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부활절 특강 (김요나단, 한충신 목자)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말씀 / 고린도전서15:1-58

요절 / 고린도전서 15: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역사 속에서 인간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은 사건이 많이 있었습니다.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로봇 등의 발달로 기존 직업의 80%가 사라질 정도로 우리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2천 년 전에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은 혁명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인류의 최대의 적인 죄와 죽음을 정복했습니다. 우리의 구주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도 장차 예수님처럼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성도들 중에 어떤 자들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부활한다면 어떤 몸으로 부활할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부활의 확실하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또한 부활을 믿는 성도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부활의 복음을 새롭게 영접하고 부활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 나는 날마다 죽노라(1-34)

 

1,2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부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았고 그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전한 복음을 다시 알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고린도 성도들이 복음을 헛되이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다시 복음을 알게 하기 원했습니다. 알게 하는 것은 ‘remind’ ‘다시 기억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고린도 성도들과 우리가 remind해야 하는 복음은 무엇입니까? 3,4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증거로 두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그 첫 번째 증거가 성경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성경대로죽으시고 성경대로다시 살아났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315절부터 말라기까지 구약성경 곳곳에는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편 22편과 이사야 53장에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시편 16:10절과 호세아 6:2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생전에 여러 차례 종교지도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후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16:21). 그리고 말씀하신 그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습니다.

 

부활의 두 번째 증거는 수많은 증인들과 사도 바울 자신의 체험입니다. 5-8절을 보십시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가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와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게바, 열두 제자, 오백여 형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모든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습니다. 사도행전 1:3절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40일 동안 사도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치셨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사도 바울 자신이 부활의 산증인입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던 자였습니다.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였습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성도들을 색출하여 잡아 가두고 해를 가했습니다. 멀리 다메섹까지 가서 성도들을 핍박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바울에게도 부활하신 예수님이 영광스러운 빛으로 감싸시고 만나 주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니라”(9:4)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순간 그는 모든 자기 의가 무너졌습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심판하지 않으시고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이방인이 사도로 세워 주셨습니다.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수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13권이나 되는 신약성경을 기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사도 중에서 가장 작은 자일 뿐만 아니라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하지 못할 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구원의 은혜와 감격이 너무나 커서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했지만 그 수고한 것조차도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여겼습니다. 9,10절에서 그는 부활의 예수님이 주신 은혜를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지금까지 사도 바울은 성경과 허다한 증인들을 통해 부활이 분명하게 있음을 말했습니다. 이 정도 말했으면 부활을 확신하고 굳게 믿어야 할 것 같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육체는 부정하게 여기고 영은 신성하게 여기는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아 죽은 자의 부활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들의 주장대로 만일 부활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어떤 문제가 생깁니까? 13절을 보십시오.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십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지 못하시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 믿는 것이 모두 헛것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이 됩니다. 우리가 전한 복음의 핵심이 예수님의 부활인데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사기행각을 벌여 온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여전히 우리가 죄 가운데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는데 죽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죄 문제도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거하며 구원받지도 못하고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너무나 불쌍한 자들이 됩니다.

 

지난 주에 광주 7부 송누가 목자님이 소천하셨습니다. 목자님은 의사로서 많은 환자들을 돌보시느라 늘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밤잠을 줄여가며 주일 말씀을 준비하여 전하셨습니다. 목자님을 통해 많은 분들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 중에도 목자님의 도움을 받고 사랑의 빚을 진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송누가 목자님이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에 거하시며, 장차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 것을 믿기에 마냥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활의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붙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부활이 없다면 그분의 삶은 참으로 불쌍합니다. 의사로서 명성과 부를 누려보지도 못하고 희생하고 헌신만 하다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으니 얼마나 불쌍합니까.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부활이 없다면 새벽마다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고, 주말에 놀러도 못 다니고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입니까. 부활이 없다면 지난 겨울 그 매서운 한파 속에서 전도하고, 힘들서 번 돈으로 양들 비싼 밥 사주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20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그러나 이제! But now!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사망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길이 다스리시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찬송가 160)’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사망이 아담 한 사람으로 들어온 것처럼 부활의 첫 열매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삶을 얻게 되었습니다(21,22). 로마서 8:11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의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말씀처럼 부활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죽을 몸도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 부활하는 것입니까? 23,24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부활도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께 속한 성도들이요, 그 후에는 마지막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성도들의 부활입니다. 장차 예수님께서 큰 나팔소리와 함께 구름을 타고 천군천사들과 함께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을 믿다가 죽은 성도들이 부활의 몸을 입고 다시 살아납니다. 동시에 이 땅에서 믿음을 가지고 살던 성도들도 부활의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됩니다. 그때 예수님은 모든 사탄을 완전히 멸하시고 영원한 불 못에 던져 심판하십니다.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근본 요소는 죽음입니다. 삶의 기쁨을 사라지게 하는 것은 결국 죽음의 세력입니다. 요즘은 취업난으로 인해 많은 청년들이 죽음의 고통을 맛보기도 합니다. 저는 몇 년 동안 규칙적인 운동을 하지 않아 40이 된 올 해는 특히 몸이 많이 약해진 것 같아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러다 갑자기 죽으면 어떡하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모든 삶의 문제는 결국 죽음으로 귀결이 됩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우울증, 공황장애, 두려움, 걱정, 근심, 염려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 있으면 죽음에서 벗어나 영원한 삶을 얻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생명이 넘쳐납니다. 희망차고 역동적인 삶, 비전과 소망이 충만한 삶을 살게 됩니다.

