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3

                                                           마음을 깨끗이 하라

말씀: 마가복음 7:1-23

요절: 마가복음 7:20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오늘 말씀은 사람이 정말 깨끗하게 될려면 무엇에 신경을 써야 하는가? 가르쳐 줍니다. 요즘 ‘Lookism’이란 말을 많이 씁니다. 외모 지상주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외적인 것만 가지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정말 신경 쓸 부분은 내면입니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마음에서 생각이 나오고, 그 생각이 말과 행동으로 옮겨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잘 새겨듣고, 마음을 깨끗케 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1절을 봅시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님께 모여 들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인기가 높아지자 뭔가 꼬투리를 잡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건수가 포착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음식을 먹은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씻지 않고는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또 시장에서 돌아오면 반드시 물을 뿌렸습니다. 잔과 주발, 놋그릇도 항상 깨끗이 씻었습니다. 요즘 우리는 병균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 부지런히 손도 씻고, 샤워를 합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깨끗이 씻는 것이 종교적 의식이었습니다. 식사 전에 손을 씻고, 시장에서 돌아오면 물을 뿌렸는데 이것은 부정한 이방인과 접촉했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그릇도 열심히 닦는 이유는 간밤에 귀신이 그릇에 붙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시각으로 볼 때 손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정한 자들입니다. 상종할 수 없는 죄인들이었습니다.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 범법자들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6,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바리새인들은 말로는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자부했습니다. 613개나 되는 장로들의 전통을 만들어서 실천할려고 했기 때문에 정말 거룩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그렇지 못 했습니다. 겉으로만 경건한 척 했지, 속마음은 온갖 더러운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 대한 시기심과 미움이 가득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외식이라고 하십니다. 외식은 본래 연극용어입니다. 연극배우들이 자기와 전혀 다른 인물의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 외식입니다. 그들의 종교생활은 일종의 연기였습니다. 퍼포먼스. 겉과 속이 다른 이중플레이를 했습니다. 겉은 깨끗한 척 했지만 속은 더러웠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겉을 보시지 않고 속을 보십니다. 잠언 21:2절에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했습니다. 시편 139:2절에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했습니다.

 

말로 하는 신앙은 쉽습니다. 말로는 뭘 못합니까? 말로는 온 몸을 불살라 주님께 드리고,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주를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 이런 시를 책상 앞에 붙여놓고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화장실 청소나 설거지는 하기 싫어합니다. 실제 삶 속에서 희생과 헌신이 없다면 겉만 번지르르한 말은 무의미합니다. 요즘 지방선거철이라 별의 별 말들이 무성합니다. 그러나 말과 실제 삶이 다르기 때문에 정치인들을 잘 신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겉으로 경건한 척 하지, 마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먼 바리새인들이 헛되이 경배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를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명목으로 복잡한 전통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정신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았습니다. 또 그 형식으로 사람들을 비판하고 정죄했습니다. 이런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너무 위선적이고 외식적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독일 장교와 경건한 유대인이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독일 장교는 돼지고기가 든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다가 혼자 먹기 미안해서 유대인에게 권했습니다. “좀 드시지요?” 그러자 유대인이 거절했습니다. “우리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습니다조금 후에 장교가 위스키를 마시며 권했습니다. 또 유대인이 사양했습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위스키를 마시지 않습니다장교가 말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먹지 않습니까?” 그러자 유대인이 말했습니다. “생명에 위협이 있을 때만 허용이 됩니다그러자 장교가 권총을 빼들고 말했습니다. “어서, 이 샌드위치를 먹으시오. 아니면 쏘겠오유대인은 마지못해서 샌드위치를 먹었습니다. 다 먹고 난 후에 독일 장교가 유대인에게 사과했습니다. 이때 유대인이 말했습니다. “왜 위스키 마시라고 권총으로 위협하지는 않습니까?” 실상 그 유대인은 샌드위치 뿐 아니라 위스키도 마시고 싶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만 경건한 체 하는 유대인의 이중성을 비꼬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핵심을 말씀하십니다. 8절을 봅시다.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그들이 처음 전통을 만든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의 전통에 얽매어 하나님의 계명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위해서 사람의 전통을 만들었는데 나중에 주객이 전도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신명기 6:5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습니다. 껍데기만 드렸습니다. 이를 보신 예수님은 너무 안타까우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가지 예를 들어 그들의 전통의 문제점을 지적하십니다. 바로 고르반 전통입니다. 10,1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이것은 십계명 중에서 다섯 번째 계명입니다. 이 계명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헌법과도 같습니다. 출애굽기 21:17절에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했습니다. 자녀는 반드시 부모님을 공경하고 잘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고르반 전통을 핑계로 부모를 잘 공경하지 않았습니다. ‘고르반은 본래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거룩하게 구별한 헌물이라는 뜻입니다(2:1). 좋은 의도죠. 하나님께 최우선적으로 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이 전통을 악용했습니다. 부모를 섬기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고르반하면서 꽁무니를 뺐습니다. “하나님께 먼저 드릴려구요하면서 부모님도 안 섬기고, 하나님도 안 섬겼습니다. 고르반 전통을 자기변호의 방패로 악용한 것입니다. 13b절에 보면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기 위해 만든 전통을 가지고 오히려 하나님 계명을 어기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얼마나 모순됩니까? 신앙의 전통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전통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형식만 남을 때 오히려 위선적이 됩니다.

