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7

                                                          말씀을 듣고 받아 결실하는 자

말씀: 마가복음 4:1-20

요절: 마가복음 4:20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오늘 본문은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자세가 얼마나 중요한가?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은 비유에서 말씀을 씨라고 하셨습니다. 똑같은 말씀의 씨가 어떤 마음 밭에 떨어졌는가에 따라서 그 결과가 큰 차이가 납니다. 어떤 밭은 뿌린 씨마저 없어져 버립니다. 반면에 어떤 씨는 100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말씀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아무런 변화도 감동도 없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말씀에 큰 은혜를 받고 변화되어서 놀랍게 성장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씨와 같이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원예학 교수이신 구바나바 목자님 말에 의하면, 볍 씨 하나를 심으면 20개의 이삭이 나오고, 각 이삭에 120개 이상의 낱알이 맺혀서 2400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포도 한 그루에 2000송이가 열리는데 루비로망 포도는 한 송이에 100만원이나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씨앗처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마음밭을 갖고 말씀을 대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마음 밭을 점검해 보고 좋은 밭으로 만들어 백 배의 결실을 맺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비유에는 네 종류의 밭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길가와 같은 마음 밭입니다. 3,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씨가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일단 땅 속에 묻혀야 합니다. 그런데 이 씨는 딱딱한 길 가에 떨어졌으니 씨가 묻히질 못했습니다. 밖에 노출된 씨는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가와 같은 마음 밭입니까? 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길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자는 말씀을 듣지 않고 튕겨냅니다. 이런 사람은 심령이 딱딱합니다. 완악합니다. 이런 사람은 사탄이 아주 좋아합니다. 고린도후서 4:4절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신, 즉 사탄이 사람의 마음을 혼미케 해서 복음을 영접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12). 말씀이 도대체 들리지 않습니다. 졸리고 머리만 아픕니다. 그런 와중에 사탄이 와서 즉시 말씀을 빼앗아 가버립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문제는 말씀이 들어가지 않으니 죄사함을 받을 수 없고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말씀을 듣고 영접하는 것이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구원과 관계 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도 때로 마음이 딱딱해집니다. 길가처럼 그렇게 완악하지는 않지만 심령이 딱딱해서 말씀이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호세아 10:12절에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수시로 회개의 쟁기로 묵은 땅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막연히 나중에 때가 되면 좋아지겠지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대책 없이 방치했다가 더 딱딱해지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입니다. 지금 회개하고 심령의 묵은 땅을 갈아엎어야 하겠습니다. 그때 에스겔 36:26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새 영을 부어 주셔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십니다.

 

우리가 일주일동안 삭막한 세상에서 치열하게 살다 보면 마음이 딱딱해집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주일날 일찍 와서 본문도 한 번 더 읽어보고 찬송 부를 때도 열심히 손뼉 치며 따라 부릅니다. 그러면 마음의 근육이 풀려서 말씀이 잘 들어온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어떤 분은 늦게 와서 처음부터 눈을 감습니다. 찬송도 부르지 않습니다. “목자님, 어디 한번 제 마음을 감동시켜 보세요선전포고를 합니다. 저는 자신 없습니다. 책임 못 집니다. 우리가 마음 문을 닫고 있으면 사탄에게 말씀을 빼앗긴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사람들은 돈 뺏기는 것은 엄청 아깝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 아까운 것은 말씀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갈아엎고 어찌든 말씀을 듣고 받아야 하겠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사탄에게 빼앗기지 말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마음에 심고 마음판에 새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둘째로, 돌밭과 같은 마음입니다. 5,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16,17절도 함께 읽겠습니다.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돌밭은 길가처럼 완전 딱딱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흙이 얇고 흙 속에 돌들이 가득합니다. 이런 사람은 처음에는 말씀을 기쁨으로 받습니다. 문제는 말씀의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뿌리를 내려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뿌리가 깊어야 수분과 영양분을 풍성하게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흙 속에 돌이 많아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말씀으로 인해 환난이나 박해등 시련의 햇빛이 내리쬐면 넘어지고 맙니다. 환난과 박해의 햇빛은 씨가 성장하는데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를 감당할 내적 힘이 없기에 말라 버립니다.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말씀이 내 속에 깊이 들어와 가치관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식물의 뿌리를 보십시오. 뿌리가 점점 깊고 풍성해져서 땅 밑을 완전 장악합니다.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서 나의 인생관, 세계관, 물질관,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칩니다. 나의 무의식 깊은 곳까지 침투해 들어옵니다. 예수님 중심의 가치관을 형성합니다. 그런데 말씀의 뿌리가 점점 내 속에 밀고 들어오는데 이를 방해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자기 생각과 야심의 돌이 걸림돌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그 돌이 너무 강해서 결국 뿌리가 내리지 못하고 넘어져 버립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자기 생각을 부인합니다. 마음 속에 돌을 깨고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인간적인 가치관을 회개하고 영적인 가치관을 덧입게 됩니다.

