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7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말씀: 고린도후서 8,9

요절: 고린도후서 8:7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오늘 말씀의 배경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기근이 들어서 예루살렘 교회를 돕고자 헌금하게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모교회이기 때문에 선교지 교회들이 자발적으로 헌금하고자 했습니다. 이 일에 가장 먼저 앞장 선 교회가 고린도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들이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오늘 말씀을 통해 헌금의 의미에 대해, 헌금하는 자세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헌금이 왜 은혜인가? 헌금의 축복이 무엇인가?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마게도냐 교회들은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교회 들을 가리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이 드로아에 있을 때 환상을 보았습니다. “마게도냐로 와서 우리를 도우라바울은 성령의 방향에 순종해서 마게도냐로 건너갔습니다. 첫 개척지가 빌립보였습니다. 우물가에서 만난 첫 양이 루디아였는데, 그녀의 온 집이 복음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16:15). 바울과 실라가 복음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는데 간절히 기도하고 찬송하자 옥문이 열렸습니다. 그때 자결하려던 간수를 전도해서 그 집안도 세례 받고 신자가 되었습니다(16:33,34). 데살로니가에서는 헬라인과 귀부인들이 복음을 영접했지만 유대인들의 방해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마음밭이 좋았지만 거기서도 유대인들이 소동을 일으켜 오래 있을 수 없었습니다.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들은 이처럼 많은 핍박과 시련 속에서 개척되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많은 고난을 겪으며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때문에 주를 위해 당하는 환난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잘 감당했습니다. 특히 바울이 보낸 빌립보서 서신을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을 것입니다. 빌립보서를 보면 기쁨이란 단어가 14번이나 나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4)” 아마도 빌립보 교회에는 기쁨(조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유조이, 김조이, 박조이, 등등. 이처럼 마게도냐 교회들은 환란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넘치는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또 극심한 가난 가운데서도 풍성한 연보를 드렸습니다. 마게도냐 지역은 땅이 비옥하고 지하자원이 풍부했습니다. 그런데 로마가 지배하면서 값진 자원들을 다 수탈해갔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의 삶은 피폐해졌습니다. 사람이 경제적으로 궁핍해지면 마음이 오그라듭니다.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마게도냐 성도들은 풍성한 연보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3절에 보면 그들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드렸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비교적 잘 살았습니다. 고린도지역이 상업이 성행해서 경제적으로 넉넉했습니다. 그런데도 헌금생활은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볼 때 헌금생활은 경제적인 문제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대한 자세의 문제요, 믿음의 문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도와 다른 두 형제를 고린도교회에 보내서 작정한 헌금을 감당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6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바울은 헌금하는 것을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은혜는 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헌금은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은혜가 아니라 손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왜 헌금을 은혜라고 말할까요?

 