 

사도바울의 삶이 그러하였습니다. 31절을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사도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날마다 거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 거했습니다. 그럴 때 죽음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활을 소망하며 매일 매일 죽을 각오로, 적극적으로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았습니다. 열심히 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삶을 얻었기 때문에 돌에 맞아 죽은 것처럼 되었어도 다시 일어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옥에 갇혀 있을 지라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4:4)고 권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부활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의 삶은 어떠합니까? 32절 말씀과 같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하며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 시대에 노예들은 로마 시민들의 쾌락을 위해 검투사가 되어 맹수들과 싸웠습니다. 그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살아있는 동안 먹고 마시며 있는대로 쾌락을 즐겼습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의 모습은 다르지 않습니다. 작년에는 'yolo'(you only live once, 인생은 한번 뿐이니 즐기라)가 유행이었습니다. 올해는 소확행’(小確幸,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탕진잼’(돈을 탕진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것) 같은 삶의 방식이 대세입니다. 불확실한 내일을 꿈꾸며 수고하고 애쓰느니 차라리 현재를 즐기며 살라는 것입니다. 요즘은 일본이나 동남아시아 정도는 주말을 이용해 실컷 먹고 마시고 즐기고 오는 것이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삶에는 아무런 꿈도 비전도 없습니다. 하루만 사는 하루살이와 같습니다.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즐거워 보일지 모르지만 그 끝은 멸망입니다. 사탄은 이런 세상 가치관으로 우리의 행실을 더럽히고자 합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자꾸 세상에 눈을 돌리게 하여 우리의 선한 행실을 더럽힙니다. 부활 신앙을 흔들고 이 세상의 것이 전부인 양 속입니다.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죽을 각오로 새벽을 깨우고, 죽을 각오로 양을 치고, 죽을 각오로 주님께 드리는 우리들을 향해 다 헛수고야! 인생 뭐 있어 즐겨!” 하고 속삭입니다. 우리는 이런 악한 동무들의 말에 속아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3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깨어 있어야 합니다.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부활 신앙을 굳게 붙잡고 항상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자 몸부림치는 투쟁을 해야 합니다. 싫은 소리도 들어가면서 육신에 속한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정말 죽을 각오로 새벽을 깨우고 죽을 각오로 말씀 보고 죽을 각오로 양을 치고자 할 때 우리는 더욱 살아나고 부활을 체험하게 됩니다. 부활의 생명력을 가지고 주위 사람들까지 살리는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 시간 우리가 깨어 의를 행하므로 그리스도 안에 항상 거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삶을 얻고 부활의 생명력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통해 부활을 믿음을 새롭게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 저는 올 해 신년수양회에서 외쳐 노래하라’(54:1) 말씀을 눈물로 전하며 힘차게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 입을 닫고 가만히 있을지라도 나 홀로 복음을 외쳐 노래하리라! 다짐했습니다. 열심히 성경을 읽으며 외쳐 노래할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새벽기도와 일용할 양식을 열심히 감당하며 영적인 무장을 했습니다. 그럴 때 사상 유례없는 막강한 한파 속에서도 눈보라 치는 광야에 선 초인처럼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저 뿐만 아니라 특별히 주니어 사모님들이 깨어나 외쳐 노래하게 하셨습니다. 주어니 사모님들은 새벽마다 나와서 기도하고 캠퍼스에서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 모습을 볼 때 힘이 절로 났습니다. 학생회도 박요한 회장을 중심으로 모임을 잘 이루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자님들의 헌신을 받으시고 3월 말씀축제에 많은 양들을 보내주심으로 목자님들 마음에 큰 기쁨이 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양들로 인해 기쁨이 넘쳤습니다. 어느날은 6시부터 9시까지 한 시간씩 세 명의 형제들을 연달아 만나 밥 먹고 차 마시고 교회에 데려와서 목자님들에게 소개할 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이 뿌듯했습니다. 양들이 와서 밥만 먹고 가도 자식들이 잘 먹는 것을 보며 좋아하는 부모처럼 기분이 좋았습니다. 지난 주에는 1학년 박종호 형제와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말씀을 공부했습니다. 그가 겸손한 자세로 말씀을 잘 듣고, ‘저도 하나님을 믿어야겠습니다라고 기도할 때 날아갈듯 행복했습니다. 1학년 김경진 형제도 말씀을 공부하고 나서 저도 예수님 믿어요하며 인사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너무 기쁘고 좋아서 다른 사람들한테 자랑하고 싶었지만 내 자랑이 될 것 같아 참았습니다. 년 초부터 파트모임에도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말씀을 맡은 목자님들이 쏟아지는 직장 업무 속에서도 온 마음을 다해 말씀을 준비하여 전할 때 여름수양회를 하는 것처럼 은혜가 넘쳤습니다. 사모님들은 주일마다 고급 호텔 식사가 부럽지 고급지고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여 섬겨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와 목자님들의 헌신적인 모습에 감동하여 눈물이 났습니다.

