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7일 푸른초장+스피릿 파트메시지

한나의 고통을 돌아보신 하나님

말씀 : 사무엘상 1:1-2:11

요절 : 사무엘상 1: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요즘 푸른초장 파트에 겹경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현태, 삼영 목자님 가정에 귀한 아들을 주시더니 며칠 뒤 김믿음, 혜경 목자님 가정에도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두 아들 다 정말 기적의 아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삼영 목자님은 노산으로 인해 걱정을 많이 하였지만 건강한 아들이 태어났고, 혜경 목자님의 아들은 삼영 목자님의 아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서인지 해를 넘기지 않고자 두 달이나 빨리 태어났습니다. 그럼에도 건강하여 감사가 됩니다. 올해는 유달리 아들이 많이 태어나는 것 같습니다. 태어난 아이들이 장차 이 시대의 영적인 지도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에도 한 아들이 태어납니다. 이 아들은 이스라엘의 영적 혼돈기에 백성들의 마음속에 분명한 신앙적 가치관과 영적인 기초를 놓은 사무엘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시대의 영적 지도자, 사무엘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하셨는가? 또 어떤 사람이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는가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특히 한나의 기도와 하나님께 자세를 배워 고통 중에 기억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라마다임 소빔이라는 동네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하나의 이름은 한나이며, 또 하나의 이름은 브닌나였습니다. 브닌나는 자식이 잘 낳았지만 한나는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브닌나는 틈만 나면 한나를 격동시켜서 그 속을 긁어 놓았습니다. “한나, 너도 여자냐? 여자가 아이를 낳아야 여자지 내 참, 자식도 없는 주제에 무슨 낯짝으로 안방마님 행세를 할까? 낯짝도 두꺼워아이 좀 잘 낳는다고 왜 이렇게 한나를 구박할까요? 이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남편인 엘가나가 한나를 대놓고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실로에 올라가서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의 분깃을 한나에게만 갑절로 주었습니다. 7절을 보면 매년 제사를 드릴 때 마다 그렇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브닌나 입장에서는 정말 분이나는 일이었습니다. 자식은 자신이 다 낳아주고 있는데 사랑은 한나가 다 받고 있으니 정말 분이났습니다. 그래서 심사가 뒤틀린 브닌나는 엘가나가 없을 때면 의도적으로 더 한나를 무시하고 멸시하여 격분하게 하였습니다. 이럴 때 마다 한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밥도 먹지 않은 채 두꺼비눈이 되도록 통곡하고 울었습니다. 그럴 때면 엘가나는 이런 한나를 위로하기 위해 맛있는 피자를 사오기도 하고 장미꽃 100송이를 사다 주기도 하며 온갖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한나 울지마 내가 있잖아우리 사모님들이 기대하는 참 자상한 남편 같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눈치 없는 자상한 남편입니다. 엘가나의 자상한 사랑은 오히려 브닌나의 분을 더 나게 하였고 더 심하게 핍박하고 격분하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면 한나가 왜 이처럼 고통하고 슬퍼하며 번민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한나가 무슨 큰 죄를 지어서 벌을 받는 것입니까? 아니면 지질이도 운이 없는 운명을 타고 나서 한나’ ‘한이 많은 나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다같이 6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새번역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태를 닫으셨으므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한나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태를 닫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왜 굳이 그녀의 태를 닫으셔서 한 여인의 인생을 이토록 슬프고 고통스럽고 기구하게 하시는 것일까요? 그냥 자식 하나 얼른 주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데 왜 굳이 이렇게 하실까? 우리는 이 하나님이 언뜻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여러 가지 고통을 주는 문제들이 생깁니다. 그 누구도 순탄한 길만 걷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고난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품기도 합니다. 열심히 양을 쳐서 캠퍼스 복음 역사를 섬기겠다고 하는데 왜 학교에서 전도도 못하게 하시고 쫓아내실까? 왜 복된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셔 놓고는 눈치 보면서 전도를 하게 하시는 것일까? 주와 복음을 위해 센터 근처에 와서 산다고 하는데 왜 집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 미국 선교사로 나가서 인생을 바쳐 헌신하고자 하는데 왜 비자를 막으실까? 평생 주님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왔는데 왜 자식들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일까? 이런 삶의 문제들이 생기면 도대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실까? 의구심이 듭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아니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 것일까? 온갖 회의적인 생각이 듭니다. 전도도 마음놓고 하고 양들도 영적 소원이 충만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양들이 무럭무럭 성장하여 금세 목동이 되고 목자가 되고 또 다른 양을 치면 캠퍼스 복음화는 금방 될 것 같습니다. 내가 계획한대로 내가 원하는대로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면 왠지 더 복음 역사를 잘 섬길 것 같습니다. 직장에도 착착 들어가게 하시고, 가장 베스트의 집을 딱하니 가져다주시고 자녀들이 아무 문제없이 잘 자라도록 해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치전원도 진작에 딱하니 들어가게 하셔야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우리의 인생을 그런 식으로만 인도하시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려고 하는 사람일수록 고통과 고난과 번민을 더 많이 주시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겸손하고 간절한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어려움이 없으면 별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고통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뒤에 나오는 엘리를 보십시오. 그는 제사장입니다. 아들도 둘이나 잘 낳았습니다. 둘 다 제사장으로 키웠으니 이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자 그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애타게 기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영적으로 둔감하게 되었고, 육적으로 비둔하게 되어서 스스로 파멸의 길로 치닫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에게 때로는 일부러 고통과 아픔을 주십니다. 브닌나와 같은 가시를 허락하셔서 그로 하여금 격동케 하시고 번민케 하십니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시고 슬프게 하십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한계를 깊이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부르짖어 기도하며 마침내 하나님의 차원 높은 사랑과 능력을 체험하길 원하십니다.

