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마가복음 20(이다윗)

 

하나님을 믿으라

 

말씀 / 마가복음 11:1-25

요절 / 마가복음 11: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영적인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새끼 나귀를 타고 평화와 겸손의 왕으로 입성하십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 며칠 후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합니다. 죽음을 앞에 둔 부모는 가장 귀한 것을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줍니다. 십자가 죽음을 앞에 둔 예수님께서도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는 유산과 같은 귀한 말씀을 주십니다. 이 말씀으로 험한 세상을 이기며 승리하는 인생을 살도록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라예수님의 유산과 같은 귀한 말씀을 붙들고 승리하는 믿음의 인생을 살길 기도 합니다

 

. 왕으로 입성하신 예수님(1-14)

 

예수께서 예루살렘 근처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 제자 둘을 부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맞은 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만일 누가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제자들이 잘못하면 절도범 신세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 것을 푸니말씀에 순종해서 갔습니다. 그런데 나귀가 들판도 아닌 문 앞에 메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집 문 앞에 있는 나귀를 풀어 오려고 할 때 얼마나 심장이 벌렁벌렁했겠습니까?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광주 작은댁에 와서 새콤달콤한 야쿠르트를 처음 먹어보았습니다. 사카리 탄 물만 먹던 저에게 이 맛은 정말 황홀한 맛이었습니다. 다음날 슈퍼에 심부름 갔다가 주인 몰래 야쿠르트 하나를 들고 옷 속에 넣으려는데 심장이 벌렁벌렁했습니다. 들켰습니다. 할머니가 제 대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습니다. 아마 제자들의 마음도 비슷했을 것입니다.

 

엎드려 나귀 줄을 풀고 있는데 주인이 다가와서 말합니다.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하려느냐저 같았으면 아니 백주 대낮에 사지 멀쩡한 젊은 것들이 할 짓이 없어 도둑질을 하나며작대기로 내리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주인은 무골호인 같이 너무나 마음씨가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움직여 놓으신 것 같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은 나귀 주인에게 예수님께서 이르신 대로 주가 쓰시겠다말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순순히 나귀를 내어 주었습니다. 몇 년 전 시카고 안요셉 선교사님께서 저희 교회에 와서 소감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대학시절 서울대 법대 후배인 지금의 관악 5부 센터 스텝 목자이신 정 아브라함 목자님을 여름수양회에 초청하기 위해서 무등산 수박 마을을 수소문하여 찾아갔습니다. 정 아브라함 목자님의 아버님이 나왔습니다. 양 심방 갔는데 부모님이 먼저 나오면 마음이 오그라듭니다. 아버님은 먼 이곳 까지 무슨 일로 왔느냐 물었습니다. 안요셉 선교사님은 주가 쓰시겠다는 말씀에 의지해서 여름수양회 초청하러 왔습니다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수양회 비를 챙겨주며 정 아브라함 목자를 보내주었다고 하였습니다. 만유의 주되신 예수님께서 쓰시겠다 할 때 이처럼 순순히 내어 주는 역사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만물의 주인이 되십니다. “주가 쓰시겠다이는 세상 만물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세상 만물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지금까지는 주권을 행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종의 형체를 띠고 오셔서 종처럼 우리를 섬겨 주셨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주권행사를 하시고자 하십니다. 그렇다고 강포한 세상 왕처럼 강탈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4:12-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 잡고 있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보시고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하시며 부르셨습니다. 평생 물고기에 울고 웃는 인생을 살 이들을 주권적으로 부르시고 인류가 흠모하는 위대한 嶺賊 지도자로 사용하셨습니다. 만유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나귀새끼도 주권적으로 부르시고 사용하시고자 하십니다. 본문의 나귀보다 더 영광스럽고 유명하게 쓰임 받은 짐승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쓰임 받으면 이처럼 위대한 인생을 삽니다. 유명한 인생을 삽니다. 디모데전서 1:12-14에서 사도 바울은 주님께 쓰임 받은 자의 은혜와 축복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고 박해하다 심판받아 비참하게 죽을 자를 이방인의 사도로 쓰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 찬양하는 것입니다. 삼하 7:18에서 다윗도 하나님께 쓰임 받은 자의 축복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다내가 무엇이관대 말째 아들로 태어나 평생 양 똥만 치고 살다 죽을 자를 환난당한 자들의 목자요, 이스라엘의 주권자요, 메시야의 혈통을 잇는 자로 쓰셨나이까 감사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며칠 전 우간다 강 리빙스턴 선교사님께로부터 기계치인 내과 의사를 방사선 촬영까지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소식이 카톡을 통해서 왔습니다. 본국에서 내과 의사가 방사선 촬영까지 한다면 방사선 기사도 고용하지 못할 정도로 병원이 어려운가 생각할 것입니다. 숨겨야 될 소식입니다. 그런데 카톡으로 전 세계에 방사선 촬영까지 하고 있음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으면 모든 것이 자랑거리요.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을 때 우리도 다윗처럼 내가 무엇이관대 나 같은 자를 양들을 섬기는 목자요, 수양회 실무자요, 율동강사로 쓰임 받게 하시나이까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죄와 사망의 열매만 맺다 죽어가는 비참한 저희를 주의 역사에 귀하게 쓰신 것에 감사 찬송을 드립니다.

