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9(손 다니엘)

섬기러 오신 예수님

말씀 / 마가복음 10:32-45

요절 / 마가복음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오늘 말씀은 섬김을 통한 대속의 은혜에 대해 가르쳐 주십니다. 복음역사에 있어서 섬김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지난 여름수양회는 전무후무한 은혜로운 수양회였습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까지는 모든 목자님들이 각 분야에서 말없이 섬겨 주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실무자 목자님들은 한 달 전부터 매일 모여 합심기도하며 창조적인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음료수와 간식도 매우 혁신적이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양들도 감동을 받고 한 사람도 중간에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어떤 목자님은 섬김에 은혜 받았다며 내년에도 같은 실무자들이 한 번 더 섬기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기쁘기도 하지만 왠지 부담스럽습니다. 이는 섬김에 희생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만큼 섬겼으면 됐지 뭘 더 섬겨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시간 섬기러 오신 예수님의 은혜를 묵상하며 섬김이 얼마나 큰 은혜요 축복인가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 반복해서 가르치시는 예수님 (10:32-34)

 

3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이었습니다. 이 길은 어떤 길입니까? ‘예루살렘 맛집순례길이라면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마음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길은 고난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입니다.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험한 길입니다. 이런 끔찍한 길은 할 수 있는대로 피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당하게 이 길을 가셨습니다. 제자들은 평소와 달리 예수님의 비장한 모습을 보고 놀라며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33, 34절을 보십시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예수님은 이미 두 번이나 자신이 당할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8:31, 9:31).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듣고 싶지 않고 생각하기도 싫었습니다. 제자들은 고난 없는 영광만 누리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인내하시며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이전보다 더 자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자신이 죽임을 당할 장소가 예루살렘이요, 종교지도자들에게 넘겨져 능욕받고, 침 뱉음을 당하며, 채찍질당하고, 죽임 당할 것을 리얼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후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 반복해서 말씀하십니까?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은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진리이기 때문에 반복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를 알고 후에 실족하지 않도록 분명하게 도우셨습니다.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고난과 십자가를 부담스러워 합니다. 가능하면 십자가를 회피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십자가 없는 신앙생활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고난이 따르더라도 자기를 부인하고, 적극적으로 십자가를 지며 예수님을 따를 때 기쁨이 있고 열매가 있습니다.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지름길입니다. 우리가 이를 마음에 새기고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당당히 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또 양들에게도 십자가를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요즈음은 가정마다 아이들을 하나나 둘만 낳아 키우다 보니 어렵고 힘든 일은 시키지 않습니다. 이전에는 대입시에 체력장이 있어 팔굽혀펴기와 철봉 매달리기, 오래 달리기 등을 해야 체력점수를 받고 대학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힘든 과목이 없습니다. 직장에 들어갈 때도 처음부터 고생하지 않을 곳만 찾습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우리도 할 수만 있으면 십자가를 회피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야말로 죄의 유혹을 이기고 승리하는 지름길입니다. 나를 살리고, 양들을 살리는 진리임을 믿습니다. 우리가 반복해서 이 진리를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까지 섬기신 예수님(35-45)

 

세 번의 가르침에도 제자들은 복음진리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세상적인 영광에 있었습니다. 그 중에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나와 당당하게 요구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야심을 꿰뚫어보시고, 무엇을 하여 주길 원하는지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거침없이 대답했습니다.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 어머니와 주님의 어머니가 친척이지 않습니까? 주여,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은 어머님을 모시고 와서 갈릴리 학부모 치마 바람까지 이용해 예수님을 압박했습니다.

 

이들이 이 시점에서 왜 이런 요구를 했을까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19:11). 그들은 예수님이 로마세력을 축출하고, 왕으로 등극하여 지상 메시아 왕국을 건설하시면, 좌우편에 앉아 권세와 영광을 누리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생활을 했으니, 그 정도는 보상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10:28).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38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그들은 영적으로 무지하여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마시는 잔과 받으실 세례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에게 그러한 무서운 고난과 죽음의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높은 자리에 앉을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하겠다고 장담했습니다. “주님! 뭐든 다 할 테니, 제발 그 자리에 앉게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은 야심에 가득찬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39b, 40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예수님은 그들이 장차 예수님이 마시는 잔과 세례를 받을지라도 자리는 예수님이 어떻게 해 주실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소관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자기들이 바라는대로 되었습니다. 야고보는 헤롯의 칼에 맞아 12제자 중에서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12:2), 죽음의 쓴 잔을 가장 먼저 마신 것입니다. 요한은 도미시안 황제 때 밧모섬으로 귀향 가서 100세가 넘어 죽을 때까지 가장 오랫동안 고난당하며 복음역사를 섬겼습니다. 제자들은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의 보좌에 앉아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는 권세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22:30). 그러나 그 영광의 자리는 세상영광의 자리가 아닙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의 자리입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10명의 제자들은 야고보와 요한의 행동에 분개했습니다. “치사한 놈들! 청탁을 하여 선수를 치다니!” 그들은 김영란법을 위반한 행위라며 고발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볼 때 제자들 모두가 동일한 야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라고 해도 세상적인 가치관이 변화되지 않으면 서로 으르렁거리고 다툴 수 밖에 없습니다.

