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마가복음 12

                                                                   가서 찾아 보라

말씀: 마가복음 6:30-44

요절: 마가복음 6: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초등학교 시절 소풍가면 가장 재미있는 시간이 보물찾기였습니다. 선생님이 보물을 숨겨놓고 그것을 찾아오면 상을 줍니다. 모든 학생들이 눈에 불을 켜고 보물을 찾습니다. 돌도 들추어 보고, 나뭇 사이, 바위틈에도 들어가 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이 예수님의 보물찾기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찾아낸 오병이어가 보물이었습니다. 사람들 눈에는 오병이어가 하찮은 것일지 몰라도 예수님 눈에는 보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더 큰 보물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떤 의미에서 보물찾기와 같습니다. 우리가 사건 사건을 통해서 보화되신 예수님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또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내게 있는 소중한 보물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기대와 감격이 항상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30-37a)

 

30절에 보면 사도들이 전도여행 갔다 와서 체험한 것을 낱낱이 보고 합니다. 제자들은 아직 연약하지만 첫 번째 전도여행을 통해서 많은 은혜를 맛보았습니다.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병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냈습니다. 얼마나 감개무량했겠습니까? 그들은 신이 나서 경쟁적으로 예수님께 보고를 했습니다. 마치 아이들이 학교에서 상을 타 와서 부모에게 자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이 너무 기특하고 사랑스러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휴가를 주고자 하셨습니다. 오고 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제자들은 이제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오랜만에 예수님과 함께 뱃놀이도 하고 세족식도 갖게 되어 제자들은 너무 기뻤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마자 예기치 않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무리들이 도보로 와서 먼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이제 오셨어요. 기다렸잖아요활짝 웃는 무리들의 모습이 제자들에게는 영 얄밉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어떻게 맞이해 주셨습니까? 34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제자들은 무리들을 부담스러워했지만 예수님은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제자들은 짜증이 났지만, 예수님은 짠한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제자들이 많이 성장했지만 아직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양들 편에서 생각하셨습니다. 목자없는 양같은 무리들이 너무나 불쌍했습니다. 예수님은 불타는 목자의 심정이 발동하여서 즉석에서 바이블 카페를 여셨습니다. 예수님은 원고도 없이 힘있게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 무엇이 진정한 복인가? 힘써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무리들도 너무나 감동을 받아서, 한 사람도 요동함이 없었습니다. 강사이신 예수님이나 관중인 무리들이나 완전 몰입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속이 불편했습니다. 금쪽같은 휴식시간을 도적맞았다는 생각 때문에 왠지 피치고 싶었습니다. 제자들은 계속해서 시계를 들여다보며 메시지가 끝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어떤 제자들은 삼육구 삼육구삼유구 게임을 하며 기다렸지만 몇 판이 끝나도 메시지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참다 참다 인내심에 한계를 느꼈습니다. 마침내 용기를 내서 예수님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35,3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때가 저물어 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제자들은 때는 저물어서 밥 먹을 시간이 되었고, 이 곳은 빈들이기 때문에 무리들을 돌려보내자고 제안했습니다. 때와 장소를 핑계 삼아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제자들의 제안은 지극히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37a을 봅시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예수님은 제자들의 말을 들으시고 !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시고 정색을 하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무리들을 돌려보낼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무리를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무리들을 향한 목자의 심정을 갖기 원하셨습니다. 책임의식, 시대적 사명감을 갖기 원하셨습니다. “너희가 먹어야 한다” “너희가 주어라” “You”를 강조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들이 알아서 먹도록 합시다” “They”를 강조했습니다. 제자들은 할 수 있는대로 무리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싶었습니다. 해 줄만큼 해 주었으니 이제 자기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 했습니다. 우리도 양들을 돕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가 어디까지 도와주어야 하는가?” “내가 부모도 아닌데---” “내가 이들을 낳았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이는 너희가 그들의 영적 아비가 되어야 한다. 너희가 그들의 목자가 되어야 한다그런 뜻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4:15절에서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스승은 일정한 시간동안 지식을 전수해주고 시간이 되면 떠납니다. 그것으로 자기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모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자기 몸으로 낳았기 때문에 일생을 책임집니다. 평생 동안 품고 사랑합니다. 자식이 아파하면 같이 아파하고, 자녀가 배고파하면 함께 배고파합니다. 자녀와 함께 울고, 함께 웃고,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존재가 부모입니다.

