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10 파트메시지 마가복음 9:14-29(23,24)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우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어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part1. 믿음

 

오늘 본문에 보면 귀신 들린 한 아이를 놓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말 못하게 하는 귀신에 들린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마침 예수님은 변화산에 올라가시고 제자들 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대신 고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 귀신들린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기회를 놓칠리가 없는 서기관들이 제자들을 조롱하며 소리를 높였습니다. 제자들은 사람들 앞에서 큰 창피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능력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가복음 613절에 보면 이들은 분명 권능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전도여행을 나가면서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등 큰 능력을 행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분명 비상하는 신자,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파워 있는 믿음의 용사들이었습니다. 그때는 둘씩 둘씩만 나갔는데도 큰 능력을 행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홉 명이 함께 모였는데도 아무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느새 무기력한 신자들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문제를 어떻게 보셨습니까? 1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예수님은 ! 이 재주가 없는 세대여’ ‘기술이 없는 세대여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믿음없음을 한탄하고 책망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배웁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날 때 그 난관을 헤쳐 나가는 것은 인간의 재주나 기술이 아니고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2장에 나오는 중풍병자의 친구들의 믿음을 보십시오. 그들은 믿음이 있었기에 지붕을 뜯고 구멍을 내서 중풍병자를 침상째 예수님께 달아 내렸습니다. 5장에 나오는 혈루증 앓는 여인의 믿음을 보십시오. 그녀는 부정한 병을 12년 동안 앓고 있었지만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뒤로 가서 그 옷가에만 손을 대어도 병이 낳으리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7장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보십시오. 그녀는 예수님에게 개취급을 당하는 아픔이 있었지만 겸손하고 간절한 믿음, 부스러기라도 구하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이처럼 각자의 상황이 다를지라도 오직 믿음으로 나왔을 때 그들은 주님의 큰 능력을 체험하고 문제를 해결함 받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꽤 오랫동안 따라 다녔고,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실제적인 믿음이 없었습니다. “, 믿음이 없는 세대여!” 주님은 다른 것 때문에 안타까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오직 믿음이 없을 때 탄식하시며 안타까워 하십니다.

 

우리에게 다른 것이 다 있어도 믿음이 없으면 절대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그랬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절대로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각 사람이 주님께 나올 때 다른 것을 보시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의 지위, 신분, 외모, 지적 수준. 그런 것 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믿음을 보십니다. 예수님은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2:5). 혈루증 앓는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하셨습니다(5:34). 수로보니게 여인도 부스러기라도 구하는 그 믿음을 보시고 딸의 병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다른 것들을 의존하거나 자랑하지 말고, 오직 주님을 믿는 믿음만을 가지고서 나아감으로 주님의 큰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제 19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아이의 아버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아이의 아버지가 마침내 아이를 데려오자 아이가 심한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며 죽어갔습니다. 아이의 상태는 처음보다 더 안 좋아졌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더 불안하고 위축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아버지에게 물어 보셨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그러자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대답했습니다. 그 아버지는 수없이 위기를 넘겨온 지난 날을 회고할 때 슬픔이 몰려 왔습니다. 그래서 맥빠진 소리로 예수님께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if you can’ 이 말은 하실 수 있다면 도와 주시고 할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죠그런 뜻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 아버지는 참 gentle하고, nice한 사람입니다.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하지 않고, ‘할 수 있으면 도와 주시고, 안 되면 너무 부담갖지 마세요피차 부담없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2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예수님은 정색을 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if you can?, 할 수 있거든이라고? 그게 뭔 말이여!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예수님은 할 수 있다면이런 전제를 아주 싫어하십니다. 그 말은 할 수도 있지만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이런 말이 아주 신사적이고 부담 없이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이런 말을 써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심히 모독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는 항상 ‘Yes you can! Always you can! Everything you can!’ 이 말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반쯤 믿는 것, 반신반의 하는 것, 믿는 둥 마는 둥 하는 것.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주님이 해 주시면 좋고 안 해 주시면 어쩔 수 없고. 예수님은 그런 어정쩡한 자세를 아주 싫어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했으면 100%, 절대적으로, 분명하게, 철저하게 믿으라는 것입니다. 요즘 교회 전체적으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외치며, 적극적으로 불신과 싸워야 겠습니다.

 

