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2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

말씀: 고린도후서 2:1-17

요절: 고린도후서 2: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오늘 말씀에서는 바울이 왜 고린도교회에 간다고 했다가 안 가게 되었는가? 그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 신자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 용서하고 위로하라(1-11)

 

1:23,2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바울은 자신이 고린도에 가지 않는 이유가 무슨 꿍꿍이 속이 있어서가 아니라 고 말합니다. 오히려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사랑하고 아꼈기 때문에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에 많은 문제가 있었고 바울이 직접 가면 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서로 상처받고 분란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바울은 가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양들의 문제를 자기 맘대로 주관하는 자가 아닙니다. 그들의 기쁨을 돕는 자가 되기 원했습니다. 그들이 또 믿음에 서 있기 때문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것을 믿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가는 대신 편지를 썼습니다. 이 편지를 가리켜 눈물의 편지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와 후서 사이에 이 편지가 전달되었습니다. 바울이 왜 눈물의 편지를 썼을까요? 2: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생각할 때 마음이 눌리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눌리지도, 걱정되지도 않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친자식처럼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의 문제를 모른체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문제로 양들이 실족할 것을 생각하면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은 문제있는 양들에게 무조건 회개하라고 다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문제를 하나님께 들고 나가도록 눈물로 권면했습니다. 바울이 눈물의 편지를 쓴 이유는 그들을 근심케 할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들을 향한 넘치는 사랑을 나타내고자 썼습니다. 예전에 <눈물로 쓴 편지>라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눈물로 쓴 편지는 읽을 수가 없어요. 눈물은 보이지 않으니까요. 눈물로 쓴 편지는 고칠 수가 없어요. 눈물은 지우지 못하니까요. 눈물로 쓴 편지는 부칠 수도 없어요. 눈물은 너무 빨리 말라 버리죠. 눈물로 쓴 편지는 버릴 수도 없어요. 눈물은 내 마음 같으니까요

 

부모가 자식을 키우면서 많은 눈물을 흘리듯이 목자는 양들로 인해 많은 눈물을 흘립니다. 양들을 향한 사랑과 관심이 눈물로 나타나게 됩니다. 양들은 목자의 눈물을 통해 감동을 받고 변화됩니다. 사도행전 20:31절에 보면,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섬길 때 삼 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했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5:7절에 보면 예수님도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자체가 우리 인생들을 향한 하나님의 눈물의 편지입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 멋대로 살고 있는 인생들을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 눌림과 사랑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십자에 내어 주셨습니다. 영화 <Passion of the Chirst> 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운명하실 때 하늘에서 큰 물방울이 땅에 떨어집니다. 그 물방울은 하나님의 눈물을 상징한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눈물 때문에 완악한 우리 죄인들이 회개하고 거듭난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눈물의 편지를 보고 마음이 동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등을 돌렸던 사람들이 마음을 돌이키게 되었습니다. 6절을 봅시다. 6절을 공동번역으로 보면, “그 사람은 이미 여러분 대다수의 사람에게서 상당한 벌을 받았으니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가 있던 사람들이 치리를 통해 어느 정도 징계가 내려졌습니다. 그들은 그에 상당한 벌을 받고 근신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7,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그 사람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회개하고 징계를 받았으면, 이제 그를 용서하고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죄의식 때문에 그가 눌리게 됩니다. 근심에 잠겨서 교회에 나오기 어렵게 됩니다. 상처가 깊어지고 실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사랑을 나타내라고 권면합니다.

 

교회는 두 가지 속성을 잘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는 거룩성이요, 또 하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에 대해서는 징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또 하나님을 사랑이시기 때문에 회개한 자에 대해서는 용서와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특히 문제를 일으켰다가 회개한 자를 용서하고 적극적으로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도 같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그 사람의 문제만 지적하고 용서하지 않으면 양들이 잘 자랄 수 없습니다. 자의식 때문에 눌려서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적극적인 용서와 사랑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10,11절을 새 번역으로 보면 이렇게 됩니다. “여러분이 누구에게 무엇을 용서해 주면 나도 용서해 줍니다. 내가 용서한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 앞에서 여러분을 위하여 용서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가 사탄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속셈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회개했는데도 용서하지 않으면 사탄이 역사하게 됩니다. 교회가 그 사람을 용서하고 적극적으로 사랑해 주면 그 사람은 위로를 받고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정죄하고 비난하면 눌려서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사탄이 역사해서 교회가 분란에 휩싸이게 됩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사탄입니다. 사탄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용서하고 사랑을 베풀어야만 합니다.

 

삭개오는 세리로서 당시에 모든 사람들에게 정죄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한번 세리는 영원한 세리라고 생각하고 그를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삭개오를 용서하시고 적극적으로 영접해 주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19:5)” 그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이 삭개오의 마음을 완전히 녹여 버렸습니다. 그는 급히 내려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이 삭개오를 새 사람되게 하였습니다.

