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6

                                                         열 둘 을 세우셨으니

말씀: 마가복음 3:7-19

요절: 마가복음 3:14,15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세우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능력있는 말씀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러자 종교지도자들이 시기해서 죽이고자 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까지 말했습니다(3:22). 바리새인들의 방해와 시기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예수님께 몰려 왔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못 본 체 하실 수 없었습니다. 혼자 이 많은 무리들을 도우실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복음역사를 섬길 제자들을 양성하고자 방향 잡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부르신 제자들은 대단한 인물들이 아닙니다. 허물과 단점도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도우셔서 위대한 사도들로 키우셨습니다. 주님은 오늘날에도 우리를 제자로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작은 가능성을 보고 키우기를 원하십니다. 보리떡 같은 우리를 쓰셔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기 원하십니다. 저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를 제자로 부르시는 예수님의 소망을 깊이 영접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7,8절을 봅시다. 어느 지방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까?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랐습니다. 또 유대와 예루살렘, 이두매, 요단 강 건너편과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유대와 예루살렘, 이두매는 팔레스타인 남쪽 지방입니다. 요단강 건너편은 동쪽지방. 두로와 시돈은 북서쪽 이방지역입니다. 동서남북 사방에서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의 명성이 널리 퍼졌습니다. 10절을 보면 병으로 고생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더러운 귀신들은 예수님을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귀신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귀신같이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앙고백이 아니라 괴로워서 소리치는 절규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지만 관계성은 맺고 싶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아직 은밀하게 하실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방에서 무리들이 예수님께 나아왔을 때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1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예수님은 이 무리들을 이용해서 대중 집회를 열지 않으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에게 보란 듯이 세를 과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을 떠나 조용히 산으로 가셨습니다. 산에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누가복음6: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산으로 가셔서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양들이 방황하는 이 시대에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 묻고 지혜를 구하셨을 것입니다. 그 시대는 추수할 것은 많되 추수할 일군이 부족한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양들을 도울 목자, 영적 지도자들을 키우고자 방향 잡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평소에 키우고자 마음에 두신 자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들이 처음부터 능력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부족하지만 배우고자 하는 소원이 있는 자,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보석상에 진열되어 있는 화려한 명품같은 자들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땅 속에 묻혀 있는 거친 원석같은 자들을 부르셔서 보석같은 제자들로 키우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28,29절에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했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히 하나님 영광을 드러낼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자들을 세우셨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부름 받은 아브람을 보십시오. 자식도 없고 나이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부르셨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막내아들이었습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 중에 가장 미약한 베냐민지파 출신이었습니다(6:15). 모세도 출애굽역사를 시작할 때 나이가 80살이고, 입이 뻣뻣해서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했습니다(4:13). 인간적인 기준에서 보면 다들 너무 부족해 보입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25절에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역사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영접하고 단순하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13b절을 다시 봅시다.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예수님께서 부르셨을 때 그들이 나아왔습니다. 그들은 기쁨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이를 영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능력보다 중요한 것이 순종입니다. 이사야도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6:8)” 하며 순종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위대한 선지자로 쓰셨습니다. 주님이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는 것은 주님이 원하는 대로 빚어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뜻대로 빚어 만드시도록 내 자신을 드려 순종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한없이 부족하지만 주님이 빚어 만드시면 얼마든지 위대한 사도들이 될 수 있습니다.

 

