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4일 푸초+스피릿 파트메시지

우리는 하나님의 등불

말씀 / 사무엘상 2:12-4:1

요절 / 사무엘상 3:3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저는 어제 감동적인 뉴스 하나를 보았습니다. 중학생 1,2학년 3명이 국회의원 표창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학교를 가다가 길에 쓰러져 있는 노인에게 자신들의 패딩을 벗어 주었습니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씨였기 때문에 그대로 두었다가는 동상 걸려 죽을 수도 있었지만 자신들의 패딩을 벗어서 덮어주고 노인을 업어서 집까지 바래다주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날은 기말고사 날이었고 이로 인해 학생들은 지각하여 시험을 늦게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성적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인터뷰 한 것을 보니 성적은 개의치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이 다행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뉴스에 이런 댓글이 달려 있었습니다. “아 정말 이 시대의 한 줄기 빛이네요저도 동일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북한이 쳐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문이라고 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2하면 문제 많은 시절로만 생각되었는데 아직 시대에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어둡고 절망적이어도 희망은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두운 시대이지만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희망과 소망을 바라봐야겠습니다. 또한 우리가 이 시대의 꺼지지 않은 등불들임을 알고 이 시대를 비추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럼 당시 시대가 얼마나 어두웠을까요? 우리는 엘리 제사장 가정의 모습을 통해 그 시대의 어두움을 알 수가 있습니다. 212절을 보십시오. 엘리 제사장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13절을 보면 그들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 있었더라그들은 아버지 엘리의 대를 이어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다는 것은 영어로 “No regard for the LORD” ‘하나님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었다, 경외심이 없었다라는 뜻입니다. 가장 앞장서서 하나님을 존중하고 섬겨야 할 제사장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는 것은 참 어이없는 상황입니다. 이는 마치 수학 선생님인 유재호 목자님이 덧셈, 뺄셈도 하지 못하면서 학생들에게 미적분을 가르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행실이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함부로 하나님의 드릴 제물을 갈취하였습니다. 레위기를 보면 제사장에게 주어진 몫은 가슴과 오른쪽 뒷다리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고기의 기름은 태워 먼저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엘리의 두 아들은 말씀을 지킬 리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탐욕을 채우고자 사환을 시켜 갈고리에 걸려든 고기는 아무 부위나 함부로 먹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드려지기도 전에 날고기를 그냥 갈취해 왔습니다. 협박해서 뺏어 왔습니다. 그들의 죄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는 정욕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냥 동네 불량배도 아니고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이 주의 전에서 가증스러운 음란의 죄를 범한 것입니다. 정욕죄는 사람이 갈 때 까지 간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들은 정말 갈 때 까지 갔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그들의 모습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1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성경은 이들을 더 이상 제사장들로 부르지 않습니다. ‘이 소년들이라고 부릅니다. 철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으로 부를 가치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였습니다. 제사장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세움 받은 자인데 제사를 멸시하였으니 그들의 죄는 결코 가벼울 수가 없었습니다. 여호와 앞에 심히 큰 죄를 범하였습니다.

 

이런 자식들의 행태를 아버지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엘리는 아들의 악행을 모든 백성에게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로서 또한 제사장으로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을 당장에 불러다가 죄를 책망하고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도록 훈련을 시켜야 했습니다. 로마서 8장 말씀을 100번 쓰게 하고 보혈 찬송가를 1000번 정도 크게 부르게 하고 회개 소감을 100페이지 정도 쓰게 하면서 혹독하게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것이 진정 그들을 위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엘리 자신도 자식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재를 뒤집어쓰며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엘리는 어떻게 합니까? 24절을 보십시오.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NO, my sons!” 이게 다입니다. 솜방망이도 이런 솜방망이 처벌이 없습니다. 오늘 최순실씨가 25년 형 구형을 받은 것을 두고도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말들이 많은데 엘리가 아들들에게 하는 책망은 책망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는 말합니다.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엘리는 아들들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분별하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하였습니다. 제사장의 아들이 문제만 일으키고 있으니 이로 인해 사람들이 자신을 욕할까 그것이 더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런 엘리의 모습을 성경에서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32절을 읽겠습니다.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그의 시력 뿐만 아니라 영적인 시력까지 점점 어두워져 가고 있었습니다. 영적 분별력이 떨어지고 그의 영안과 더불어 그 시대도 어두워져 갔습니다.

