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9

                          

                                                                     나의 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말씀: 고린도후서 11:16-12:10

요절: 고린도후서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교회 내에 거짓 선지자들은 자기자랑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없는 사실까지 과장해서 자랑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그들의 문제는 양들을 다른 예수, 다른 복음에게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를 가만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잘못되었음을 밝히고, 무엇이 진리인지 알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부득불 자기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자랑은 거짓 선지자들의 자랑과 차원이 달랐습니다. 바울은 무엇을 자랑했습니까?

 

첫째로, 바울은 신앙적인 배경을 자랑했습니다. 2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바울은 자신이 히브리인임을 자랑합니다. 히브리인은 히브리어를 사용할 줄 아는 유대인을 가리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아람어를 썼습니다. 유대인이라고 다 히브리어를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구약성경이 히브리어로 쓰여졌기 때문에 히브리어를 알아야 구약성경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히브리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뛰어난 성경선생이었습니다.

 

또 그는 이스라엘인이었습니다. 이는 택함 받은 선민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혈통적으로 다른 이방인의 피가 섞이지 않는 순수혈통의 소유자였습니다. 바울은 또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의 혈통적 배경과 가문은 누가 봐도 성골 중에 성골입니다. 바울은 또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서 어려서부터 철저히 율법 교육을 받은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습니다(22:3). 바울은 충분히 자랑할 만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습니다. 바울이 이를 자랑하는 이유는 자신을 높이고 다른 사람을 깔보기 위함이 아닙니다. 자신이 전한 복음이 전혀 하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인간적인 배경을 너무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바울은 자신이 고난받은 것을 자랑합니다. 2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거짓 선지자들은 자신들이 추천서를 가지고 있어서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추천서만 가지고 그리스도의 일군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일군의 자격은 예수님의 고난에 얼마나 많이 참여했는가? 하는데 있습니다. 바울은 수고를 넘치도록 했습니다. 다른 누구보다 옥에 많이 갇히고, 복음 전하다가 수없이 얻어맞았습니다.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습니다. 여기서 매는 그냥 종아리 맞는 정도가 아닙니다. 한 대 맞으면 정신을 잃을 정도로 무서운 매질, 피부가 찢어지고, 피가 줄줄 흐르는 살인적인 매질입니다. 또 태장을 세 번이나 맞았습니다. 이고니온에서는 돌로 맞아서 사람들이 죽은 줄 알고 내다 버릴려고 했습니다. 배 타고 선교여행하다가 세 번이나 파선했습니다. 일주일동안 캄캄한 바다에서 표류했습니다.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시내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고, 수고하고 애쓰며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습니다.

 

이런 육체적인 고난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고난도 많았습니다. 28,2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바울에게는 여러 선교지에서 힘든 양들에 대한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왔습니다. 그때 마다 바울은 마음이 눌려서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이들이 사탄의 밥이 되지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했습니다. 누가 연약해졌다는 말을 들으면 같이 약해졌습니다. 누가 실족해서 떠났다는 말을 들으면 애간장이 타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바울은 고난 속에 살았습니다.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항상 고난의 연속이요, 시련이 계속되었습니다.

 

바울은 왜 이런 고난을 자랑합니까? 자신의 고생을 보답받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이런 고난을 통해서 예수님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이 고난의 길이고, 고난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사도인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고난을 받으셨습니까? 예수님의 생애는 고난으로 점철된 인생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지저분한 마굿간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가난한 목수 요셉의 아들로 밑바닥 생활을 하셨습니다. 무시받는 이방지역 갈릴리 사람으로 자라셨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 귀신들린 자, 소외된 죄인들을 섬기시느라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같이 되셨습니다(53:2). 종교지도자들에게 무시와 멸시를 당하셨습니다. 마침내는 가시 면류관을 쓰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침 뱉음을 당하고, 뺨을 맞으셨습니다.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사도바울은 40에 하나 감한 매를 맞았지만, 예수님은 한꺼번에 120대나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여러 번 죽을 뻔하였지만, 예수님은 정말 창에 찔리고, 양 손과 양 발에 대못이 박혀 돌아갔습니다. 그 죽음도 가장 수치스럽고, 처절한 아픔을 수반한 죽음이었습니다. 이사야53:7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의 이런 고난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죄에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는 그리스도의 사도도 고난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9:23)” 그러나 거짓선지자들은 별로 고난을 받지 않았습니다. 고난은 슬슬 피해가고 자기 유익을 구하며, 사람들의 칭찬만 받고자 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양들의 마음을 도적질하는 삯군이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고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는구나(23a)”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증거는 그 사람이 얼마나 말을 잘하는가? 화려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했는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많이 배웠는가? 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 3:10,11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그는 고난을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를 얻고자, 예수님의 부활의 권능을 체험하고자 끊임없이 고난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갈라디아서 6:17절에서 말했습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바울은 자신의 몸에 예수님의 고난의 흔적이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고난 받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일군들로서 고난 받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자랑스럽게 감당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을 배우고, 부활의 영광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주 목요일 국민일보에 실린 탈북민 황수안 씨의 간증을 읽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는 199816살 때 너무나 배가 고파서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습니다. 다행히 한 목사님을 만나서 성경을 공부하고 십자가의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는 요한복음 3:16절 말씀을 깊이 영접하고 예수님을 모르는 고향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다시 북한에 들어갔습니다. 순진한 19살 소년이던 그는 친구들과 그 가족들에게 복음전하다 보안원에게 체포되어 10년 동안 교화소에서 중노동을 했습니다. 하루 8시간 동제련소에서 일하고, 식사는 주먹밥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 쥐, 개구리, 뱀을 잡아 먹고, 쓰레기통을 뒤져서 소똥 묻은 강냉이를 닦아서 먹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힘들어서 작년에 죽음을 무릎 쓰고 다시 두만강을 넘어 중국을 거쳐 한국까지 왔습니다. 그는 때가 되면 다시 복음 들고 북한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가족들 대부분이 영양실조로 죽었습니다. 탄광에서 갱도가 무너져 죽고, 폐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수없이 많이 봤습니다. 그가 온갖 고난 속에서도 죽음을 무릎쓰고 복음을 전하며 예수님을 배운 간증을 읽고, 제 자신이 참 부끄러웠습니다.