 

1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의 의도를 잘 깨닫기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조건 제자들을 변호할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이 무엇인가? 가르쳐 주고자 하셨습니다.

 

15,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음식은 근본적으로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합니다. 저희가 어릴 때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땅바닥에 두고 밭일을 하셨습니다. 그때 아이들은 흙을 집어 먹고 컸어도 건강하게 잘 자랐습니다. 그때는 아토피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명절 때만 한번씩 가마솥에 물을 데워 목욕을 했습니다. 그래도 감기 안 걸리고 건강하게 잘 자랐습니다. 당시에는 옷은 더러워서 이가 득실거렸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은 순박하고 후덕했습니다. 정이 많고 이웃 사람들을 배려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위생관념은 철저한데 마음이 사납습니다. 서로 물고 뜯고, 고소하고, 기자회견하고, 폭로전을 일삼습니다. 세상사는 것이 너무 무섭고 살벌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들의 마음이 더럽고 악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20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음식물은 먹으면 마음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나가고 맙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이 더러우면 그 생각이 악한 행동을 낳고, 죄의 열매를 맺습니다. 자신도 더럽히고,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를 입힙니다.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21-2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예수님은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 12가지를 언급하셨습니다.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 등등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손은 열심히 씻고 전통은 잘 지켰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씻지 않을 때 교만과 질투와 살인감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잡아 죽이고자 모의를 했습니다. 나중에는 무리들을 충동질하고 빌라도에게 고발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그것이 얼마나 악한 죄인지 몰랐습니다. 나중에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그들의 죄를 지적하며 책망합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2:23,24)” 그때에야 그들이 마음에 찔려 가슴을 치며 회개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도다(2:37)” 이때도 회개한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 아니고 무리들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볼 때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가?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은 생각은 자유라고 생각하고 마음대로 생각합니다. 누가 보는 사람이 없으니 생각은 내 맘대로 하고, 말과 행동만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쌓인 생각이 결국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생각을 보고 평가하고 심판하십니다. 창세기 6:5-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노아시대)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시대 사람들의 악한 생각을 보시고 홍수심판을 계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2절에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고 했습니다. 이는 유다가 평소에 물질욕과 명예욕의 악한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마귀가 역사해서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은 것입니다. 생각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의 마음이 타락하고 부패했습니다. 예례미야 17: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처럼 악하고 더러운 마음을 어떻게 깨끗케 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내 마음이 더럽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정결함을 덧입어야만 합니다. 요한일서 1:8,9절은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병원에서 환자가 치료를 받을려면 자기 몸의 병든 요소를 의사에게 솔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영적으로도 우리 생각이 악하고 추하다는 사실을 주님 앞에 고백해야 합니다. 그때 주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깨끗케 해 주십니다.

 

히브리서 9:14절에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했습니다. 어떤 전통이나 의식으로도 사람의 악한 생각을 깨끗케 할 수는 없습니다. 초인적인 수련으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은 우리의 생각과 영혼 깊은 곳까지 깨끗이 씻어 주십니다. 우리가 순간순간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덧입어야 하겠습니다.

 

이번호 일용할 양식 104페이지에 보면 독일 하이델베르그에 홍갈렙 선교사님 신앙에세이가 수록되었습니다. <그 함박눈이 덮었던 것은>. 어린 시절 교회갔다 올 때 함박눈이 소복히 내려서 온 천지를 하얗게 덮었습니다. 장갑을 잃어 버려서 괴로웠던 생각, 집착, 불만, 소요등 세속적인 생각이 함박눈의 순수함으로 덮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계모와의 갈등, 가난, 중단된 학업, 인쇄소, 신문배달, 철공장 생활. 험난한 인생여정, 분노, 절망 등등. 그 생각이 칠흙같이 어두웠습니다. 그런데 1972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동생의 인도로 UBF에서 말씀공부를 시작했는데 은혜의 함박눈이 내린 것입니다. 복음이 그 어둡고 복잡한 생각들을 다 덮어버리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험한 세상에서 온갖 어두운 생각에 사로잡혀 괴로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갈 때 그 보혈의 은혜가 우리를 덮어주십니다.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주는 함박눈과 같이. 이사야 1:18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우리 마음을 온전히 덮어 주시는 보혈의 은혜가 순간순간 임하길 기도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야고보서 4:8절에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했습니다. 평소에 무엇을 가까이 하는가에 따라서 생각이 결정됩니다. 평소에 육신적인 것들을 가까이하고 지저분한 것들을 탐닉하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더러워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하면 마음이 깨끗하고 성결하게 됩니다. 시편 119:9절에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했습니다. 시편 12:7절에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용광로에서 수 없이 걸려내고 또 걸러내 불순물을 없애고 단련된 은처럼 순결합니다. 이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갈 때 우리 안에 더러운 요소들을 몰아내 줍니다. 말씀을 가까이하고 사랑하면 말씀이 우리내면을 정결케 합니다. 지저분한 불순물들을 걸러내 줍니다. 잠언 17:3절에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느니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 마음을 연단하셔서 깨끗케 하십니다.