 

4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세상적인 지도자상을 꿈꾸고 있음을 지적하십니다. 세상의 집권자들은 자기 맘대로 권세를 부리고 다른 사람을 지배합니다. 시저나 스탈린, 모택동, 히틀러, 폴포트 등 독재자들은 수 많은 사람들을 임의로 죽이고 권력을 남용했습니다. 북한의 김정은은 자기가 연설할 때 졸거나 하품을 한다고 숙청하거나 죽였습니다. 김정은이 말을 할 때 무릎 꿇고 열심히 받아 적어야 합니다. 자기 기분에 거슬리면 파리 목숨처럼 죽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요즘 만연한 갑질문화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발표(2018.2.)에 의하면, 직장인의 70% 이상이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악습은 철폐되어야 하는데, 내가 당했으니 너도 당해보라며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진그룹 일가의 갑질이 최근까지도 뉴스를 뜨겁게 달구고 있지 않습니까? 마음에 안 들면 폭언과 폭행을 서슴치 않습니다. 지위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고, 약자들 위에 군림합니다. 세상에서는 이렇게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이 큰 자요,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높아지고자 애를 씁니다. 서러우면 성공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의 집권자들과 달라야 합니다. 43, 44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세상에서는 섬김 받는 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크고, 으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 사람이 어떤 신분의 소유자이고, 무엇을 얼마만큼 소유했는가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그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낮아지고, 얼마만큼 많이 섬기는 자인가를 보고 평가하십니다. 높은 자리에 앉아 남을 지시하고, 섬김만 받는 사람의 내면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입니다. 밴댕이 속처럼 좁고 교만합니다. 반면에 낮아져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의 내면은 바다와 같이 깊고 넓습니다.

 

전남 고흥의 작은 섬, 소록도에서 가장 소외된 이들을 위해 한 평생 사랑과 봉사를 실천한 오스트리아의 간호사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각각 1962년과 1966년에 한센인 구호단체인 다미안 재단을 통해 파견 간호사로 처음 소록도 땅을 밟아 청춘을 바쳐 구호활동에 매진하였습니다. 이후 공식적인 파견기간이 끝난 뒤에도 자원봉사자로 남아,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 동안 조건 없는 사랑으로 한센병 환자들과 그 자녀들을 보살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0511, 건강이 악화된 두 사람은 결국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20대 후반에 처음 섬을 찾았던 이들은 어느덧 70대를 넘긴 노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10년이 지난 2015년 한 통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자신들은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두 사람 스스로 자신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드러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일생을 바쳐 봉사의 삶을 살아온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끝까지 그저 그 인생이 무척이나 행복했다며 끝까지 자신을 낮췄습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앉지는 않았지만 낮아져 섬기는 삶은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위대한 삶입니다. 우리 목자님들의 양들을 위해 쏟는 헌신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위대한 삶입니다.

 

섬김 받고 인정받고자 하면 자신도 모르게 권위를 부리고, 독선적이 되어 다른 사람을 힘들게 만듭니다. 지배하고 군림하는 자는 자기 혼자만 기쁘고, 소통이 안 돼 일방적으로 지시만 하여 많은 사람을 괴롭게 만듭니다. 그러나 낮아져 섬길 때, 자신은 물론이요 남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합니다. 내가 겸손하게 종의 자세로 섬기면 교회 구성원이 은혜를 받고, 사랑과 평화가 넘치게 됩니다. 가정에서도 부부나 자녀 사이에서 가장으로 섬김 받으려고 하면 충돌하게 되고 불화가 생깁니다. 직장에서도 상사로서 아랫사람들의 섬김만 받으려고 하면 앞에서는 예스하지만 뒷담화의 주인공이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어떤 장소, 어떤 위치에 있든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낮아져 섬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고 살펴서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줘야 합니다. 복음역사에 있어서 최고의 자리는 섬김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무익한 종의 자세로 자신을 비우고 낮아져 섬기는 자리입니다.

