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

                                                                    부스러기 은혜

말씀: 마가복음 7:24-30

요절: 마가복음 7: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 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마가복음 7장 전반부 말씀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책망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종교지도자들이지만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었습니다. 반면에 7장 후반부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은 이방인이지만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겸손하면서도 재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믿음을 크게 칭찬하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저희도 믿음의 생각을 하고 믿음의 말을 해서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길 기도합니다.

 

24절을 봅시다. 예수님께서 두로 지방으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두로는 이방지역입니다. 그때 한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인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여인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습니까? 25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이 여인은 헬라인으로서 헬라어를 구사하는 수준 있는 사람입니다. 수로보니게 족속, 페니키아인으로서 경제적으로 넉넉했습니다. 그러나 여인에게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는데 바로 어린 딸이 더러운 귀신에 들린 것이었습니다. 다른 것이 다 풍족해도 자녀가 아프거나 문제가 있으면 부모는 마음이 찢어집니다. 여인은 어린 딸로 인해 눈물을 많이 흘렸을 것입니다. 그러던 차에 예수님께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기적을 행하신다고 했습니다. 특히 군대귀신 들린 거라사 광인을 치료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여인은 큰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간구했습니다. “우리 딸에게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 주시옵소서여인은 절박한 심정으로 주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옆에서 보기에도 짠한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2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여기서 자녀는 유대인을, ‘는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자녀와 같은 유대인들을 돌보시지, 개와 같은 이방인들을 돕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은 여인을 두 번 죽이는 잔인한 말 같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귀신 들린 것만도 서러운데 개 취급까지 하시니 여인이 얼마나 화가 나고 서러웠겠습니까? 더구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수님께서 이런 말을 하시다니. 정말 이해가 되지 않고 우리도 힘들어질려고 합니다.

 

요즘 같았으면 이런 말은 언어폭력이요, 인종차별, 여성폄하, 갑질 발언으로 당장 고발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이처럼 심한 말씀을 하셨을까요? 제가 천국에 가면 예수님께 물어 보고 싶은 것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지금 유추해 볼 때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믿음을 테스트 하신 것 같습니다. 또 예수님은 이 여인이 시험을 감당할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당할만한 사람에게 시험을 주십니다. 저도 때로 사람을 도울 때 너무 예민해서 훈련을 감당하지 못할 사람에게는 강한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훈련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은 좀 심한 말도 합니다. 미워서가 아니라 자극과 도전을 통해서 성장하도록 돕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좀 더 겸손하고, 간절하길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내 속에 자기 의와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얼마나 비천한 존재인가 자기발견을 해야만 합니다. 그때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값진 것인가? 깊이 깨닫게 됩니다. 또 은혜 받은 후에 교만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처음 운전 배울 때 옆에 앉은 강사가 꼭 인격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좀 심하다 할 정도로 거친 말들을 합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운전습관을 잘 들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운전을 쉽게 생각했다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런 말들을 고맙게 여겨야 마땅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받는 것도 너무 쉽게,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얼마나 비천한 죄인인데, 자격 없는 자인데 주님께서 일방적인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가?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 겸손한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마리아가 성모로 택함을 받았을 때 어떻게 말했습니까? “주여, 사람 잘 보셨습니다” “제가 아니면 누가 성모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주님이 마리아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1:46-48)” 마리아가 자신의 비천함을 인정하고 겸손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구속역사에 귀하게 쓰셨습니다. 사도바울도 이런 자기발견이 있었습니다.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요,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치 못할 자요(고전15:9), 죄인 중에 괴수라는 자기 발견이 있었습니다(딤전1:15).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귀하게 써 주셨습니다. 우리도 내가 얼마나 천박한 죄인인가? 깊이 인정하고 겸손하게 나아갈 때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열왕기하 5장에 보면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나병에 걸렸습니다. 그가 도움을 받고자 이스라엘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는 나와 보지도 않고 사자를 보내서 말했습니다.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이때 나아만 장군은 자존심 상처를 받고 화를 내며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우리 다메섹의 강이 이스라엘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그러나 옆에 종들이 조언했습니다.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한번만 순종해 봅시다이때 나아만 장군이 자존심을 내려놓고 순종했을 때 나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아람왕의 군대장관일지라도 자존심을 내려놓고, 자신이 비천한 나병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순종했을 때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도 자존심을 내려놓고, 겸손히 주님의 은혜를 구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여인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2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첫째로,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고 적극적으로 인정했습니다. “Yes, Lord” “주여, 옳소이다여인은 예수님의 발언에 대해 반발하지 않았습니다. 적극적으로 인정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 “주님, 제가 개와 같이 비천한 자입니다” “제가 은혜 받을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주여” “Lord” 라고 불렀습니다. 처음에 예수님의 도우심을 받으러 왔을 때만 주여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심한 말을 듣고서도 주여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이 바로 lordship, 주권신앙입니다. 내가 필요할 때만 주님을 높이고, 내 기분이 상한다고 토라져 버리면 주권신앙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모든 것이 내 마음에 들지만은 않습니다. 때로는 감사하지만 때로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고 영접이 안 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속에서 반발심이 듭니다. “NO. 이건 아니잖아요. 주님, 이렇게 하시면 안 되죠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이 많습니다. 의인 욥이 엄청난 고난을 받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요셉이 노예로 끌려가고, 감옥에 가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다윗이 분명히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는데 쫓겨 다니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를 하나님의 주권으로 영접했습니다. 창세기 45:7,8절에서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표면적으로 보면 분명히 형들이 요셉을 미워해서 애굽에 노예로 팔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형들을 쓰셔서 요셉을 애굽에 조기 유학을 보내신 것입니다. 욥이 당하는 고난을 욥의 아내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험한 말을 했습니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2:9)” 그러나 욥은 말했습니다.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욥은 끝까지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습니다(2:10). 그때 하나님께서 욥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순금같이 나오게 하셨습니다(23:10). 정말 보석같은 믿음이잖습니까?

