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

                                                            모든 위로의 하나님

말씀: 고린도후서 1:1-11

요절: 고린도후서 1:3,4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린도후서는 바울이 AD 55년경, 마게도니아에서 쓴 서신서입니다. 고린도전서보다 1년 늦게 쓰여졌습니다. 고린도교회에 많은 문제가 있어서,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 문제는 잘 해결되지 않았고, 바울은 다시 고린도교회에 가서 그들을 돕고자 했습니다. 바울의 원래 계획은 고린도에 갔다가 마게도니아에 들러서 다시 고린도로 갔다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고후1:15,16).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교회에 가서 문제를 돕다보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을 것 같아서 가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고린도 성도들 중에 일부는 바울을 의심했습니다. “왜 이랬다 저랬다 하는가?” “뭔가 바울이 숨기고 있는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또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며 반기를 드는 자도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바울은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개척했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양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오해와 비난을 받을 때 바울은 무척 마음이 상했습니다. 또 거짓선지자들이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인해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고린도후서 편지를 썼습니다. 이 편지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분명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거짓선지자들을 엄중히 경고합니다. 복음진리를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바울은 자신의 목자로서의 고뇌와 심정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눈물로 설득합니다. 저희가 고린도후서 말씀을 통해서 복음의 더 깊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또 바울의 목자의 심정을 배워서 더 성숙한 목자들로 성장하길 기도합니다.

 

오늘 1장에서는 바울이 위로의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난과 환난을 많이 겪었지만 그 가운데서 위로의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다 고난이 있고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눈을 들어 모든 위로의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길 기도합니다. 주님의 크신 위로가 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1,2절은 문안인사입니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가 되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누가 뭐래도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그리고 아나니아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9:15)” 하나님은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택하셨습니다. 자기가 이방인의 사도가 되겠다고 지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선택하셨습니다. 때문에 바울은 누가 뭐라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바울은 편지를 쓰면서 처음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우리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요 성경선생이 된 것을 분명히 해야 하겠습니다.

 

또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자신이 개척했기 때문에 내 교회, 바울의 교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시고 하나님이 주인되신 하나님의 교회라고 강조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문제가 많이 있지만 그래도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사신 바 된 하나님의 교회임을 강조합니다. 그들을 진실로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간구합니다.

 

3,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바울은 처음부터 찬송으로 시작합니다. “찬송하리로다현실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대적자들을 생각하면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님을 생각하며 찬송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란 위로가 넘치는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위로는 어원이 파라칼레시스로서 곁으로 부른다’ ‘초청하다그런 뜻입니다. 위로는 낙심해 있는 사람을 곁으로 초청해서 격려해 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로라는 단어가 3-7절까지만 10번이나 나옵니다. 바울이 현실을 바라보면 낙심이 되고 한숨만 나왔습니다. 그러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볼 때 위로가 넘쳤습니다. 모든 위로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찬송이 터져 나왔습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하나님은 환난 중에 있는 우리를 모른체 하지 않으십니다. 불쌍히 여기시고, 깊이 동정하십니다. “그래, 내가 네 맘 안다따스한 심정으로 위로해 주십니다. 주님이 이처럼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이유는 우리 안에 위로가 넘치게 하시고, 또 우리를 통해 환난 당한 자를 위로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5절을 봅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바울은 고난 가운데서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바울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침 뱉음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면류관을 쓰셨습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옷이 다 벗겨진 채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양 손과 발에 대못이 박히셨습니다. 온 몸이 찢어지고 뼈가 으스러졌습니다. 수없이 까무러쳤습니다. 물과 피를 다 쏟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고난을 넘치도록 많이 받으셨습니다. 바울도 고난을 많이 겪었지만 예수님의 고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저렇게 처절한 고난을 겪으셨구나” “나를 위해 모든 고난을 참고 견디셨구나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할 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힘들 때 나보다 더 힘든 일을 당하신 분과 대화를 나누면, 그 자체만으로도 큰 위로가 됩니다. “, 저 분의 고난은 나와는 비교할 수가 없구나” “저렇게 힘든 고난도 참고 견디며 살고 있구나고난을 견디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위로가 됩니다. 하물며 사람의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죽음의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나겠습니까? 특히 예수님은 고난 받고 십자가에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영광스런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히브리서 12:2절은 말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예수님.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신 예수님, 마침내 죽음의 권세도 이기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을 바라 볼 때 큰 위로가 되고 힘이 솟구치게 됩니다. 복음성가에 이런 찬송이 있습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시리.

