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8

                                                        말씀을 삼가고 헤아리라

말씀: 마가복음 4:21-34

요절: 마가복음 4:24,25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마가복음 4장 전반부는 말씀과 마음 밭의 관계에 대해서 가르쳐 줍니다. 오늘 본문은 말씀의 위력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우습게, 하찮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사람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 뿐 아니라 어두운 시대를 밝히고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 폭발적인 영적 권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말씀의 권능을 다시 한번 확신하고 말씀에 대한 자세를 새롭게 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 말씀을 듣는 자가 가져야 할 자세(21-25)

 

2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오늘날은 방을 밝히기 위해서 형광등을 킵니다. 그러나 제가 어릴 때 만해도 시골에서 등불을 켜고 살았습니다. 등은 어두운 곳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높은 곳에 둡니다. 말이나 평상아래 두지 않습니다. 아래를 밝힐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방 전체를 훤히 밝히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대로 등을 높은 곳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등불과 같습니다. 시편 119: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했습니다. 우리는 우준하고 무지해서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습니다. 어디가 바른 길인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은 우리의 갈 길을 밝히 비추어 줍니다. 아브람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갈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11:8). 그러나 약속의 말씀이 빛이 되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12:2)” 이 말씀을 붙들고 나아갔을 때 순간순간 위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복의 근원이요, 열국의 아비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하나님 말씀이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때 오해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기밀문서처럼 감추어 두신 것이 아닌가? 이 말씀은 심히 어렵도다. 누가 깨달을 수 있느냐?” 그리고 말씀을 덮어 버립니다. 그러나 22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이 말씀을 새번역으로 보면 숨겨 둔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 둔 것은 나타나기 마련이다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도 모르게 일부러 말씀을 숨겨둔 것이 아닙니다. 더 깊은 뜻을 말씀해 주시기 위해서 비유를 사용한 것 뿐입니다. 영적인 무지 때문에 우리의 영적인 눈과 귀가 가려진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23절을 봅시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들을 귀는 거듭난 귀, 영적인 감각이 있는 귀를 말합니다. 연세 드신 분들이 청력이 떨어져서 잘 듣지 못할 때 정말 답답해 하십니다. 저희 아버님도 연세가 많으셔서 잘 듣지를 못하십니다. 집에 가면 TV 볼륨을 크게 틀어놓고 계십니다. 아버님 어머님이 대화하실 때 싸우는 것 같습니다. 잘 안 들려서 두 번씩 말해야 하니까 서로 신경질이 나는 것입니다. 이번에 어버이날 자녀들이 보청기를 해 드렸더니 아주 잘 들린다고 기뻐하셨습니다. 우리도 영적인 보청기를 끼면 말씀이 잘 들립니다. 보청기 좋은 것은 아주 비쌉니다. 그러나 성령의 보청기는 무료입니다. 전혀 잡음도 없고 아주 선명하게 들립니다.

 