 

45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섬김의 좋은 본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원래 그 본체가 하나님이십니다(2:6). 만물의 창조주시요 생명의 근원이십니다(1:1~4). 거룩하시고 전능하시고 영광스런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피조물로부터 섬김을 받으셔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2:7).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되 말구유에서 나시고, 가장 낮은 자리에 비천한 목수의 신분으로까지 낮아지셨습니다. 도리어 섬기려 하고예수님은 섬김 받을 수 있는 권리와 특권을 내려놓고, 섬기기로 결단하셨습니다. 중풍병자, 니고데모, 사마리아 여인, 귀신들린 자 등 각종 죄인들을 섬기셨습니다. 허물많은 베드로와 12제자들을 끝까지 섬기셨습니다. 자신을 판 가룟 유다까지 더러운 발을 씻어 주시고 섬겨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물고기 잡으러 떠났지만 갈릴리 해변까지 찾아가셔서 비치파티를 열어주시고 끝까지 사랑으로 섬겨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섬기시되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어 주시기까지 섬겨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자신을 배반하고 못 박은 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23:34).”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도 낙원으로 인도하셨습니다(23:43). 슬픔 가운데 있는 어머니 마리아도 섬기셨습니다(19:27). 예수님은 죄많은 우리 인생들을 섬기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내려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권리도, 최소한의 자존심도, 심지어는 생명까지 내려 놓으셨습니다. 다른 것은 당 양보해도 생명은 양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십자가 제단에 기꺼이 바치셨습니다. 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섬김의 극치입니다.

 

우리는 가끔 자신이 평생을 모은 물질을 기부금으로 내어놓는 분들을 통해서 큰 감동을 받습니다. 또 일면식도 없는 분을 위해 장기의 일부를 기증하는 분들을 보고 놀라고 존경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섬김은 이런 분들의 섬김이나 희생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예수님의 섬김은 모든 것을, 심지어 생명까지 죄인들을 위해 내어주시는 전폭적인 섬김이요, 일방적인 섬김입니다. 이 예수님의 희생과 섬김 때문에 우리가 구원 받고 새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또 이 예수님의 섬김의 본을 따라 사는 분들을 통해서 지금도 생명구원역사가 꾸준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철저히 물질적이고 이해타산적입니다. 운전하다보면 단 몇 초도 사람들이 양보하기를 싫어합니다. 새치기를 했다고 칼을 휘둘러 죽이기도 합니다. 같은 피를 나눈 형제간에도 더 많은 재산을 차지하고자 소송을 하고 원수처럼 싸우기도 합니다. 교회에서도 사소한 일로 인해 감정이 상해서 서로 상처받고 힘들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부사이에서도 자존심 싸움을 하며 갈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도리어 죄인들을 섬기신 예수님, 자기 목숨까지 대속물로 내어 주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우리도 낮아져 섬길 수 있습니다. 자존심이 상해도 참을 수 있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동역자, 양들을 끝까지 참고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줄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은 속이 쓰리고 뒤집어지는 고통이 따릅니다. 그러나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묵상할 때 이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날까지 나를 섬겨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어떤 사람도 참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섬김의 과정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후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의 열매, 온유의 열매, 생명의 열매를 맺습니다. 어떤 이기적인 사람도 감동을 받습니다. 한 혈기하던 사람들이 변화되어서 양들을 섬기는 목자들로 변화됩니다. 미움은 미움을 낳습니다. 갑질은 갑질을 낳습니다. 그러나 섬김은 또 다른 섬김을 낳습니다. 희생은 아름다운 생명의 열매를 맺습니다. 섬김의 과정은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섬김을 통해서 열매를 맺을 때 그 감격은 섬겨본 사람만이 압니다. 이번에 여름 수양회때 가장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은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맛있는 간식만 받아먹은 분들이 아닙니다. 밤새워 메시지를 쓰고 눈물로 소감 투쟁을 한 분들입니다. 한 달 동안 수양회를 기획하고 양들을 심방 다니고 땡볕에서 각종 이벤트들을 섬긴 분들입니다. 그래서 복음성가 가사에 보면 당신의 그 섬김이 하늘에서 해같이 빛나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섬김은 장차 하늘에서 해같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아니 이 땅에서도 섬김을 통한 하늘의 기쁨과 상급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젊은 날의 시간과 물질을 드려 캠퍼스 양들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 희생하고 섬기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영광스러운 보석과도 같습니다. 저희가 예수님의 섬김을 배워서 작은 섬김이라도 실천함으로 예수님을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섬김이 주는 영적 기쁨과 영적 유익을 체험하길 기도합니다.

 

저는 전국학사목자수양회에서 섬기러 오신 예수님 메시지를 전하신 김반석 목자님을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 분은 고등학교 선생님이지만 동덕여대와 경희대 약대 양들을 헌신적으로 섬기셨습니다. 새벽마다 동역자들을 깨워 함께 새벽기도를 감당하므로 영적인 지도자를 양성하였습니다. 그 파트에서 1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습니다. 또 힘든 2세들을 섬기는 직분을 맡았는데 마음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공부 시간에 늦게 오고, 문제도 안 풀어오는 어린 2세들을 끝까지 기다려 주었습니다. 꼭 소감을 쓰도록 씨름해 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연약한 2세들이 든든히 서가는 감격을 체험했다고 했습니다.

