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5

                                                                에바다

말씀: 마가복음 7:31-8:26

요절: 마가복음 7: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베푸신 세 가지 기적이 나옵니다. 첫째, 귀 먹은 사람을 치료하십니다. 둘째, 72어로 4천명을 먹이십니다. 셋째, 맹인을 안수하여 치료하십니다. 그런데 저자 마가는 기적 사건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도우시는 내용을 더 자세하게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무지를 책망하십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제자들은 육신은 멀쩡하지만 영적으로 귀먹고 눈먼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을 보실 때 예수님은 너무 안타까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어떻게 도우시는가? 살펴보고 우리도 영적인 귀와 눈이 열리는 은혜를 체험하길 기도합니다.

 

. 귀 먹은 자를 고치신 예수님(7:31-37)

 

7:31절을 봅시다. 예수님께서 이방지역인 두로와 시돈을 지나 갈릴리 호수에 이르셨습니다. 이때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그에게 안수해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양 귀에 손가락을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병자들을 주로 말씀만으로 치료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이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원하신 것 같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에바다!” 이는 “Be opened” “열리라는 뜻입니다. “막힌 귀야! 열릴지어다이는 병든 자에 대한 예수님의 긍휼의 표현이요, 하나님께 대한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사람은 본래 양쪽 귀가 잘 들리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귀가 잘 들려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람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귀가 잘 들리지 않을 때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예수님은 그의 아픔을 아시고 양쪽 귀에 손을 넣고, 입에 침을 발라 고쳐 주셨습니다. “에바다!” “열리다

 

그러자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3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그의 막힌 귀가 열렸습니다. 맺힌 혀가 풀렸습니다. 말을 제대로 알아듣고, 분명하게 말을 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기뻤을까요? “, 들린다. 들려” “, 말이 제대로 나오네” “대한민국월드컵 축구 응원도 힘차게 했습니다. 이 일을 행하신 예수님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 이심이 분명합니다. 이사야 35:5,6절에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했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의 능력을 갖고 오신 구원자가 되십니다.

 

이번 여름수양회에서 이런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돕는 양들이 처음에는 영적인 귀가 열리지 않아서 말씀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입이 어눌해서 기도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 아무리 감동적인 말씀을 들어도 표정 변화가 없습니다. 아멘도 하지 않고 찬송도 잘 따라 부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들을 위해 탄식하며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에바다” “열리라” “구동한 에바다” “전건화 에바다우리가 한 달 동안 주야로 부르짖어 기도할 때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셔서 이들의 귀가 열리고 입이 열리는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김에스더 목자님은 처음 와서 요한복음 2,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예수님을 공부했습니다. 말씀공부가 끝난 후 일대일 목자님이 숨을 죽이며 물어 보았습니다. “말씀 공부 어땠어요?” 그러자 옛날이야기 듣는 것 같았어요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때 그 목자님의 심정이 짐작이 됩니다. 그러나 파트 목자님들과 오빠인 윤여호수아 목자님이 에베다” “윤수경 에바다. 열리라탄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때 어느 순간부터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말씀은 너무 막연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졸업 후 직장생활하면서 너무 힘들고 괴로울 때 버스 안에서 십자가 예수님의 환상을 보고 영적인 눈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비로소 인격적으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영적인 귀와 입이 열리자 누구보다 쾌활하게 웃는 자가 되었습니다. 말씀을 소화해서 소감을 쓰면 그 감동이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이는 영적인 세계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저희가 특새제를 시작하면서 이번 주 양들 20명 등록을 위해서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과연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목자님들이 새벽마다 양들의 이름을 부르며 에바다탄식하며 기도하자 어제까지 양들이 23명 등록하였습니다. 함프레어 사모님은 1학년 양이 시험 끝나고 친구들과 술 마시고 있는데 밤 9시에 심방 가서 1시간 설득 끝에 수양회 등록을 받았습니다. 김요나단 목자님 가정은 구동환 형제를 담양까지 데리고 가서 비싼 떡갈비를 사 주며 감동을 시켜 수양회 등록하도록 했습니다. 요즘 수양회 실무자 목자님들이 매일 모여서 프로그램을 논의하고 양들을 위해서 탄식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고 양들의 심령에 역사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탄식하며 기도할 때 예례미야 23:29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불방망이처럼 역사하여 바위처럼 완악한 양들의 마음을 부셔 뜨릴 것을 믿습니다.