 

진주라는 보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줄을 아십니까? 바닷 속에서 평온하게 잘 자라고 있던 조개는 입을 헤 벌리고 바닷 속에 떠다니는 부유동물을 섭취하며 자라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날카로운 모래가 조개 속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면 조개는 그 모래 때문에 고통스러워서 몸부림을 치게 됩니다. 그 과정 속에서 조개는 탄산칼슘성분의 분비물을 토해내게 되는데 그 액체가 응고되어서 마침내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진주라는 보석이 탄생되는 것입니다. 결국 날카로운 모래의 격동이 있었기 때문에 진주라는 아름다운 보석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한나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이라는 보배로운 믿음의 자식을 주시기 위해서 한나의 인생을 그처럼 고통스럽게 하시고 브닌나를 통해서 격동시키신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고난은 변장된 하나님의 축복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고통을 통해서 진주와 같이 보배로운 믿음의 열매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에 보면 브닌나에게도 고통은 있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마음의 고통과 슬픔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한나를 찾아가서 한나를 못살게 굴고 구박하고 멸시하는 등 인간적인 방법을 취하였습니다. 문제 앞에서 영적인 투쟁을 하지 않고 인간적인 씨름을 하였습니다. 혈과 육의 싸움을 하였습니다. 그랬을 때 그녀의 인생은 천박하게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한나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9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한나는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일어났다는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낳지 못하는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한나는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일어났습니다. 일어나서 어디로 갔습니까?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술 한잔 하러 갔습니까? 아니면 힘차게 브닌나에게 나아가 머리채 잡고 한판 붙었습니까? 아니면 남편을 찾아가서 이게 다 당신 때문이야! 내 인생 책임져!” 바가지를 팍팍 긁었습니까? 아닙니다. 10절을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한나는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 기도내용이 무엇입니까? 11절도 함께 읽겠습니다.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한나는 자신이 원하는 것만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너무하시네요 아들 하나 주세요! 이제 주실 때 되었잖아요 얼른 주세요 빨리 주세요이렇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요구만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회복하기를 원하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소서” ‘Remember Me!’ 한나는 자신의 고통을 돌보시고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자신을 잊지 않으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한나에게 있어서 가장 힘든 것은 아들이 없는 것이 아니라 혹시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잊어버리신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 더 힘든 문제였습니다. 여기서 슬픔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서원기도를 드립니다.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의 종으로 그를 일생 드리겠다고 서원합니다. 한나가 단지 아들을 낳아서 한을 풀고자만 했다면 이런 기도를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자 하는 영적인 소원이 충만하였습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서원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였을 때 한나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18절을 보십시오. “한나가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었더라이전에 맨날 울고 먹지도 않던 한나가 기도하고 나더니 이제는 울지도 않고, 맛있게 음식을 잘 먹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한나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한나가 아이를 잉태한 것도 아니고, 자신을 핍박하던 브닌나가 고분고분 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주변환경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나가 달라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기도가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는 사실입니다.


