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6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말씀: 고린도후서 6:11-7:11

요절: 고린도후서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에 대한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이 현실에 안주하며 사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의롭게 살고자 애를 쓰다보면 근심하며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시대를 바라보면 근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근심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요, 거룩한 근심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정말 사랑했기 때문에 죄문제를 지적하고 회개하도록 도왔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도록 도왔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영적 상태를 살펴보고 거룩한 영적 고민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이로서 우리 믿음이 한 단계 성장하길 기도합니다.

 

첫째로,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마음을 넓히도록 권면합니다. 11,12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문제가 많지만 그들을 영접하고 사랑했습니다. 문제는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을 오해하고 잘 영접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안타까워하며 권면했습니다. 13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바울은 부모가 자식을 대하듯 자상하게 말합니다. “이제 그만 삐치고, 마음을 좀 열어 주렴. 이 목자의 진심을 알잖냐?” 자녀가 삐쳐서 방 안에 들어가 문 잠그고 나오지 않으면 얼마나 속상합니까? 바울이 지금 이런 심정입니다. 바울은 철없는 고린도 성도들을 다독거리고 있습니다. 7:2절에서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고 권면합니다. 바울은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았습니다. 속여 빼앗은 일도 없습니다. 때문에 바울을 신뢰하고 마음으로 영접해 달라는 것입니다. 7:3a절에 보면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미워서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3b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바울과 고린도 성도들의 관계는 함께 살고 함께 죽는, 동생공사의 관계,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입니다.

 

7:4절을 공동번역으로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전적으로 믿으며 크게 자랑합니다. 우리는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도 큰 위안을 받고 기쁨에 넘쳐 있습니다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전적으로 신뢰했습니다. 그들을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잔소리도 하고, 책망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아무리 힘들다가도 양들을 생각하면 위안이 되었습니다. “내가 니들 때문에 산다. 이 놈들아. 왜 내 마음을 몰라주니?” 바울은 그런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이런 바울의 마음이 우리 인생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최고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바다보다 넓고 하늘보다 높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이 밴댕이 속 알 딱지 같아서, 내 맘에 들지 않으면 쉽게 삐치고, 마음을 닫습니다. 인간 목자에 대해서도 서운한 일이 있으면 마음을 닫고 묵비권을 행사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으니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주님이 허물 많은 우리를 얼마나 많이 용서하시고 영접해 주셨습니까? 그러니 우리도 주님을 마음으로 영접하고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동역자들 사이에도 힘들고 어려운 면이 있지만, 주 안에서 형제 된 자요, 한 배를 탄 영적 동지이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고, 영접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 마다 하나님께로 났도다

 

둘째로, 바울은 혼합주의를 경계했습니다. 14-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앞에서 바울은 마음을 넓혀 동역자들을 영접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넓힌다고 무분별하게 넓혀서는 안 됩니다. 믿지 않는 자들과는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 했습니다. 멍에를 메지 말라는 것은 한 마음 한 뜻이 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혼합주의를 경계한 것입니다. 빛과 어둠이 함께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될 수 있겠습니까? 벨리알은 악마의 왕으로 사탄을 의미합니다. 전도를 위해 양들을 사랑해야 하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역사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당시 고린도에는 악하고 음란한 우상숭배자들이 많았습니다. 이들과 함부로 어울리다보면 순수성을 잃어버리기 쉬었습니다. 그래서 6:17절에서는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7:1b절에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 했습니다.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생명을 걸고 믿음의 순수성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굳게 결심했습니다(1:8). 왕의 금신상에게도 절하지 않고자 결단했습니다. 풀무불에 들어갈 각오를 하고 신앙의 순결을 지켰습니다(3). 다니엘과 그 친구들은 바벨론의 우상문화와 타협하지 않고 목숨 걸고 신앙의 순결을 지켰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펄펄 끓는 풀무불 가운데서도 지켜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지혜와 총명을 10배나 더해 주셨습니다(1:20). 우리가 분명한 자세로 신앙의 순수성을 지킬 때 핍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사 승리를 주십니다.

 

셋째로,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의 중요성에 대해 가르쳐 주었습니다. 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바울은 자신이 눈물의 편지를 써서 고린도 성도들을 근심하게 한 것을 처음에 후회했습니다. 괜히 그들의 문제를 지적해서 관계성이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9절에 보면 오히려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9b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처음에 편지를 받고 근심했겠지만 이를 통해 자신들의 죄를 발견하고 회개했기 때문에 기뻐한 것입니다.