 

. 사 천명을 먹이신 예수님(8:1-21)

 

8:1절을 보겠습니다.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9절을 보면 이들의 숫자가 4천명이나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있은 지 사흘이나 지났지만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그대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기진하여 쓰러질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멀리 이방 지역에서 온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 장면은 6장에 오병이어 사건과 비슷합니다. 이때 제자들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들은 오병이어 사건을 떠올리며 믿음을 가져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 전에 그들에게 있는 떡 몇 개라도 가지고 나와야 했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떡 몇 개가 있습니다. 축사해 주십시오그러면 예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축사하셔서 무리들을 먹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뭐라고 말합니까? 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제자들은 오병이어 사건 때와 거의 비슷하게 말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곳은 빈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6:35,36)” 그때나 지금이나 믿음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야 이놈들아, 오병이어 사건 때 뭘 배웠니?” 하며 책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5절을 봅시다.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물어 보셨습니다. 제자들이 일곱이로소이다대답하자, 예수님은 그것을 가지고 축사하셔서 무리들을 먹이셨습니다. 또 제자들이 들고 온 작은 생선 두어 마리도 축사하사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때 4천 명이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이 일곱 광주리나 되었습니다.

 

, 오병이어 사건과 거의 비슷한데 예수님께서 똑같은 과정을 통해 기적을 베푸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반복교육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가르쳐 주기 원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동안 수없이 많은 기적들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상황에 부딪히면 또 다시 백지상태가 되었습니다. 누구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닫는다고 하는데 제자들은 열을 가르쳐도 하나 밖에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실망치 않으시고 다시 반복해서 가르치셨습니다.

 

교육학에서 반복이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상담교사이신 나베드로 목자님 말에 의하면 “5권의 책들을 읽는 것 보다 1권의 책을 5번 읽은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반복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여름수양회에서 십자가 말씀을 수도 없이 들었기 때문에 다 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돌아온 탕자, 정죄치 않으신 예수님, 주는 그리스도 말씀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기 때문에 또 들어도 항상 새롭습니다. 찬송가 205장을 보면 나 항상 듣던 말씀. 나 항상 듣던 말씀.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들려주시오했습니다. “또 들려주시오사람의 말은 아무리 좋은 말도 몇 번 들으면 싫증납니다. 아무리 인기 있는 노래도 세 번 들으면 지겹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말씀은 듣고 또 듣고, 또 들어도 항상 새롭고 감동이 있습니다. 올해 2018년 여름수양회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감동이 있을 것입니다. 말씀강사들이 본문을 암송하고 힘써 소감을 쓰며 준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십자가 메시지를 맡은 유수웅 목자님은 이름까지 유다니엘로 바꾸고 투쟁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기도에 나와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위해서 미리 소감거리도 준비해 주셨습니다. 학생회는 이번 주부터 난타 공연을 준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진심을 크게 축복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11절을 봅시다.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방금 전에도 예수님께서 칠병이어로 4천명을 먹이는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전에도 수많은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또 기적을 베풀라고 합니까? 이는 예수님을 믿고자 함이 아니라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고자 함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시험에 말려들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 바다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여기서 누룩은 악한 영향력을 의미합니다. 누룩은 작지만 그것이 들어가면 금방 퍼져서 전체를 부풀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5:6에 보면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했습니다. 악한 영향력은 금방 퍼져서 전체를 병들이고 맙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은 위선과 외식입니다. 헤롯의 누룩은 음란과 권모술수입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지도자이지만 내면이 썩고 부패했습니다. 이들의 악한 영향력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처음 예수님을 따랐을 때는 순수했습니다. 사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5천명, 4천명의 무리들이 따라오자 어느덧 겉멋이 들기 쉬웠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치적이 될 수 있습니다. 명예욕, 자기 과시욕, 탐심의 누룩이 들어와서 부패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경계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안에 물질주의, 쾌락주의, 인본주의의 세상 누룩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누룩이 점점 퍼져서 걷잡을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혼탁하기는 쉬워도 다시 순수케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경고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우리가 세속적인 가치관을 멀리하고 영적인 가치관으로 힘써 무장해야만 하겠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잘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룩하시자 제자들은 --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16절에 보면 제자들은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 떡을 놓고 왔네. 예수님이 시장하신가 봐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이 너무 답답하셨습니다. 이에 뭐라고 하십니까? 17,1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 , 귀를 언급하시며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너희 마음이 둔하냐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기억하지 못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제자들이 그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녔으면 이 정도는 깨달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깨닫지 못하자 예수님께서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성경공부를 시작한지 꽤 되었는데도 깨닫지를 못하고 엉뚱한 소리만 하면 얼마나 답답합니까? 왜 이렇게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까?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꽉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4:4절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신, 즉 사탄이 마음을 혼미케 해서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마태복음 24:38,39절에 보면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지으면서 사람들에게 의를 전파했습니다(벧후2:5). 그러나 사람들은 탐욕에 사로잡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홍수가 나서 물에 빠져 죽어가면서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죄의 탁류에 빠져 살면서도 죄가 죄인지 모릅니다. 왜 복음을 믿어야 하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이것은 지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IQ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의 문제요, 영의 문제입니다.