 

나도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나름 자부했는데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이 보면, “정신없는 말씀하시네요할까 두려웠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고난의 명상이라는 글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오리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하는 수욕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이 너는 내 이름과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랴!

 

우리는 초대교회 성도들과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이 겪었던 그런 육체적 고난은 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기적인 신세대 양들을 감당하느라 속이 상하고, 애간장이 탈 때가 많습니까? 이것저것 맛있는 것 사주고 섬겨줄 때는 나타나지만, 조금 힘들면 잠적해 버리는 양들로 인해 마음고생을 많이 합니다. 수 년 동안 온 마음을 다해 도왔는데 조금 손해 볼 것 같으면 미련없이 떠나는 양들을 보면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난이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고난을 통해서 고난당하신 예수님, 십자가의 예수님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한 목자 예수님을 배우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마음에 새겨지게 됩니다. 우리가 고난을 사모하고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자랑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셋째로,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자랑했습니다. 11:3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강한 것, 잘난 것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히려 약한 것, 약점을 자랑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다메섹에서 핍박을 피해 도망갔던 일을 회고합니다. 사도행전 9장에서 바울은 예수님을 극적으로 만나 거듭났습니다. 그 후 그는 구원의 은혜에 감격해서 힘써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고자 밤낮 성문을 지켰습니다. 그때 바울의 제자들이 바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내려 007 작전으로 피신시켰습니다. 이것은 바울로서는 부끄러운 기억입니다. 용감하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광주리에 숨어서 도망갔으니 얼마나 창피한 일입니까? 보통 사람 같으면 이런 일들은 숨기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약점도 솔직히 고백합니다. 자신이 그처럼 겁 많은 자였는데 주님이 사도로 사용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한편 바울에게 자랑할 요소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비로소 입을 열어서 자랑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12: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바울은 14년 전에 체험한 신비체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영이 셋째 하늘까지 끌어올려져서 신비한 환상을 보고 계시를 받은 경험을 말합니다. 이것은 범인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신령한 일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입만 열었다 하면 이 일을 자랑할 것입니다. 당시 거짓 선지자들은 자신들의 신비 체험이나 방언 등을 자랑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전서 12,13장에서 장황하게 은사에 대해서 권면했습니다. 너무 요란스럽게 자랑하지 말고 모든 것을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해서 하라고 말했습니다(고전14:12). 그때도 바울은 자신의 신비체험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에 와서, 그것도 거의 끝나갈 무렵, 이것을 말합니다. 무익하나마 부득불 자랑한다고 합니다. 그것도 자신이라고 말하지 않고, 3인칭을 써서 소개합니다.

 