 

송누가 목자님의 갑작스러운 소천은 큰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부활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붙들게 해주었습니다. 젊은 나에게도 그날이 도둑같이 갑자기 올 것을 생각할 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나는 죽어서 하나님 앞에 자신있는 모습으로 설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너는 세상에서 무엇을 하다가 왔느냐?’ 물으시면 대답할 말이 있을까 생각하니 저의 신앙생활을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은혜를 주셨지만 저는 자주 현실의 어려움만 생각하고 근심, 걱정했습니다. 목자님들이 마음을 다해 헌신하고, 학생회가 다시 일어나고 있고, 양들도 보내 주고 계시지만, 오랜 실패의 경험으로 인해 불신에 사로잡힐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 목자님들에게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크게 걱정하고 염려했습니다. 겸손, 도전 목자님이 취업의 어려움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볼 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는 무능함과 목자로서 믿음없는 모습에 괴로웠습니다. 승리 목자님이 영육간에 조금만 힘들어져도 저도 같이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부활의 능력을 허락하시고 새 힘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삶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작은 문제 앞에서도 불안하고 흔들릴만큼 연약하고 다른 사람의 문제는 더욱 더 돕지 못하는 무능한 자입니다. 그러나 저를 구원하시고 부활의 능력으로 함께 하시는 예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시험을 앞둔 겸손, 도전목자님들에게 믿음과 능력을 주사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영적으로 무지하고 죄 아래 있는 양들을 부활의 능력으로 구원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끊임없이 저를 괴롭히는 무력감, 패배의식을 물리치고 사도 바울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도전하며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음에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이미 승리를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언제나 함께 계시며, 부활의 능력으로 모든 죄와 사망의 세력에서 이기게 해 주십니다. 부활의 주님은 참으로 능력의 주요 은혜가 풍성하십니다. 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더욱 기쁘고 즐겁고 힘차게 믿음의 길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35-58)

 