민수기 11장에 보면 광야 길을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기 먹고 싶다고 하나님께 불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내가 한달 동안 코에서 냄새가 나기까지 고기를 먹게 해 주겠다그러자 모세가 순간적으로 불신적인 말을 하였습니다. “아니, 하나님, 이 백성이 장정만 60만인데 한 달 동안 고기를 먹여 주겠다고 하시니 양떼와 소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그때 하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11:23)”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이 바람을 불게 하사 메추라기를 땅 위에 쌓이게 하시는데 두 규빗, 온 땅에 약 90cm 가까이 쌓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정말 코에서 냄새가 나기까지 고기를 원없이 먹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손은 절대 짧아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상식과 이성을 넘어 넘치게 주십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은 큰 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되, 100%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말씀 한 마디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라면 왜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 직장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넘실거리는 홍해바다를 마른 땅같이 건너게 하신 하나님이시라면 왜 우리의 양문제, 제자양성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못하겠습니까?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part2. 기도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은 아이의 아버지의 자세가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2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아이의 아버지는 자신의 불신을 회개하고, 즉시 믿음의 고백을 하였습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아버지는 예수님의 책망 앞에서 얼마든지 반발감을 세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때 마음을 겸손히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자신이 믿음이 없는 자임을 철저하게 인정했습니다. 다른 것이 믿음이 아니고, 바로 이것이 믿음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개취급을 받으면서까지 주님께 자기를 낮췄던 것처럼, 겸손하게 자신을 주님 앞에서 낮추는 것이 믿음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도저히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연약한 자임을 고백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그렇게 겸손하고 간절한 심령이 되어, 주님께 도와달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원어에서 소리를 질렀다는 것은 적극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는 기도할 때 소극적이지 않았습니다. 적극적으로 크게 외치며, 열렬히 기도했습니다. 그때 그의 안에 없던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믿음이 없던 자가 믿음의 사람으로 재창조되는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그에게 일어났습니다. 그때 주님은 아들의 병도 고쳐주셨고, 오늘날 우리에게 이 아버지의 기도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아버지의 기도에서 두 가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첫째, 주님의 관심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우리가 무슨 100일 작정새벽기도를 하고, 주님을 도구로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잘되고, 이런 것에 있지 않습니다. 주님의 관심은 우리가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습니다. “오 믿음이 없는 세대여!” 주님은 우리에게서 믿음을 보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건을 통해 때로는 우리를 꾸짖기도 하시고, 낮아지게도 하십니다. 어떤 분이 기도는 주님께 대한 항복선언이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내가 단 한 순간도 제대로 살 수가 없는 자임을 인정하는 믿음의 증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별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해도 확신이 없이 소극적으로 기도하지, 기도에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그때 별로 믿음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적극적으로 기도하지 않아도 아직은 자기 힘으로 버틸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의 근본적인 속성이 이렇습니다. 왠만해서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주님 앞에 무릎꿇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때로 기가막힌 웅덩이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나를 몰아가십니다. 고난을 통해 내 믿음이 드러나게 하십니다. 이제껏 믿음이 있다고 교만을 떨었던 내 모습을 완전히 바닥까지 들추어내십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인정해야합니다. 무릎꿇어야 합니다. 내가 정말 얼마나 엉망진창인 자인가. 얼마나 믿음이 없는 자인가. 내 안에는 믿음이 없고, 하나님께 믿음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믿음도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860명의 바알 선지자들과 믿음의 전투에서 승리했던, 불의 선지자 엘리야를 생각해보십시오. 바알 선지자들을 다 때려죽였지만, 이세벨 여왕의 엘리야를 반드시 죽여버리고 말겠다는 선포에 겁을 먹고는 자기 생명을 위해도망쳤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로 쫓겨들어가 목마르고 굶주린 상태로, 로뎀나무 아래에 엎드려졌습니다. 그가 진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다면, 이세벨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웠어야지요. 엘리야도 믿음이 완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 사건을 통해 엘리야의 믿음도 드러내셨습니다. 그가 얼마나 믿음이 없는 사람인가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이때 그는 여호와께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는 차라리 여호와께서 저를 죽여주시라는 내용의 기도였지만, 실은 하나님께 항복하는 기도였습니다. 여호와만이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나를 살려주실 수 있다고 매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엘리야의 기도를 받으셨습니다. 천사를 보내 엘리야를 어루만지시며, 하늘의 떡과 물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를 회복시키시고, 그의 믿음없는 것을 구체적으로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호렙산 위로 불러 세우셨습니다. 그를 데리고 바위를 깨트리는 무서운 바람을 지나고, 세상을 흔드는 지진과 불을 지나서, 세미한 음성으로 그에게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를 명확하게 지시하셨습니다. 하사엘을 세워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예후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게 하고, 엘리사를 기름부어 다음 세대의 선지자로 세우도록 하셨습니다. 이 일을 통해 엘리야의 목숨을 노리던 이세벨 여왕이 죽고, 엘리사로 역사가 계승되고,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칠천의 믿음의 세대가 준비되었습니다. 엘리야는 고난 가운데서 기도를 통해, 정말이지 다시 태어났습니다. 역사를 이루는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 고난을 당해 믿음이 고갈됐습니까? 내 안에 불신과 의심, 두려움이나 원망, 매너리즘 같은 것으로 힘드십니까? 그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 항복하십시오. 나의 믿음없는 것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고, 진실되게 주님의 도우심을 부르짖어 구해보십시오. 힘든 지금이 기도할 때입니다. 믿음없는 것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우리의 믿음이 연단을 받아 정금같이 나아올 때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통해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키시려는 주님의 마음을 알아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믿음의 사람들로 변화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기도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정말이지 자기 목숨을 걸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이 아들을 살리기 위해, 네 목숨을 줄 수 있냐하시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겠다고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9절을 함께 읽어 보시겠습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믿음과 기도는 마치 바늘과 실의 관계와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믿음, 역동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론적인 믿음 위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믿음의 엔진에 불을 붙이는 것과 같습니다. 로켓을 발사할 때 보십시오. 어마어마한 속력으로 하늘을 날아 지구 궤도를 뚫고 우주를 탐사하는 로켓을 발사할 때 얼마나 강력한 힘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래서 로켓이 발사할 때 엄청난 연료를 주입하여 폭발을 시킵니다. 비행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과 짐들을 싣고, 무거운 쇳덩이를 하늘로 날게 하기 위해서는 처음에 엄청난 폭발이 있어야만 합니다. 기도가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비행기가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엄청난 동력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로켓이 대기권을 뚫고 높은 차원의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추진력이 뒷받침 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우리가 믿음과 기도의 두 날개를 펴고, 한계를 뛰어 넘어 비상하는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기도 시리즈 저자로 유명한 이 엠 바운즈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가장 많은 일을 한 사람은 새벽에 일찍 무릎 꿇는 사람이다새벽은 우리의 소중한 첫 시간이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주님과 교제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낮에 우리는 일해야 합니다. 밤에 우리는 또 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다. 그러나 새벽은 자유합니다. 주님도 새벽에 기도하셨고 또 사모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시기까지 기도하실 때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책망하셨습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요즘은 40일간 특별새벽기도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때가 기회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새벽 한 시간, 나의 소중한 첫 시간을 깨워 기도로 드릴 수 있는 기회입니다. 신년수양회 개회말씀을 전하셨던 그 휼륭한 이모세 목자님도 새벽기도를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각오가 아니면 도저히 좀더 자고 싶고, 좀더 눕고 싶은 자기를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저희 파트에는 주일과 월요일에 파트 새벽기도가 있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준비하고,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자리가 이렇게 주에 이틀 있습니다. 특세제 기간만이라도, 주일 새벽만이라도 목숨을 거는 각오로 새벽기도하는 우리 파트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때 우리 믿음도 온전해지고, 성령의 역사가 2018년 우리 파트가운데 넘칠 것을 믿습니다.