첫째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배울 수 때문입니다. 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예수님은 한없이 부요하신 분이십니다. 본체가 하나님이십니다. 태초에 성부 하나님과 함께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으로, 모든 것을 소유하고, 통치하고, 지배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연약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아기의 모습으로 마굿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자라나셨습니다. 식민지 이스라엘, 그것도 이방의 갈릴리 지역에서 활동하셨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모든 것, 심지어 피 한 방울, 물 한 방울까지 다 쏟고 돌아가셨습니다. 전부를 가지신 분이 전무한 자가 되셨습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분이 가장 비천한 자가 되셨습니다. 가장 부요하신 분이 가장 가난한 자가 되셨습니다. 가장 크신 분이 가장 작은 자가 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그의 가난하심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의 낮아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높여 주셨습니다. 그의 비천함으로 우리를 존귀케 하셨습니다. 그의 상처로 우리에게 나음을 주셨습니다. 이사야서 53: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우리는 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헌신으로 말미암아 큰 은혜를 받습니다. 병든 내면이 치유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예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기적만 베푸셨다면 우러러 보기는 하지만 은혜가 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예수님을 통해 은혜를 받은 이유는 그의 희생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신 전적인 헌신과 사랑이 우리를 감동시키고 거듭나게 하였습니다. 헌금은 바로 이 예수님의 은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생명까지 내어 주셨기 때문에 나의 작은 진심을 드려 주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한없이 더 가지고자 합니다. 잠언 30:15절에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는데 족할 줄을 모르고 계속해서 다오 다오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최고부자가 탈세혐의로 감옥에 가 있습니다. 또 다른 재벌 L모 일가는 탈세혐의로 5명의 일가족이 총합 36년의 징역형을 구형 받았습니다. 벌금은 4525억원입니다. 벌금이 그 정도니 횡령액은 얼마나 많겠습니까? 맨손에서 출발해서 100층 건물까지 짓고 그만큼 벌었으면 좀 베풀어야 하는데, 더 가지고자 욕심 부리다가 수치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자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어찌하든지 베풀고 섬기고자 합니다. 지난 828UBF 세계본부 사이트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습니다. “유럽에 한 선교사님이 베네주엘라 UBF를 위해서 10K달러를 헌금하셨습니다요즘 베네주엘라가 정치적으로 아주 불안한 가운데 있습니다. 경찰이 발포하는 바람에 120명의 시민이 죽고, 52000명이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런데 베네주엘라 UBF 목자들이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데모하는 학생들과 군인들에게 다가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110명의 학생과 80명의 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위험을 무릎 쓰고 복음을 전했는데, 어떤 군인은 고맙다며 인사하고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한 유럽 선교사님이 너무나 은혜를 받고, 베네주엘라 UBF를 위해서 1200만원의 구제헌금을 전달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분이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번 시니어 선교사님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힘들게 직장생활하고 있는 30대 후반의 젊은 선교사였습니다. 또 브라질 상파울로에 정노아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그는 순천고를 나와 고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은행에서 근무하다가 브라질 선교사로 나갔습니다. 그곳에서 의류 도매상을 하며 권총강도를 당하기도 하고,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과 극심한 가난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생활이 좀 펴지자 브라질 센타 구입을 위해 1억이 넘는 물질을 헌금했습니다. 얼마나 귀한 분들입니까?

 

아마도 이분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했을 것입니다. 저는 이분들의 인생스토리들을 알고 있습니다. 캠퍼스 시절 죄로 말미암아 방황할 때 주님께서 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캠퍼스 목자요, 성경선생이 되게 하시고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주시고, 천사도 흠모하는 선교사의 인생을 살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물론 선교사의 삶이 마냥 환상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시련과 가난의 아픔도 있었습니다. 현재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유럽의 선교사님은 직장상사의 갑질로 인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브라질 정노아 선교사님은 동역자가 뇌경색으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가난하게 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적극적으로 물질을 드렸습니다.

 

저는 이 소식을 접하고 큰 은혜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은혜는 그 사람이 성공하고 잘 되는 것만이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이 큰 감동이 되고 은혜가 됩니다. 저는 나도 주님께 너무나 큰 은혜를 받은 자인데 내가 얼마나 주님을 위해서 헌신했는가 생각할 때 심히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많은 시련과 가난 속에서도 주님께 기쁨으로 헌신하는 목자님들. 선교사님들을 배워서 더욱더 헌신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는 것도 은혜입니다. 그러나 더 차원 높은 은혜는 예수님의 헌신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내가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면 은혜의 동맥경화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받은 은혜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쌓기만 하면 풍요가 쌓여서 터지게 됩니다. 우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적극적으로 주님께 드리고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길 기도합니다.