양들이 처음 예배 참석하면 뭔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고 말합니다. 소감은 그래도 들리는데 말씀은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아서 졸리고 길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메시지는 짧게, 소감은 길게” “예배는 짧게, 축구는 길게그렇게 말하는 양도 있습니다. 그러던 사람이 영적으로 거듭나서 말씀이 들리고 말씀의 맛을 알게 되면 예배 시간이 그렇게 사모가 됩니다. 주일예배뿐 아니라 새벽기도 메시지, 파트모임 메시지도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자기 파트 메시지로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파트도 참석해서 메시지를 듣습니다. 말씀에 대해 들을 귀를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찬송가 205장에 나 항상 듣던 말씀, 나 항상 듣던 말씀,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들려주시오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느 정도 말씀이 들린다고 거기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더 심오한 뜻을 깨닫고, 더 세미한 음성을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2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예수님은 우리가 듣는 말씀을 스스로 삼가라고 하십니다. “스스로 삼가라는 영어성경에 “consider carefully”로서 주의 깊게 숙고하라그런 뜻입니다. 원어는 블레포로서 면밀히 관찰하라입니다. 적당히 은혜 받고 끝내 버리지 말고 좀 더 주의를 기울여서 묵상해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나서 한번 생각할 때 다르고 두 번, 세 번 생각할 때 다릅니다. 신문이나 잡지는 한번 읽고 버려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너무나 심오하기 때문에 한번 쓱 읽고 덮어서는 안 됩니다. 시편 12:6절에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대충 쓰여진 것이 아닙니다. 펄펄 끓은 도가니에 일곱 번이나 담금질을 해서 정제된 보석입니다. 7은 완전수입니다. 실제로는 일곱만이 아니라 70, 700번 연단과정을 거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은 은처럼 순결하고 심오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처럼 귀한 말씀을 우리가 어찌 한번 듣고 다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목자님은 말씀공부 할 때도 녹음을 해서 여러 번 듣고 노트를 새롭게 정리합니다. 어떤 사모님은 메시지 페이퍼도 밑줄을 그어가며 몇 번씩 읽습니다. 저도 일용할 양식 말씀을 전날 자기 전에 밑줄을 그어가며 미리 읽습니다. 자면서 그 말씀을 묵상하고, 새벽에 와서 양식을 쓰면 그 맛이 더 깊어지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눈으로만 볼 때와는 확실히 다릅니다. 그런데 그 말씀들을 수 십 번 반복해서 읽고, 묵상하고, 암송까지 하면 어떨까요? 은을 얻는 것처럼 감격스러울 것입니다. 말씀의 진액을 공급받아 골수가 윤택하게 됩니다(3:8). 골수에서 피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스스로 삼가면 골수에서 성결한 피가 만들어집니다. 그 피가 온 몸을 돌게 되니 얼마나 성결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bibline. 성맥이 되는 것입니다. 그 머리에서 생각하는 것이 영적이 됩니다. 그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영적인 말들이 나옵니다. 잠언25:11절에 경우에 바른 말은 은쟁반에 금사과와 같다고 했습니다. 은쟁반에 금사과과 같은 말. 이것은 억만금을 주고도 못삽니다. 말씀을 스스로 삼가서 영적인 사람으로 성장하면 보배로운 생각과 말들을 하게 됩니다. 요즘 K모 그룹 일가는 직원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아서 큰 수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돈이 많아서 명품은 산더미처럼 소유해도 그 마음에 영성이 없으니 천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스스로 삼가고 또 삼가서 천천 은금을 얻는 것 같은 감격을 누릴 수 있길 기도합니다(119:72).

 

이다윗 목자님은 만성 간염과 갑상선 암 투병을 하면서 요한복음 11:25,26절 말씀을 생생하게 체험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이 말씀을 수도 없이 읽고, 묵상하고, 외우고, 외쳤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그 말씀의 능력, 부활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그 말씀이 마음판에 보석처럼 새겨졌을 것입니다.

 

양크리스틴 사모님은 만학도로서 박사공부할 때 너무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특히 불의한 이사회의 벽을 넘어 교수 자리에 오르기까지 너무 버거웠습니다. 그러나 매일 일용할 양식 요절 말씀을 노트에 써가며 붙들었습니다. 마가복음 11:22하나님을 믿으라말씀과 히브리서 11:11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이 말씀을 계속 암송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때 마침내 50이 넘는 나이에 교수가 되었습니다. 말씀의 능력을 생생하게 체험한 것입니다. 우리도 때마다 주시는 말씀을 흘려버리지 말고 삼가고 또 삼가서 마음판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살아있는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길 기도합니다.

 

24b절에서 예수님은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말씀하셨습니다. ‘헤아리다의 영어성경에 ‘measure’로서 측정하다’ ‘재다그런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깊은 바다와 같아서 감히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로마서 11:33,34절에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했습니다. 사도바울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나를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어머님 은혜>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키우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 보다도 높은 것 같애나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말씀들은 다 거기에 담긴 깊은 사연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나의 짧은 지식으로 감히 말씀속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만분의 일이라도 하나님의 속 깊은 뜻을 헤아리고자 말씀을 묵상하면 말씀의 비밀이, 조금씩 깨달아집니다. 말씀의 세계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때 너무나 감격스럽고 은혜가 됩니다.