 

주님께서 우리도 순금처럼 연단해 주시기 위해서 때로 엄하게 훈련하십니다. 우리 안에 불순물을 제거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십니다. 비인격적인 대우도 받게 하십니다. 그때도 우리가 주여 옳소이다하며 훈련을 믿음으로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저도 언젠가 목자생활이 힘들 때, 한 선배 목자님이 그렇게 기도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산전수전 다 겪고 어떤 사람도 품을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그 기도가 참 위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실 산전수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만사형통, 일사천리, 승승장구. 이런 것만 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되면 사람이 쉽게 교만해져서 쓸모없게 됩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이 땅에 오셔서 산전수전 다 겪으시고, 만물의 찌끼같이 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2:9). “주여, 옳소이다이는 정말 수준 높은 믿음입니다. 어떤 상황도 받아들이고 긍정할 수 있는 차원 높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이런 깊은 믿음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둘째로, 여인은 예수님의 사랑을 굳게 신뢰하고 믿었습니다.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말하면서 돌아가 버리지 않았습니다. “주여, 옳소이다” “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개 발언을 들으면서 기가 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개가 어떻게 하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 개들이 상 위에서 주인과 함께 먹지는 않지만 주인이 던져주는 부스러기는 먹지 않는가?” 그래서 예수님께 부스러기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주여, 제게 부스러기라도 주세요여인의 말은 정말 지혜롭고 재치가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여인은 예수님의 사랑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신뢰했습니다. 그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예수님께 적극적으로 간구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면 신뢰하면 어떤 힘든 상황을 만나도 낙심치 않습니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녀가 부모님의 사랑을 확신하면 어떤 심한 말을 들어도 삐치지 않습니다. 잠시 문 닫고 자기 방에 들어갈지언정 금방 또 나와서 부모의 품에 안겨 애교를 부립니다. 우리도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8:35-37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사울도 얼마나 많은 아픔과 상처를 겪었습니까? 바울이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고, 살 소망이 끊어질 정도로 밑바닥까지 내려갔습니다(고후1:8). 그러나 그는 주님의 사랑을 끝까지 신뢰하고 붙들었습니다. 그때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조금만 힘든 일을 만나도 절망하게 만듭니다. 좀 심한 말을 들으면 상처받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대해서 쓴 뿌리를 품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면 모든 불신이 사라집니다. 모든 쓴뿌리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믿음의 뿌리가 더 깊어집니다.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더 굳게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여인은 부스러기 은혜를 구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 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여인은 끝까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상위에 음식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상아래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실제로 시골에서 밥 먹을 때 개들이 오면 주인은 저리가라고 내쫓습니다. 그래도 개들이 애처러운 눈빛을 하고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면 부스러기를 던져줍니다. 그러면 개들이 좋다고 그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사실 개에게는 그 부스러기로 충분합니다. 자기를 자녀취급하지 않았다고 투정부리는 개는 없습니다.

 

여인은 겸손이 부스러기 은혜를 구했습니다.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다급했기에 부스러기라도 감지덕지했습니다. 딸이 고침 받을 수만 있다면 부스러기라도 얻어먹고자 주님께 매어 달렸습니다. 딸을 향한 지극한 모성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예수님께 끝까지 매달리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미의 심정, 목자의 심정이 얼마나 중요한가? 배우게 됩니다. 우리도 이번 여름수양회를 준비하면서 어찌하든지 한 양을 살리고자 하는 간절한 목자의 심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이런 심정이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수모도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끝까지 포기치 않고 도전할 수 있습니다.