 

죄 문제를 발견하고 회개하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1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우리가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고자 하면 근심하지 않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고자 몸부림 치다보면 근심하게 됩니다. 이게 잘 안되거든요. 사도바울도 근심하며 괴로워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 그의 근심은 세상 근심이 아닙니다. 영적인 근심이요, 경건한 근심입니다. 그가 그처럼 근심하며 고민하고 갈등했기 때문에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25)”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고 갈등하다 회개하면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회개는 아프지만 그 후에는 구원의 축복이 있습니다. 나의 죄 문제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자존심도 상합니다. 마치 환부를 도려내고 수술하는 것과 같습니다. 수술하면 아프죠. 그러나 당시에는 아픔이 있지만 이를 통해 병이 낫고 건강하게 됩니다. 문제가 있는데 가만 두면 병이 심해져서 큰 일 납니다. 아픔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근심하고 회개해야만 합니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 왕을 찾아가서 그의 죄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양의 비유를 들면서 다윗의 간음죄, 살인죄를 분명하게 책망했습니다. 이때 보통 왕 같았으면 근심하기 보다 분노하고 선지자를 죽여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음성으로 영접하고 고통했습니다. 근심하고 괴로워했습니다. 시편 32:3,4절에 보면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한 나라의 왕이었지만 어린아이와 같이 진실되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I have sinned against the Lord)(삼하12:13)” 다윗은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회개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왕으로 계속 사용해 주셨습니다. 그 후손 가운데 메시야 예수님이 탄생되게 하셨습니다. 그는 죄사함의 은혜를 이렇게 찬송했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32:1,2)” 죄로인한 근심과 회개가 있었기 때문에 구원의 감격이 임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유대인들이 마음이 찔렸습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하나님의 아들을 못 박아 죽였느니라베드로 책망하자, 그들은 심히 근심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이때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 구원에 이른 숫자가 3천명이나 되었습니다(2:37-41). 이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가져옵니다. 영적인 근심이 너무나 귀하고 필요한 것입니다.

 

존 비비어 목사의 <회개>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2011년에 올해의 신앙도서로 선정되었습니다. 그 책에 보면, 오늘 본문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얼마나 귀한 열매를 가져 오는가? 자신의 체험에 기초해서 고백합니다. 비비어 목사는 퍼듀 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했고, 하버드대학에 들어가 MBA를 할려고 준비할만큼 엘리트였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심각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십대 시절부터 음란의 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면 정욕문제가 사라질지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음란의 문제는 부부생활에 영향을 미칠 만큼 심각했습니다. 그는 이 죄문제로 인해 심히 근심하게 되었고 어느날 유명한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고백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음란의 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그러자 그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미국에서 자네와 비슷한 죄에 묶여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안다면,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걸세그냥 위로해 주고 돌려 보냈습니다. 우리 UBF 목자님을 찾아왔다면 로마서 6, 8장을 암송하고, 찬송가 268, 예수님의 보혈찬송을 하루에 50번씩 부르며, 한 시간 이상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도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유명한 목사님은 진지하게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존 비비어는 계속해서 근심하다 1년 뒤에 4일동안 금식기도에 들어갔습니다. 자신의 죄가 얼마나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는 악한 죄인가 깨닫고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때 마침내 정욕 귀신이 떠나는 감격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목회자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인생을 바꾸는 회개로 나를 이끌었습니다. 경건한 근심은 회개로, 그리고 회개는 인간의 죄에서 건져내는 능력으로 나타났습니다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거룩한 근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룹니다. 그가 4일 동안 근심하며, 금식하고, 십자가 복음을 붙들고 몸부림치는 기간은 정말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근심을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을 덧입고, 음란의 영에서 자유케 되었습니다. 지금은 전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위대한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요즘 많은 신자들이 별로 영적인 근심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예수 믿고 평안하면 되는 것 아닌가하면서 적당히 죄와 타협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정말 기쁨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3:16-1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책망하십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심령이 부요하여 자족하지 말고, 회개하고 열심을 내라고 촉구하였습니다.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 그렇지 않으면 토하여 내치리라경고하셨습니다. 거룩한 근심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거룩한 근심을 잃어버리면 세상근심에 빠지게 됩니다. 10b절에 보면 세상근심은 사망을 이루게 한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 것인가?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어떻게 하면 더 이뻐질까? 어떻게 하면 탈렌트 누구처럼 될까? 이처럼 세상 근심만 하는 사람은 계속 성형수술하다 선풍기 아줌마처럼 됩니다. 마태복음 19장에 나오는 부자청년은 영생에 대한 소원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말씀하시자 재물이 많음으로 근심하다가 되돌아 가버렸습니다. 그의 근심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아니라 세상근심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야고보서 1:15절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얼마나 귀한 열매를 가져옵니까? 11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영적인 근심은 우리로 하여금 간절하게 만듭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영적성장에 대한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몸부림치며 투쟁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복음을 변증하고자 애를 씁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죄의 세력에 대해서 분노합니다.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생각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말씀을 사모하게 합니다.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게 합니다. 죄를 미워하고 의롭게 살고자 애를 씁니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나게 됩니다. 작은 죄라도 미워하고 의롭게 살고자 몸부림치며 투쟁하기 때문에 내면이 정결케 되는 것입니다.