 

저는 2018년이 되면서 벌써 신앙생활 13년차가 되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요 몇년은 자기발견도 하고, 회개도 하고, 장막생활 하면서 새벽기도도 하고, 나름 역사도 책임감 있게 섬기고, 양도 말씀으로 섬기면서, 나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시험이 코 앞으로 다가오자 저는 믿음 없는 자처럼 살았습니다. 1216일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2주 전부터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몸은 아프고, 체력은 고갈됐습니다. 엉덩이를 붙이고 자리에 앉아는 있지만, 공부가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영력도 고갈되어 기도가 나오질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불안과 두려움으로 지레 겁을 먹고, 시험 전부터 저는 이미 마음부터 패배자였습니다. 시험 전날에는 사탄에게 시험을 당했습니다. 사탄은 제게 옥상에 올라가서 떨어져 죽으라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사람들 앞에 무슨 수치냐면서, 죽으면 편해질 것이라고 유혹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1,2분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위기의 때에 말씀으로 꾸짖으시며, 제 믿음없는 모습을 도와주셨습니다. 제 안에 오늘 말씀이 울려퍼지고, 본문 말씀의 상황이 제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일이 없느니라!”,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우소서!” 저는 그제서야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여 제가 회개합니다.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나를 살려주소서! 하나님이 붙이시면 붙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1등으로 합격한다는 꿈을 분명히 주셨습니다. 다른 누구보다 하나님이 나의 합격을 바라시는 것을 믿습니다!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우소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말씀이 믿어지고, 심하게 요동하던 마음이 잠잠해졌습니다. 그날은 잠도 꿀잠을 잤습니다. 다음날 저는 새벽밥을 먹고, 아마 수험생 중 1등으로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이번 시험은 전의 시험들과 다르게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을 느끼면서 문제를 집중력 있게 술술 풀어나갔습니다. 독해가 안되는 영어 문제에서도 오래 고민하지 않고 확신을 가지고 찍었습니다. 처음으로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시험이 모두 끝나고 저는 이 시험을 끝까지 잘 감당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주시고, 그때 죽지 않고, 오늘 살아 있게 하신 주님께 할렐루야 감사찬송드립니다.

 

주님은 2018년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열정의 불을 제게 일으켜 주셨습니다. 제가 정말이지 취직하고 결혼하고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보다,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어찌하든지 믿음중심을 지키고 역사를 섬기는 사람이 되고자하는 방향을 잡게 하셨습니다. 그날 살려달라 합격하게 해주시라고 기도했을 때, 이렇게 서원기도했습니다. 평생 느헤미야 목자님이나 이다윗 목자님처럼 새벽기도에 목숨을 걸겠다고 서원기도했습니다. 아직도 내 안에 안일함과 타협하려는 마음이 남아서 구멍이 뚫리는 날이 있지만, 제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적극적인 자세로 새벽 첫 시간에 주님을 만나는데 목숨을 거는 투쟁을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제가 믿음과 기도의 사람이 되고, 나의 인생 문제들도 능히 극복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