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성탄 3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세

말씀: 마태복음 2:1-12

요절: 마태복음 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감사하고 축하하는 절기입니다. 지난주에 사모님들과 함께 <즐거운 집>에 가서 장애인들을 위한 김장봉사를 했습니다. 몇 시간이지만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 죄인들과 함께 하시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잠시 우리를 심방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 사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를 담당하러 오셨습니다. 그러니 성탄절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날입니까? 오늘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동방박사들처럼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또 예수님께 마음을 드려 경배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헤롯왕은 정통유대인이 아니라 에돔 족속인 이두매 사람입니다. 그는 로마제국에 아부해서 왕이 되었기 때문에 항상 불안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정적이 될 것 같으면 가차없이 제거했습니다. 심지어 자기 아들들도 죽였습니다. 이런 악한 왕 밑에 살아가는 백성들이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바로 이런 때에 예수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5,6절에 보면, 종교 지도자들은 그리스도가 나실 곳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 관심이 없었습니다. 헤롯과 예루살렘 사람들도 소동할 뿐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방인들인 동방박사들이 관심을 갖고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페르시아의 천문학자들로서 별을 보고 시대를 예견하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왔던 유대인들을 통해 메시야가 탄생할 것을 들었습니다. 민수기 24:17절에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리라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연구하다가 어느날 범상치 않는 별을 발견했습니다. 그 별은 필시 메시야의 별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래서 만사를 제쳐두고 별의 주인공을 만나러 먼 길을 왔습니다. 페르시아에서 예루살렘까지 1500km나 됩니다. 광주에서 서울까지 288킬로이니까 5배가 넘는 거리입니다. 그들이 왜 이처럼 먼 길을 찾아 왔을까요? 2절에 보면 박사들이 말하기를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박사들은 별의 주인공을 만나 인증샷을 찍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 별의 주인공을 취재하러 오지 않았습니다. 메시야가 태어난 장소를 관광지로 만들어 투자하러 온 것도 아닙니다. 경배하러 왔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에 진정한 경배의 대상을 찾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겉보기에는 이상적인 형제들만 찾아다니는 것 같았지만 실상은 경배의 대상을 찾았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4:20)” 예배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동방박사들도 참된 왕을 만나 경배드리고자 왔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왜 우리의 진정한 경배의 대상이 되십니까?

 

첫째, 예수님은 우리를 의와 사랑으로 다스리는 왕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4절을 봅시다. 헤롯왕은 종교지도자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는가? 물어 보았습니다. 그들은 미가서 5:2절 말씀에 기초해서 대답했습니다. 5,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그리스도는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나십니다. 그런데 그 분이 어떤 분입니까? ‘다스리는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의 왕으로서 다스리기 위해 오십니다.

 

사람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면 좋을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금요기도회에서 사사기 말씀을 공부했는데, 사사기 맨 마지막 말씀이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21:15)”였습니다. 사람은 왕이 없으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육신의 본성대로 행합니다. 그러다가 죄에 빠졌습니다. 사사기 뒷부분을 보면 읽기도 민망할 정도로 죄가 심했습니다. 동성애, 성적타락, 살인, 폭력, 전쟁이 난무합니다. 왕이 없으니, 사탄이 왕이 되어서 무법천지가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피조물로서 반드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의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지난주 월요일 목숨을 끊은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김종현 군은 다들 부러워하는 한류스타입니다. 그런데 그의 유서를 보니 우울증으로 심히 고통 해온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울이 나를 집어 삼켰다” “살아 있는 사람 중에 나보다 힘든 사람은 없고, 나보다 약한 사람은 없다그렇게 토로했습니다. 겉으로는 너무 멋있어 보였지만 실제로는 우울의 세력이 그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죽음의 세력이 그를 집어 삼켜 버렸습니다.

 

사탄은 지금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지난주 신문에 보니까 우리나라 2,30대 청년들의 55%가 폭탄주를 마신 경험이 있고, 10대도 30%가 폭탄주를 마셔봤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를 폭탄주 왕국이라고 했습니다. 또 게임왕국, 도박왕국, 음란물왕국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사탄의 종이 되어서 죄를 짓고 방탕한 삶을 삽니다.