앞의 말씀을 통해 부활의 소식을 들은 여러분들의 얼굴을 보니 부활의 기쁨이 충만한 것 같습니다. 말씀을 여기까지만 들어도 부활이 확실하게 믿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고린도 교회 내에는 여전히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몸이 부활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사람이 죽고 땅에 묻히면 썩고 부패하여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갑니다. 화장을 하면 뼛가루만 남습니다. 이런 경우 형체가 없는데 어떻게 몸이 부활할 수 있을까요? 또 몸이 부활한다고 하면 어떤 모습으로 부활하게 될까요? 송중기, 송혜교 정도면 그대로 부활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내 얼굴, 내 몸매, 내 성격 이대로 부활한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부활에 대한 소망이 사라집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이런 자들에게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36-38절을 읽겠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어리석은 자여!” 바울은 책망부터 시작합니다. 밭에 뿌리는 씨만 봐도 알 수 있는 부활의 진리를 너무나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씨를 땅에 심으면 씨는 어떻게 됩니까? 죽습니다. 씨의 형체가 사라집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씨의 모습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형체가 나타납니다. 나팔꽃, 분꽃, 봉숭아, 사루비아 씨앗의 모습을 보십시오. 정말 작고 까맣고 볼품없어 보입니다. 봉숭아 씨앗은 쥐똥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 씨앗들이 땅에 심겨져 죽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너무나 아름다운 새로운 형체로 다시 태어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하나님께서 각 종자에게 그 뜻대로 형체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현재 모습은 씨앗과 같습니다. 우리도 죽으면 땅에 심겨집니다. 우리 육신의 형체는 사라집니다. 하지만 부활의 때가 되면 우리는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씨앗에서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꽃들이 나타났듯이 현재의 우리 모습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부활은 지금의 내 모습을 개조해서 좋게 만드는 리모델링 정도가 아닙니다. 이전 것은 다 허물고 새롭게 짓는 신축입니다. 하나님의 재창조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창조하실 때에도 사람, 짐승, , 물고기의 육체를 다 다르게 하셨습니다. 하늘에 속한 해와 달과 별의 영광도 다 다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형체와 영광을 주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부활의 때에 우리를 그의 뜻에 따라 독특한 형체와 영광으로 재창조하십니다. 새로운 부활의 영광스러운 형체를 주십니다. 더 이상 거울 보면서 힘들어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날이 되면 우리 모두가 눈이 부실 정도로 영광스럽게 변화될 줄 믿습니다.

 

그러면 다시 살아나게 될 우리 몸의 특성은 어떠할까요? 42-44절을 읽겠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이 땅에서의 우리 몸은 썩고 욕되고 약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노화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화장품이 백삼근줄기세포라는 화장품인데 1병에 63천만원이라고 합니다. 이 화장품을 아무리 덕지덕지 온 몸에 발라도 결국 늙고 썩게 됩니다. 또 얼마나 욕됩니까? 죄의 본성을 품고 있어서 뜻하지 않게 자꾸 죄에 넘어집니다. 건주 목자님은 지난 동아리 알림아리 때 댄스 동아리에서 자매들이 짧은 옷을 입고 춤을 추자 보지 않고자 반대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게 자꾸 몸이 돌아갔습니다. 다시 몸을 돌리지만 눈동자는 자꾸 뒤로 돌아가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몸은 욕됩니다. 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집니다. 또 얼마나 약합니까? 각종 질병에 시달리며 고통합니다. 저는 요즘같이 봄바람 휘날리며 벚꽃들이 피면 비염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고통합니다. 어떤 목자님은 요즘들어 머리가 많이 빠진다고 고통을 호소하였습니다. 축구를 하다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움직이는 바람에 선배 목자님에게 욕을 먹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시 살아나게 될 우리의 몸은 어떠합니까? 더 이상 썩지 않습니다. 영원히 썩지 않는 불멸의 존재가 됩니다. 피부에 주름도 없고 탱탱한 피부를 유지하게 됩니다. 또 영광스러워집니다. 더 이상 죄의 소욕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나도 모르게 나의 몸이 죄악된 곳을 향하여 돌아가지 않습니다. 죄를 짓지 않기 때문에 소감을 쓸 필요도 없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또한 강해집니다. 더 이상 질병에 시달리지 않아도 됩니다. 저도 더 이상 비염으로 고통하지 않습니다. 뻥 뚫린 코를 가지고 시원하게 숨을 쉬며 살게 될 것입니다. 머리카락이 빠지지도 않으며 축구를 하면 메시, 호날두가 되어 날아다닐 것입니다. 결국 육의 몸이 심겨져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신령한 몸이 되어 예수님과 함께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고 생각하면 이 얼마나 기쁘고 소망이 됩니까? 우리가 이 소망을 굳게 붙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다시 살아나게 됩니까? 45절을 읽겠습니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예수님이 살려주는 영이 되사 우리를 다시 살려 주십니다. 부활의 영으로 우리를 다시 부활하게 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라”(11:24,25)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47절을 보십시오. 첫 사람 아담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후손들은 모두 흙에 속한 자들로 태어나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둘째 사람이신 예수님은 하늘에서 나셨습니다. 하늘의 영으로 충만하십니다. 이 예수님께서 부활의 영, 생명의 영을 가지고 오사 우리를 다시 살리십니다.