 

7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나귀 새끼를 예수님께 끌고 와서 그 위에 겉옷을 깔고 예수님을 태웠습니다. 스가랴 9:9에 보면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 딸들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셔서 나귀를 타시니 나귀의 작은 것 나귀 새끼니라세계 최빈국의 김정은도 무시무시한 경호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최고급 벤츠 리무진을 타고 다닙니다. 만유의 주요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은 수천 명의 호위를 받으며 황금마차를 타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만왕의 왕 예수님께서 볼품없는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발을 질질 끌며 타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겸손과 평화의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천박한 저희들이 겸손과 평화의 왕 예수님께 부담 없이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광주경찰청 높은 직급에 있는 박마가 목자님이 나명준 형제님과 일대일 할 때 나명준 왜 전화해도 안 받나, 죄 짓고 사나, 다 털어나, 말 안하면 거짓말 탐지기 댄다하며 피의자 심문하듯 대한다면 일대일하러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음료수까지 준비하여 명준 형제님. 요즘 바쁘죠, 힘들죠, 괜히 기사시험 준비하는데 전화해서 미안해하며 피의자처럼 겸손하게 낮아져 섬기기 때문에 기쁨으로 일대일 성경공부를 하며 은혜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겸손과 평화의 왕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겸손과 평화로 양을 섬길 수 있습니다. 이 시간 겸손과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찬양 합니다.

 

. 성전을 깨끗케 하신 예수님(15-19)

 

1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니라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화려한 헤롯 궁으로 먼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성전으로 먼저 들어가셨습니다. 영적인 왕 예수님은 성전에 거하기 원하십니다. 성전에 관심이 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1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예수님은 성전을 청소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이나 소를 성전에서 내쫓으셨습니다. 상과 의자를 뒤집어 엎으셨습니다. 겸손과 평화의 왕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과격해 지신 것입니까?

 

17절을 보십시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예수님께서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말씀하십니다. 성전은 기도와 말씀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찬양이 가득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성전에 장사꾼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강도의 소굴이 되어 버렸습니다. 본래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집에서 기른 흠 없는 짐승이었습니다. 그러나 먼 곳까지 제사하러 오는 순례 객을 위해서 성전 앞에서 제물로 드릴 짐승을 파는 것이 허용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도가 돈 버는 시장으로 변질되었습니다. 빼앗고 싸우는 강도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 나서서 변질된 성전을 회복코자 하지 않았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장사치들과 결탁하여 뇌물을 받는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몫 좋은 좌판 하나 분양받는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장사치로 가득한 성전을 보고 분노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2:17에는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말씀합니다. 최고의 도자기를 만들고자 열심 있는 장인은 도자기에 조그만 한 흠만 있어도 들어서 깨트립니다. 거룩한 성전, 말씀과 기도가 가득한 성전을 만들고자 하는 예수님의 열심이 장사치로 가득한 성전을 그냥 보실 수 없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들어서 엎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리마시옵소서십자가를 지지 못하도록 간청하는 베드로를 사탄아 물러가라 하며 그의 인간적인 생각을 뒤집어엎어 버렸습니다.