요즘 같았으면 이런 체험을 책으로 써서 출판하면 대히트를 쳐서 돈과 명예를 거머쥘 수 있습니다. <내가 본 천국> 부흥강사로 방송에도 출현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유명세를 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5절을 봅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바울은 입을 다물고 맙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는 약한 것들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6b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했습니다. 바울은 이것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을 신령한 존재로 추앙할까 두려웠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게 됩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사탄의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만둔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역자들 보면 아말감이 금이빨로 변했다느니, 천국에서 베드로를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느니, 별의별 말들을 다 합니다. 처음에는 작게 과장하다가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뻥튀기를 합니다. 거의 소설을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돈 맛을 알게 되면, 막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서 순진한 성도들을 속이고, 자신도 속입니다. 사탄에 시험에 들고 맙니다. 바울은 이 위험성을 알았기 때문에 빨리 그만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신령한 환상과 계시를 봤으니 이제 온 세상을 호령할만한 카리스마를 주셨습니까? 아닙니다. 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하나님은 바울에게 너무나 큰 계시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로 인해서 자칫 바울이 교만해질 수 있기 때문에 육체의 가시를 주셨습니다. 학자들은 이 가시가 안질이다, 간질이다, 말라리아다, 두통이다 말들 하지만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시라고 말한 것을 보면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바울은 너무나 힘들어서 이를 떠나게 해 주시길 세 번이나 주께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은 불가능이 없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 가시를 제거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이를 들어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그가 받은 그 은혜로도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나의 모든 고민을 다 해결해 주시고, 가시도 제거해 주시면, 만사형통하고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할렐루야, 주님의 은혜가 제게 족 합니다감사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부족함 없이 채워주시면 사람이 교만해집니다. 자기를 자랑하고 자고해집니다.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목이 뻣뻣해집니다.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 자리가 없어집니다. 이것은 아주 위험합니다. 주의 종들이 넘어질 때는 부족했을 때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넘칠 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바울에게 가시를 주셨습니다. 수시로 가시를 통해 그를 찌르셨습니다. “바울아, 겸손해야지. 자고하면 안돼이것은 저주가 아니라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차원높은 사랑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때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큰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9b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주님의 능력은 내가 약할 때에 온전히 임하게 됩니다. 내가 강하고 잘나고 부족함이 없으면 불순물이 많이 섞여서 온전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내가 약함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주님 앞에 엎드리면, 주님이 긍휼히 여기시고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찬송가 5852절에 보면 가사가 이렇습니다. “내 힘만 의지 할 때는 패할 수 밖에 없도다. 힘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 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내가 내 힘만 의지해서 싸우면 잘 될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이상하게 일이 꼬이고 패하게 됩니다. 잘 되어도 문제입니다. 그러나 나의 약함을 인정하고 주님을 의지할 때 주님이 날 대신하여 싸워 주십니다. 그때 큰 승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승리의 날에도 나를 자랑하지 않고 주님을 자랑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 비밀을 깨달았기에 약함을 도리어 기뻐했습니다. 여러 약한 것들을 자랑했습니다. 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약한 것, 능욕, 궁핍, 박해, 곤고는 피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고난의 때에 더 강해집니다. 나의 약점을 인정할 때 능력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더 간절히 주님을 찾고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상상할 수 없는 하늘의 지혜와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 지혜와 능력은 세상의 지혜와 능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런 체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도리어 약한 것들, 능욕과 궁핍, 박해와 곤고를 기뻐했습니다. 감사하고 찬송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도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11:38).

 

홍콩의 엔젤라 선교사님은 한국에 있을 때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홍콩에 이민 가서 평범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한국에 왔다가 동생의 초청으로 연희UBF 여름수양회에 참석해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홍콩에 돌아가서 홀로 개척역사를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분은 건강이 좋지 못해서 자주 쓰러지고 뇌수술을 3번이나 받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구원하시고 홍콩에 복의 근원으로 부르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해서 생명을 바쳐 복음역사를 섬겼습니다. 몇 년 전에 홍콩에 사스가 창궐했을 때도 부활신앙을 붙들고, 캠퍼스에 올라가서 전도하고 일대일을 했습니다. 이분은 남편도, 자녀도 없습니다. 건강도 약하고, 모든 면에서 부족합니다. 그런데 엔젤라 선교사님은 약하기 때문에 전폭적으로 예수님을 의지합니다.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기 때문에 혼신의 힘을 다해 기도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엔젤라선교사님께 여전사와 같은 스피릿을 부어 주셨습니다. 이 한 분으로 시작한 홍콩 UBF80명대를 육박합니다. 저는 이 분을 대할 때마다 약할 그때에 강함이라라는 말씀이 실감이 납니다.

 

이다윗 목자님도 갑상선암 수술을 받고, 강직성 척추염으로 인해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수시로 두통이 찾아와서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뜨겁게 기도합니다. 또 자신의 몸을 돌아보지 않고 양들을 섬깁니다. 이로 인해서 오히려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약함은 주안에서 운명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강함을 체험할 수 있는 꼬투리가 됩니다.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가시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건강의 가시, 물질문제의 가시, 인간갈등의 가시, 속 썩이는 자녀들, 양들의 가시등이 다 있습니다. 국가적으로는 미사일을 쏘아대는 북한이 우리의 가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그 가시가 꼭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 가시 때문에 겸손하게 되고, 깨어있게 되고 기도하게 됩니다. 다윗에게도 압살롬 같은 아들이 있었고, 예수님에게도 가룟 유다같은 제자가 있었습니다. 이를 생각하면 우리도 나의 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9.10절을 다시하면 읽겠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결론적으로 바울은 거짓선지자들을 대항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인간적인 것들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것을 자랑합니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약함을 자랑합니다. 이로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온전케 된 것을 자랑합니다. 우리도 나의 약함을 힘써 자랑해야 하겠습니다. 연약한 나를 구원하시고 지금까지 써 주신 주님을 자랑해야 하겠습니다. 가시를 통해 나를 겸손케 하시고 기도를 배우게 하시고 강하게 연단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그때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은혜, 약할 때 강함 되시는 믿음의 비밀을 체험케 하실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