14a절을 봅시다.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예수님은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나아온 자 12명을 제자로 세우셨습니다. 세우셨다는 것은 “appoint” “임명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제자로 임명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일군이요, 천국의 대사로 임명 하셨습니다. 이는 너무 큰 모험 같아 보입니다. 이들이 과연 세계를 품는 제자들이 될 수 있을까? 중심이나 지킬 수 있을까? 걱정이 됩니다. 좀 키워 보고 나서, 1차 심사, 2차 테스트, 3차 심층면접, 4차 담력시험, 5차 인적성 검사까지 거쳐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10년은 비정규직 제자로 도와보고, 그 후에 정규직 제자로 전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처음부터 제자로 임명하여 세우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책임지고 키우시겠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소망과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믿어주지 않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큰 소망을 두시고 우리를 제자로 임명하십니다. 우리는 이를 깊이 영접해야만 하겠습니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 보다 훌륭하고 능력있는 자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주권적으로 나를 선택하셨음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5: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1:4절에서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다고 했습니다. 예례미야 1:5절에서는 모태에 짓기 전에 우리를 알았고, 배에서 나오기 전에 우리를 성별하여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나를 주권적으로 선택하여 세우셨기 때문에 나는 주님의 제자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로마서 11:29절에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부족하다고 버리지 않으십니다. 부르심을 철회하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믿어주시고 키워 주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14,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첫째로,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공동생활하면서 예수님의 인격과 삶을 총체적으로 배우도록 하셨습니다. 제자의 특권이 바로 이것입니다. 24시간 항상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며 예수님을 전인격적으로 배울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와 함께 있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검은 집단에 들어가서 보스와 함께 지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범죄자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우리가 과거에 죄와 허물가운데 있던 자들인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함께 거하며 예수님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고린도전서 1:9절에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했습니다.

 

제자의 삶은 특별한 기술이나 지식을 배우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며 예수님과 끊임없이 교제하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모세가 어떻게 위대한 출애굽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모세는 회막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대면하여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마치 사람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눔같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성숙한 지도자로 성장했습니다. 본래 모세는 한 혈기 하던 자였습니다. 자기 동족을 죽인 자를 주먹으로 때려 죽여서 모래에 묻어 버리던 그런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서 그 온유함이 지면에 승한 부드러운 목자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아비의 심정을 덧입은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깊이 사귀고 성막에서 나올 때 그 얼굴에서 광채가 나왔다고 했습니다(34:35).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하며 깊은 교제를 나눌 때 예수님의 영광의 광채가 우리에게 비추게 됩니다. 그래서 점점 예수님과 같은 형상을 덧입게 됩니다. 얼굴이 미남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예수님의 향기를 풍기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3:18절에 우리가 다 ---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거하며 예수님의 영광을 볼 때 예수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됩니다. 베드로후서 1:4b절에 신의 성품(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요즘 전직 대통령들과 고위직 인사들이 줄줄이 감옥에 가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권력에 목마르지만 그것이 진정한 복이 아닙니다.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사회적 지위나 부가 아닙니다. 속사람의 인격과 내면성입니다. 이것은 많은 공부로도, 기술로도,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의 향기를 맡고, 예수님 말씀을 배울 때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작은 예수로 성장하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세계적인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과 한 끼 식사를 하는 것을 엄청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와 식사하며 투자 비법을 배우고자 하기 때문에 매년 이 이벤트에 경매를 붙입니다. 뉴욕 경매시장에서 경매에 부치는데 한번은 가이 스피어(Spier)씨가 65만달러, 우리 돈으로 72천 만원을 냈습니다. 그와 식사하고 대화하고 나서 <워런 버핏과의 점심식사>라는 책을 냈습니다. 사실 그 책을 보면 투자 비법이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물론 워런 버핏은 그 수입금을 전부 기부합니다. 어쨌든 유명한 전문가에게 한 수 배울려면 엄청난 댓가를 지불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제자들에게 65만달러 수업료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강사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얼마나 많은 돈을 내야 하겠습니까? 그러나 한 푼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완전 공짜, 무료로 배워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3:20절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하셨습니다. <예수님과의 점심식사>가 완전 무료입니다. 내가 마음의 문만 열면 얼마든지 나를 초청하셔서 무료로 먹여 주시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어 주십니다. 우리 인생을 어디에 어떻게 투자해야 하는가? 확실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주님의 영광의 광채를 비추어 주시고 우리를 주님의 제자로 삼아 주십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이 뭘 잘하고 훌륭했을 때만 함께 해 주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이 허물이 있어도 그들과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실수해서 종교지도자들에게 공격을 받으면 나서서 변호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갔을 때도 찾아가셔서 함께 해 주셨습니다. 사랑의 비치파티까지 열어 주시고 변함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성령으로 찾아 오셔서 그들과 영원토록 함께 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8:20절에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제자로 뽑아놓고 이제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하시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가르쳐 주시고 도와주십니다. 얼마나 든든합니까? 한번 제자는 영원한 제자입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계속해서 배우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사 전도도 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항상 제자들을 품에 끼고만 계시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의존적이고 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삶의 현장에 내 보내셔서 전도를 하게 하십니다. 전도는 예수님께로부터 배운 말씀을 직접 전하며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미숙하지만 직접 양들을 돕도록 실습을 시키십니다. 이는 제자들을 성경선생이요, 영적 지도자로 키우는 과정입니다. 사람이 처음부터 모든 역량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론적으로 아무리 잘 알아도 직접 양들을 만나서 전도하고 영적으로 씨름해 봐야 양들의 목자들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런 기회를 주십니다. 완벽하게 일을 완수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나가서 한번 전도해 보도록 하십니다.

