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3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말씀: 마가복음 1:29-45

요절: 마가복음 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여러 가지 사역이 나옵니다. 많은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시고, 많은 귀신를 쫓아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엇보다 전도에 힘을 쓰셨습니다. 전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전도하시고 병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새벽부터 기도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원하시는 예수님의 목자의 심정을 배우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기도생활을 배워 충만한 영력을 덧입어야 하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30절에 보면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가버나움 지역은 바닷가라 습도가 높았습니다. 그래서 고열과 탈수를 동반한 말라리아로 열병환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열병 때문에 죽는 자도 많았습니다. 당시에는 의술도 열약했기 때문에 손 써보지도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베드로 집안에서도 장모의 열병으로 인해 온 식구들이 걱정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예수님이 그 집에 심방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어떻게 도와 주셨습니까? 3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예수님은 여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의 손이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잡는 순간 40도를 육박하던 열병이 순식간에 떠났습니다. 열병으로 끙끙 앓던 베드로의 장모가 즉시 일어나서 맛있는 육개장으로 예수님 일행을 섬겼습니다. 근심에 휲싸였던 온 집안이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집안에 누가 질병으로 앓아눕게 되면 얼마나 걱정이 됩니까? 특히 베드로는 가족을 하나님께 맡기고 제자의 길을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장모님이 편찮아서 앓아누우니 큰 고민이 되었습니다. 페트라 사모님도 짜증을 내고 바가지를 긁었습니다. 베드로는 참 난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장모의 열병을 치료해 주시니 얼마나 큰 힘이 되었겠습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나가 도움을 구할 때 주님께서 친히 해결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11: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하였습니다. 마태복음 8:17절에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질병의 문제, 취직문제, 자녀들 문제등등.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들고 나아갈 때 주님이 친히 해결해 주십니다.

 

특히 현대인들은 치열한 세상 속에 살다 보니 쉽게 열을 내고 분노를 폭발합니다. 분노조절장애라는 신조어가 나왔습니다. 지난 9일 서울 강북구에서는 한 청년이 아버지와 누나를 둔기로 때려 숨지게 했습니다. 새로 산 침대 문제로 다투다 아들이 화가 치밀어서 아버지와 누나를 죽게 했습니다. 지난 14일에는 아들과 어머니, 딸이 사흘 동안에 차례로 아파트에서 떨어져 자살했습니다. 아버지는 연락이 안 됩니다.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욱하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묻지마 폭행, 보복운전사건 등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 배후에서 사탄이 극단적인 행동을 하도록 조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터치하실 때 분노와 미움, 절망감이 사라지고 온유해집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의 손을 잡아 주실 때 열이 떠나고 마음이 부드럽게 됩니다.

 