기도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현실 문제를 뛰어넘게 합니다. 기도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문제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문제가운데 두신 하나님의 선한 주권과 섭리를 바라보게 합니다.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은 그 마음에 슬픔과 번민의 먹구름이 걷히고 희망의 서광이 비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자신의 미래를 안심하고 하나님께 맡길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4:6,7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저희들도 수많은 문제들 앞에서 한나와 같이 하나님 앞에 나가 심령을 토로하고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차원 높은 믿음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19b,2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하나님께서 한나를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실하게 응답해 주시므로 사무엘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셨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한 여인의 기도는 너무나 나약해 보입니다. 하지만 한나의 간절한 기도는 시대를 움직이고 역사를 창조하는 위대한 힘이 있었습니다. 모니카의 간절한 기도 때문에 성 어거스틴이 나오게 되었고 수산나의 기도 때문에 죤 웨슬레, 찰스 웨슬레 같은 영적인 거목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엘리사벳의 기도 때문에 세례요한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통곡하며 부르짖는 절박한 기도를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신실하게 베스트로 응답해 주십니다. 정말 우리의 간절한 기도는 시대를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굳게 믿고 간절히 기도하므로 이 시대의 많은 사무엘들을 낳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어제와 오늘 전대 수시 면접 피싱이 있었습니다. 전도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많은 목자님들이 나오셔서 양들을 만나게 하심에 감사가 됩니다. 이번에 예비 18학번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양들이 빠르게 강팍해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어디서 이런 사람들이 접근하면 피하라고 교육을 받았는지, 아니면 어떤 공지를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예전과 같은 순수함이 많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처음에 저는 제가 가죽장갑을 끼고 있어서 무서워 보여서 그러는 줄 알고 장갑도 벗었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이는 우리 전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음 주 스텝 수양회에서 캠퍼스 사역부 발표가 있는데 이를 위해 전국의 스텝 목자님들을 상대로 현재 제자 양성의 어려움들을 조사하였더니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대부분의 캠퍼스가 전도를 금지하였고 서울의 모 센터는 지하철역에 부스를 차리고 학생들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신고 문화가 투철해 져서 학생들은 피싱하는 목자님들을 신고하고 캠퍼스 폴리스에 의해 쫓겨나기가 다반사였습니다. 이런 저런 문제들로 인해 학생 역사가 잘 일어나지 않자 많은 목자님들이 힘이 빠지고 의욕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속은 한없이 여린 저는 전도하다가 자주 상처를 받고 잘 성장하지 않는 양들로 인해 마음이 번민할 때가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전대 제자양성 역사가 답보 상태인 것은 제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본부에서 역사가 잘 일어나는 다른 센터 목자님을 만나고 그 자랑을 듣고 있노라면 그 목자님이 브닌나로 보이고 저는 한나가 되어 격분하기를 잘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점점 전대는 마음에서 멀어지고 아직 순수해 보이는 동신대에 마음이 더 다가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며 동신대에 집중할까 생각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한나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자식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속에서 한나의 간절한 기도가 있었고 기도의 능력으로 진주 같은 사무엘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지금 캠퍼스 사역이 힘들다고 생각하면서 이런 저런 원인을 파악하기에 바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캠퍼스를 잊으셨을까? 고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이 과정 속에서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정말 애통한 심정으로 우리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우리를 기억하사 우리를 잊지 마소서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더 격분하게 하시고 더 힘들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 우리는 넘어져 있으면 안됩니다. 한나와 같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속에 근심이 먼저 사라집니다. 또한 약속하신 사무엘과 같은 영적인 자녀를 반드시 태어나게 하십니다. 사무엘의 뜻은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입니다. 구할 때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제가 이를 알고 더욱 기도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한나와 같이 애통한 심정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함을 또한 믿게 됩니다. 한 사람의 기도는 결코 연약하지 않습니다. 존 낙스는 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고 하였습니다. 모세 한 사람의 자신의 생명을 건 기도가 200만명을 살렸습니다. 제가 기도의 위력을 알고 다시 기도에 힘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새벽기도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파트 합심 기도를 위해서 더욱 도전해야겠습니다. 저녁기도도 다시 회복해야겠습니다. 제가 말만 하지 않고 기도의 불을 먼저 붙어야겠습니다. 우리 모임 가운데 기도하는 분위기가 이루어지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통을 돌아보시며 우리를 기억하시므로 우리가 섬기는 캠퍼스 가운데 많은 영적인 사무엘들이 태어나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