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4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말씀: 마가복음 2:1-17

요절: 마가복음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에는 죄인을 대하는 종교지도자들과 예수님의 자세가 대조가 되어 나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죄인은 부정한 자라 생각하고 무조건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적극적으로 다가 가셔서 치료하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죄인을 심판하러 오지 않으셨습니다. 죄인들을 불러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죄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과 사죄의 은혜를 충만히 덧입길 기도합니다.

 

.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1-12)

 

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셔서 어떤 사람의 집에 머무셨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도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들이 중풍병자 한 사람을 침상채 메고 예수님께 나아 왔습니다. 네 명의 사람이 메고 온 것을 보면 이 사람의 병의 상태가 매우 심각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풍병자는 뇌 신경이 마비 되어서 자기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씻고, 옷 입고, 식사하는 것등 기본적인 것도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들은 이번 기회에 어찌든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이 중풍병자를 치료해주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님께 데리고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중풍병자를 메고 나온 자들이 돈 받고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었으면 사람들이 많아서 어쩔 수 없어요하며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그들은 포기치 않고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지붕을 뜯었습니다. 구멍을 냈습니다. 그리고 침상채 달아 내렸습니다. 남의 지붕을 뜯었으니 나중에 이를 변상할려면 많은 돈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비용을 다 지불한 각오를 했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중풍병자 공수낙하작전을 감행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눈살을 찌뿌렸습니다. “이 무례한 놈들, 공중도덕도 모르는 놈들정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5a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예수님은 그들 마음에 믿음을 보셨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은 거칠고 교양이 없어 보이지만 그 내면에 주님께 대한 믿음과 친구에 대한 심정이 있음을 보셨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길이 보입니다. 지붕이 보이고, 지붕에도 구멍을 낼 수 있다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지난 주 수요일 동아리 알림아리 때 눈이 내렸습니다. 다른 동아리들은 다 철수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학생회관 로비로 옮겨서 계속해서 동아리 알림아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다윗 목자님 제안으로 도서관 소강당에서 바이블 카페를 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얼마든지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예수님은 환자여, 네 중풍병이 나았느니라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말씀하셨습니다. “My son, your sins are forgiven” 예수님은 믿음으로 나아온 이 사람을 ‘my son’아들로 영접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후에 이 사람의 중풍병도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먼저 죄 사함을 선포하셨습니다. 얼른 보면 그를 비참하게 하는 것이 중풍병 같습니다. 중풍병 때문에 이 사람이 불행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그를 비참하게 하는 것은 바로 죄문제입니다. 이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죄 때문에 고통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못쓰게 됩니다. 죄 때문에 원치 않게 추하고 더럽고 무기력한 삶을 살아갑니다.

 

죄는 무엇입니까? sin, 죄는 separation from God입니다. 하나님과의 분리,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 없이 맘대로 사는 것이 죄입니다. 로마서 1:21절에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않는 것이 죄라고 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니 자기 맘대로, 육신의 정욕대로, 혈기와 감정대로 삽니다. 그 결과 불의, 추악, 탐욕,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수군, 비방, 능욕, 교만, 무정 무자비한 자가 됩니다(1:29-31). 예수님은 보다 본질적인 영혼의 병, 죄문제를 뿌리 뽑아 주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제가 초등학교때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오면 운동장이 잡초로 무성했습니다. 그래서 전교생이 운동장에 나와서 잡초를 뽑았습니다. 그런데 잡초를 뿌리채 뽑는 것이 힘듭니다. 그래서 어떤 학생들은 이파리는 대강 쥐어 뜯고 맙니다. 선생님께 야단 맞지 않을려고. 그러나 며칠 뒤에 비가 오면 잡초들이 다시 무성해집니다. 뿌리를 뽑지 않으면 다시 잡초가 자라서 운동장이 엉망이 됩니다.

 

사람들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외적인 문제, 현실적인 문제만 해결해 준다고 능사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의 근본문제인 죄문제를 뿌리 뽑으러 오셨습니다. 죄는 잡초처럼 끈질기고 집요합니다. 죄는 보이지 않는 사슬처럼 우리를 얽어매고 꼼짝 못하게 만듭니다. 죄의 세력이 워낙 강력해서 번번히 죄에 넘어져 중풍병자처럼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의 사슬을 끊으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죄의 감옥에서 해방시키는 권세가 있습니다. 로마서 8:2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그때 참 자유와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죄 때문에 하루하루가 지옥과 같았던 사람이 천국을 맛보게 됩니다.