 

황수관 박사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가 아주 어려서 홍역에 걸려 숨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당시에는 아이들이 홍역 때문에 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죽으면 묘도 쓰지 않고 거적 대기에 둘둘 말아서 산에다 묻었다고 합니다. 아이를 내다 묻어야 하는데, 어머니가 죽은 아들을 품에 안고, 혀로 얼굴을 핥아주며, 눈물을 뚝뚝 흘리며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살아계신다면 제 아들을 살려 주십시오통곡을 하며 애절하게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죽은 아이가 살아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홍역으로 죽은 아이를 봤다면 그냥 산에 갖다 묻고 끝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부모의 그 애틋한 사랑이, 불붙은 심정 때문에 놓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그 부모의 뜨거운 사랑이, 눈물의 기도가 죽은 아이를 살린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이론과 상식을 초월합니다. 상황에 매이지 않습니다. 저의 어머님도 그러하셨습니다. 하루 종일 밭일하고 몸이 녹초가 되어도 자식들이 배가 고프다고 하면 그 밤에 일어나서 부엌에 들어가셔서 밥을 지어 먹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상황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바로 그런 부모의 마음을 갖기 원하셨습니다. 무리들을 남으로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이 말씀은 너희가 무리들의 영적 부모가 되어야 한다” “너희가 이들의 목자가 되어야 한다그런 뜻입니다. 때가 저물어가고, 장소가 빈들이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무리들이 자기 자식들이라면 그냥 돌려보내자고 쉽게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 목자의 심정이 있으면 때와 장소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상황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현실을 뛰어 넘어서 심정(heart)을 갖도록 촉구하셨습니다.

저는 지난 주 말씀축제 강사로 오신 순천 UBF 조아브라함 목자님의 메시지를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조아브라함 목자님은 순천시장의 비서, 국회의원 보좌관, 순천문화원 국장 등을 거치며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자없이 방황하는 순천대 영혼들에 대한 목자의 심정 때문에 현실에 안주하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좋은 직장을 내려놓고, 목자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사모님은 광주에서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주중에는 양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했습니다. 아들 뻘 되는 학생들을 위해 매일 아침 손수 밥을 지어 먹였습니다. 이런 그의 아비의 마음, 목자의 심정에 감동을 받고 세 명의 학생 목자들이 서게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역사입니다.

 

요즘 우리는 캠퍼스 현실을 바라볼 때 막막한 생각이 듭니다. 때는 저물어가고, 캠퍼스는 황량한 빈들처럼 보입니다. 소원있는 양들을 찾아보기 힘들고, 학생들은 취업준비 때문에, 또 노느라고 바쁩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지 않는가? 하며 발뺌을 할 수도 있습니다. 조아브라함 목자님이 제 나이 50대가 되었고, 국회의원 보좌관까지 되었으니 캠퍼스 양들은 다른 사람이 돌봐야죠했으면 아무런 시도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아브라함아, 네가 먹을 것을 주어라” “네가 순천대의 아브라함이 아니냐하시는 음성을 듣고 캠퍼스에 뛰어 들었습니다. 구청에 가서 본명까지 아브라함으로 개명을 했습니다. 말쑥한 양복 대신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들어가서 포럼을 만들고 아들뻘 되는 양들과 눈높이를 맞추고자 힘을 썼습니다. 그때 삶에 지치고 피곤한 순천대 양들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목자의 심정이 있으면 얼마든지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 “수웅아, 네가 의대 양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열정아, 네가 치전원 양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주님은 우리를 고생시키기 위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이 시대에 선한 목자요, 영적 아비로 키우기 위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이 시대에 영적 리더로 키우시기 위해서 도전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이 말씀을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영접할 때 불타는 목자의 심정이 생겨나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능히 살리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역사의 관중으로 두지 않으시고, 주역으로 쓰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 시대 양들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나에게 맡기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 말씀은 나에게 주신 큰 축복이요, 기회입니다. 주님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하실 때 왜 하필 제가 먹여야 합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주님, 이 양들을 제게 맡겨 주셔서 감사 합니다” “제가 먹이겠습니다그런 자세로 감당할 때 놀라운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37b-44)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말씀하시자 제자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37b절을 봅시다.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제자들은 막상 무리들을 먹일려고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목자의 심정도 좋고 사랑도 좋지만, 가진 것이 있어야죠?” 그런 말입니다. 우리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양들 먹이고, 살리는 것은 좋지만 현실적으로 200 데나리온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시간 여유도 있어야 하고, 돈도 있어야 하고, 같이 일할 동역자도 있어야 하고, 젊은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달란트도 있어야 하고, 끼도 좀 있어야 하고. 문제는 이런 것들이 내게 없기 때문에 먹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38a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는지 가서 찾아보라고 하십니다. 영어성경에 보면 “Go and See” 로 되어 있습니다. “가서 보라앉아서 생각만 하지 말고, 직접 가서 손발을 놀려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이백 데나리온 가진 사람 부러워만 하지 말고 내가 가지고 있는 떡 몇 개라도 찾아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보물찾기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심부름을 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어디 가면 뭐가 있으니 가져와라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영원토록 예수님의 비서밖에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비서가 아니라 역사창조의 주역들로 키우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직접 가서 꼬투리를 찾아보고, 그것을 가지고 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 말씀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38b절을 봅시다.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제자들이 알아보고 와서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제자들은 없어요. 우리에게 있긴 뭐가 있어요? 다 아시잖아요 우리 가난한 것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방향에 순종해서 마음을 드려 가서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떡 다섯 개가 있었습니다. 떡이 하나도 아니고 다섯 개나 있었습니다. 또 물고기 두 마리도 찾아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물고기 두 마리까지 찾아냈습니다. 위대한 발견입니다. 제자들도 스스로 놀랐을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순종해서 가서 찾아 보면 정말 뭐가 있습니다. 오병이어가 있습니다.

