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성탄 1

                                                                            임마누엘

말씀: 이사야 7:1-14

요절: 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오늘 말씀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BC 735경 남유다의 상황은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당시 근동지방의 맹주는 앗수르 였습니다. 앗수르는 새로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즉위하면서 강해졌습니다. 이때 북이스라엘과 아람은 연합해서 앗수르를 대항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남유다에게 자기들과 동맹하자고 압력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남유다의 아하스 왕은 세 나라가 힘을 합해도 앗수르를 이기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친 앗수르 정책을 펼칩니다. 그러자 북이스라엘과 아람이 연합하여 남유다를 침공했습니다(1). 친 앗수르파인 아하스 왕을 죽이고 자기들 말을 잘 듣는 다브엘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고자 한 것입니다(6).

 

오늘 말씀은 이런 정치적 상황 속에서 펼쳐졌습니다. 저 북쪽에는 강력한 앗수르가 침공할 준비를 합니다. 그 밑에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남유다를 침공해서 괴롭힙니다. 이때 아하스 왕과 백성들의 마음이 어떠했습니까?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숲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그들의 마음이 심히 요동했습니다. 너무나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셔서 아하스 왕을 위로하고 안심시키셨습니다.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아람왕 르신과 북이스라엘 왕 베가가 쳐들어왔지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지금은 폼 잡고 난리를 피우지만 곧 힘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7절을 봅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이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하나님께서 막으시면 절대로 그 두 나라가 유다를 정복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손 안에 달려 있습니다.

 

1972년에 북한의 김일성이 호언장담을 했다고 합니다. “반드시 남침 해서 서울에서 환갑잔치를 하겠다당시 이 말을 들은 많은 남한 사람들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습니다. 당시만 해도 북한의 군사력이 남한보다 우월했습니다. 이때 불안을 느낀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이사야서 말씀으로 성경학교를 열어서 학생들에게 믿음을 심었습니다. “김일성은 연기 나는 부지깽이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실제로 김일성은 남침하지 못하고 20년 뒤에 죽었습니다. 4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김일성의 손자 김정은이 미사일을 쏘아대며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도 연기나는 부지깽이에 불과합니다. 두려워하거나 낙심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지켜 보호하십니다. 이 땅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수많은 믿음의 용사들, 기도의 용사들이 있는 한 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세계에 대하여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로 귀하게 쓰실 것을 믿습니다.

 

8,9절을 봅시다.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육십오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망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할 것이며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니라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여기서 머리는 지배를 상징합니다. 르신은 아람왕으로 다메섹을 지배했습니다. 다메섹은 아람의 수도로서 그 나라 전체를 지배했습니다. 르말리야의 아들 베가는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사마리아를 지배했고,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 여러 도시를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나라만 지배하지 남유다 까지 지배하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이 65년 내에 망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65년 후에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정복하고 강제이주정책을 펼칩니다. 북이스라엘의 왕 베가는 호세아에 의해 암살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겁먹을 필요 없습니다. 9b절을 봅시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신지라이는 아하스왕이 하나님을 굳게 믿지 않고 잔꾀 부리면, 굳게 서지 못하고 망한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으면 망하지 않고 굳게 설 수 있습니다. 위기의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굳게 서든지, 두려움 때문에 흔들리다가 망하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아하스 왕은 이때 믿음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주님, 제가 굳게 믿고 굳게 서겠습니다선언하고, 찬송가 546장을 힘차게 불러야 했습니다. “굳게 서리 영원하신 말씀 위에 굳게 서리. 굳게 서리 그 말씀 위에 굳게 서리라그러면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반드시 승리합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믿음이 없어서 우물쭈물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도와주시기 위해 한 가지 제안을 하셨습니다. 11절을 읽겠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하나님께 징조, sign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sign을 보여주셔서 확신을 갖게 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 징조가 어떤 것이든 괜찮습니다. 깊은데서 구하든지 높은 곳에서 구하든지 다 보여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깊은 땅 속에서 지진이 나게 하시든지, 높은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떨어지게 하시든지 다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기드온은 300명만 데리고 메뚜기 떼처럼 많은 미디안 군대와 싸우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징조를 구했습니다. 이슬이 내릴 때 한번은 양털에만 내리고 땅은 마르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또 한번은 땅에만 이슬이 내리고 양털은 마르게 해 달라고 구했습니다(6:37-40). 하나님께서 그 징조를 그대로 보여 주셨고 기드온은 확신을 가지고 싸워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도 징조를 보여주셨습니다. 완악한 바로에게 갈 때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하셨습니다. 뱀의 꼬리를 잡으면 다시 지팡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손을 품에 넣으니 나병이 발하게 하셨고, 다시 손을 넣으니 나병이 낫게 하셨습니다(4:1-7). 아하스 왕도 징조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보여주시고 승리를 주셨을 것입니다.