 

어떤 분은 담배를 끊고자 별의 별 방법을 다 시도해 봤습니다. 그러나 작심삼일, 어느새 쓰레기통을 뒤져 꽁초를 피우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절망했다고 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그러나 말씀을 공부하고, 여름수양회 때 십자가 말씀을 영접하고 죄 사함을 받게 되자 담배 피우고 싶은 생각이 툭 끊어졌습니다. 담배 피우지 않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자신이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후로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되었습니다. 담배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났습니다. 예수님의 죄사함의 권세는 이처럼 놀랍습니다. 사죄의 권세자 예수님을 찬송합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죄를 사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에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그들은 죄는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이 사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신성 모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른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10절을 봅시다. “그러나 인자는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하늘에 계셨지만 죄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11,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Get up, take your mat and walk! 그러자 그 사람이 일어나서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당당히 걸어서 집으로 갔습니다. 이로서 예수님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능히 죄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고 나아가면 어떤 죄도 사해집니다. 나를 추하게 하고 무기력하게 하는 어떤 죄 문제도 해결됩니다. 나를 절망스럽게 하는 어떤 상도 들고 일어나 걸을 수 있습니다.

 

제가 학생 때 어떤 분은 여름에도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녔습니다. 저는 그 분이 기관지가 나쁘든지 무슨 병이 있는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육체의 질병이 아니라 마음에 죄의식이 있었습니다. 죄의식으로 인한 수치심, 자의식 때문에 사람들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목소리도 너무 작아서 옆에 사람이 중계방송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 분이 여름수양회에 가서 말씀을 통해서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는 예수님의 사죄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에게 사죄의 은혜가 임하자 오랫동안 그를 짓누르던 죄의 짐이 벗겨졌습니다. 마침내 마스크를 벗고 환한 얼굴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가 그렇게 미남인지 예전에 미처 몰랐습니다. 그는 담대하게 메시지도 전하고, 연극도 잘하고, 양들도 잘 돕는 것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죄문제 때문에 가슴에 보이지 않는 주홍글씨를 달고 다닙니다. 평생 죄의식, 자의식, 수치심, 두려움의 감옥에 갇혀 고통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죄 사함을 선포해 주십니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예수님은 우리의 허물과 실수, 죄와 수치의 목록들을 다 지워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해방을 선언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사냥군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와 같이 자유롭게 됩니다. 로마서 8:1,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안에 들어오면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사죄의 은혜를 풍성히 누릴 수 있습니다. 사죄의 권세자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13-17)

 

14절을 봅시다. 같이 읽겠습니다.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레위는 세리였습니다. 당시 세리들은 정한 세 외에 더 많은 세금을 뜯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를 로마 정부에 바치고 얼마는 자신들이 착복했습니다. 그래서 동족들이 다 미워했습니다. 그는 앞에 나오는 중풍병자처럼 무기력한 죄인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이기적인 죄인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세리스럽다하면 큰 욕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세리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정말 세리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욕을 많이 먹었겠습니까? 그는 돈은 많이 벌었지만 외로웠습니다. 점점 후회와 죄의식이 몰려왔습니다. “내가 이럴려고 세리가 되었나?” 하는 후회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미 세리계에 발을 들여 놓았고, 자신은 망친 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그를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자기도 스스로에게 소망둘 수 없었습니다. “난 떡 쪄 먹고 시루 엎었다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follow me.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만 하면 얼마든지 그도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으셨습니다. 실제로 그는 나중에 변화되어서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리 레위의 인생 방향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돈을 따르는 인생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인생으로 방향전환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때 레위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곧 일어나 따랐습니다. 그는 더 이상 돈을 추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레위는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돈을 드려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많은 세리와 죄인들을 초대했습니다. 예수님도 오셔서 함께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이 잔치는 구원의 잔치요, 생명의 잔치였습니다. 그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모시고 따랐을 때 천국이 임했습니다.