 

둘째로, 헌금은 균등케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13,1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지금은 예루살렘 교회가 큰 기근을 당하여 어렵기 때문에 그래도 넉넉한 선교지 교회들이 도와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선교지 교회들이 어려울 때 예루살렘 교회 등 다른 교회에서 도와줄 것입니다. 헌금을 통해서 서로 형제애를 나눌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도 일제시대와 6.25전쟁 후에 서구교회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많은 선교사님들이 오셔서 헌신하셨습니다. 이제는 반대가 되었습니다. 서구의 교회가 황폐하게 되고 영적으로 가난해졌습니다. 반면에 한국과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풍성해졌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다른 나라를 도와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저희 UBF100개국의 2000명의 선교사를 파송했고, 2041년까지 10만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자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UBF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어려운 나라와 지구들을 돕는 구제사역을 감당해 오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와 이디오피아 난민, 남수단과 북한동포를 돕는일, 또 올해는 멕시코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현지인들에게 구제헌금을 전달하였습니다. 저희 광주 UBF는 시온성으로서 끊임없이 개척지구들을 지원했습니다. 대전을 개척할 때는 문짝을 떼어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센타이전과 건축역사도 줄기차게 감당해 왔습니다. 대인동센타에서 금남로 센타로, 산수동센타를 거쳐 중흥동 센타부터 건축을 시작하였습니다. 그후로 조대 백악 센타와 전대 용봉동 센타를 건축하였습니다. 이 역사에 시니어 목자님들을 비롯해서 많은 목자님들이 헌신했습니다. 시니어 세대가 젊은 세대를 위해서 많은 헌신을 하셨습니다. 이제는 주니어 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서 헌신할 때입니다. 헌금은 이처럼 다른 사람을 돕고, 다음 세대를 세우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서로서로 부족함을 보충하고 돕는 사역에 기쁨으로 참여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셋째로, 헌금은 하나님 나라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9: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어떤 사람은 헌금을 가난한 자를 위한 기부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헌금에 그런 기능도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헌금은 하나님 나라 보물창고에 저축하는 것이요, 천국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많이 헌신해서 많이 심는 자는 나중에 많이 거두고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둡니다. 심은대로 거두기 때문에 절대로 손해가 아닙니다.

 

원예학 박사인 구바나바 목자님 말에 의하면 볍씨 하나를 심으면 20개의 줄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한 줄기에는 120개 이상의 열매가 맺힙니다. 그러니까 20×120하면 2400개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한 개만 심었는데 일 년이 지난 뒤 2400개를 거두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신비요, 헌신의 신비입니다. 볍씨 한 개가 아까워서 움켜쥐고 있으면 한 알 그대로 있습니다. 나중에 잃어버리거나 썩어 버립니다. 그러나 이것을 심으면 2400배의 수확을 얻습니다. 헌금의 원리도 이와 같습니다. 내가 주님께 하나를 드렸는데 주님께서는 이를 넘치도록 축사하셔서 2400배로 채워주십니다.

 

9:8절을 봅시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우리 하나님은 째째하신 분이 아닙니다.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시는 분입니다.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시는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내가 주님께 물질을 드려서 희생했는데 하나님이 이를 받으시고 입 딱 씻고 모른체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진심을 받으시고 2400, 아니 만 배로 축복해 주십니다.

 

9:10도 말합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자에게 주님은 씨와 먹을 양식을 반드시 공급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사랑이시라면 왜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자에게 필요한 물질을 공급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주십니다. 넘치도록 공급해 주십니다. 이것은 체험해 본 자만 아는 영적 비밀입니다.

 

