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3

                                                                     영광스러운 새 언약의 일꾼

말씀: 고린도후서 3:1-4:6

요절: 고린도후서 3: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에는 바울이 과연 사도인가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바울은 자신이 분명히 사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또 사도의 직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역설합니다. 우리는 때로 성경선생의 직분, 목자의 직분을 소홀히 여길 때가 있습니다. 양들이 잘 변화되지 않기 때문에. 기대만큼 열매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서 새 언약의 일꾼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살펴보고 큰 자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또 이 직분을 기쁨으로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 마음판에 쓴 추천서(1-5)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바울의 대적자들은 바울이 예루살렘교회에서 추천서를 받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사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반론이 무엇입니까? 2a절에서 바울은 너희는 우리의 편지다라고 말합니다. 고린도 성도들 자신이 바울의 추천서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눈물로 도왔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개척자로서, 해산의 수고로 양들을 섬겼기 때문에 누가 뭐래도 그리스도의 사도였습니다.

 

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당시 추천서는 대부분 종이에다 먹으로 썼습니다. 특별한 추천서는 돌판에 썼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추천서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썼습니다.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판에 새겼습니다. 먹으로 쓴 추천서는 지워질 수 있습니다. 돌판에 쓴 것도 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으로 쓰여진 추천서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깨지지 않습니다. 분실될 염려도 없습니다. 때문에 가장 신뢰할 만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에 대해서 확신이 있었습니다(4). 예수님께서 그를 사도로 임명하셨습니다. 사도행전 9:15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예수님께서 직접 그를 사도로 선택하셨기 때문에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사도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 영광이 더욱 넘치는 의의 직분(6-18)

 

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바울은 사도의 직분이 새 언약의 일꾼이라고 말합니다. 구 언약은 하나님께서 출애굽직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언약입니다. 출애굽기 19:5,6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구 언약은 율법을 잘 듣고 지켜야 하는 행위언약입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은혜언약입니다. 구 언약은 짐승의 피로서 언약을 인쳤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예수님의 보혈로 인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드시며 말씀하셨습니다(22:20).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구 언약도 소중합니다. 노예 백성 이스라엘에게 율법이 주어졌기 때문에 죄를 멀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 언약은 한계가 있습니다. 죄를 깨닫게는 하지만, 죄를 없애지는 못합니다. 죄인을 정죄는 하지만, 죄인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구 언약은 사람을 죄의식에 눌리게 합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죄에서 해방시켜, 새사람이 되게 합니다. 로마서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구 언약은 병을 진단해 주는 것 밖에 못 하지만, 새 언약은 병을 치료해 주기 때문에 훨씬 귀합니다.

 

구 언약도 영광스럽습니다. 구 언약의 영광은 모세의 얼굴에 임한 광채와 같습니다(7).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그 얼굴에서 광채가 났습니다. 그 광채가 얼마나 빛이 나든지 사람들이 감히 쳐다 볼 수 없었습니다(34:30). 그러나 그 광채는 시간이 지나자 사라졌습니다. 모세의 영광은 새 모세이신 예수님이 오시기까지만 유효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영광은 영원토록 없어지지 않습니다. 모세의 영광은 예수님 영광의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이요, 영광의 오리지날입니다.

 