 

영적 근심이 없는 자는 쉽게 부패합니다. 그러나 영적 근심은 그 사람을 살아있게 합니다. 자기만 살아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리게 합니다. 느헤미야는 나라는 망했지만 바벨론 왕궁의 술 맡은 관원장으로서 얼마든지 특혜를 누리며 적당히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국의 예루살렘 성이 허물어지고, 성문이 불타고, 남아 있는 자들이 환란과 능욕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울며 금식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떨어지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정체성이 무너진 현실로 인해 심히 근심하고 슬퍼했습니다. 그의 근심은 세상 근심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요, 거룩한 근심이었습니다. 그는 영적인 근심 때문에 고국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직접 말을 타고 허물어진 예루살렘성 주변을 시찰했습니다. 그리고 절망 가운데 있는 백성들에게 믿음과 소망을 심었습니다.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2:17)” 그의 거룩한 근심은 백성들의 가슴에 열정의 불을 지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중건하고자 하는 열심을 갖게 했습니다. 결국 모든 백성들이 일어나서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고 전천후로 중건역사에 헌신했습니다(4:17). 그 결과 십 수 년 동안 중단되었던 예루살렘 성 중건역사가 불과 52일 만에 끝났습니다(6:15). 또 에스라가 돌아와 보니 영적인 가치관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근심한 에스라가 결심을 합니다. 에스라 7:10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더라그는 수문 앞 광장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새벽부터 정오까지 집중적으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8:3). 그때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를 발견하고 회개했습니다.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릎 쓰며 회개 자복했습니다(9:2). 이처럼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 등 영적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며 백성들에게 도전했을 때 포로귀환 후에 백성들 가운데 대각성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앞두고 심히 근심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37,38고민하고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하셨습니다.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의 잔을 마시고자 몸부림치며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거룩한 근심을 가지셨기에 십자가를 지실 수 있었고 인류 구속역사가 완성되었습니다.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배사라 선교사님은 캠퍼스에 방황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거룩한 근심을 가지셨습니다. 절망가운데 있는 이들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하는 거룩한 근심을 가지고 캠퍼스 선교에 뛰어 드셨습니다. 이런 우리 선배 목자님들의 영적 근심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UBF운동이 불같이 일어났고 오늘날 우리도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캠퍼스 복음역사도 나 한 사람의 깊은 문제의식과 영적 근심에서 비롯됩니다. 요즘 캠퍼스는 이단들이 득세하고, 학생들은 장래에 대한 걱정 근심 때문에 영적인 소원이 많지 않습니다. 이때 우리가 남의 일처럼 생각하고 뒷짐 지고 있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6:8)” 이는 이사야로 하여금 하나님의 근심에 동참하라는 촉구였습니다. 이때 이사야가 뭐라고 답했습니까? “요나단 목자를 보내세요” “충신 목자를 보내세요. 풀타임이잖아요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이사야가 하나님의 마음을 영접하고, 백성들에게 나아가서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이로서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위대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마음을 품고 캠퍼스 양들을 감당할 영적인 일군들을 간절히 찾고 계십니다. “이단들이 판치고, 죄가 넘실거리는 캠퍼스에 누구를 보낼 것인가?” 이때 우리가 이사야와 같이 대답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가을 수양회에 다가오는데 요회에 데려갈 양이 없습니다. 이런 깊은 문제의식과 영적인 근심을 하게 될 때 우리는 가만 있을 수 없습니다. 간절히 기도하게 되고 어찌하든지 한 양을 초청하고자 애를 쓰게 됩니다. 이전 양들을 연락하고, 심방하고, 돕고자 애를 쓸 것입니다. 그런 목자의 애타는 근심이 한 양을 감동시키고,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가져오게 될 것을 믿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거룩한 근심, 경건한 열정을 허락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와 갱신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너무나 귀합니다. 이런 영적 근심을 우리에게 때마다 허락해 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