 

고린도전서 6:19,20절에 보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몸은 성령이 거하는 성전입니다. 말씀과 기도가 가득해야 합니다. 거룩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성전이 물질과 쾌락으로 더러워 질 때 예수님은 분노하십니다. 들어 엎어 버립니다. 여름 수양회 때 예수님은 스마트폰을 통해서 야금야금 침투한 웹툰, 정욕, 쇼핑 등으로 장사치가 된 우리의 성전을 들어 엎으셨습니다. 우리는 성전이 술과 정욕으로 채워지고, 스마트폰을 통해서 오는 세상 것으로 채워지는 것을 보면서 도 어찌하지 못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들어오시면 들어 엎어버렸습니다. 말씀이 들어오자 회개하게 된 것입니다. 확 뒤집어엎고 청소하고 나면 얼마나 시원합니까? 제가 며칠 전 에어컨 실외기 장소에 몇 년 동안 비둘기 들이 싸 놓은 똥을 전문 청소업체를 들여 깨끗하게 청소했습니다. 더 이상 비둘기가 앉지 못하도록 철망으로 막아 버렸습니다. 거금 27만원 들였지만 얼마나 시원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수십 년 동안 세상 죄악으로 가득 찬 냄새나는 우리의 성전을 누가 청소해 줄 수 있겠습니까? 어떤 전문 청소업체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더러워진 성전을 뒤집어엎고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9:13,14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말합니다. 세상 어는 것으로도 우리의 더러워진 죄를 깨끗케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님의 보혈만이 우리의 더러워진 성전을 깨끗케 할 수 있습니다. 죄로 더러워진 우리의 성전을 깨끗케 해주신 예수님의 보혈을 찬양합니다.

 

저는 2년 전에 TV켜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퇴근하여 집에 있을 때면, 내 고향6, 생생 정보통, 일일연속극까지 보았습니다. 처음 한 두 번은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아야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연속극 2번만 보면 다음 회 차가 궁금해서 볼 수밖에 없게 하는 중독성이 있었습니다. 연속극 시간이 되면 저도 모르게 TV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TV를 거실에서 예슬이 방으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예슬이 침대에 누워 더 편하게 보게 되었습니다. 연속극 보고 나면 이상하게 힘이 쭉 빠졌습니다. 연속극 하나 끊지 못하는 자신에 절망감이 들었습니다. TV가 괴물처럼 보였습니다. TV를 뒤집어엎어 버릴 수 없어서 선을 잘라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젠 선도 없는 더 강력한 스마트폰이 침대까지 파고 들어왔습니다. 저는 올 초 주일본문을 암송하고자 하는 기도제목을 잡았습니다. 1월 한 달은 침대에 누우면 스마트폰 말씀 어플을 열고 말씀을 암송하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남북정상회담 등 빅뉴스가 나오면서 말씀을 보던 스마트폰이 뉴스를 보는 폰으로 바뀌었습니다. 침대에 누우면 다시보기로 JTBC, MBC, SBS를 돌아가며 똑 같은 뉴스를 반복해서 보았습니다. 뉴스를 보고나면 네이버 맛 집, 자동차까지 메뉴판이 늘어갔습니다. 앉기만 하면 저도 모르게 스마트폰 인터넷을 여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번 여름수양회 때 목자님들의 소감과 하은이 소감을 들으면서 스마트폰이 우리의 성전을 시장바닥으로 만들어 잠도 제대로 못 자게 하는 괴물임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을 부서 버리고 2G폰으로 바꾸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구입한지 얼마 안 되어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집에 가면 학교 등교하자마자 선생님께 핸드폰을 제출하는 중고학생처럼 스마트폰 상자를 만들어 넣어야겠습니다. 말씀 암송할 때만 보아야겠습니다.