 

작년에 한성원 목동이 성적 때문에 재적 위기에 있을 때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의 아버지 카톡에 보니 온통 아들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런 아들이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저도 3년 동안 온 마음을 다해서 도운 양이 재적 당하게 되자 너무 짠하고 불쌍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며 도움을 구했습니다. 대학원 선배들, 교수님, 교직원, 교무처장까지 찾아가서 사정을 했습니다. 내 자녀 성적 문제 때문에는 교수님을 찾아가 본 적이 없지만, 양의 문제를 위해서는 사방팔방으로 뛰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제가 성원형제 아버지인 줄 알고 말했습니다. “아버님, 아드님 경우는 도저히 구제방안이 없습니다그 분들 표정이 도대체 아버지가 아들 성적관리를 어떻게 하셨나요?”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양을 구제할 수만 있다면 무슨 소리도 듣고, 무슨 댓가라도 지불하고자 했습니다. 결국 제적이 되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계속 양식소감과 주일 메시지를 보내 주었습니다. 부스러기 은혜라도 그에게 임하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그가 페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저 너무 힘들어요, 기도해 주세요기도해 달라는 말을 공개적인 SNS에 올린 것입니다. 그래서 전화해 보니 정말 힘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여름수양회에 초청했더니 대학생도 아닌데 받아주나요?” 했습니다. 당연히 받아준다고 했더니, 수양회 오겠다며 8만원을 송금하고 완전등록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번 수양회를 통해서 부스러기 은혜를 베풀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영적인 자녀로 생각한다면 모든 체면, 자존심을 내려놓고 끝까지 도울 수 있습니다. 어디라도 찾아가고, 언제까지라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상아래 개들도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주여, 저에게 부스러기 은혜를 주시옵소서” “신실한 양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어떤 양이라도 보내 주시옵소서그렇게 간구할 때 주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이처럼 예수님께 부스러기 은혜를 구했을 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29,3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예수님은 여인을 깊이 인정하셨습니다. 더 이상 운운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여인의 믿음을 크게 칭찬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예수님은 여인의 딸에게서 즉시 귀신을 내 쫓아 주셨습니다. 여인이 집에 돌아가 보니 딸이 나아서 평안하게 침상에 누워 있었습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여인은 단지 예수님께 부스러기 은혜를 구했지만 예수님은 여인에게 최고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마태복음 7:11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서 때로 우리를 훈련하시고 믿음을 연단하십니다.

 

예수님은 특히 여인이 한 말을 귀히 여기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여기서 우리는 믿음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 배우게 됩니다.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의 표현입니다. 민수기 14:28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우리가 말한대로 주님께서 시행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도 일부러 비판하고 매도했습니다.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3:22)”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런 능력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고향 사람들도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하며 무시했습니다(6:3). 예수님은 고향에서 많은 기적을 베푸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수로보니게 여인은 이방여인이지만 믿음의 말을 했기 때문에 크게 칭찬받고 주님의 큰 능력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인간적인 생각을 다 내려놓고, 겸손의 말, 믿음의 말을 하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2주전 전국 학사 수양회에서 대표소감을 발표한 성동센타에 손성필 목자님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삼성 SDI 온라인 사업팀에 채용이 되었습니다. 성실하게 일하여 고속승진을 해서 과장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야근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캠퍼스 양들을 도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좋은 직장을 나와서 학교 앞에서 창업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영업이 너무 힘들어 입안이 헐고, 신용불량자가 될 뻔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마태복음 6:33절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은행들을 찾아다니며 부스러기 은혜를 구하는 심정으로 대출을 부탁했습니다. 구청 앞에서 동역자와 함께 눈물로 합심기도를 했습니다. 그처럼 부스러기 은혜를 구했을 때 신기하게도 대출조건이 안되는데 대출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사업이 번창하게 하셨습니다. 그는 은혜에 감사해서 수익의 십일조가 아니라 매출의 십일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양이 없었지만 줄기차게 캠퍼스 전도를 나갔습니다. 그때 작년에 2명의 신실한 양을 얻어서 제자로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는 밥 잘 사 주는 착한 선배가 되어서 말씀공부 후에는 양들을 빕스, 아웃백, 세븐스테이크 등에 데려가서 잘 섬겨 주었습니다. 자신의 전공인 소프트웨어 지식을 살려 파이썬, C언어 등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 부스러기 은혜를 구하며 충성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사업과 제자양성역사를 크게 축복하신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낙동강 하류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공부나 운동도 뛰어나지 않았습니다. 목자생활도 오랫동안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겸손하게 부스러기 은혜를 구하자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인생 살아가면서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힘든 문제를 많이 만납니다. 거기다 주님마저 나를 외면하시는 것 같을 때 정말 마음이 힘듭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고 굳게 믿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연단하시는 것을 믿고 인내해야 하겠습니다. 갈라디아서 6: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했습니다. 특히 저희가 여름수양회를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인간적인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또 특새제를 합니까?” “요즘 양들은 방학에 다 해외로 가요” “꼭 이렇게 극성스럽게 초청역사를 섬겨야 합니까?” 등등.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대로 믿음의 말을 하고, 서로를 encouarge하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의 말을 하고 부스러기 은혜를 구해야 하겠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크게 축복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부스러기 은혜를 체험하는 여름수양회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