 

사람들은 힘들 때 친구를 찾아가서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떨면서 위로 받고자 합니다. 드라마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고자 합니다. 기아 타이거스 야구를 통해 위로 받고자 합니다. 그러나 기아 타이거스가 요즘 우리를 낙심케 합니다. 드라마는 신경질 나게 만듭니다. 친구들에게 위로 받고자 하다가 오히려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나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위로를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6절을 봅시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바울은 고난당할 때 고난 중에 있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생각했습니다. 바울이 고난을 잘 견뎌내면 고린도 성도들도 바울을 통해 위로를 받고 고난을 잘 견딜 것입니다. 이를 생각할 때 바울은 고난 가운데서 참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난 속에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고 때가 되면 위로 하시고 반드시 승리를 주십니다. 사무엘상 1장에 보면 한 많은 여인 한나가 나옵니다. 엘가나에게 두 아내가 있었는데, 브닌나에게는 아들이 있고, 한나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특히 브닌나는 틈만나면 한나를 무시하고 괴롭혔습니다. 아들 없는 것도 서러운데 브닌나에게 무시까지 당하니 너무나 괴로워 죽고 싶었습니다. 한나가 울며 음식을 먹지 않고 있으면 남편 엘가나가 와서 위로해 주었습니다.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한나의 슬픔과 한을 남편이 어찌 알리요? 남편이 아무리 추석선물을 브닌나보다 두 배나 많이 주어도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그 마음의 슬픔을 하나님께 나가 토로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마침내 아들 사무엘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사무엘이 나중에 커서 백성들을 옳은 데로 돌이키는 큰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다윗왕국의 기초를 놓는 산파 역할을 했습니다. 한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환난 중에 있는 우리를 버려 두지 않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이번호 UBF 소식지에 보니까 영남 센타에 문페트라 사모님의 간증이 은혜가 되었습니다. 페트라 사모님은 고관절 통증을 앓고 있기 때문에 캠퍼스에 올라가서 전도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서울 동교센타에서 대구를 개척하러 내려갔는데, 개척역사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함께 개척역사를 섬기겠다고 서울에서 내려온 한 목자와 그 동생도 몇 년 만에 떠나 버렸습니다. 3년 동안 성경공부하며 주일예배 사회를 보던 형제도 떠났습니다. 같이 동역하는 유일한 사모님 동역자는 몸이 아파서 역사에 동참하기 어려웠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두 아들도 부모에게 반항하고 죄로 방황했습니다. 페트라 사모님은 실패감과 사망권세에 사로잡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환란 가운데 있을 때 주님께서 요한복음 11:25,26절 말씀으로 위로와 힘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이 말씀을 묵상할 때 위로가 되고 다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아침, 점심, 저녁 세 번이나 반복해서 보고 먹었습니다. 소감도 한번만 쓰지 않고, 세 번을 반복해서 썼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반복해서 눈으로 읽고, 소리내서 읽자, 어두운 생각이 물러가고, 내적인 힘이 생겼습니다. 다시 용기를 내서 매일 캠퍼스에 올라가 양들을 만났습니다. 설문지 받은 양들 200명의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소망스런 양들을 새롭게 일대일과 예배에 나오게 하셨습니다. 짐바브웨 UBF에서 훈련받은 치쿠라 형제를 교환학생으로 보내 주셔서 함께 동역하게 하셨습니다. 양들이 친구들을 데려왔습니다. 부모에게 반발하던 아들들이 수양회 참석해서 은혜를 받고 구원의 은혜가 담긴 시를 써서 주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자 마른 가지에 새싹이 돋아나는 것처럼 소망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저희들도 신입생 신체검사 때부터 줄기차게 캠퍼스에 올라가서, 전도하지만 일대일 하는 양들이 많지 않고, 그나마 일대할 하던 양들이 어느날 갑자기 떠나버릴 때 낙심이 됩니다. 이브리스길라 사모님은 김희연 자매님을 지난 4년 동안 때마다 심방해서 도왔습니다. 이번 여름수양회 때는 바이올린 연주할 때 입으라고 옷까지 사주었습니다. 그래서 수양회때 말씀의 은혜도 받고, 심령이 회복되는 듯 싶었습니다. 그러나 수양회 이후에 부모님의 핍박과 여러 사정으로 또 다시 연락이 두절 되었습니다. 김요나단 목자님은 재작년에 3명의 형제들을 온 마음으로 도와서 파트가 아주 활기찼습니다. 비로서 양없는 목자의 한을 풀게 되었다고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그 세 명이 다 힘들어져서 군대로, 고향으로 흩어져 버렸습니다. 작년에 강명우 형제가 와서 실패를 만회하는가 싶었는데 그 마저도 갑자기 연락을 끊고 군대에 가 버렸습니다.