 

사실 전도는 참 부담스럽습니다. 누구를 만날지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사람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고전1:21). 우리는 전도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들을 섬기면서 예수님을 배우게 됩니다. 기도를 배우게 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직접 전도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같이 자유분방한 양도 전도하시고, 니고데모 같은 지성인도 전도하셨습니다. 세리같이 이기적인 자도 전도하시고, 어부같이 자기 일에 충실한 자들도 전도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배워서 제자들은 후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합니다. 로마의 백부장도 전도하고, 공회 앞에서도 전도하고, 소아시아, 유럽, 땅끝까지 가서 전합니다. 갈릴리 촌 사람들이 전도를 통해서 세계를 품는 위대한 사도들로 성장했습니다.

 

인도는 흰두교 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남부에 가보면 크리스찬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 제자 중에 한 사람인 도마가 인도까지 가서 전도했기 때문입니다. 바돌로매는 요한복음에 나다나엘로 나오는데 빌립이 전도해서 데려왔습니다. 그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하며 처음에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1:46).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신앙고백을 했습니다(1:49). 그가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해서 후에 이디오피아, 인도, 페르시아까지 가서 전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르메니아에서 복음전하다가 순교 당했습니다. 그가 순교당할 때 산 채로 칼로 피부가 벗겨지는 고통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처럼 모진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전해서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땅에 많은 영혼들을 구원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전도를 배웠을 때 후에 두려움을 모르는 불사조같은 복음의 용사들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큰 믿음의 종들로 성장하였습니다. 우리는 전도를 통해서 복음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지난주 루마니아에 조이삭 선교사님에게 카톡이 왔습니다. 몇 주 전에는 그리스에게 가서 수양회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지난주에는 부활절 주일메시지도 전했습니다. 영국의 구갈렙 선교사님 소개로 루마니아에 있는 호텔신라에 취직하고자 원서를 접수했다고 합니다. 여기 있었으면 호텔신라 취직을 감히 꿈꾸나 꾸어 보겠습니까? 주일 메시지 전할 군번이 되겠습니까? 소크라테스의 고향 그리스를 어떻게 가 봅니까? 그러나 주님께 순종해서 루마니아에 가서 전도하자 하나님이 그에게 담대함을 주셨습니다. 점점 국제적인 인물로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를 보면서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이 말씀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남요한 목동이 집에만 있을 때는 게임만 하느라 성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보건대 복의 근원이 되어 친구들을 열심히 전도하고 후배들에게 복음을 전하자 아주 의젓해졌습니다. 양들을 섬기기 위해서 앞장서서 양식을 먹고, 키타반주, 드럼연주도 사명감을 가지고 감당합니다. 나요셉 형제를 돕기 위해서 함께 장막생활하며 새벽기도하자 믿음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게임도 가끔하지만 횟수가 많이 줄었습니다. 박요한 목자도 전대 UBF 회장을 맡으면서 앞장서서 전도하다 보니 리더쉽이 많이 생겼습니다. 형 박요셉 목동도 자극을 받고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전도는 큰 축복입니다. 앞으로는 해외로 단기 선교도 보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서 국제적인 목자들로 성장하길 기도합니다. 예수님 제자들이 계속 갈릴리 지방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평생 어부로 살다가 인생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내 보내셔서 전도도 하게 하셨기 때문에 1세기를 밝히는 큰 종들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들도 담대하게 나가서 전도함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길 기도합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갖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세상은 귀신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안일귀신, 정욕귀신, 미움귀신, 시기심 귀신, 절망귀신, 열등감 귀신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귀신의 세력에 눌려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이는 쇠도 삼킬만한 팔팔한 젊은이인데 악한 영에 사로잡혀 드러누워서 일어나질 못합니다. 낮에는 자고 밤에 일어나 게임방, 노래방등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하나님 없이 육신의 본성대로 살다가 죄에 빠지게 되면 나중에 귀신의 세력에 사로잡혀 무기력하게 됩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귀신들려 고통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악한 귀신을 제압할 수 있는 권능을 주십니다. 요한일서 3:8절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했습니다. 사도행전 26:18절에서 사도바울은 주님이 자신을 택한 목적이, “사람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둠 가운데 있는 자, 사탄의 권세아래 있는 자들은 인간적인 힘으로 하나님께 돌이킬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이 주시는 권능을 덧입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악한 영을 제압할 수 있는 영적 무기를 주십니다. 그 권능은 구체적으로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덧입게 됩니다.

