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낫고자 하느냐

 

말씀: 요한복음 5:1 9

요절: 요한복음 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실패를 반복하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계속해서 받으면, 처음에는 도전적이고 진취적이던 사람이 점점 무력하게 되고 능히 할 수 있는 일도 포기하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즉 반복되는 실패를 통해 무력감을 학습하게 되는 현상입니다. 취업, 결혼, 자녀 많은 것을 포기하는 ‘N포 세대’, 돈도 없고 백도 없이 태어난 이상 이 헬 조선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흙 수저와 같은 말들이 학습된 무기력으로 인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됩니다. 오늘 말씀에는 이 학습된 무기력의 끝판 왕이 등장합니다. 그는 무려 38년 동안 실패를 반복하며 오늘도 그냥 무력하게 누워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무력한 인생을 찾아와 주시고 그를 지배하고 있는 그 무기력의 세력을 깨시고 치료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 본문의 주인공처럼 무력과 패배감을 깨고 일어나 건강하고 활기찬 인생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유대인의 명절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게 되었습니다. 다음 주이면 우리나라의 최대 명절인 설날입니다. 연휴가 조금 짧아서 아쉽기는 하지만 벌써부터 설 명절이 기다려집니다. 어린 아이들은 세뱃돈 받을 기대에 들떠있고 어른들은 그리운 친척들 시부모님들을 만날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기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방문하시는 이곳 베데스다라는 연못에는 이런 명절의 분위기와는 전혀 상관없이 고통과 슬픔에 싸여 누워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2, 3 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연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연못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베데스다라는 연못에는 한 가지 놀라운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이 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자는 무슨 병에 걸렸든지 깨끗이 낫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전설 때문에 이스라엘의 별의별 병자들병을 고치고자 이 베데스다 연못에 나아와서 기적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의사들도 못 고치는 병을 천사가 내려와서 고쳐 준다니 얼마나 고맙고도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의 이름을 베데스다 즉 <자비의 집>이라 이름 짓고, 천사의 자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천사의 자비를 체험하는 데에는 몇 가지 한계상황이 있습니다. 먼저는 천사가 가끔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가끔이라는 단어가 사람을 잡는 말입니다. ‘한 달에 한번혹은 ‘1년에 한번과 같은 정해진 기한이 있어야 준비도 하고 기다릴 텐데 가끔물이 동한다고 하니 기다리는 사람은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차라리 ‘100년에 한번이 낫지 가끔이라는 이 애매한 조건 때문에 수많은 병자들은 오늘도 핏발 선 눈으로 이 베데스다 연못만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또 한 가지 한계상황은 물이 동한 후에 가장 먼저물에 들어간 사람만 나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평소에는 몸이 아픈 처지를 서로 동정하며 형님 동생하며 사이좋게 지내다가도 물이 한번 움직이기만 하면 주변의 모든 사람이 적이 되어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박 터지는 싸움을 했습니다. 정말로 천사가 한번만 다녀가기만 하면 이전보다 더 많은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자비의 집 이곳 베데스다 연못은 실제로는 가장 무자비하고 살벌한 곳이었습니다.

 