 

이런 죄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의와 평강으로 다스리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1:74,75절에 보면 사가랴가 그렇게 찬송했습니다.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예수님은 우리를 원수 마귀의 손에서 건지시고 종신토록 성결과 의와 두려움 없이 주님을 섬기도록 우리를 다스려 주십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셔서 우리를 다스려 주시기 때문에 사탄이 감히 우리 마음을 침략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왕으로 오셔서 의와 평강과 사랑으로 다스려 주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의 진정한 목자가 되십니다. 6b절에 보면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연약하고 무지한 양과 같습니다. 때문에 반드시 목자가 필요합니다. 목자의 사랑과 보살핌, 인도함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로 오셨습니다. 목자 하면 다윗이 생각납니다. 다윗은 양떼들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들을 물어 가면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습니다. 맹수들이 일어나 해치고자 하면 그 수염을 잡고 맹수들을 쳐 죽였습니다(삼상17:34,35). 목숨을 걸고 싸워서 양들의 생명을 건져내었습니다. 왕이 되어서도 백성들을 공평과 정의로 다스렸습니다. 이런 다윗은 선한 목자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 보면 거라사 광인이 나옵니다. 그는 무덤사이에 거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옷도 입지 않고 자기 몸을 돌로 상하고 있었습니다. 마귀는 그를 자학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찾아가셔서 거라사인을 사로잡고 있는 귀신의 세력과 싸워 주셨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영적 전투를 벌이셨습니다(5:8,9). 그러자 6000마리나 되는 떼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서 돼지떼에게로 들어갔습니다. 나중에 바다로 내리달아 다 죽었습니다. 이로서 그 사람의 정신이 온전해졌고, 데가볼리에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뿔이 되셔서 우리를 미워하는 원수의 손에서 건져 주십니다(1:68,69).

 

오늘날 각종 무기들이 최첨단으로 발달합니다. 초고속 미사일, 핵무기 등이 개발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첨단 무기로도 마귀의 세력을 물리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뿔이신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사탄마귀를 능히 물리쳐 주십니다. 어떤 심각한 문제들, 비교의식, 열등감, 패배주의, 우울증, 공항장애, 자살충동 등 마귀의 권세를 능히 물리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요한복음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예수님은 각색 병든 자들, 죄문제로 고통하는 자들을 품에 안으셨습니다. 그들의 고뇌를 들어주시고 상처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버리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의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세상의 많은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선량한 백성들을 이용합니다. 약자들 위에 군림합니다. 갑질합니다.

 

종현군의 사건을 두고 영국의 가디언이라는 잡지는 이렇게 기사를 썼습니다. “K팝 스타들은 기획사가 지시하는대로 음악 스타일과 패션, 다이어트, 심지어 휴대폰 사용에 이르기까지 통제를 받아야 한다. 또 치열한 경쟁과 수년간의 훈련을 버터야 한다대개 아이돌 스타들을 10대에 뽑아서 키우는데 그들이 그 통제와 경쟁을 견딜 만큼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탈출구로 술과 마약에 손을 대는 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배우 박진희씨가 쓴 석사논문에 의하면 한국 배우들의 40%가 적어도 한번은 자살을 생각하는데 이는 프라이버시 침해, 온라인상의 괴롭힘, 비고정적인 수입, 연예계에서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기사를 보면서 청소년들을 스타로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비즈니스를 위해 이용하는구나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삯군인거죠. 이것은 단지 연예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다들 치열한 경쟁의 장에 내몰려 그 영혼이 피폐해가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진정한 사랑의 목자, 선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누가 이들을 돌볼 수 있습니까? 우리의 이름을 아시고, 앞서 가시는 예수님.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신 선한 목자 예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목자가 되십니다.