 

에베소서 6:17절에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18절에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말씀과 기도는 영적인 권능을 공급받는 가장 좋은 통로입니다. 우리가 힘써 말씀투쟁하고, 부르짖어 기도할 때 마귀와 싸워 승리할 수 있는 내적 힘을 덧입게 됩니다. 실제로 마가복음 6:12,13절에 보면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쳤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의지할 때 능히 악한 영들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시카고에 임모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자기 혈관 속에 벌레가 기어다닌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는 법대를 나와 명석한 자였지만 내적으로 악한 영에 시달려서 직장생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직장에 다니던 UBF 목자님이 성경공부에 초청해서 말씀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꾸준히 말씀을 공부하는 가운데 은혜를 받자 벌레가 기어 다닌다느니 하는 생각이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지금은 시카고 선교사로서 많은 믿음의 열매를 맺고 계십니다.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영이 임하게 되자 모든 어두움의 권세가 물러가고 깨끗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로 세우신 자들에게 영권을 부여해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이 특권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영적 권능을 이미 주셨음을 확신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세움 받은 자들은 구체적으로 누구입니까? 16-19절은 제자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시몬이 나옵니다. 그는 갈릴리 바다에 평범한 어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제자로 부르시고 베드로란 이름을 주셨습니다. ‘베드로반석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장차 그가 반석처럼 견고한 믿음의 사람이 될 것을 믿으셨습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들에게는 보아너게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습니다. 그들은 성격이 우레처럼 급한 자들이었습니다(9:53,54).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장차 천지를 진동케 하는 메신저들이 될 것을 믿으셨습니다. 실제로 요한은 요한복음, 요한서신,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위대한 성경기자가 되었습니다. 야고보는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안드레는 단순하지만 믿음의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다 안 된다고 말할 때, 된다고 말하는 긍정의 사나이입니다.

 

빌립은 오병이어 사건 때문에 부정적인 자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본래 구약에 기록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던 준비된 제자였습니다. 친구 나다나엘(바돌로매)을 전도해서 데려왔는데 예수님을 아주 정확하게 소개했습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바로 그 분”, 곧 메시야로 소개했습니다(1:45). 마태는 직업이 세리였는데 나중에 변화되어서 마태복음의 저자가 되었습니다. 도마는 의심의 대가였지만 후에 인도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는 평범한 제자들이었습니다. 가나나인 시몬은 열심당원으로서 데모를 많이 하던 자였습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판 자입니다. 12명의 제자들은 출신과 성격, 직업이 다 다양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에게 큰 소망과 비젼을 두고 키우셨습니다. 예수님의 소망대로 장차 이들은 사도행전의 주역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지금은 여러모로 부족함 투성이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님이 우리를 제자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이 주님의 부르심을 영접하고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르며 배우면 점점 예수님의 제자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자들로 성장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줄기차게 배우고 순종해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예수님을 닮은 제자들로 성장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