 

내가 말씀을 헤아린 만큼 나도 헤아림을 받습니다. 내가 10미터 깊이까지 내려갔으면 10미터만큼 은혜를 받습니다. ‘10미터 영성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습니다. 영성의 대가들은 100미터, 200미터까지 내려간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의 글을 읽어보면 정말 가슴에 저며 오는 은혜를 받습니다. 깊은 샘물을 길러 올리는 감격을 맛보게 됩니다. 현대인들은 깊이 있게 생각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헤아리는 연습을 꾸준히 하면 우리도 얼마든지 영성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호세아서 6:3절에 보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했습니다. 여기서 알다”’는 원어에 야다로서 체험한다”“연합한다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깊이 아는 것입니다. “힘써 여호와를 알자는 영어성경에 보면 “press on to acknowledge”로서 알기 위해서 쫓아간다. 달려간다그런 뜻입니다. 지난 봄 수양회 미니 올림픽에서 상을 타기 위해서 힘써 달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자세로 힘을 다하여 말씀을 묵상하고 헤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알되 피상적으로 아는데서 끝나지 말고 말씀의 깊은 뜻을 알기까지 힘써 배워가야 하겠습니다. 그때 말씀의 감격을 절절히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연희센타 이진희 사모님은 지난 3년 동안 365일 양식을 써서 먹었습니다. 이 분은 두 아들을 키우며 박사 공부를 했습니다. 또 무서운 교수님 밑에서 학회 일을 총괄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양식 말씀 고린도후서 4:7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말씀에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 말씀을 더 깊이 헤아리기 위해 영어성경을 보니까, “All surpassing power is from God, not from us” 였습니다. “능력의 심히 큰 것”, “All surpassing power” “가장 초월적인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굳게 의지했습니다. 자신은 질그릇처럼 연약하지만 보배되신 예수님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창조적인 지혜와 넘치는 에너지를 주셔서 박사논문도 통과되고, 학교에 정규직 연구원이 되었습니다. 연구실에서 학생 양들과 매주 3팀의 일대일을 꾸준히 감당했습니다. 왕복 2시간이 걸리는 연대 송도캠퍼스까지 가서 새내기 양들과 일대일을 해서 제자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남편 이효상 목자님도 옆에서 은혜를 받고 365일 양식을 써 먹고, 직장에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분의 소감을 읽으면서 24,25절 말씀,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이 말씀이 실감났습니다. 내가 한 말씀이라도 삼가고 헤아려서 말씀의 힘을 덧입으면 나의 삶에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학교생활, 직장생활, 가정생활, 목자생활 등등 모든 부분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힘써 말씀을 삼가고 헤아려서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 점점 성장하는 말씀의 능력(26-34)

 

그러면 말씀이 우리 안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합니까? 26,27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우리는 그저 말씀의 씨를 뿌릴 뿐입니다. 성경읽기를 통해서, 전도와 일대일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씨를 뿌리고 물을 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라게 하십니다. 씨가 자라는 과정은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 아십니다. 우리는 씨를 뿌려 놓고 밤낮 자고 깨고 하면 됩니다. 뱃속에 아이가 어떻게 자라는지 산모는 모릅니다. 10달 동안 자고 깨고 하는데 신기하게 애기가 자라서 태어납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의 씨를 심으면 점점 자랍니다.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입니다. 작은 씨가 열매를 맺어 추수하게 되면 얼마나 오지고 보람이 있습니까? 열매가 다 익으면 마침내 낫을 들고 추수하게 됩니다.