 

그의 아들 히스기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앗수르가 쳐들어 왔을 때 하나님앞에 나아가 눈물로 기도했습니다(37:1-4).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보라 내가 영을 그의 속에 두리니 그가 소문을 듣고 그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며 또 내가 그를 그의 고국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37:7)” 히스기야가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셔서 앗수르 군대 185000명을 순식간에 죽게 하셨습니다(37:36). 하나님의 말씀은 빈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면 반드시 하십니다. 아하스는 하나님께서 축복을 입에 넣어 주어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하스가 뭐라고 말합니까? 1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아하스는 징조를 구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얼른 보면 겸손해 보입니다. “하나님이 바쁘시고 할 일도 많으신데 저까지 어려운 일 요청하면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랍니다이는 겸손이 아니라 하나님을 무시하는 교만이요, 불신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1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아하스가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지 않고 자기나름대로 하는 것이 더 하나님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기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문제를 가지고 기도해 보라고 하면 잘 듣지 않습니다. “그냥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이건 겸손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이요, 교만의 죄입니다.

 

아하스가 이렇게 교만하게 나오면 그냥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니 알아서 해라. 죽도록 고생 좀 해 봐라그러나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1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주께서 친히 징조를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얼마나 섬세하십니까?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아하스는 지금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몰래 강대국 앗수르에게 손을 내 밀어서 그들의 도움을 청하리라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주며 아부를 했습니다(왕하16:8). 심지어 제사장 우리야를 파송해서 다메섹의 우상 제단을 보고 그 구조를 본받아서 예루살렘에 만들라고 했습니다. 그 우상제단에서 제사를 드리도록 했습니다(왕상16:10-16). 얼마나 가증스럽습니까? 이런 자는 도와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그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친히 징조를 보여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징조가 무엇입니까?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 세상에 이런 징조가 가능이나 합니까? 세상에 어려운 일이 많이 있지만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것은 가장 어려운 징조입니다. 의학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행하시겠다고 말씀 하십니다. 이로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보여주시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함께 하심을 증명해 보이기 원하셨습니다.

 

지금 남유다가 강대국들 틈에서 살아남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입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것처럼 불가능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기적을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의 이름까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 God is with us.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누구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유다와 함께 하실 때 능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앗수르, 아람, 북이스라엘이 위협해도 능히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홍해를 가르고 반석에서 샘물나게 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엇이든 못하시겠습니까?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하실 하나님이라면 불가능이 없습니다.

 