 

이런 일들을 당하다 보면 너무나 낙심이 되고, 지쳐서 다시 캠퍼스에 올라갈 힘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위로가 됩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소망이 생깁니다. 도망간 제자들을 디베랴 바닷가까지 심방하셔서 다시 회복시키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위로가 되고 새 힘을 덧입게 됩니다. 지난 10년 동안 수없이 업 다운을 반복했지만 마침내 10년 만에 졸업도 하고, 믿음의 가정도 이루고, 이제 선교사로 나가게 되는 조이삭 목자를 볼 때 위로가 되고 소망이 생깁니다. 오늘 워싱턴에서 김요나 선교사님이 왔습니다. 김요나 선교사님도 25년 가까이 업치락 뒤치락을 거듭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기가 막힐 웅덩이에서 건져 내셨습니다. 그리고 사라 브라운 목자와 선교 가정을 이루고 작년에 미국 선교사로 나갔습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 위로가 되고, 어떤 양도 포기치 않고, 멀리 보고 돕고자 하는 여유를 덧입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이제 자신이 고난을 당하여 어느 정도까지 힘들었는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8,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얼마나 환난이 심했으면,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이요,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고 말할까요?

 

고린도후서 11:23-27절에 보면 바울이 당한 고난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정말 바울이 당한 고난을 살펴보면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 보면 크고 작은 고난을 많이 당합니다. 건강문제, 물질문제, 양문제, 자녀들 문제, 인간갈등 문제 등등. 고난이 끝이 없습니다. 도대체 미래가 보이지 않고, 너무나 절망적이어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사형선고를 받은 것처럼 낙심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환난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9b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사람이 살만 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노력과 성실을 의지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너무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되면 내 의지와 성실이 바닥납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기댈 언덕이 없을 때 오직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를 통해 구원의 주님, 부활의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10절을 봅시다.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바울은 그동안 수많은 환난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때마다 그를 건져 주셨습니다. 큰 사망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를 건져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처럼 구원의 주님, 승리의 주님을 바라볼 때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웬만한 고난은 고난으로도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런 고난도 없이 온실의 화초와 같이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큰 사망에서도 건지심을 입고, 이제는 어떤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는 불사조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연단하십니다.

 

올해가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카톨릭의 잘못된 구원관을 지적하며 교황청에 정면 도전했습니다. 구원은 면죄부를 통해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얻는다는 진리를 주장했습니다. 이때 독일의 찰스 황제가 그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으면 사형에 처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는 너무나 두려워서, 살 소망이 끊어지고, 사형 선고를 받은 것처럼 낙심이 되었습니다. 그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고, 생명의 위협 때문에 수염과 머리를 길러서 변장하고 다녀야 했습니다. 그때 루터에게 큰 힘이 되었던 말씀이 시편 46:1-3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이 말씀에 영감을 받아서 지은 찬송이 바로 찬송가 585장입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당하랴.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 밖에 없도다 힘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루터는 위로의 하나님을 통해서 큰 힘을 덧입고 끝까지 영적 싸움을 싸울 수 있었습니다. 거대한 교황청의 위협도 이겨내고 당당히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고난을 만날 때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를 건지시고 승리케 하실 하나님을 굳게 믿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큰 사망에서 건져내사 구원하신 것처럼, 앞으로도 우리를 건지시고, 승리케 하실 것을 믿읍시다.

 

11절을 봅시다.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바울은 개인적으로 위로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고난을 이겨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부탁하고 있습니다. 이로서 모든 성도들이 함께 고난을 이겨내고 승리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중보기도를 기뻐하십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중보기도하면서 다른 사람의 고난에 함께 참여할 수 있습니다. 또 승리도 같이 참여하게 됩니다. 전도서 4:12절에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했습니다. 우리가 남의 고난을 못 본체 하지 말고 힘써 중보기도 해 주므로 피차 힘과 위로를 덧입길 기도합니다.

 

일본의 기독교작가인 미우라 아야꼬는 13년이 넘도록 폐결핵과 척추 결핵을 앓았습니다. 류마티스 관절염까지 겹쳐서 온 몸을 기브스한 상태로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통 가운데서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후 그녀는 자신처럼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중증환자들이 그녀의 편지를 받고 마음에 위로와 용기를 덧입었습니다. 이처럼 남을 위로하고자 기도해주고 편지를 쓰다 보니 마음이 넓어지고 담대해졌습니다. 질병의 고통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글쓰는 은사를 축복하셔서 주옥같은 신앙서적을 많이 쓰게 하셨습니다. 그녀의 자전적 소설인 <빙점>이나 <양치는 언덕> <길은 여기에> <빛이 있는 동안에> 등은 지금도 세계 각 곳에서 스테디 셀러입니다. 우리도 서로를 위해서 중보 기도해 줌으로서 힘께 고난을 이겨 나가고 우리 안에 감사와 승리가 넘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사도바울은 고난 중에서 위로의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자신이 받는 고난이 오히려 성도들에게 위로가 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이로서 바울은 고난을 소망으로, 찬송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고난을 많이 만납니다. 이때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위로의 주님을 바라봅시다. 십자가에서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 죽음까지도 이기고 승리하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고난 받고 있는 형제들을 위해 중보기도 합시다. 이로서 마음에 큰 위로와 소망을 덧입고 힘든 현실을 함께 헤쳐 나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