33절을 봅시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온 동네 사람들이 문 앞에 모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각종 병든 사람과 귀신들린 사람을 일일이 치료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 육체와 영혼이 왜 망가지고 병들었는지 잘 아십니다. 예수님은 병균과 악한 영을 능히 쫓아내실 수 있는 권능이 있습니다. 이 예수님은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권능을 찬양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셨습니다. 3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예수님은 많은 병자를 고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시느라 무척 피곤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육신을 입고 계시기 때문에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어려움을 예수님은 기도로 극복하셨습니다. 기도를 통해 영력을 덧입으셨습니다. 특히 새벽 첫 시간에 기도하심으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지혜와 영감을 덧입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새벽부터 기도하셨다면 하물며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나의 연약함을 깊이 인정하고 주님께 나아가 무릎꿇고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기도하되 새벽에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가장 효력이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굴에 숨어지내며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지은 시편 57:8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그는 새벽을 깨워 기도함으로 암담한 현실을 돌파할 수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귀신들린 아이를 둔 아버지가 나옵니다. 귀신이 아들을 사로잡으면 아이가 거품을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물에도 넘어지고, 불에도 뛰어 들었습니다. 그 아버지가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제자들이 힘을 합해 귀신을 쫓아내고자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꾸짖자 즉시 귀신이 나갔습니다. “말 못하고 못 듣게 하는 귀신아!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는 들어가지 말라아이는 거짓말처럼 온전해졌습니다. 제자들이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이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9:29)” 기도만이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역사는 사탄과의 치열한 영적전쟁입니다. 여기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새벽에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가 맑은 영을 덧입고 능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요즘 주니어 사모님들이 새벽기도에 나와서 열심히 기도하니 큰 은혜가 됩니다. 기도하되 같이 모여서 기도해야 힘이 납니다. 기도의 모닥불을 지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부활절을 앞두고 사순절 고난주간입니다. 다음 주는 성찬식, 그 다음주는 부활절 예배, 4월 말에는 봄 수양회가 있습니다. 특히 다음 주에는 캠퍼스에서 동아리 알림아리가 있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때에 우리가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부터 봄 수양회 때까지 특새제를 갖고자 합니다. 말씀공부때 물어 보니까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보아스 목자님을 비롯해서 다 찬성을 했습니다. 국가적으로도 정말 기도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즘 많은 양들을 보내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새벽부터 열심히 기도해서 영력을 덧입고 생명구원역사를 힘써 섬겨야 하겠습니다. 예례미야 33: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기도의 응답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300팀 일대일, 200명 예배를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전도에 힘을 쓰셨습니다. 36절에 보면 시몬과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와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예수님이 많은 병을 고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시자 예수님의 인기가 점점 더 높아졌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몰려왔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유명하게 되어서 가만히만 계셔도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 뻔했습니다. 제자들도 덩달아서 신이 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예수님은 기자회견을 준비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간판을 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38,3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예수님은 이곳을 떠나 다른 마을로 가자고 하십니다. 거기 가서 전도하자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오셨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시고 온 갈릴리 마을을 다니시며 전도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셨습니다. 갈릴리 지역에 약 200개 마을이 있었다고 합니다. 일일이 마을을 다니시며 전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이제 이름이 알려졌으니 간판만 걸어도 사람들이 알아서 몰려 올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직접 다른 마을에 가셔서 사람들을 만나고 전도하기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전도는 부담이 아니라 기쁨이요, 사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38,3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예수님은 전도를 통해 어찌든 한 영혼이라도 더 찾고 구원하기 원하셨습니다. 이를 몸소 실천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전도열정을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사실 전도만큼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전도는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복음을 소개하고 관계성을 맺어야 합니다. 그때 배척을 당하기도 하고 무시를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전도만 없으면 목자생활 할 만 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왜 전도해야만 합니까? 로마서 10:14b절에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어야 듣고 들어야 믿을 것 아닙니까? 고린도전서 1:21b절에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전도는 무모하고 미련해 보입니다. 내가 전도한 사람 중에서 과연 몇 사람이나 복음을 영접하고 제자가 될까? 몇 사람이나 끝까지 남을까? 확률을 계산하고 따지면 전도할 수 없습니다. 전도하는 시간이 너무 아깝고 비효율적으로 보입니다. 제가 이전 교회에 있을 때 한 목동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목자님들처럼 무모하게 전도하기 보다 나중에 총장이 되어서 많은 학생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겠습니다그렇게 말하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교수나 총장이 되었다는 말을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어디서 신앙생활이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생명구원역사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으로 하고 손발을 놀려서 합니다. 특히 발품을 팔아서 합니다. 우리는 단지 우직하게 캠퍼스에 올라가서 전도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귀하게 쓰시고 때가 되면 축복하십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후서 4:1-5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고 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직무를 다해야 합니다. 전도는 고난이 있지만 이를 통해서 한 양을 어깨에 메고 주님께 나아올 때 얼마나 기쁩니까? 찬송가 508장에 주 내게 부탁하신 일 천사도 흠모하겠네 화목케 하라신 구주의 말씀을 온 세상 널리 전하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복음 전하는 축복을 천사에게 맡기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전도자의 직분은 천사들도 흠모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귀한 전도를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기쁨으로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2주전 화요일에 김안드레 목자님은 말씀축제에 양들을 초청하기 위해서 직장에서 하루 휴가를 냈습니다. 오전에는 전대에서 전도해서 정회민 형제를 만나 말씀축제에 초청했습니다. 오후에는 과기원에서 서영석 형제를 전도해서 과기원 말씀축제에 초청했습니다. 또 화순병원에 입원한 최정원 형제를 심방해서 이 분이 파트모임과 예배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안드레 목자님의 우직한 진심을 하나님께서 크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전도자의 삶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아름답습니까? 그래서 로마서 10:15b절에서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했습니다.

