에 의해 순교를 당하기 전까지 150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28천번의 설교를 하고, 2만 여명의 병을 고쳤습니다. 목회자 300명을 키워냈습니다. 사람을 때리며 갈취하던 망나니가 평양과 서울, 전국 방방곡곡에 다니며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의의 무기가 되었습니다. 기숙사에서 밤마다 친구들을 불러 화투치고 술 먹고 수업에 빠지던 불안당과 같던 기숙사 논팽이 클럽 회장 김대환 형제가 회개하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때, 야간 방위 근무가 끝나면 바로 캠퍼스로 나가 복음을 전하는 열정적인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전남대 양뿐만 아니라 조선대, 과기원양까지 동분서주하며 섬기는 영향력 있는 개척비전파트의 파트 장 김엘리사가 목자가 되었습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면 이처럼 생명을 살리는 의의 무기가 됩니다. 핵폭탄 보다 더 위력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13b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 자신을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난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고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우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라 합니다. 여기서 드리다‘offer’로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길 원하십니다. 저희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처럼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의의 무기로 드릴 수 있길 기도합니다.

 

저도 과거 죄의 종으로 살다 만성간염에 걸려 아무것도 못하는 죽은자와 방불한 자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죄에 대해서 죽고 하나님께 대해서 살아났습니다. 저에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처럼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저는 이번 여름수양회 3명의 양을 초청하고자 기도하고 도전했습니다. 1달 전 부터 법학전문대학 직원과 통성명하고 점심을 사주며 관계성을 맺었습니다. 생전 전화 한번 않던 목포 조카도 찾아갔습니다. 34년 후배인 교육학과 1학년 학생을 1학기 동안 식사하며 관계성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수양회 초청했습니다. 하나같이 가겠나이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것 같아 신이 났습니다. 그런데 수양회 날짜가 임박하자 허리 아프네, 감사준비 해야하네일치하여 사양했습니다. 전날 저녁까지 오겠다던 교육학과 후배가 새벽 1시가 넘어 못 가겠나이다카톡을 보내왔습니다. 새벽에 잠을 설치며 장시간 전화로 강권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일대일 한 번도 사양한 적이 없던 김욱동 목동이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이번 수양회는 못 갈 것 같다고 했습니다. 뒷 통수 얻어맞는 충격이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3시간동안 2년 반이나 알고 지낸 인연을 생각해서 같이 가자며 설득했습니다. 착한 욱동 목동이 가겠다고 했습니다. 라이프소감 쓰는 것을 부담스러우면 대신 로마서 8장을 암송하고 수양회 가자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8장을 다 암송하고 수양회에 참석했습니다. 저는 살아있고 활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 양의 영과 혼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서 예수님을 만나길 기도하고 기대했습니다. 수양회 셋째 날 버림받으신 예수님 말씀 후 저는 수양관 3층 도서관에 혼자 앉아있는 욱동 목동에게 찾아가 떨리고 긴장되는 목소리로 은혜 좀 받았는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직도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님을 믿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로마서 8장까지 암송시켜 갔는데, 하나님 저는 할 만큼 다했습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세요순간 하나님께 서운함과 원망스런 마음이 푹 올라왔습니다. 수양회 올 때부터 하나같이 싫다며 사양하는 양들로 심히 지쳐있었습니다. 매년 여름수양회 때마다 힘겹게 데려간 양과 리더들이 떠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나 내심 조바심이 있었습니다. 이젠 주말에 불량품 파는 잡상인처럼 취급하는 과기원학생들 대신 오기만 하면 반갑게 맞아주는 늙은 부모님을 찾아가 고추도 따 주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더 들었습니다. 예수님 말만 하면 못 들을 것이라도 들은 양 고개를 돌리는 양들에게 더 이상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이런 제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네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라 네 지체를 의의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우리 주님은 죄의 종이었던 저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온 몸이 채찍에 맞아 마치 불판에 구워진 스테이크자국처럼 시커먾게 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하나님께 버림받는 고통을 참으셔야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제가 죄에서 해방되어 새 생명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병들고 쓸모없는 자가 생명을 살리는 의의 무기의 축복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만 제 마음대로 안 되거나 힘들면 주님을 원망하고 서운해 하는 자입니다. 주님께 무엇인가 많은 것을 드리고 도와주는 사람처럼 행합니다. 제가 주님의 대속의 사랑을 잊고 이기적인 본성대로 행하고자 한 것을 회개합니다. 제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주님처럼 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길 기도합니다. 의의 무기로 살길 기도합니다. 배반한 제자들을 찾아가 섬기신 예수님처럼 다시 일치하게 사양한 양들을 찾아 돕길 기도합니다. 수양회 후 약속 시간에 나오지 않은 후배에게 부담주어서 미안했어요카톡을 보냈습니다. ‘저도 약속시간에 나가지 못해서 죄송했습니다답변이 왔습니다. 보강 수양회에 초청하여 생명의 말씀을 듣도록 돕길 기도합니다.