오늘날 사회 역시 이곳 베데스다의 연못과 같은 살벌한 무한 경쟁의 사회입니다. 우리 신입생들은 일 년에 한번 문이 열리는 이곳 대학 합격이라는 자비를 받기 위해 얼마나 어려운 경쟁을 치러야 했습니까? 그 가운데 소수의 승자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실패의 쓴 맛을 보아야 했습니다. 대학 합격하면 이제 꽃길이 열려 있습니까? 이런 말해서 미안하지만 이제야 무한 경쟁의 사회를 막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기간 되면 어떠한 현상이 일어납니까. 전남대 봉지라는 연못 위에 백도라는 도서관이 있는데 거기에 많은 공대생, 인문대생, 사범대생 너나 할 것 없이 모여들어 피 튀기는 전쟁을 하며 A+의 은혜를 기다립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어떻습니까? 취업이라는 자비를 받는 길은 더욱 치열하고 험악합니다. 그럼 취업 하면 끝이 나나요? 결혼은 어떻게 하고 승진은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자식이 태어나면 이들을 또 어떻게 공부를 잘 시켜서 이 경쟁 사회에서 뒤처지지 않게 키워야 하는데요? 정말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우리는 살벌한 경쟁 사회에 노출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경쟁에서 최고의 승자만이 살아남는 이 무자비한 베데스다 연못과 같은 세상에 산다는 사실이 슬프게 다가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베데스다 연못에 예수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이 베데스다 연못에는 무려 38년 동안 누워있는 병자가 있었습니다. 38살이 아니라 38년을 병으로 앓으며 누워있는 것입니다. 38년간을 병도 낫지 못한 채 베데스다 연못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그가 이 긴 세월 동안 베데스다의 경쟁에서 수없이 패배와 실패를 반복해 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는 절망적인 베데스다 연못에서도 가장 절망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이 사람을 주목하여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병이 오래된 줄을 아셨습니다. ‘병이 오래된 줄을 아셨다는 것은 그의 몸의 질병 뿐 아니라 그가 얼마나 많은 상처와 쓰라린 아픔을 겪고 살아왔는가를 아셨다는 뜻입니다.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자비의 주님은, 베데스다에서 1등을 하여 승리의 세레모니를 날리는 사람을 찾아오지 않으시고 가장 비참하고, 무능한 38년 된 병자를 찾아오시는 진정한 자비의 주님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병자를 어떻게 도와 주셨습니까? 다함께 6절 말씀을 읽어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예수님은 이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십니다.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는 질문은 너무나 당연한 것을 묻는 것 같습니다. 어느 환자가 낫고 싶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낫고 싶습니다. 너무나 낫고 싶어요!” 이러한 대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을 들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그의 대답에는 낫고 싶다는 소망과,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 잘 만나서 물이 움직일 때 그 부모가 병자를 업고 뛰어서 물에 재빠르게 들어가 잘만 낫던데, 나는 도와줄 사람도 없고 맨날 늦어서 이렇게 아직까지 누워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반복되는 실패로 점점 낫고 싶다는 소망도 사라지고 희망도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베데스다 지역사회에서 적당히 어른대접을 받으며, 신입 병자들 다이빙교육하며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어 신참이야 저자리가 명당이야 저기 누워있다 나아서 간 사람 내가 여럿 많이 봤다~. 어 이번에 일등해서 나간다고 축하하고 다시는 오지 마라~”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물으십니다. “너 진짜 마음속에 낫고 싶기는 한 것이냐? 너 정말 병이 오래 되어서 나아야 되는데 도데체가 낫고 싶은 생각이 있기는 한 것이냐?” 물으시는 것입니다. 올해 초 기회가 되어서 세바시라는 프로그램의 강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주제가 건강에 대한 것이었는데 강사님은 사람들이 신년 초가 되면 건강해지고자 다이어트, 금연, 금주, 운동 많은 것을 다짐하고 계획하는데, 1월이 지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결심을 지키지 못하는지 물었습니다. 그 이유는 정말로 다이어트를 하고 금연을 하고 운동을 해서 건강해지고 싶은 내적인 의지, 내적인 소원이 없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계획을 세우고 좋아 진다고 하니까 따라서 계획을 세우지만, 내면에서는 삶을 절제하며 건강한 삶을 살고 싶은 소원보다 지금 먹는 것 계속 먹고 싶고, 지금 피우는 담배 계속 피우며 만족을 얻고 싶다는 소원이 더욱 강하기 때문에 금방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낫고자 하는 진정한 소원이 없으면 결코 나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죽어 있던 낫고자 하는 소원을 다시 살리시고자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저희에게도 오늘 동일한 질문을 하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너의 한계적이고 병든 인생을 치료함 받고 건강하게 되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느냐?도전하시며 물으십니다. 저희가 본문의 병자와 같이 수많은 실패로 인해서 나도 나을 수 있다, 내 인생도 변화될 수 있다라는 소망이 점점 희미해지고 무력해 지지는 않았습니까? ‘금수저’, ‘흙수저를 탓하며 나의 도전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누워있는 삶을 합리화 하며 살지는 않습니까? 병이 낫고 건강해 지는 삶이 좋은 것은 알지만, 내면에는 편하고, 쉽고, 달콤한 이 죄악의 자리에 누워있는 생활을 더욱 사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학습된 무력감으로 깊이 병든 인생들, 죄가 주는 달콤함과 쾌락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인생들에게 강력하게 도전 하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너 깊이 병들어있다. 너 꼭 나아야 한다. 너 반드시 낫게 할 수 있다!”하시는 말씀을 병든 인생들에게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내면으로부터 낫고자 하는 소원을 덧입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어떤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혼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내가 깊이 병든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죽음 양심이 살아나고 병든 내면이 나음 받고자 하는 소원이 일어나게 됩니다.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읽는 가운데 주님 안에서 건강하고 활력 있는 인생을 살고자 하는 내적 소원을 덧입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함께 8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예수님은 절망과 패배의식으로 깊이 병든 이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 도전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스스로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도록 도전하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탓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도전해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도와주실 터이니 믿음으로 시도해 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병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예수님의 믿음의 말씀 앞에 병자는 마음속에 작은 소망이 생겼습니다. 건강한 삶을 되찾고 낫고 싶은 소원이 생겼습니다. 