임마누엘.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 이는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약속입니다. 크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천하고 죄많은 우리 인생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임마누엘의 예언은 700년 후에 메시야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서 성취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21-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리아와 요셉은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처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2:6). 그런데 우리 죄인들과 임마누엘하시기 위해서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것도 크고 강한 왕의 모습이 아니라 작고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어떤 작고 연약한 자와도 함께 하시기 위해서. 이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우리 인생들의 상태는 BC 7세기경 남유다의 상태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는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앗수르나 아람, 북이스라엘 군대보다 사탄이 훨씬 위협적입니다. 간교하기까지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범하고 비참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귀신들려 울부짖습니다. 무기력하고 패배적인 인생을 삽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런 우리 인생들과 함께 하시고자 임마누엘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이것이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말씀이신 하나님이 자기를 한없이 낮추시고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함께 거하셨습니다. 잠깐 있다가 가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동거동락하셨습니다. 우리의 슬픔, 아픔, 고뇌와 갈등에 동참하셨습니다. 모든 무거운 인생의 짐을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내가 있어야 할 가장 무서운 형벌의 자리, 수치스런 죄인의 자리. 그 자리에 예수님이 서셨습니다. 옷 벗김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침뱉음을 당하셨습니다. 창에 찔리시고, 대못에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아픔과 수치, 고통과 상처를 직접 담당하셨습니다. 이로서 우리에게는 나음을 주셨습니다.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이 예수님의 임마누엘의 사랑 때문에 죄인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던 사마리아 여인이 사마리아 땅에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6000마리의 떼귀신에 들려 고통하던 거라사광인이 온전하게 되어 데가볼리 지역에 빛과 소금이 되었습니다. 간음하다 잡혀 돌에 맞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여인이 용서를 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는 본래 세리였습니다. 그는 공인된 죄인으로서 누구도 그와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있는 그를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9:9)” 다른 사람은 다 세리인 그를 외면하고 쳐다 보지도 않는데 예수님께서 그를 주목하여 보셨습니다. 그를 불러 주시고, 그와 3년 동안 동거동락해 주셨습니다. 그의 내면에 이기심과 외로움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소망 가운데 제자로 키워주셨습니다. 마침내 그는 12사도 중에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역사의 주역이 되었고, 마태복음의 저자가 되었습니다. 자기 밖에 모르던 세리가 인류의 스승 성마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면 누구든 구원을 받고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임마누엘의 사랑은 외롭고 피곤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인생들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됩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데 아무도 나와 함께 해 주지 않으면 서운하고 화가 납니다. 목자님들이 심방 와 주지도 않고, 전화해 주는 사람도 없고, 카톡에 이모티콘 하나 보내주지 않으면 힘들어지고 싶습니다. 특히 요즘 같은 김장철이 되면 사모님들이 고생이 많습니다. 날씨도 추운데, 김장재료 만들고, 무거운 배추 옮기고, 김장하고 나면,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고, , 다리, 어깨 등 온 몸이 쑤시고 아픕니다.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는 시어머니 명을 받들어 일하는 것도 너무 신경질이 납니다. 이 아픔을 남편이 좀 알아주기라도 하면 나으련만 전혀 무관심할 때 뚜껑이 열릴 것만 같습니다. 친정으로 도망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임마누엘의 주님을 생각할 때 위로가 됩니다.

 

김성결 목자는 군 대채 복무를 위해서 군산에서 떨어져 근무하는 것이 너무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버스 몇 번 갈아타고 광주까지 오는 데만 4시간이 걸립니다. 차비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스트레스를 핑계로 술 마시고. 주말에 예배도 빠지고, 군산 앞바다에 낚시하러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고 매주 광주와서 예배 드리고 진심을 드렸습니다. 순간순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일이 너무 많습니다. 직장상사가 짜증나게 합니다. 오늘은 몸이 좋지 않습니다이처럼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했을 때 순간순간 보호해 주셨습니다. 또 김수산나 사모님과 사랑이 넘치는 일대일을 통해서 많은 은혜와 힘을 덧입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광주로 이직하도록 좋은 직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사장이 노발대발 했지만 일단 도장만이라도 찍어주라고 했더니 엉겹결에 도장을 찍어주고 말았습니다. 임마누엘 주님께서 사장의 손을 주장하신 것입니다. 성결 목자는 특별히 기댈 언덕도 없고, 밀어주는 친척도 없습니다. 그러나 임마누엘의 주님께서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습니다. 임마누엘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하루하루가 불안의 연속입니다. 북한의 핵으로 인한 불안, 지진으로 인한 불안, 청년 실업으로 인한 불안등등. 사면이 불안한 요소가 가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임마누엘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1)”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another Counselor)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6,17)”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오셔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8:20)” 임마누엘 약속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모래위에 두 발자국이라는 감동적인 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그는 주님과 함께 해변가를 걷고 있었습니다. 모래위에는 두 개의 발자국이 선명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발자국, 또 하나는 주님의 발자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보니까 발자국이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 때는 자신이 가장 힘들때였습니다. 그는 주님께 따져 물었습니다. “주님, 평소에는 저와 동행하시더니 정말 힘들때는 왜 저 혼자 내버려 두셨나요?” 그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는 내가 너를 업고 걸었단다모래위에 선명한 한 개의 발자국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도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 없고, 나 홀로 내 팽겨채 진 것 같습니다. 주님마저 날 외면한 것처럼 느껴져 너무 서운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때 주님은 나를 엎고 가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요, 임마누엘의 사랑입니다.

 

이사야43:1-3절은 말합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우리가 아무리 힘든 길을 갈지라도 주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고 계십니다. 지금도 우리와 동행하고 계십니다. 때로는 우리를 업고, 때로는 가슴에 안고 가십니다. 이번 성탄에 각 분의 심령에 임마누엘의 은혜가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또 외로움과 절망 가운데 있는 양들과 함께 함으로 임마누엘의 사랑을 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