 

엘리 제사장 가정의 타락을 통해 그 시대가 얼마나 어둡고 절망적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시대가 아무리 타락하고 어두워도 지도자가 한 줄기 빛이 되면 그 시대는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도자가 먼저 타락을 하고 어둠을 제공하면 그 시대는 정말 절망적이 됩니다. 역으로 말하면 제사장 가정까지 이렇게 되었다는 것은 정말 그 시대가 갈 데까지 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사기 마지막 구절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 없이 자기 소견대로 행하는 시대, 절망과 어둠의 시대였습니다.

 

이 시대도 절망과 어둠의 시대에 치닫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나쁜 행실을 일삼습니다. 올해만 해도 경악스러운 많은 뉴스들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여중생들이 친구를 왕따 시키고 조폭보다 더한 구타를 합니다. 슬픈 표정으로 동정을 구하던 어금니 아빠는 알고 보니 성범죄자, 살인자로서 인간이 해서는 안될 짓을 하였습니다. 한 초등학생은 실험을 한다며 아파트 옥상에서 벽돌을 던져 고양이를 돌보던 아주머니를 숨지게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는 총기난사 사고로만 수백명이 죽었고 그 중 텍사스 교회에서 총기를 난사한 사람은 26살 청년에 불과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습니까? 또한 캠퍼스 역사를 섬기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둡고 절망적인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신천지와 같은 이단의 세력들이 득세하여 캠퍼스에서는 전도를 금지시켰습니다. 메인 캠퍼스가 되어야 할 전남대 땅이 이단의 세력으로 점령되고 있습니다. 지난 주 수시 면접을 보러 오는 학생들에게 나가 전도를 하였지만 우리는 학교측의 눈치를 보며 흩어져서 전도를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해도 학교측에서 나와 쫓아내고 심지어 한 사모님은 전도를 하지도 않고 캠퍼스를 걷고만 있었는데도 다가와서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사모님이 너무 황당하여 내가 무엇을 했는가 따졌지만 아무튼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고 갔습니다.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나와서 전도를 할 때 양들의 마음이라도 순수하면 좋으련만 해가 갈수록 양들은 더욱 완악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어디서 이런 사람 만났을 때 이렇게 하라는 교육을 받았는지 아니면 공지를 이미 받았는지는 몰라도 조카뻘 되는 양들이 하나같이 무시합니다. 대학 입학도 하지 않은 자들이 벌써부터 이런 반응을 보이는데 나중에 대학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면 막막해 집니다. 이런 환경이 되자 전대 땅에 학생 양들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리 UBF가 태동된 귀한 캠퍼스에 학생들이 점점 사라지는 모습은 캠퍼스 역사에 어둠이 몰려오는 것 같습니다. 다른 센타 목자님들은 그래도 광주는 여전히 잘 되고 있다고 생각을 하십니다. 그래서 이번에 캠퍼스 사역부 일들을 하면서도 광주는 학생들이 많으니 학생들을 데리고 이것 저것 해달라고 부탁을 많이 받았습니다. 풀타임 수가 많을테니 그들과 함께 작업 좀 해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섬길 학생도 없고 풀타임도 부족하였습니다. 이런 모습도 모르시고 부탁하는 것에 대한 서운함 보다 우리 센타가 이런 모습을 보이면 안되는데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더 컸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자 리더들도 양을 치고자 하는 소원을 잃어 갑니다. 센타에 사람은 많으나 실제적으로 움직이는 자들은 점점 부족해집니다. 특히 학생들의 성장이 더디어 졸업하기 전까지 양 한번 치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돕고 있는 양들도 순탄하게 잘 자라지도 않습니다. 자기 소견대로 움직입니다. 오늘 말씀을 쓰고 있는데 유승현 형제가 갑자기 전화를 하였습니다. 기말고사가 끝났다고 하였습니다. 맨날 바쁘다고 하더니 시험 끝났다고 먼저 전화를 해서 감사하였습니다. 처음에 저는 시험이 끝나 여유가 있으니 이제는 말씀공부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아니면 오늘 파트모임에 올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저 지금 바로 서울 올라갔다가 3월 개강하면 올께요 그 동안 잘 계세요일시적인 작별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아 참 가장 중요한 말을 못했네요 아무래도 성경공부는 저하고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건강하세요라고 말하여 영원한 작별 인사를 하였습니다. 말씀을 쓰다 힘이 쫙 빠졌습니다. 그리고 하필 전화를 받고 나서 보니 제가 쓰고 있는 부분은 그 시대가 얼마나 어둡고 절망적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였습니다. 어두워졌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가수 김수희의 애모를 작곡한 분인데 그 가사대로 그대 가슴에 얼굴을 품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정말 울고 싶었습니다. 정말 지난 한 해 동안 놀고먹지 않고 나름 열심히 한 것 같은데 손에 잡히는 열매가 없으니 한숨만 나오고 어둡다는 생각만 듭니다.