 

저도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내어 주시기까지 섬기신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교만과 무정, 무자비, 음란과 정욕의 죄로 인한 상처가 치료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세례 받고 회개해도 죄의 세력에 반복해서 넘어지는 자신으로 인해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이 없이 살았습니다. 대학에 들어와 같은 과 친구의 초청으로 UBF에 나와 곽아브라함 목자님과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86년 해남마산동초등학교 여름수양회에서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 때문에 제가 죄 사함 받았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비록 반복하여 죄에 넘어질 지라도 다시 더러워진 발을 내밀 때 예수님께서 닦아주시고 깨끗케 하시는 죄 사함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였습니다. 주님의 은혜 안에서 저는 점점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변화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말씀의 은혜도 있었지만 선배목자님들의 섬김이 풍성했기 때문입니다. 80년대 대학 캠퍼스는 최루탄과 돌들이 날아다니는 싸움터였습니다. 이때 학사 목자님들은 센터 근처에 살면서 수시로 가정을 오픈하여 풍성한 식사로 양들을 섬겨주셨습니다. 저도 여러 시니어 목자님들 집을 순회하며 섬김을 받았습니다. 사랑과 섬김이 충만한 UBF 모임은 세상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은혜와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여기에 은혜를 받은 저는 다니던 의대 동아리를 결단하고 목자가 되어 캠퍼스 점심모임과 요회 모임을 힘써 섬겼습니다. 저도 양들을 돕는다고 했지만 전공 성적은 겨우 유급을 면할 정도였습니다. 저는 두려움이 몰려올 때마다 기도실에 들어가서 나의 갈길 다가도록 주님 인도하시니찬송가 434장을 불렀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저는 낮은 전공 성적으로 인해 두려움과 실패의식 때문에 사명을 떠나 세상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곽아브라함 목자님은 소망 없다며 포기치 않으시고 맛있는 식사로 섬겨 주시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바쁜 의대 공부 가운데서도 매주 시간을 내어 말씀공부로 섬겨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영접할 수 있었고 졸업 후에도 어린 양을 먹이는 목자로 살기로 결단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결단을 축복해 주시고 당시 풀타임 목자인 마리아 목자님과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주시고 의대 개척의 동역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공보의 생활 중에 버스로 곡성까지 출퇴근 하면서도 센타 근처에 상하방을 얻어 가정을 오픈하여 양들을 섬겼습니다. 그때 의치대 양들이 몰려와서 말씀을 공부하고 변화되는 모습을 볼 때 마음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양들을 섬기는 목자의 삶은 쉽지 않았습니다. 양들에게 여러번 거절당하고 무시당하는 아픔을 참고 견뎌야했습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는 양을 기다리며 쪽지를 남겨두고 와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마리아 동역자는 여러 양들을 섬기기 위해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낮밤없이 심방을 다녔습니다. 이러한 동역자의 섬김과 희생에 감동을 받고 저도 힘든 양들을 돕게 되었습니다. 그 열매로 신스데바나(민선), 유다니엘(수웅), 송엘리사(철수), 김요엘 목자님들을 제자로 세우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저는 지난 6년 동안 김요엘 형제 한 사람을 도와 목자로 세우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내하고 섬겼을 때 그가 졸업 후에도 이 지역에 남아 목자로 살고자 결단하게 하셨습니다. 요엘 목자는 일대일을 전날 하고도 주일예배에 늦거나 오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속상하여 심한 말로 책망할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아침에야 겨우 잠드는 그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섬기고자 했습니다. 그때 조금씩 신실해졌습니다. 최근 주 중에 제게 먼저 전화를 해서 일대일을 하자고 했습니다. 이를 통해 인내와 섬김이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저는 지난 여름수양회에서 주니어 학자님들의 소감을 듣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바쁘고 스트레스가 많은 직장일과 육아와 건강 문제로 고민하는 목자님들을 평소 관심을 갖고 도와주지 못한 것을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자기 일에 바빠 소중한 후배들을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년초에 기도제목으로 중보기도를 해야겠다고 결단했습니다. 그래서 금요기도회에 빠지지 않고자 계획했지만 지금까지 절대성을 가지고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를 회개하고 동역자들을 위해 기도와 사랑으로 섬겨야겠습니다. 절대적으로 금요기도회에 참석해야 하겠습니다. 저는 또 졸업한지 30년이 되어, 아들보다 더 어린 의대 양들을 섬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의대개척 파트장으로서 내가 앞장서서 섬기지 않으면 의대역사를 이룰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본받아 어린 학생양들을 섬기고 일대일로 돕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섬김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섬김을 기억하고, 자발적이고 낮아져서 양들과 동역자들을 섬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 모임이 섬김과 사랑이 충만하여 풍성한 생명 구원역사가 일어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