욱동 목동의 마지막 강의 소감을 들으면서 그의 내면에 죄 사함 받고 거듭나고자 하는 소원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책을 많이 읽는 양입니다. 그가 읽은 니체의 짜라투스라가 이렇게 말했다는 책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데 조금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욱동 목동이 짜라투스라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믿고 생명을 살리는 의의 무기가 되길 기도합니다.

 

17, 1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본래 죄의 종이었던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이 종이 된 것이 최고의 감사제목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서신 서에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평생 죄의 종으로 불의의 무기로 살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을 죄에서 해방시켜 생명을 살리는 의의 종이 되게 하신 것에 감사 찬송을 드립니다.

이처럼 죄에 종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는데 다시 우리 자신을 죄에게 내주면 안되는 것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죄악의 온상인 스마트폰에 내주고 있습니다. 이불속에서도 봅니다. 21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우리가 스마트폰과 죄악에 나를 내줄 때 무슨 열매를 맺습니까? 음란과 정욕과 탐심과 방탕과 술취함의 부끄러운 열매를 맺습니다. 벧전 4:3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고 말합니다. 과거 죄의 종이었을 때 지은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도 이런 부끄러운 열매를 맺으면 되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22절을 다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니라”. 이제는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의 종이 되었으니 거룩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우리 지체를 드리기만 하면 거룩한 열매를 맺습니다. 달인 프로그램에 강남 명진사라는 가죽 리폼가게가 나왔습니다. 아무리 헤어진 가방도 갖다만 주면 새것으로 리폼해서 줍니다. 헌옷도 명품 백으로 만들어 줍니다. 우리 자신을 드리기만 하면 거룩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명품 인생을 살게 합니다. 어제 선교가정을 이룬 조투쟁 목자님은 학창 시절에는 별로 열매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자신을 드릴 때 천사도 흠모하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루마니아 영혼뿐만 아니라 유럽 영혼을 먹이는 위대한 선교사가 될 것입니다. 저희는 로마서 6장을 암송하고 있습니다. 말씀 암송에 시간을 드립시다. 스마트폰 보는 시간 절반만 줄이면 암송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없으면 한 엘리야 목자님처럼 운전하는 시간에 암송 할 수 있습니다. 전순기 목자님 1년 기도제목에는 센터 말씀암송행사 적극 참여하기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번에 꼭 참여하길 바랍니다. 우리는 매년 고린도전서 15, 로마서 8, 히브리서 11장을 암송합니다. 저는 이렇게 암송한 말씀이 엄청난 열매라 생각합니다. 어둡고 무기력해지다가도 이 말씀들을 소리 내서 암송하고 나면 집나간 스피릿이 돌아오고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을 체험합니다. 여기다 로마서 6장까지 업그레이드 하면 정말 최고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말씀암송뿐만 아니라 기도와 전도와 섬김 등에 우리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리면 거룩한 열매가 내 외적으로 주렁주렁 맺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는 거룩한 열매를 맺고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는 영생을 누릴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러나 죄에게 종으로 내어 주면 부끄러운 열매만 맺다 장차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23절을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결론입니다. 치열한 사단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먼저 나는 죄에 대해서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해서 살아있는 자로 여겨야겠습니다. 적극적으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거룩한 열매를 맺고 영생을 취하는 인생을 살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