자신의 슬픔과 아픔을 알고 찾아와 주신 예수님이 도와주신다면 병에서 낫게 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이상하게 정말 일어설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가 믿음으로 굳어있는 발에 힘을 넣어 딛고 일어섰을 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9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그 사람이 곧 나았습니다. 38년 동안이나 누워서 폐인처럼 살아가던 이 사람이 완전히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은 생명의 음성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무력한 팔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패배의 자리, 절망의 자리를 딛고 일어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525절 말씀은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예수님의 음성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음성입니다. 저희가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말씀에 순종하여 매일 매일 연약함과 무기력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활력 있게 걸어가는 2018년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은 두려움과 의존심으로 깊이 병들어 있던 죄인도 찾아와 주셨습니다. 엄마의 치마폭에 쌓여 자라온 저는 의존심에 젖어 나약하게 자라났습니다. 거기에 운동도 못하고 겁도 많아 중학교 시절에는 반 친구의 폭력에 시달렸고 그로 인해 내면에 많은 상처를 받게 되었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자유로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수업에 적응하지 못하여 F 학점과 학사 경고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한참 공부 열심히 하고 미래를 준비해야하는 20대에 무력하게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서 혼자 포르노를 보며 정욕을 즐기는 날이 많았습니다. 주님은 말씀 공부를 통해 이런 병든 죄인도 찾아오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나도 낫고 싶다. 이 무기력하고 패배적인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소원이 생겼습니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하시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부모님만을 의지하던 의존심의 자리에서 일어나 스스로 걸었습니다. 누워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실패한 전공에 다시 도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모른 것을 선배들에게 찾아가 물어볼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 백도에서 밤을 새울 수 있는 의지력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삶에 대한 자신감이 살아나고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여러 은사들을 발견하여 율동과 연극 말씀 등을 섬기며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을 알게 하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말씀을 들으며 영적인 훈련을 받을 때 내면의 속 두려움이 사라지고, 두렵게 생각했던 군대도 당당하게 육군 병장으로 건강하게 전역하고 높은 취업의 문턱도 넘게 하셨습니다. 병든 쪼다 같은 죄인의 인생을 회복시키시사 이제는 사랑스런 두 자녀의 아버지요 한 가정의 가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병들고 소망 없는 죄인을 찾아 오셔서 회복시키신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은 이 시간 새롭게 죄인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물으십니다. 재작년에 김형우 목자님이 이 말씀을 성령 충만 파트 모임에 와서 섬겨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제 나이가 38살이었습니다. 38년 동안 낫지 못하고 오랫동안 병들어 있는 모습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10년이 넘게 직장 생활을 하면서 무력감에 많이 병들어 있었습니다. 고객사인 대기업을 상대하면서 나는 갑이 아닌 을이나 병쯤 되는 회사에 다니는 패배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저를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직장 동료들과 술을 마시며 세상을 욕하고 직장 상사를 욕하며 스트레스를 풀었지만 남는 것은 술로 인한 똥배뿐이었습니다. 해년마다 술을 끊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겠다는 기도 제목을 내 놓지만 해년마다 여름 수양회 때 술 마시고 정욕을 즐기는 삶을 회개하는 것을 반복 하였습니다. 저는 진정 낫고 싶은 생각보다 이렇게 적당히 술 마시고 즐기면서, 회사에서 적당히 밥벌이 하는 것에 만족을 얻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점점 나아야겠다는 소망이 희미해지고 해가 갈수록 배가 나오고 무력한 혐오스러운 아저씨 모습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신년 초 이런 죄인을 다시 찾아오시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나작년 말 요절 심포지엄을 쓰면서 죄인의 삶에 다시금 문제의식을 갖게 하셨습니다. 반복되는 무력한 일상에서 벗어나 다시금 가슴 뛰는 삶을 살 고 싶은 소원을 주셨습니다. 신년 수양회 기도회에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기도하였을 때 주님은 죄인에게 사죄의 은혜를 주시고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할 때 신기하게 매 주 생각나던 술 생각이 멀어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죄인에게 술 취하고, 스마트폰 보며 안목의 정욕을 즐기고 허송세월을 보내기보다 주님께 나아가 성령님께서 주시는 감동과 도우심을 맛보고 싶다는 소원을 내면 깊은 곳에 주셨습니다. 손바닥에서 떨어지지 않는 스마트 폰을 내려놓고 말씀을 보며 은혜를 누리고 싶은 소원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새벽마다 일어날 힘을 주셨고 새벽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루를 힘 있게 그리고 부지런하게 걸어갈 수 있는 힘을 덧입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5년이 넘게 즐겼던 술을 끊은 지 1달이 되어갑니다. 저는 막걸리를 마시며 연어 초밥을 먹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였습니다. 이를 먹으면 하루의 스트레스가 모두 날아가는 것 같지만 다음날 똥배가 되어 두 배의 스트레스로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말씀 보고 저녁에 자는 것이 막걸리와 연어 초밥보다 사모가 되게 하십니다. 10년 가까이 끊지 못하던 웹툰도 끊게 하셨습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니 일본어 공부를 하며 자기 개발을 하는 습관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죄인에게 낫고자 하는 소원을 주시고 매일 힘차게 일어나는 삶을 회복시켜 가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올해도 다이어트에 대한 기도 제목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내면에는 다이어트하며 운동하고 싶은 소원보다 음식을 향한 탐식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습니다. “네 장막터를 넓혀라말씀에 순종하여 한 양을 말씀으로 섬기기를 기도 제목으로 잡았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이기적으로 나만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전도 모임에 나가는 발걸음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주님께서 죄인에게 진정을 날씬해져서 건강해 지고자 하는 소원을 주셔서 10Kg 감량하는 기적을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올 해 한 양을 섬기는 가운데 문둥이처럼 오그라든 마음이 펴지고자 하는 소원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올해 영육간에 나음을 받아 건강을 되찾는 원년이 되도록 축복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