 

4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부활할 때 우리는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벗어버리고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게 됩니다.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날씨와 환경에 따라 그에 맞는 옷을 입습니다. 우주에 나가는 사람은 우주의 온도와 기압에도 끄떡없는 우주복을 입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이루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게 되면 그 곳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게 하십니다. 그러면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마가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제자들에게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습은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장차 덧입게 될 모습입니다. 빌립보서 3:20,21절은 말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장차 하늘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낮고 천한 몸을 변화산에서 보여 주셨던 빛나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이것이 장차 우리가 입게 될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입니다. 얼마나 놀랍고 신비합니까?

 

우리는 이 부활소망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 흙에 속한 자로 돌아가게 됩니다. 흙에 속하였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땅에 속한 것만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어떤 게시판에 한 사람이 인생에 대해 이렇게 써놓은 글이 있었습니다. “인생이란 청년의 때에 직장만 바라보고 직장에 들어가서는 결혼만 바라보고 결혼해서는 자녀들만 바라보고 자녀들이 결혼하면 있는 살림 더 불리는 것만 바라보고 더 나이가 들면 나의 건강만 바라보다가 결국 내가 묻힐 묫자리만 바라보는 것이다흙에 속한 자들은 결국 흙으로 돌아갈 것만 생각합니다. 얼마나 허무합니까?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물질문제, 자녀문제, 건강 문제들로 인해 괴로워하고 갈등만 하다 인생이 끝나버립니다. 그래서 얼굴이 항상 어두운 흙빛입니다.

 