 

바울도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 때문에 변화된 자입니다. 그는 과거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로서,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가두던 악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를 심판하지 않으시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26:14)” 이 예수님의 긍휼과 사랑이 완악한 사울의 마음을 녹였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율법주의자 바울이 변하여 눈물의 편지를 쓰는 목자로 변화되었습니다. 로마서 5: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했습니다. 우리는 내가 일만 달란트 빚진 죄인인데 일방적인 사랑으로 용서받은 자인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복음역사 섬기면서 피차간에 상처받은 것이 있었을지라도 적극적으로 용서하고 사랑하고 위로하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번 추석 기간에 부모, 친척간에 맺힌 것도 다 풀고 먼저 용서하고 사랑을 베풀길 기도합니다. 그래야 사탄이 역사하지 않고 전도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니(12-17)

 

12절을 봅시다. 12,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바울은 자신이 직접 고린도로 가는 대신 디도를 보냈습니다. 디도가 고린도교회 소식을 가지고 오면 드로아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드로아에 가보니 복음의 문이 열려서 전도할 좋은 분위기였습니다. 다른때 같으면 바울이 열심히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영 의욕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디도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마음은 고린도교회 소식에 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디도가 오는 것이 지연되자 마게도냐로 건너갔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디도를 만나 고린도 교회 소식을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얼마나 고린도 교회 문제로 인해 얼마나 노심초사 했는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어떤 리더나 양과 관계성에 문제가 있으면 무슨 일을 해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만나서 관계성을 회복해야 마음이 편하지,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아서 집중 할 수가 없습니다. 주일예배나 수양회때 꼭 와야 할 양이 오지 않으면 말씀이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자꾸 눈이 출입구 쪽으로 갑니다. 목자의 애간장이 탑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문제로 인해 이처럼 노심초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울과 고린도 성도들 간의 관계성 보다도, 고린도 성도들이 복음진리에서 떠날까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을 의심하면 바울이 전한 복음도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면 거짓 선지자들이 득세하고, 고린도 성도들은 실족하게 됩니다. 어린 양들이 사탄의 밥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처럼 노심초사하면서도 믿음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의 확신이 어떠합니까? 1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반드시 이기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아무리 거짓선지자들이 불신을 심어도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죄문제를 확실히 해결하셨습니다.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하시므로 사탄의 머리를 박살내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주의 주, 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고린도교회의 문제도 능히 해결하시고 승리를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또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각처에 나타내실 것을 믿었습니다. 고린도 지방에는 각종 거짓 사상들, 율법주의, 인본주의, 신비주의들이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소피스트들의 영향 때문에 말쟁이들이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런 인간적인 냄새에 묻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힘을 쓰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냄새가 승리해서 결국은 온 세상을 뒤덮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바울은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에서는 군대가 승리하고 돌아오면 승리의 퍼레이드를 벌렸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이전에 어떤 선수가 세계대회에서 금메달 따고 돌아오면 김포공항에서 시청 앞 까지 카퍼레이드를 했습니다. 광주일고 야구팀이 대통령기 우승하고 돌아오면 금남로에서 카퍼레이드를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신자들이 영적으로 승리하고 그리스도의 개선행렬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로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37절에서 바울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요즘도 복음을 대적하여 높아진 각종 거짓 사상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 우리가 주눅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복음이 승리합니다. 우리의 힘으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힘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제 바울은 우리 신자의 정체성에 대해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15,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당시 로마의 군인들이 승리하고 돌아오면 주피터 신전에서 제물을 바치고 향을 피웠다고 합니다. 그 향기가 승리하고 돌아온 군인이나 가족들에게는 승리의 냄새였습니다. 전쟁터에 나간 아들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은 그 냄새만 맡고도 기뻐했습니다. “, 우리 아들이 이기고 돌아왔구나. 살아서 돌아왔구나그러나 전쟁에 패하고 포로로 끌려온 자들에게는 그 냄새가 사망의 냄새였습니다. 이제 노예로 살다가 죽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향기인데 전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구원을 얻는 자에게는 생명의 향기요, 망하는 자에게는 사망의 향기였습니다.

 

우리 신자는 어떤 자들입니까? 세상 가운데서 예수님의 향기를 풍기는 자들입니다. 이 예수님의 향기가 영적으로 소원있는 자들에게는 생명의 향기로 나타납니다. “, 저 분만 보면 왠지 예수님 냄새가 나. 나도 저 분처럼 예수 믿고 생명을 얻어야지” “제게 성경 좀 가르쳐 주세요말씀공부에 대한 영적 소원이 생깁니다.

 

반면에 죄악된 삶을 사는 자에게는 우리가 사망의 향기가 됩니다. “, 저 사람 때문에 괴로워. 저 사람만 보면 함부로 죄를 못 짓겠어그래서 신자들을 핍박하고 괴롭힙니다. 우리 신자들은 무색무취한 자들이 아닙니다. 분명한 색깔을 나타내고, 분명한 냄새를 풍기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세상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미련하게 볼지라도 우리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십자가의 증인으로서 분명한 정체성과 확신을 가집시다.