지난 주 가을 수양회에서 메시지를 전하신 나베드로 목자님은 중국 선교사로 살다가 본국에 돌아왔을 때 빈털터리였습니다. 이때 주변에 많은 목자님들이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분이 도움을 받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받은 물질도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철저하게 십일조 생활을 하셨습니다. 수능출제위원을 하고 나서 받은 수당도 철저하게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어떻게 해서 생긴 물질이 있으면 액수를 따지지 않고 반드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제가 때로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로 넘치는 연보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정말 넘치도록 갚아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게 하시고, 자녀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쥐가 들끓는 단칸방에서 살았는데, 지금은 열 배나 좋은 집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하나님께 드리는 자, 천국에 투자하는 자가 가장 지혜로운 자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헌금하는 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8: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고린도 성도들은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성도들끼리 사랑하는 것에는 아주 풍성했습니다. 믿음으로 말하면 두 번째 가면 서러울 정도로 믿음이 탁월했습니다. 태산을 옮겨 바다에 던지우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헬라철학의 영향으로 말을 잘하고 지식이 충만했습니다. 성경지식도 아주 탁월했습니다. 전도할 때도 청산유수로 말을 잘 했습니다. 간절함, 즉 열정이 가득했습니다. 매사에 의욕이 넘쳤습니다. 특히 신비로운 은사를 받고자 하는 간절함이 대단했습니다. 이것들이 다 은혜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은혜만이 아니라 헌금하는 은혜에도 풍성하라고 권면합니다. 왜 바울은 자신있게 이 은혜에도 풍성하라고 권면합니까?

 

앞에서 배운 것처럼 헌금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은혜에 동참하게 됩니다. 물질의 주관자가 되신 하나님, 축복주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다른 은혜와 은사들은 추상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헌금생활을 통해서 체험한 은혜는 아주 실제적이고 구체적입니다. 내가 주님을 정말 사랑한다고 한다면 말로만이 아니라 시간과 물질을 드리는 것이 아깝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한 웨슬레는 주머니가 회개하기까지는 진정으로 회개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을 위해서 아무리 베풀고 주어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뭐든지 주고 싶습니다. 집에만 가면 있는 것 없는 것 다 바리바리 싸 주십니다. 더 못 주어서 안달입니다. 이보아스 목자님은 라윤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입만 열었다 하면 우리 라윤이” “우리 라윤이합니다. 평소에는 말이 없는 사람인데 딸 라윤이만 생각하면 말이 많아지고, 얼굴에 미소가 끊이지 않습니다. 아마 우리 송엘리사 목자님도 아들 한일이를 항상 품에 안고 다닐 것입니다. 사랑하면 주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받은 자로서 이 은혜에 동참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한다면 주님께 헌금하는 것이 아깝지 않습니다. 기쁨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헌금하고 헌신하는 분들과 대화해 보면 그렇게 말합니다. “제가 섬길 수 있다는 것이 은혜죠주님께 드리는 것을 큰 기쁨과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왜 나만 이렇게 헌신해야 하는가?” “왜 나만 고생해야 하는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주님의 역사에 쓰임 받게 되어서 얼마나 큰 은혜인가?”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만도 은혜인데 선교사님들을 support하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가?” 이처럼 주님께 드리고 섬기게 된 것을 큰 은혜요, 특권으로 생각합니다. 섬김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기쁨으로 섬깁니다. 이 은혜에 풍성한 사람은 남이 알지 못하는 믿음의 비밀을 간직한 자입니다. 물질을 쌓아 둘 때 얻는 기쁨보다 베풀 때 더 은혜가 크다는 것을 압니다. 사도행전 20:35절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잠언 11:24,25절에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했습니다.

 

이런 자는 예수님의 성품, 즉 섬김과 희생의 마인드를 소유하게 됩니다. 이것은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가장 귀한 자산입니다. 세상에 모든 것을 다 소유해도 예수님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입니다. 반면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해도 그리스도를 얻고 천국을 얻게 된다면 모든 것을 얻은 자입니다. 이 은혜에 풍성한 자는 물질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이 은혜에 풍성한 자는 고린도후서 6:9,10절의 역설적인 진리를 깊이 깨닫게 됩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결론적으로, 헌금생활이 손해가 아니요, 은혜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나를 위해 가난하게 되시고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주신 은혜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피 같은 물질을 드리면서 나를 위해 물과 피를 다 쏟으신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선한 일을 위해 심을 때 이를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헌금생활은 이론으로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직접 실천해 봐야 합니다. 말라기 3:10절에서도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했습니다. 우리가 이 은혜에 동참함으로 영육 간에 우리의 삶을 풍성케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