구 언약의 직분이 달빛과 같다면 새 언약의 직분은 햇빛과 같습니다. 어두운 밤을 비춰주는 달빛도 영광스럽습니다. 그러나 강렬한 햇빛이 떠오르면 달빛은 금방 사라지고 맙니다. 저의 어머님이 30대에 아이를 업고 밤에 산길을 걸어오고 계셨습니다. 달빛에 모든 것이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저 앞에 한 남자가 칼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어머님은 강도인줄 알고 죽을 힘을 다해 뛰어서 집에 오셨습니다. 나중에 며칠이 지난 뒤에 대낮에 그 곳에 가 보았답니다. 가서 보니 그 사람은 강도가 아니라 비석이었습니다. 희미한 달빛에 비석이 사람처럼 보인 것입니다. 달빛도 밤에는 약간 고맙지만, 해의 영광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새 언약은 태양과 같습니다. 구 언약인 율법이 달빛처럼 희미하게 구원의 길을 제시해 줍니다. 그러나 새 언약인 복음은 태양처럼 확실하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십니다. 햇빛이 에너지를 공급하듯, 복음은 우리를 의롭게 하는 영적 에너지를 공급해 줍니다. 히브리서 9:13,14절에,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했습니다. 새 언약의 중보자 예수님의 피는 우리 양심을 깨끗케 합니다. 속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그러니 새 언약을 전파하는 새 언약의 일군이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마르틴 루터는 의롭게 살고자 수도사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고행을 해도 죄의식에서 자유롭게 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비오는 날 친구와 길을 가다가 친구가 벼락에 맞아 죽었습니다. 루터는 자신도 죄 때문에 언젠가는 벼락에 맞아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구 언약에 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서를 공부하면서 새 언약이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사람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죄 사함의 감격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새 생명을 덧입게 되었습니다. 죄의식에서 벗어나 참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은혜의 복음을 전 세계에 전하는 새 언약의 일군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 언약의 일군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이 복음으로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귀한 직분입니까?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모세는 시내산에서 자신의 얼굴의 광채를 가릴려고 수건을 썼습니다. 이는 백성들이 주목해야 할 것이 모세의 얼굴이 아니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장차 오실 구원자, 메시야를 바라보도록 자신의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얼굴을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18a.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이제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누구나 주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거울을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거울 보면서 수건 쓰고 보는 사람 있습니까? 화장까지 지우고 민낯을 들여다 봅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영광을 바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했습니다. 새 언약의 일군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보는 자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안타까워하는 것이 있습니다. 1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유대인들은 아직도 완고하여서 율법주의의 수건을 쓰고 있습니다. 전통과 율법의 수건에 가려 하나님 영광을 보지 못합니다.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예수님 안에서는 수건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16절을 봅시다.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은 벗겨지리라여기서 돌아가면의 의미는 회개하면그런 뜻입니다. 누구나 예수님께 나아가서 회개하면 수건이 벗겨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과거 율법의 수건을 쓰고 있어서 주님의 영광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가두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수건이 벗겨졌습니다. 아나니아가 안수하자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졌습니다(9:18). 그때 육신의 눈 뿐 아니라, 영의 눈을 떴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참 자유를 맛보게 되었습니다(17).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 탄식하던 그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2)” 외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얼굴에 수건이 벗겨지지 않아서 주의 영광을 보지 못합니다. 교만과 아집, 편견의 수건을 쓰고 있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지 못하고, 구원의 감격을 누리지 못합니다. 저는 지난 추석연휴 기간에 예수는 역사다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실화에 기초한 영화인데, 리 스트로벨이라는 사람은 유명한 시카고 트리뷴 신문사 기자였습니다. 아내는 교회에 다니면서 얼굴에 수건이 벗겨져서 구원의 감격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도저히 예수님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부활이 영접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신학자, 과학자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합니다. 이를 통해서 조금씩 복음이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가 돌아가십니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서재에 살펴보니 아들의 신문 기사를 전부 스크랩해 두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끔찍이 사랑했건만, 그는 아버지를 오해하고, 미워했던 것입니다. 그가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의 사랑에 눈을 뜬 순간, 그의 얼굴에 수건이 벗겨집니다. 불신과 교만, 편견의 수건이 벗겨지고, 예수님의 사랑에 눈을 뜹니다. 부활도 자연스럽게 믿어집니다. 그후 그는 신문사 기자직을 내려놓고, 목사가 됩니다. 그의 아들도 나중에 목사가 되고, 딸도 신앙서적을 집필합니다. 그의 얼굴만 봐도 주의 영광이 임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18절을 봅시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우리가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수건이 벗겨지고 거울을 보는 것처럼 주의 영광을 대면하게 됩니다.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성화의 영광을 의미합니다. “영광에서 영광으로새 번역에서는 점점 더 큰 영광으로영어성경에서는 “ever increasing glory”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영광은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영광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영광은 날로 더 빛이 납니다. 성화의 영광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영광입니다. 세상에 이 보다 더한 영광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영광이라는 단어가 15번 나옵니다. 사람은 다 영광스러운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단 선수들을 가리켜 영광의 주역들이라고 합니다. 고된 훈련을 거쳐 힘든 시합에서 이겨 금메달을 땄으니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금메달을 입에 물고 시상대에 올라 손을 흔드는 그들의 모습은 정말 영광스럽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 영광이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그 형상이 변화되는 내적인 영광은 아닙니다. 우사인 볼트가 지난 10년 동안 세계 육상계를 주름 잡았습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 8개를 땄습니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10개를 목에 걸었습니다. 금메달을 총 18개를 땄으니 영광에서 영광으로. 영광의 경지에 이르러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8월 런던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사람들은 그의 영광스러운 은퇴식을 보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경기 전날 술파티에 참석해서 새벽 6시까지 술을 마시고 춤을 추었습니다. 다음날 400미터 계주 마지막 주자로 뛰었는데, 갑자기 발에 쥐가 나서 결승점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너무나 안타깝고 부끄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세상 영광이 내면의 형상까지 변화시켜 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가 죄 사함 받고 거듭날 때 우리 형상이 변화됩니다. 우리 목자님들과 양들이 여름수양회에서 말씀의 은혜 받고, 변화되어서 소감 발표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영광스럽습니다. 수양회 끝나고 하산하면 그 영광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말씀 붙들고 투쟁하면 점점 더 영광스럽게 됩니다. ever increasing glory. 이처럼 놀라운 영광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 낙심치 않고 진리를 나타내는 바울(4:1-6)