 

16b절에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했습니다. 누가 이 귀한 직분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감히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길 수 있습니까? 우리는 과거에 죄로 말미암아 구린내를 풍기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예수 믿고 거듭나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게 되었으니 얼마나 황공하고 감격스런 일입니까?

 

구바나바 목자님은 과거에 유명한 술꾼으로 대낮부터 술 냄새를 풍기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대학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에 다니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목자요, 성경선생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김요나 선교사는 인생의 실패자요, 낙오자가 되어서 홀애비 냄새를 풍기고 다니던 부담스런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회개하고 돌아 와서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되었을 때 한국 뿐 아니라 워싱턴까지 가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복된 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전한 복음을 듣고 미국영혼들이 변화되어 본국에 와서 선교보고하는 날이 올 것을 믿습니다.

 

이전에 한국 UBF 대표를 하셨던 이사무엘 선교사님께서 아프리카 짐바브웨 선교사로 가셨습니다. 지난 6년 동안 아프리카 양들과 일대일 성경공부를 하시며 한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때 여러 아프리카 양들이 은혜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치쿠라 라는 형제가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술과 마리화나를 너무 좋아했습니다. 치쿠라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술과 마리화나를 배웠습니다. 그는 14살 때부터 마리화나를 재배해서 팔았습니다. 음란물을 다운받아 팔아먹는 1등 죄인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대학에 들어와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말씀공부를 통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그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음을 영접했습니다. 또 갈라디아서 2:20절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변화되어 술과 마리화나를 완전히 끊었습니다. 죄사함의 은혜에 감사해서 6명의 양을 치는 인턴목자로 성장했습니다. 작년에 계명대에 3년 장학생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프리카에서 한국에 선교사로 왔다고 말합니다. 지금 영남센타에서 열심히 외국인 양들과 일대일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입니다. 어려서부터 술과 마약에 길들여진 그를 누가 감당하겠습니까?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인 아버지도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먼저 술과 마약 냄새를 풍기니 아들이 술과 마약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선교사님들이 아프리카 땅에 가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겼을 때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약 판매업자가 선교사로 변화되었습니다. 짐바브웨에 Life 자매라고 있는데 그녀는 작년에 미스 짐바브웨로 뽑혔습니다. 미스 짐바브에가 된 이후에도 꾸준히 말씀공부하고 제자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니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누구도 이 엄청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선교사님들이 먼저 예수님을 만나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고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겼을 때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아름다운 생명의 향기가 날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향기된 직분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먼저 그리스도의 향기를 힘써 맡아야 합니다. 말씀을 깊이 있게 공부하고, 묵상하며, 말씀을 사랑해서, 말씀 속에 담긴 그리스도의 사랑을 내가 먼저 풍성하게 덧입어야 합니다. 그때 내 안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배이게 됩니다. 그 향기가 양들에게 전달될 때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1965년 대학 1학년때 배사라 선교사님을 통해서 성경을 공부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다. 그때 말씀에도 은혜를 받았지만 배사라 선교사님에게서 풍겨 나오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고 감동을 받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50여년 동안 말씀을 공부하고 성경을 열심히 가르치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 향기가 아프리카 영혼들에게도 풍겨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냄새는 숨길 수 없습니다. 담배 피우는 사람은 아무리 양치질하고 은단 먹어도 담배 냄새가 납니다. 고깃집에서 고기 구워먹고 아무리 페브리지 뿌려도 냄새가 잘 가시지 않습니다. 평소에 내가 무엇을 가까이 하는가에 따라서 냄새가 배이게 됩니다. 우리는 캠퍼스에 목자요, 성경선생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힘써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순종하고, 가르치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때 우리에게서 성경냄새가 날 것입니다. 양들이 냄새를 맡고 몰려올 것입니다.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밭에 백합화 예수 향기 날리니. 할렐루야 아멘

 

17절을 봅시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 말씀에 자기생각을 너무 많이 가미시켜서 말씀을 혼잡하게 만들었습니다. 말씀을 자기 이익의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심없이 순전함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사사로운 이익을 구하지 않고 예수님을 전하기 원했습니다. 이로서 온전한 복음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온갖 추하고 더럽고 역겨운 악취가 진동을 합니다. 우리도 이런 세상에 영향을 받아 잘못하면 세상의 죄악된 냄새가 우리 영혼에 배이기 쉽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붙들고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만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향기가 내 영혼에서 묻어나기까지 깊이있게 소감을 쓰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한 사람이라도 붙들고 1:1을 해야만 하겠습니다. 이로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자가 되고,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온 세상에 나타낼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를 통해 생명이 살아나는 귀한 열매가 많이 맺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