 

요즘 어떤 병원에서 몸에 독소를 제거하는 치료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독소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마음에 미움과 상처, 탐욕과 저주 등등.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독이 올라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영적인 독소를 제거할 수 있습니까? 생명의 말씀으로 독소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4: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드러낸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가까이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순수합니다. 생각이 맑고 깨끗합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영적인 해독작업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주 학사수양회에 갔는데 우리 UBF 평신도 목자님들은 정말 순수하고 진실된 분들임은 느꼈습니다. 참 오랜만에, 2,30년 만에 만난 학사님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놀란 것은 학생 때나 지금이나, 20대에나, 50대에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겸손하고 순수하고 진실된 모습이 참 은혜가 되었습니다. 화요일 저녁, 직장 끝나고 피곤할텐데 대전까지 가서 말씀공부를 하는데 밤 12, 1시까지 분반공부를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주제 강의 메시지, 대표소감 듣고, 소감을 썼습니다. 점심 먹고 분반소감발표하고, 또 특강 듣고, 또 폐회예배까지 드리고 나니 오후 530분이 되었습니다. 완전 강행군이었습니다. 황금 휴일인데 이를 기쁨으로 감당하는 것을 보고 정말 존경스러웠습니다. 평소에 말씀을 가까이하고, 영적인 것을 사모하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말씀 훈련을 받을 때 생각이 영적으로 돌아갑니다. 속에서 악한 생각 대신, 선한 생각이 나옵니다. 맑은 생각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킵니다. 악취나는 세상을 향기 나게 만듭니다.

 

셋째로, 기도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생각에 갇혀 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기적이고 어두운 생각들은 더 어둡고 악한 생각으로 발전을 합니다. 자기 생각이 과연 옳은 생각인지 객관적으로 분별하지를 못합니다. 그저 스스로의 감정과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무릎 꿇고 기도할 때 성령께서 분별력을 주십니다. 내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악한 생각과 싸울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이기적이고 악한 생각을 물리쳐 주시고 영적인 생각, 하나님 중심적인 생각을 하게 하십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생각만 하고, 사탄의 생각에 지배당하며 사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대화할 때 악한 생각에서 빠져나와서 건강한 생각, 영적인 사고를 하게 됩니다.

 

빌립보서 4:8절에 보면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8가지의 덕스러운 생각을 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렇게 좋은 생각만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이처럼 좋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좋은 생각> 잡지를 구독하면 됩니까? 아무리 좋은 글을 많이 읽어도 사람의 생각이 바뀌지 않습니다. 바로 앞의 말씀을 보니까, 빌립보서 4:6,7절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십니다. 선한 생각을 하게 하십니다. 사탄적인 생각이 물러가게 하시고 영적인 생각을 하게 하십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찬송도 힘차게 불러야 합니다. “찬송을 부르세요, 찬송을 부르세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찬송 부르세요” “기도를 드리세요. 기도를 드리세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기도 드리세요

 

골로새서 3:16,17절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말씀과 찬송, 기도는 성령의 통로가 됩니다. 여름에 폭우가 쏟아지면 골짜기에 지저분한 쓰레기들을 다 쓸어내립니다. 이처럼 한 번씩 대청소를 해야 산과 골짜기가 깨끗해집니다. 우리도 새벽기도와 금요기도회에 나와서 힘있게 찬송 부르고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후련해지고 정결케 됩니다. 특히 다가오는 여름수양회를 통해서 성령의 단비가 폭포수와 같이 우리 마음에 쏟아질 것을 믿습니다. 이때 우리 내면이 깨끗케 될 것을 믿습니다.

 

결론적으로 신앙생활의 핵심은 겉을 깨끗케 하는데 있지 않고 속 마음을 깨끗케 하는데 있습니다. 우리의 속마음을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겠습니다. 순간순간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덧입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가까이하고, 부르짖어 기도하고, 힘있게 찬송해야하겠습니다. 또 열심히 생명의 말씀을 가르쳐서 우리 안에서 생명수가 흘러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때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어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정결케 될 수 있음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