김대효 목동이 4년 전에 왔을 때는 영적 소원이 강렬하지 않았습니다. 학과 공부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중간에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민창 목자님이 토요일마다 학교 가서 일대일을 해 주었습니다. 파트 목자님들이 사랑해주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4년 동안 자고 깨고 했더니 어느새 목동이 되고, 이제는 목자가 되고자 하는 소원까지 생겼습니다. 이번 수양회 때 율동도 하고 은혜로운 소감도 발표했습니다. 장차 교수목자가 되어 많은 양들을 돕는 그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는 자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씨가 나서 자랄 것을 믿는 것입니다. 농부는 반드시 씨가 나서 자랄 것을 믿기 때문에 봄에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열심히 거름을 줍니다. 그렇게 하고 밤에는 집에 가서 편히 잡니다. 우리도 이것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과연 내가 뿌린 복음의 씨가 자랄까? 양들이 성장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송건주 목자가 학생 때 항상 힘든 소리만 해서 연주목자님을 노심초사하게 만들었습니다. “건주가 떠나면 어떡하지그러나 6, 7년을 인내하고 도왔을 때 지금은 성숙한 목자로 성장했습니다. 수양회 때마다 휴가를 나와서 학생회 양들을 돕고 환경을 이루는 것을 보면 정말 기특하고 감사가 됩니다. 4년 전에 생둥이 양이었던 강은혜 목자가 어느새 성장해서 풀타임 훈련을 받고, 수양회 총실무까지 감당하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의 위력이 얼마나 놀라운가 계속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31, 3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겨자씨는 깨알처럼 작습니다. 눈에 띄지도 않고 불면 날아갑니다. 그러나 나중에 3미터까지 자란다고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겨자씨 한 알처럼 작고 미약해 보입니다. 모든 씨보다 작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1:4). 그래서 일단 말씀의 씨가 심겨지기만 하면 점점 자랍니다. 자라되 어느 정도까지 자랍니다. 모든 풀보다 커집니다. 큰 가지를 냅니다.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음에는 겨자씨 한 알처럼 지극히 미약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으로 도우셨을 때 그들은 점점 성장했습니다. 나중에는 사도행전역사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1세기를 밝히고, 세계선교의 기초를 놓은 위대한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영적인 거목들이 되었습니다.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 말씀을 통해서 삶에 지친 수많은 영혼들이 참 안식을 얻고 있습니다. 지난 2천년동안 말씀을 통해 힘을 덧입고 구원받은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내가 하는 한 팀의 일대일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매일 보는 한 장의 일용할 양식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지금은 겨자씨 한 알처럼 작아 보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무시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에 보십시오. 한 말씀을 마음에 품고 순종하며 사는 사람은 큰 거목으로 성장합니다. 한 영혼을 마음에 품고 눈물로 섬길 때 큰 목자로 성장하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갈 길 몰라 방황하는 수많은 새들이 도움을 청하러 몰려올 것입니다. 이사야 60:2절에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이 약속이 성취됩니다.

 

지난 금요일 부활장 암송대회에서 알피타 자매가 몇 구절만 틀리고 다 외웠습니다. 목요일 파트모임 시간에 광고했는데 하루 만에 다 외웠습니다. 지난 봄 수양회 때도 아주 진실되게 집안 문제를 오픈하며 부활의 주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분의 마음속에 떨어진 말씀의 씨가 성장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장차 영적인 거목으로 성장해서 인도 13억 영혼들을 품고 섬기는 열국의 어미가 되리라 믿습니다

 

결론적으로 주님께서는 수시로 귀한 말씀들을 우리에게 들려주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들을 귀가 없어서 말씀을 깨닫지를 못합니다. 우리에게 들을 귀를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건성으로 피상적으로 듣지 말고, 스스로 삼가서 깊이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서 읽고, 읽고 또 읽고, 기도하고, 연구하고, 쓰고, 암송하고, 순종하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로서 말씀 속에 담긴 보화를 캐내고, 진액을 공급받아 영적 비밀을 깨닫는 기쁨이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내 안에 말씀의 감격이 싹이 나서 큰 거목으로 성장하고 그 씨가 양들의 마음에도 심겨져서 울창한 말씀의 숲을 이루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