 

골로새서 2:6,7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라고 했습니다. 뿌리는 관계성입니다.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성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제자들이 처음에는 돌밭처럼 야심과 자기생각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점점 마음속에 야심의 돌을 깨지고 말씀의 뿌리가 깊어졌습니다. 그때 점점 믿음의 거목으로 성장해서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마음 깊은 곳에 야망의 돌을 끝까지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뿌리를 내리지 않고 물질욕심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팔고 스스로도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이 알아주던 안 알아주던 주님과의 관계성의 뿌리를 깊이 내립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일용할 양식을 꾸준히 먹습니다. 틈나는 대로 말씀을 읽고 암송하고, 말씀대로 살고자 몸부림칩니다. 그때 말씀의 뿌리가 깊어지고 영적인 비밀을 간직한 자로 성장을 합니다. 함온유 목자님은 보건대 개척역사를 섬기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여러 양들이 왔다가 갔습니다. 이전에는 요동했지만, 지금은 매일 양식을 깊이 먹고 주님과 깊은 관계성을 맺기에 힘썼습니다. 매일 묵상한 양식을 50명에게 보냈습니다. 현재 양들, 떠나간 양들, 선교사님들에게도 보냈습니다. 그러자 자신의 마음에 먼저 기쁨과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때 신기하게도 양들이 한 사람 두 사람 몰려오고 있습니다. 뿌리는 땅 속에 내리기 때문에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땅 속에서, 주님과 은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의 뿌리를 깊이 깊이 내려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가시떨기 밭입니다. 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18,19절도 함께 읽겠습니다.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이런 사람은 마음에 숨은 돌도 많지 않습니다. 마음이 비교적 순수합니다. 말씀도 잘 받습니다. 문제는 가시가 함께 자라는 것입니다. 세상 염려, 재물의 유혹, 기타 욕심의 가시가 자꾸 찔러서 기운을 막습니다. 스피릿을 앗아갑니다. 결국 힘을 잃고 말라 버립니다.

 

사실 가시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이 온통 가시로 가득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재테크를 잘 해서 떼돈을 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멋있는 연애를 할 수 있을까? 이런 염려와 욕심, 유혹의 가시에 찔리게 되면 힘이 없습니다. 스피릿을 잃어버리고 말씀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분명히 말씀공부하고, 예배드리면 은혜를 받는데 세상에 나가서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세상 염려, 욕심의 가시에 찔려 무기력해집니다. 특히 물질에 대한 욕심이 큰 가시가 됩니다. 디모데전서 6:10절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했습니다. 이모 전 대통령은 재물에 대한 욕심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이제 모든 것을 다 잃게 생겼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 잔재미의 가시에 찔려 영력을 소진합니다. 주야로 게임을 묵상합니다. 연예인들, 스포츠 스타들의 가쉽거리를 샅샅히 검색합니다. 음란물을 탐닉하다 쾌락의 가시에 찔려 스피릿을 다 잃어버립니다. 받은 바 구원의 은혜도 까먹고 시들시들해집니다. 우리는 이런 가시들을 방치해 두면 안 됩니다. 가시가 점점 자라서 나중에는 질색해서 영적 생명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5: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했습니다. 우리는 가시와의 전쟁을 선포해야만 합니다. 염려와 욕심, 유혹의 가시를 과감하게 뽑아 버리고, 생명의 말씀을 최고로 귀하게 여기고 굳게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최정한 목자님은 봄에 감사계약을 많이 맺고 회계사로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염려가 많았습니다. 나이도 어느새 40이 되어가고 아이들은 커가고 점점 근심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꿈을 꾸었습니다. 누군가 광주에 큰 지진이 일어난다고 말했습니다. 운암동에 가면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빨리 운암동으로 피신하라고 전화하고 자신도 운암동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땅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잔뜩 겁을 먹고 있는데 누군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깜짝 놀라 꿈을 깨보니 동역자가 새벽기도 가자고 발을 잡아당기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파트 메시지를 보면서 얼마나 세상 염려에 시달렸으면 그런 악몽을 꾸었을까? 짠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새벽기도 가자고 발목을 잡는 동역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동역자가 영적 투쟁 못하게 발목 잡으면 큰 일이잖습니까? 우리가 세상 염려, 욕심, 유혹의 가시를 수시로 뽑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고 약속의 말씀을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넷째로, 좋은 밭입니다. 2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좋은 땅은 말씀을 잘 듣고 영접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듣는다는 말씀의 원어는 아쿠우신으로서 주의 깊게 듣는다” “순종한다그런 뜻입니다. 이것은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받아하는 말씀은 원어에 파라테콘타이로서 즐겁게 영접하다그런 뜻입니다. 기쁨으로 말씀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갓난아이와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는 것입니다(벧전2:2).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베뢰아 사람들처럼 고상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 것입니다(17:11).