 

사도바울도 교만과 편견에 사로잡혀 복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순교의 피를 흘려가며 복음을 전했지만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스데반이 창세기의 아브라함부터 모세, 다윗, 그리고 예수님에 이르기까지 명쾌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자 스데반이 말했습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7:51)” 목이 곧다는 것은 교만하다는 것입니다.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은 회개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만하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던 바울이 어떻게 복음을 깨닫게 됩니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홀연히 큰 빛으로 임하십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님께서 강력하게 임하시자 완악한 그의 마음이 깨어지게 됩니다. 눈의 비늘이 벗겨지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됩니다. 자신이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지, 예수님이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되심을 깨닫게 됩니다(2:3).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깨닫고, 자기가 자랑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3:8). 이는 영적인 혁명이요, 거듭남의 비밀입니다.

 

우리는 죠지 뮬러 하면 5만번의 기도의 응답을 받은 사람, 대부분 그렇게만 알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신실했겠지. 그러나 사실 그는 청소년 시절에 심히 방탕했습니다. 14살 때 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그 날도 술과 도박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돈도 없이 비싼 호텔에 가서 머물다 도망치곤 했습니다. 경찰에 체포되어 16살 때 절도범, 살인범들과 함께 감옥에 갔습니다. 그런 그가 한 성도의 초청을 받고 우연히 교회 모임에 참석했는데 하나님 말씀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요한복음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말씀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방탕한 삶을 청산하고 거듭나서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93세에 소천하기까지 성경을 200독하고, 수천만 권의 성경을 보급하고, 15만명의 고아들을 돕는 성자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영적으로 깨닫게 되면 이처럼 상상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19,2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 둘이니이다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예수님은 제자들이 무지하고 교만하다고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병이어 사건과 칠병이어 사건을 상기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마음이 무디어졌을 때 소감을 쓰며 자신을 되돌아봅니다. 과거에 내가 얼마나 비참한 죄인이었는가? 형편없는 자였는가? 그런데 주님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는가? 돌아보면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게 됩니다. 무덤덤하던 심령에 감사와 찬송이 터져 나옵니다. 그때 말씀이 새롭게 들리고 깨달아집니다.

 

21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또다시 물으셨습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제자들은 정말 답답한 양들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큰 위로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바로 옆에서 보고 삼 년 동안 같이 있어도 잘 깨닫지 못한 것을 볼 때 누구나 소망이 있습니다. 또 예수님은 무지한 제자들을 끝까지 포기치 않고 도우시는 예수님의 인내를 통해 은혜를 받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다 도망갔을 때도 다시 찾아가셔서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음식을 먹여 주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보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24:31,32). 후에 그들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하는 위대한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제자들을 오랫동안 인내하며 도우셨다면 우리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끝까지 포기치 말고 소망 가운데 도와야 하겠습니다.

 

. 맹인을 치료하신 예수님(22-26)

 

22-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한 맹인을 치료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를 한꺼번에 치료하시지 않습니다. 단계적으로 치료하십니다. 침을 뱉어 안수하시자 처음에 나무 같은 것이 걸어가는 것처럼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예수님이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자 모든 것을 밝히 보았습니다. 영적인 세계가 한꺼번에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씩 조금씩 단계적으로 열립니다. 저도 목자생활을 수 십 년 했지만 아직도 영적인 세계를 잘 알지 못합니다. 매일 매일 조금씩 배워갈 뿐입니다.

 

고린도전서 13:12절에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 했습니다. 1세기 당시에는 거울이 청동이라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이 땅에서는 부분적으로만 주님을 알 뿐입니다. 그러나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는 선명하게 볼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기치 말고 인내하며 배워가야 합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유명한 토익강사 김대균 선생이 몇 년 전에 우리 센타에 와서 강연한 적이 있습니다. 토익에서 리스닝이 가장 어렵다고 했습니다. 영어가 잘 안 들립니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들으면 어느 순간에 뚫리면서 몇 퍼센트가 더 들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꾸준히 들으면 몇 개월이 지난 후 또 소리가 나면서 리스닝이 업그레이드 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몇 번 하게 되면 영어가 들리고 영어로 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너무나 심오하기 때문에 한 순간에 다 들을 수 없습니다. 한꺼번에 다 깨달을 수 없습니다. 꾸준히 인내심을 가지고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기를 반복할 때 점점 깨닫게 됩니다.

 

2018년 마가복음 공부를 통해서, 2018년 여름수양회를 통해서 우리가 영적인 세계를 깨닫는데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하는 양들을 위해서 에바다 탄식하며 기도합시다. 그때 그들의 마음이 열리고 영적인 귀와 눈이 열리는 은혜가 임할 줄 믿습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시편 119:18절 말씀처럼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해 주시도록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마음의 눈을 밝히사 주님을 알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1: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