 

하지만! 이처럼 어둡고 절망적인 시대에 하나님은 어떤 역사를 준비하고 계셨습니까? 33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에 누웠더니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등불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에 누워 있었습니다. 말씀이 희귀한 그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무엘이 있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을 보면 엘리 아들들 이야기 뒤에는 꼭 사무엘에 관한 구절이 붙어 있습니다. 217,18절을 보십시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클 때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25,26절을 보면 엘리 아들들이 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하자 하나님께서 죽이기로 작정하셨을 때 사무엘은 점점 자라면서 하나님께 은총을 받았습니다. 34,35절도 마찬가지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고 하나님을 위한 충실한 제사장을 하나님이 친히 일으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32,3절에서 대조는 절정을 이룹니다. 엘리의 눈은 어두워져 가며 어둠이 몰려 올 때 여호와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이라는 등불이 시대를 다시 비추기 위해 역동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꾸 어두운 쪽만 보기 쉽습니다. 하지만 항상 어둠 뒤에는 빛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듯이 어둠과 절망 뒤에는 반드시 빛이 있습니다. 그리고 태양이 항상 떠 있듯이 하나님의 등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희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과 소망은 영원합니다.

 

지난 3일 동안 스텝 수양회가 있었습니다. 정말 큰 은혜를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많은 은혜를 받고 방향을 새롭게 잡을 수 있는 수양회였습니다. 특히 이사야 54장 말씀을 통해 새로운 비전과 소망을 심어 주셨습니다. 이사야 541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하나님은 노래하라고 하십니다. 외쳐 노래하라고 하십니다. 영어로 Shout for joy! 즐겁게 소리치라고 하십니다. 잉태하지 못하고 출산하지 못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양들도 없고 열매도 없어 보이는데 왜 소리쳐 노래하라는 것입니까?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하나님께서 앞으로 많은 자식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외쳐 노래 부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사라가 그러하였습니다. 지난 주 파트모임 말씀에서 들은 한나가 그러하였습니다. 잉태하지 못하고 출산하지 못하였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 굳게 붙들 때 그들은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자녀를 주심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눈으로 볼 때는 빛이 보이지 않고 절망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등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타오르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엘리와 같이 눈이 어두워져 있으면 하나님의 등불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영적인 눈을 뜰 때 하나님의 등불이 보입니다. 빛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등불의 불이 작을지라도 성령의 기름이 부어질 때 활활 타오를 것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이 시대의 등불로 삼으셨습니다. 10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하나님은 어두운 시대에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시대의 등불로 삼으셨습니다. 그 때 그는 대답하였습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시대 캠퍼스의 등불로 부르십니다. “OO! OO!” 이 때 우리는 대답해야 합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부르심에 순종하며 나아갈 때 우리가 어두운 캠퍼스를 비추는 빛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물론 우리 힘으로 빛을 낼 수 없습니다. 세상의 빛 되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므로 우리는 등불이 되어 어둠가운데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136절은 말합니다.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우리가 이 시대의 등불의 빛이라는 자부심이 있어야겠습니다. 예전에 가수 GOD의 노래중에 촛불하나라는 노래가 있는데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촛불하나 가지고 무얼하나 촛불하나 켠다고 어둠이 달아나나 하지만 그렇지 않아 작은 촛불하나 켜보면 달라지는게 너무나도 많아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던 내 주위엔 또 다른초 하나가 놓여져 있었기에 불을 밝히니 촛불이 두개가 되고 그 불빛으로 다른 초를 또 찾고 세개가 되고 네개가 되고 어둠은 사라져가고마찬가지로 개개인의 등불은 작을지라도 하나의 등불이 켜지면 주위의 다른 등불이 보입니다. 