 

학창시절에 이보아스 목자님이 부산대 교환학생으로 갔는데 부산UBF에 잘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스텝 목자님인 박재근 목자님이 전도하러 나왔다가 보아스 목자님을 일대일과 예배에 초청했습니다. 그래서 그해 여름수양회에 참석해서 요한복음 8정죄치 않으신 예수님말씀을 통해 복음을 영접하고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박재근 목자님이 전도하러 캠퍼스에 가지 않았으면 지금의 보아스 목자님이나 이쁜 딸 라윤이는 없었을 것입니다. 전도가 얼마나 귀합니까?

 

과기처 장관을 지낸 정근모 박사님이 절친한 친구 김재익 박사에게 전도하고자 기회를 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재익 박사가 청와대 경제수석이라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었습니다. 어느날 만나자고 했더니 대통령을 모시고 동남아 순방 갔다와서 보자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동남아 순방중에 버마 랑군에서 폭탄테러로 김재익 박사가 죽고 말았습니다. 전도할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만 합니다.

전도는 기술이 아닙니다. 방법이 아닙니다. 심정입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간절한 심정이 있으면 전도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볼 때 신자에게는 두 가지 불이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는 기도의 불이요, 또 하나는 전도의 불입니다. 불붙는 기도, 불타는 전도열정. 새벽마다 부르짖어 기도하고, 불타는 심정으로 전도할 때 먼저는 내가 살아있게 됩니다. 다음으로 죄에 빠진 다른 사람을 살려 낼 수 있습니다. 예례미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20:9)” 사도바울도 말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4)”이들이 전도의 열정이 충만했을 때 불사조와 같은 위대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기도의 불, 전도의 불을 허락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넷째로, 예수님은 한 나병병자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40절을 봅시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했습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당시에는 나병을 전염병으로 생각해서 나병환자는 밖으로 내 보냈습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 나오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운명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어찌하든지 나아야겠다는 소원이 가득했습니다. 예수님께 나가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아가 꿇어 엎드려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한 가지 걸리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주님이 나를 과연 원하실까? 사람들이 다 나를 멀리하고 원하지 않는데 예수님이 원하실까?”하는 것입니다. 그는 그동안 무시받고 배척당한 상처가 컸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41,4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불쌍히 여기다라는 동사는 스플랑크니조마이로서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느끼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나병환자가 너무나 불쌍해서 견딜 수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손을 내미셨습니다. 본래는 손을 대면 안되는데 손을 대셨습니다. 그의 손을 만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예수님은 그를 원하셨습니다. I am willing. 적극적으로 그를 받아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병을 깨끗이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곧 나병이 나아서 깨끗해졌습니다.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시는 심정과 창조주의 능력이 이 사람을 온전히 깨끗케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예수님과 접촉하면 어떤 병도 낫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계적으로 병만 치료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의 아픈 내면까지 치료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 긍휼의 마음이 기적을 낳았습니다. 에베소서 2:4,5절에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3절에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했습니다. 우리도 모두 주님의 긍휼 때문에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물불을 가리지 않게 만듭니다.

 

어제 평창 페럴림픽 스키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신의현 선수는 2006년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습니다. 튼튼한 청년이 혼자의 힘으로는 거동조차 못하게 되자 너무 절망해서 3년동안 술에 취해 폐인으로 살았습니다. 왜 자신을 살렸느냐며 어머니에게 행패를 부렸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이회갑씨는 끝까지 인내하며 헌신적인 사랑으로 아들을 돌보았습니다. 신의현씨는 점점 용기를 냈고 의족을 달고 스키에 도전하여 마침내 대한민국 패럴림픽 역사상 첫 번째로 금메달을 목에 거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과 긍휼이 기적을 만든 것입니다.

 

우리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이런 심정일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은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오셔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고자 전도에 힘을 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손을 내어 미셨습니다. 그 사람이 나병환자로서 율법에서 부정한 자로 낙인찍힌 자라도 가리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세리일지라도, 사마리아 여인일지라도 영접하시고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능력이 기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우리도 오늘날 이 시대에 죄로 인해 병들고 고통하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고 다가가서 사랑의 손길을 내어 밀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사랑의 역사를 이루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내가 무엇을 위해서 믿음의 길을 가고 있는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나의 목자생활의 철학이 무엇인가? 수시로 점검해 봐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처럼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전도하고 사랑을 베풀기에 힘쓰길 기도합니다. 그때 생명이 살아나는 아름다운 봄학기가 될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