 

황수관 박사의 간증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그의 부모는 6,25때 월남해서 너무나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가 새까맣게 탄 손으로 아들의 손을 꼭 잡고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수관아, 이 애비가 속옷이라도 팔아서 너 대학 보낼테니 공부 열심히 해라그 아버지의 말이 너무나 가슴에 사무쳐서 그 분이 죽어라고 공부해서 대학교수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백 데나리온이 없어도, 속옷이라도 팔아서 아들 교육을 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속옷이라도 팔아서 자식을 교육시키고자 하는 그 오병이어가 아들을 마침내 대학교수까지 만들어낸 것입니다. 꼭 이백 데나리온이 있어야만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 아닙니다. 진심의 오병이어를 찾아서 주님께 드리면 거기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제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4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예수님은 겨우 이것만 찾아왔느냐?”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이 가지고 나온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오병이어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거기 있는 무리들에게 나눠 주셨습니다. 그러자 거기 있는 무리들이 다 배불리 먹었습니다.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가 열 두 바구니에 가득 차게 남았습니다. 그때 떡을 먹은 남자만 오 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 기적 사건을 보고 제자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이 분이 누구시기에?”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이 발견한 보물은 예수님이셨습니다. 5천명의 무리를 먹이신 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진심의 오병이어를 축사하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제자들이 발견한 보물은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골로새서 2:3절에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안에 보화가, 보물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눈이 가려져서 예수님이 보화이신 것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가서 보라말씀에 순종해서 가서 찾아보고 주님께 진심을 드리면 예수님이 우리 인생을 보석처럼 귀하게 축복해 주시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참 보화 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캠퍼스 양무리들을 먹일려고 할 때 잘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어떤 오병이어가 있는가? 나에게 어떤 꼬투리가 있는가? 가서 찾아보면 얼마든지 오병이어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희 교회에서 캠퍼스 올라가는데 5분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5분은 다 있습니다. 남연하 사모님은 하루 종일 약국 일을 하고 나면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그러나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꼭 캠퍼스에 올라가서 한 두 사람 전도를 합니다. 5분을 드리는 전도의 오병이어를 통해서 김휘승 형제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21세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5분 전도, 기적의 오병이어입니다.

 

박스데반 목자님은 농협상무님인데 금요일 저녁 8시가 되면 어김없이 저녁기도회에 오셔서 무릎 꿇고 기도하십니다. 제가 한번 목자님의 사무실에 가 보았는데 굉장히 높은 분인 것을 알고 놀랬습니다. 그런데 금요일 저녁 얼마나 피곤할 텐데 상무님이 땅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이 참 은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의 오병이어를 받으시고, 세 자녀들을 전대 캠퍼스에 기둥같은 목자들로 세워 주셨습니다. 안베드로 목자님이 올해 CBF교장 직분을 맡아서 책임성있게 아이들을 돕고, 메시지도 감동력있게 전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이들도 집중을 하고, 본인도 예배때 졸지 않게 되었습니다. 김사라 사모님은 물질문제, 자녀들 문제가 많지만 매일 새벽기도 제단을 쌓으십니다. 이로 인해 파트장인 한충신 목자님이 큰 힘을 덧입고 있습니다.

 

전규조 목자님은 80살이 넘으셨지만 어찌든지 주의 전을 아름답게 가꾸고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 일찍 출근하셔서 쓰레기 다 치우시고 헛드렛 일을 감당하십니다. 권자현 사모님은 시므온 안나팀 목자님들을 위해서 매주 말씀공부로 섬기십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있는 작은 오병이어를 드릴 때 주님께서 받으시고 크게 축복해 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난 말씀 축제 때도 우리 목자님들이 바쁜 시간을 내서, 말씀과 소감을 준비했습니다. 사모님들이 정성껏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천도전 목자님은 한 시간 전에 소감 발표 좀 하라고 하자, 몇 년 전에 썼던 소감을 가지고 와서 발표했습니다. 오병이어이지만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가서 찾아보면 오병이어는 다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께 드리면 주님이 축사하시고 보물이 되게 하십니다. 부지런히 오병이어를 찾읍시다.

 

이제 여름수양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걱정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요회, 우리 파트는 일군들이 없어요, 일대일 하는 양들이 별로 없어요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찾아 보라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가서 보면 오병이어가 보입니다. 가능성이 보입니다. 꼬투리가 보입니다. 소망이 생기고 마음이 갑니다. 이것이 작은 것일지라도 이를 들고 주님께 나아가야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이를 크게 축복하시고 오 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베푸시리라 믿습니다. 요즘 각 파트마다 전도를 위해서 이런 저런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소중한 오병이어라고 믿습니다. 떡을 몇 개나 찾아오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몇 명을 초청하는가? 숫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진심을 찾아서 드리면 주님께서 이를 받으시고 크게 축복하십니다. 보리떡 같은 우리의 진심을 받으시고 크게 축복해 주시는 예수님을 감사 찬송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