그 등불들이 켜지면 결국 모여 횃불이 됩니다. 횃불이 모여 활활 타오르는 성령의 불바다가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어둠은 물러가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있기에 어두운 시대에 한 줄기 희망과 빛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등불이 되어 비전과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어둡게 하고 우울하게 하고 절망적인 생각이 들게 하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등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계속해서 외쳐 노래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캠퍼스 가운데 다시 복음의 물결이 임하게 하십니다. 나의 인생 가운데 어두움을 물리쳐 주시고 가장 베스트로 응답해 주십니다. 나의 생각으로 바라보면 어두울 지라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면 빛이 보입니다. 2017년이 마무리 되어 갑니다. 한 해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희노애락의 요소들이 다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생각을 전환하고 시선을 전환해야 합니다. 안된다고 생각하기 보다 된다는 소망 가운데 기대감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저는 어제 고사무엘 목자님으로부터 은진목자 조대 치대 합격 소식을 듣고 너무나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그 동안 얼마나 고생했고 우여곡절이 있었는지를 알기에 감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베스트로 인도하심이 보였습니다. 여러 가지를 준비하였지만 가장 베스트, 가장 좋은 것으로 결국 주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은진 목자 내면에도 빛이 비추어 졌습니다. 2018년 은진 목자가 얼마나 뜨거운 등불이 되고 주님이 비추어 주신 빛을 비출지를 생각할 때 소망이 되고 기대가 됩니다. 은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목자들은 다 내면이 빛이 임하고 다시 활활 타오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뜨거운 주님의 등불이 되어 어둔 세상을 환하게 비출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지난 수양회를 통해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내가 참 젊구나스텝 수양회에 가서 주위를 돌아보면 정말 저는 젊습니다. 흰머리도 별로 없고 아이가 된 기분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직 목자로 살아갈 날들이 참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차피 평생 목자로 살아야 하는데 맨날 현실만 보며 한탄만 하고 있으면 얼마나 남은 목자생활이 고역일까? 가뜩이나 차가운 인상 더 차가워지고 희망이 없이 목자 생활을 한다면 그보다 더 힘든 일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떠한 현실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하나님의 등불을 바라볼 때 앞으로의 삶이 소망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어떤 역사를 이루어 가실까? 기대하고 비전이 생기게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등불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당장의 열매가 없을지라도, 양들이 힘들게 할지라도, 주위 환경이 어떻게 될지라도 기쁨으로 소리치고 즐거워 노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 제가 어떤 목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가르쳐 주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정말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과 소망을 붙들고 힘을 내서 등불을 밝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목자의 삶은 고역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저의 모든 닉네임, 아이디도 Joyfulshep입니다. 항상 즐겁고 기쁘게 주의 역사를 섬기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제 얼굴이 먼저 밝고 빛날 때 양들이 이 주님을 알고자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먼저 등불로 앞장서서 어두운 캠퍼스를 비추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주위에 등불에 불을 붙여 주어 주위를 밝혀 더 많은 등불을 찾아야겠습니다. 등불이 횃불이 되는 역사를 이루어 파트 이름처럼 버닝 스피릿. 활활 타오르는 18학번 역사를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 캠퍼스에도 이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시대 캠퍼스의 등불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등불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어둠에 사로잡힌 양들의 내면을 비추고 캠퍼스를 비추고 이 시대를 비추는 빛의 사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가오는 2018년은 희망과 비전 가운데 열심히 캠퍼스를 밟아 모든 동역자들이 한 양 이상 섬기는 희망찬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