 

7절에 보면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말했습니다.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이것은 순 거짓말입니다. 헤롯은 예수님께 경배하기는커녕 16절에 보면 두 살 아래의 사내들을 다 죽였습니다. 얼마나 잔인하고 탐욕스럽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목자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23:34)” 우리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 주시고,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은 우리의 진정한 왕이요, 목자가 되십니다. 이 예수님은 우리의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동방박사들이 별의 주인공 예수님을 만났을 때 얼마나 기뻤습니까? 9,10절을 봅시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 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그들은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우리 삶의 기쁨이 무엇일까요?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고, 직장에 취직하고, 승진하고, 결혼할 때, 사랑스런 자녀들이 태어날 때 기쁩니다. 그러나 가장 큰 기쁨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난 기쁨입니다.

 

그제 새벽기도 메시지를 전한 최정한 목자님은 양 때 누구보다 뺀질뺀질하고 수양회 때만 되면 사라져서 힘든 양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목자님은 다른 양은 남아도 최정한은 남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뺀질거리고 비천한 죄인 최정한도 버리지 않고 찾아오셨습니다. 말씀으로 병든 내면을 치유하시고 천사도 흠모하는 목자의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구주 예수님을 만난 기쁨이 가장 컸다고 했습니다.

 

그제 K국에 임이삭 선교사님께로부터 카톡이 왔습니다. 세종학당을 인터넷 방송국에서 취재했습니다. 거기서 한복 입고, 그 나라 모자를 쓰고, 현지어로 노래 부르셨습니다. 그 모습이 현대판 동방박사 같았습니다. 70살이 다 되신 분이 어린아이처럼 기쁘게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만나고 증거할 때 우리가 가장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까? 최정한 목자님은 영업의 스트레스와 육아의 십자가 때문에 기쁨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믿고 살지만 현실만 바라보면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처럼 눈을 들어 메시야의 별을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비천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말구유에 낮아져 오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올해도 우리를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며,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 주신 선한 목자 예수님을 묵상해 봅시다. 그때 우리가 동방박사들처럼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그 후에 어떻게 했습니까? 1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그들은 왕으로 나신 예수님 앞에 넙죽 엎드렸습니다.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할 때 우리 마음에 참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경배할 때 예수님이 우리 왕으로 좌정하시고 우리를 다스려 주십니다. 우리의 목자로서 우리를 섬세하게 돌보시며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경배하지 않으면 다른 것을 경배합니다. 그때 죄를 짓고 심령이 부패하게 됩니다. 우리가 헛된 것을 경배하지 말고 매일매일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께 경배해야 하겠습니다.

 

솔로몬은 처음 왕이 되었을 때 온 맘으로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가장 귀한 재료들을 써서 성전을 하나님께 봉헌하여 드렸습니다. 그가 성전건축을 마치고 하나님께 나아가 무릎을 꿇고 기도한 내용이 역대하 6장에 나옵니다. 그의 기도를 살펴보면 얼마나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이 넘쳐나고, 간구함이 절실한지 감동이 됩니다. 하나님도 기뻐하셔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번제물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했습니다(대하7:1).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대하7:15,16)” 그가 하나님을 경배했을 때 하나님께서 눈동자와 같이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는 지혜가 출중했고 그의 나라는 심히 강성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나중에 이방 여인들과 우상에게 마음을 뺏겨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는 타락했고, 국력은 약해지고, 나라는 남북이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이 축복의 비결입니다

   

동방박사들은 허리만 굽혀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보배합을 열었습니다. 가지고 온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황금을 경배합니다. 황금의 위력앞에 굴복합니다. 그러나 황금은 경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 구원의 주 예수님이 참 경배의 대상이십니다. 주님께 우리의 소중한 시간과 물질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동방박사들이 이때 드린 황금이 후에 요셉과 마리아가 애굽으로 피신해서 생활할 수 있는 물질이 되었다고 합니다. 유향과 몰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를 예비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을 만나 경배하기 위해서 많은 희생을 치루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천국 보화되신 예수님을 얻었습니다(19:21). 그들은 정말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2017년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요즘 무엇을 경배하고 있는가?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무엇을 향해 보배합을 열었는가? 생각해 봅시다. 동방박사들처럼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 경배하며 보배합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이로서 예수님께서 나의 보배가 되시고, 왕이 되셔서, 나를 다스려 주시는 축복을 체험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