사도바울은 이처럼 영광스러운 새 언약의 직분을 어떻게 감당했습니까? 4: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바울은 주님의 긍휼로 이 직분을 받았기 때문에 어려움을 만나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는 거짓 선지자들처럼 숨은 부끄러움이나 속임수로 일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지 않았습니다. 양심껏 진리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파했습니다.

 

그런데도 복음이 잘 전달되지 않고 가리어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이 세상의 신은 사탄을 의미합니다. 사탄이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해서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합니다. 사탄은 할 수 있는대로 복음의 빛이 비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이상하게 예배시간만 되면 졸리게 합니다. 말씀 공부할 때 불신과 반발심, 인간적인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옵니다. 이때 사탄의 역사인 것을 알고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예배 때도 일찍 와서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도록, 주를 앙망하는 심정을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때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말씀을 쏙쏙 영접하게 됩니다.

 

5절을 봅시다. 바울은 거짓 선지자들처럼 자기를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님을 위하여 자신이 양들의 종이 된 것을 전파할 뿐이었습니다. 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창세기 1:3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그때 어둠을 가르고 빛이 임했습니다. 태초에 흑암이 깊은 곳에 빛을 창조하셨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새 창조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습니다. 요한복음 1:4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한복음 9:5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말씀하셨습니다. 새 언약의 일군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유명한 모세조차도 하나님의 영광을 바로 보지 못하고 등만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든지 예수님께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볼 수 있습니다. “영광 영광의 주 영광 영광의 주 밝은 그 빛 내게 비추었네 영광 영광의 주 영광 영광의 주 이 세상의 빛은 오직 주 예수라(찬송가84)”

 

이처럼 귀한 영광을 체험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사도바울처럼 새언약의 일군된 직분을 감사함으로 힘써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힘든 양을 만나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줄기차게 영광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주님의 영광을 덧입고 줄기차게 비추이면 혼미케 하는 어둠의 영도 물러갑니다. 언젠가는 그 마음에 영광의 빛이 임합니다. 그 사람이 변화되어서 선교사로 나아가 이방의 빛으로 쓰임 받게 됩니다.

 

 

 

이번 양식책 60페이지에 보니까 원천센타 김승원 목자 간증이 실려 있었습니다. 어느날 한 양을 핏싱해서 즉석 일대일을 했습니다. 말씀공부를 하고 나서 그 양이 기도를 하는데 그렇게 기도하더라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목자님을 만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또 다른 양도 말하기를 목자님을 만난 것이 제 인생의 최고의 복입니다또 다른 양은 목자님을 보면 하나님을 안 믿을 수 없을 것 같아요또 한 양은 목자님을 보면 예수님을 믿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했다는 것입니다. 승원 목자님은 오히려 그렇게 썼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만나서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다는 것이 최고의 행운입니다. 죄와 죽음의 그늘 아래 어둠이 종으로 살았던 내가 어떻게 만나는 사람마다 행운을 주는 목자가 되었을까요? 정말 나는 예수님 만나 복이 터진 사람입니다. 오늘도 캠퍼스에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나를 만나는 것이 행운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한 사람에 복음 전하는 것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빛이 비추이고 그 얼굴에 수건이 벗겨지는 날, “예수님 만난 것이 내게 대박사건입니다그렇게 고백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주님을 우리를 새 언약의 일군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무슨 자격이 있어서, 이 직분을 맡은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의 긍휼로, 이 직분을 받았습니다. 때문에 낙심하지 말고 영광의 복음을 줄기차게 전파해야 하겠습니다. 요즘 전도가 어렵기 때문에, 또 양들이 변화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도 우리를 포기치 않고, 계속해서 영광의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저희도 낙심치 말고 이로서 어둠가운데 있는 자들을 빛으로 인도하는 빛의 사자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