 

저는 김휘승 형제를 보면 세리 레위가 자꾸 오버랩이 되는 이유가 왜 일까요? 저는 가끔씩 나타나는 그가 연하 사모님께 사랑 받으러 오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4페이지 소감을 써서 제게 보냈습니다. 그의 소감을 읽어 보고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공부를 잘하여 목포시 장학생이요, 전남대 성적 우수 장학생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자기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만방자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장래에 대한 불안과 복잡한 집안문제 때문에 항상 어두웠습니다. UBF에서 말씀공부 하면서도 세상 욕심 때문에 신실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군대에서 군종 목사님이 요한복음 4장 말씀을 들려 주셨는데, 목마름, 갈증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마리아 여인과 같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요한복음 4:14절 말씀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그가 쓴 소감을 그대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저는 구원의 기쁨을 맛보았고 메말라 버린 영이 생기가 넘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군 제대후 UBF 주일예배에 나오기 시작했는데 마음속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경건함을 느꼈습니다. 격무에 시달리며 지친 삶 속에서 기도를 드리고 말씀을 듣고 찬송을 하는 것에서 일주일동안 쌓인 고민들이 카타르시스로 승화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지은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은혜였습니다. 오만과 편견으로 얼룩진 과거와 그리고 앞으로 죄를 짓고 살아가게 될 자신도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내 대신 고난 받고 돌아가신 예수님의 희생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계속 예배를 나가고 말씀공부를 하면서 기도를 들어주시는 기적까지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3학기 연속 전액장학금과 조기졸업이라는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재학 중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케 하시고, 920명 중에 340등이라는 좋은 성적도 주셨습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직접 보고 경험함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더욱 굳건해졌고 이렇게 소감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믿음은 변함이 없습니다고독한 세리 김휘승 형제님이 예수님을 만나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놀라운 기적의 역사입니다. 몇 달 전 김휘승 형제가 요회원들을 위해 커피를 쏠 때 저는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놀라운 변화의 역사를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16절을 봅시다.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서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 죄에 오염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을 멀리해야 거룩함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1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먹으면 죄에 감염된다고 생각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죄인들과 함께하심으로 그들을 거룩으로 감염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죄인들을 의인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예수님이 거룩함만 고집하셨다면 이 땅에 오실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늘에 계시지 않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죄로 병든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치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죄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과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예수님은 의인은 뽑아 상 주고, 죄인은 색출해서 벌주려고 오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죄인을 불러 의인으로 만들기 위해 오셨습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라고 말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사야 64:6절에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누더기)와 같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3: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3:23)” 다 함량미달입니다. 로마서 6: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다 사형선고를 받고 죽어야만 했습니다.

 

지난 주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었습니다. 전직 대통령도 법 앞에서는 엄중한 처벌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앞에 서게 되면 누구도 처벌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를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 대신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뺨을 맞으시고, 침뱉음을 당하셨습니다.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옷 벗김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물과 피를 다 쏟고, 처절한 고통과 함께 돌아가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5,6)” 우리가 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영접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십니다. 우리의 죄는 예수님께 뒤집어 씌우시고, 예수님의 의는 우리에게 선물로 주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합니까? 로마서 5:7,8절에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했습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감사 찬송드립니다.

 

이전에는 암환자를 치료할려면 치료비가 엄청났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서민들은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멍하니 누워서 죽는 자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우리나라가 좋아져서 중증 암환자는 국가에서 치료비를 부담합니다. 이것도 감사한 일이죠. 그런데 암보다 더 치명적인 죄를 거져 은혜로 사해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기만 하면 이 은혜가 임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전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실 때 떡을 떼어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22:19)” 또 포도주를 부어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22:20)” 이로서 예수님은 성만찬 예식을 제정하셨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살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신 주님의 은혜를 항상 기억하고 되새기라는 것입니다. 이 주님의 명령에 따라 이 시간 성찬예식을 거행하고자 합니다.

성찬식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우리 신자들이 참여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나를 위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엄청난 고통이요, 처절한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고통과 죽으심을 통해서 우리의 추한 죄가 사해졌습니다. 우리의 허물이 지워졌습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죽고 새 생명을 덧입게 되었습니다. 이런 죄 사함의 은총이 거져 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뼈가 으스러지고, 살이 찢어지는 고난을 예수님께서 친히 감당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우리가 거듭나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은혜를 되새기고 감사하기 위해서 성찬의식을 거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은 형식적인 예식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내가 먹고 마시는 떡과 잔을 통해 예수님의 살과 피가 나의 골수에 사무쳐서 예수님의 생명이 내 안에 부어지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죄 사함 받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죄악된 세상에 살면서 또 죄에 오염이 됩니다. 이시간 성찬을 통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서 예수님의 거룩하신 영이 내 안에 들어와서 나를 깨끗케 하는 은혜를 체험하길 기도합니다. 성찬을 영어로 ‘Holy Communion'이라고 합니다. 거룩한 교제, 거룩한 연합입니다. 성찬을 통해 거룩하신 주님과 교제하며 연합하는 은총이 임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