하지만 하늘에 속한 자들은 어떠합니까? 이 땅의 것이 끝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잠깐이요 부활하여 하늘나라에서 영원토록 살 소망이 있기 때문에 이 땅에 것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현실에 얽매이지 않으니 세상의 염려, 근심, 걱정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차원이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주니어 사모님들이 새벽을 깨워 기도하고 전대, 보건대, 과기원, 동신대까지 캠퍼스를 가리지 않고 올라가며 전도 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이 물질문제, 자녀문제, 건강문제가 다 해결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저마다의 문제가 있지만 장차 하늘에 간직할 영원한 유업을 바라보면서 차원이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아름답고 빛나 보입니다. 세상 아줌마들은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빛나 보이기 위해 비싼 화장품을 바르고 성형수술을 하고 피부과를 찾아 다닙니다. 하지만 우리 목자님들은 기껏해야 몇 분이 쌍거풀 수술 정도 했을 뿐 평소에는 화장도 거의 하지 않고 생얼로 다닙니다. 그럼에도 세상 사람들 보다 훨씬 더 빛나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활 소망을 간직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목자님들 안에 있는 부활의 영이 영적 성형수술 작용을 하여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덧입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베드로후서 13절은 말합니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우리는 부활의 산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부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때 그 삶의 모습에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시간 부활 소망을 굳게 붙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세상에서도 하늘에 속한 자의 축복을 누리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51-53절을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특급 비밀을 말해줍니다. 그 비밀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시고 그 때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린다는 것입니다. “빰 빠라빰!” 나팔 소리가 힘차게 울릴 때 부활 소망 가운데 죽은 자들이 다 무덤에서 일어납니다. 그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은 바로 공중으로 들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썩지 아니하고 죽지 아니하는 하늘에 속한 형상을 덧입게 됩니다. 이 때 무슨 말씀이 이루어집니까? 5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그동안 모든 인류 위에서 왕 노릇하던 사망이 이제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이사야 25:8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이 말씀이 그대로 성취됩니다. 더 이상 사망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외칠 수 있습니다. “사망에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어느 누가 사망을 향해 이렇게 외칠 수 있습니까? 천하를 호령하는 것 같은 트럼프, 시진핑, 문재인 대통령도 감히 외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힘차게 외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57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살려주는 영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기에 우리는 사망을 향해 담대히 외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다함께 58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우리는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부활 신앙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절대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 많은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 물질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청춘까지 다 드렸습니다. 특새제를 하고 줄기차게 전도하고 매일 점심 모임, 말씀 축제를 하며 힘든 양들과 씨름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올해 장막터를 넓히라 말씀에 따라 여러 캠퍼스로 장막터를 넓히다 보니 전대, 과기원, 보건대, 교대, 동신대까지 가야할 곳, 섬겨야 할 곳도 더 많아졌습니다. 이렇게 수고해서 많은 양들이 왔다 갔다 하지만 남는 자가 없어 보일 때 낙심하고 절망할 수 있습니다. 주의 일을 섬기느라 손해보고 핍박 받을 때 신앙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정말 헛수고를 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반드시 부활하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여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과 영원토록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때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수고를 아시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내가 너의 모든 수고를 다 알고 있느니라칭찬하실 것입니다. 부활 소망 가운데 드린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장차 하늘에 속한 형상을 입을 그 날을 소망하며 더욱 주의 일에 힘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특히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대일 역사,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온 마음을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통해 부활 신앙을 충만히 덧입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과거 저는 정말 볼품없던 자였습니다. 철저하게 땅의 것만 추구하며 운명과 죄악에 찌들어 어두운 흙빛을 띠던 자였습니다. 얼마 전 제 동역자가 저의 과거 군대 사진을 보고는 배를 잡고 방을 뒹굴며 웃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진을 보니 정말 피골이 상접하고 죄로 찌든 얼굴이 얼마나 불쌍해 보였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흙에 속하여 죽을 자에게 살려 주는 영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찾아오사 저를 새롭게 살려 주셨습니다. 캠퍼스 목자가 되게 하시고 장차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을 그 날을 소망하며 사명에 충성하는 자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그러자 볼품없던 제 모습이 점점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흙빛이던 얼굴이 점점 밝아졌습니다. 영적 스피릿이 생기고 한 영혼을 향한 목자의 심정으로 양들을 돕고 말씀을 전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그 누구도 제 모습을 보며 배를 잡고 뒹굴며 웃지 않습니다. 제가 불쌍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저는 부활 신앙을 붙들고 열심히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하여도 결과가 없으면 흔들리기를 잘하였습니다. 2018년이 들어서 정말 정신없이 역사를 섬겨왔습니다. 연초부터 신체검사 피싱과 학생회 역사, 말씀축제, 교대, 동신대, 전대, 과기원 등 캠퍼스를 두루 다니며 계속해서 양들을 만났습니다. 올해 만큼 많은 캠퍼스에서 전도를 통해 양들을 많이 만난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수고에 비해 결과가 너무나 초라하게만 보였습니다. 생각만큼 양들이 붙지 않고 소원 있어서 만나던 양들도 점점 떨어져 나갔습니다. 나주에 있는 동신대까지 가서 양들을 만나고 목자들에게는 소망을 막 심었지만 정작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을 때 괜히 멀리 있는 캠퍼스까지 와서 고생만 하는 것은 아닌가 한계적인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부활장을 암송하며 사도 바울의 권면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견실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의 수고가 주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김휘승 형제의 소감을 들으며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좀처럼 변화되지 않는 것 같은 모습에 연하 사모님이 헛수고 하고 계시는 것 아닌가 생각하였는데 결코 그 수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조금씩 말씀이 들어가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조이삭 선교사는 몇 주전 마가복음 2강 말씀 공부를 하면서 저에게 목자님 저를 건져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그 말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10년간 이 자를 도우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심정으로 도우며 헛된 수고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였지만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도 과거에 참 소망 없고 헤매던 자였습니다. 하지만 일대일 목자님은 이런 저를 포기 하지 않으시고 명절에는 옷도 사주고 용돈도 주시며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여러 목자님들 또한 사랑과 수고와 헌신으로 저를 도와 주셨을 때 지금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변화될 수 있었습니다. 목자님들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위하는 일에 결코 헛된 것이 없습니다. 세상의 것, 땅의 것은 허무와 수치 뿐이지만 주님을 위한 것은 결국 영광스러운 열매들로 맺히게 됩니다. 제가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덧입을 부활의 날을 소망하며 더욱 주의 일에 힘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의 일에 힘쓸 때 이 땅에서의 제 모습 또한 점점 하늘의 속한 이의 형상으로 빚어질 줄 믿습니다. 제가 부활신앙을 굳게 붙들고 부활 스피릿으로 충만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부활의 생명력으로 맡기신 캠퍼스 사역을 섬기고 장막터를 넓히라! 할 수 있다! 하면된다! 해보자! 구호대로 온 캠퍼스를 누비는 부활의 산증인이 되어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장차 부활하여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게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이 부활 소망을 굳게 붙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소망 가운데 견고하고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