 

이런 사람은 말씀의 씨가 심령 깊이 심겨집니다. 말씀이 싹이 나고 뿌리를 깊이 내립니다. 말씀 속에 있는 영양분을 풍성히 공급받아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나중에는 30, 60, 100배의 결실을 믿습니다. 처음에는 부족하고 연약하던 자도 점점 내면이 변화되고 성숙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성령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습니다. 사랑과 희락, 화평과 오래 참음,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 절제등과 같은 영적 열매가 풍성하게 맺습니다(5:22,23). 또 많은 사람을 주께로 돌이키는 전도의 열매, 제자양성의 열매를 풍성히 맺습니다. 좋은 마음 밭으로 말씀을 잘 듣고 받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챨스 스펄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에가 잎을 다 먹어 버리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말씀의 겉만 기어 다닐 것이 아니라, 그 속까지 먹음으로써 말씀이 우리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오도록 해야 합니다. 단지 말씀을 훑어보지만 말고, 성경의 정신을 먹어야 합니다. 성경의 언어로 말하고, 당신의 내면이 성경의 인물처럼 형성되어 간다면 그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더 복된 것은 당신의 영혼이 주님의 말씀의 향기로 넘치는 것입니다.”

 

스펄전이 깊이 존경하는 인물이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이었습니다. 존 번연은 1628년 영국 베드포드에서 가난한 땜장이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겨우 읽고 쓰기에 필요한 초보적인 교육 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10살 때 학교를 그만두고 아버지에게 땜장이 기술을 배웠습니다. 결혼할 때 아내는 혼수로 단 두 권의 신앙서적으로 가지고 시집 왔습니다. 그 신앙서적을 읽고 번연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죤 기퍼트 목사님에게 감화를 받고 세례 받고 믿음이 깊어졌습니다. 그 후 그는 뜨거운 열정으로 성경을 읽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다 종교탄압으로 12년을 옥살이 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도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했습니다. 누에가 뽕잎을 먹듯이 말씀을 먹고 소화 했습니다. 그는 말씀에 흠뻑 젖어들었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작품이 <천로역정>입니다. 우리가 천로역정을 읽으면 각 페이지가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 이 사람은 살아있는 성경이구나그런 생각이 듭니다.

 

스펄전은 그를 가리켜서 bibline, (bible + pipeline) ‘성맥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그 피에 성경말씀이 흐르는 사람, 그를 찌르면 성경 말씀이 줄줄 흘러나오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책이 바로 <천로역정>입니다. 360년이 지난 지금도 현대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가을수양회때마다 <천로역정 심포지움>을 합니다. 그가 맺은 영적인 열매가 얼마나 많습니까? 좋은 마음 밭으로 말씀을 듣고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러면 우리가 좋은 마음밭이 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말씀에 대한 경외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성막에 거하며 하나님 말씀을 듣는 법을 배웠습니다. 사무엘상3:10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그는 자신이 주의 종이기 때문에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절대적으로 듣고자 스스로를 훈련했습니다. 그가 그처럼 하나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들었기 때문에 훌륭한 말씀의 종으로 성장했습니다. 사무엘상3:19절에 보면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한 말씀도 허투루 듣지 않고 100% 영접 했기에 그 시대 백성들도 사무엘이 전한 말씀을 그대로 받아 들인 것입니다.

 

그 결과 미스바 대각성운동이 일어났고, 다윗왕국의 기초를 놓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도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하겠습니다. 경청해야 하겠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고 했습니다(살전2:13). 우리도 이런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영접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시편 119편은 저자미상입니다. 그러나 시편 119편을 읽어 보면 저자가 얼마나 말씀을 사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전체 176절 중에서 네 구절만 빼고는 매 구절마다 말씀에 관계된 단어가 나옵니다. 또 말씀을 사모한다는 구절은 6, ‘말씀을 사랑한다는 구절은 12, ‘말씀을 즐거워 한다는 구절은 12번 나옵니다. 얼마나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고, 사랑하고, 즐거워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119:131)”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119:97)” “내가 주의 계명들을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119:127)” 우리도 말씀을 사모할 때 앉으나 서나, 길을 갈 때나 항상 말씀을 묵상하며 암송합니다. 그때 우리 심령이 뜨거워집니다. 거룩해집니다.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사모하는 열정을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한 말씀이라도 절대적으로 순종할 때 그 말씀이 내 말씀이 됩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땅으로 가라는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12:2). 그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되고 열국의 아비로서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본래 아시아로 가고자 했지만 마게도니야로 와서 우리를 도우라(16:9)” 라는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유럽 선교를 통해서 수많은 구원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높고 하나님의 생각이 내 생각보다 높습니다(55:9). 하나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할 때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씨와 같아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마음에 깊이 심겨지기만 하면 많은 열매를 맺고 엄청난 변화의 역사를 가져옵니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또 사탄은 할 수 있는대로 말씀역사를 방해하고자 합니다. 길가와 같이 심령을 딱딱하게 합니다. 돌밭처럼 자기 생각을 고집하게 합니다. 염려, 욕심, 유혹의 가시로 자꾸 찔려 댑니다. 우리가 이런 방해 요소를 제거하고 힘써 좋은 밭으로 만들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회개의 쟁기로 갈아엎고, 말씀을 경외하고, 힘써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좋은 밭이 되어서 30, 60, 100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