 

. 하나님을 믿으라(20-25)

 

21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전날 예수님께서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저주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보니 그 무성했던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버린 것입니다. 이를 본 베드로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내게도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이런 능력을 주실 수 없나요하는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다같이 22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Have faith in God” “하나님을 믿으라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고 웅장한 헤롯 성전이나 성대한 제사 행위에서 능력이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말씀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사람, 돈이나 권력을 의지하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라 말씀하십니다.

 

그럼 우리가 믿어야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골로새서 1;16에 보면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말씀합니다. 헤롯 성전은 수만명의 인부와 수천대의 마차가 동원돼서 80년 만에 완공되었습니다. 그러나 천지 만물은 인부 한명 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로 6일 만에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 한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가 되십니다. 땅에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자 과일나무가 난 것입니다. 무화과나무가 나온 것입니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왕권이나 통치권과 같은 세상 권세도 하나님께로 말미암았습니다. 만물이 다 하나님께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로마서 4:17절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지 사흘이나 되는 예수님을 살리셨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75세가 되도록 자식하나 없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시고, 하늘의 허다한 별과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은 수많은 후손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며칠 후 십자가에 돌아가실 예수님께서 이 하나님을 믿으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유산으로 남겨 주시고자 하십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유산을 받은 제자들의 변화된 보습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3:6을 같이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라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들어가려는데 날 때부터 앉은뱅이요 거지가 된 자가 성전 앞에서 한 푼 주세요구걸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돈 없는 빈털터이었습니다. 구걸하는 그에게 너도 짠하지만 나도 불쌍하다 하며 지나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가라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가 일어났습니다. 뛰며 찬송하였습니다. 나사렛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을 때 은과 금을 벌 수 있는 힘 찬 인생을 살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계집종 앞에서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했던 두려움 많던 베드로가 살기등등한 종교지도자들 앞에 당당히 나아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였느니라이들의 죄를 책망하고 회개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럴 때 한번에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죄의 포로 되어 어두운 인생을 살던 자들을 의의 종으로 유쾌한 인생을 살도록 하였습니다. 돈도 세상 권세도 없지만 하나님을 믿을 때 이처럼 능력 있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생명을 살리는 인생, 사람들을 옳은 데로 인도하는 별과 같은 멋진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3주전에 루마니아 조 이삭 선교사가 LG전자에 합격했다는 믿기지 않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1년 전에 발목 수술하고 절뚝거리며 루마니아 선교사로 나갈 때 만해도 저러다 한 두 달도 못 견디고 돌아오면 어떻게 하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1년이나 버텼습니다. 길고 나는 사람도 들어가기 힘든 우리나라 최고의 대기업에 입사했습니다. 요즘 대기업에 입사하려면 외국어 점수는 기본이고, 인턴, 봉사활동, 알바 등 직무관련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조 이삭 선교사님은 다양한 과목에서 권총을 맞은 것 외는 다양한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고 루마니아 선교사로 나갔을 때 다양한 경험이 있는 자처럼 보이게 하시고 LG전자에 입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실로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없는 자를 있는 자가 되게 하십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신 하나님을 찬양 합니다

 

23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믿음이 있으면 요지부동의 산도 들어서 바다에 던질 수 있습니다. 저는 작년에 온몸에 전치 3도 이상의 화상을 입고 40번이상의 수술을 했던 이지선 씨가 한동대학교 상담복지학과 교수로 채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름수양회 특강강사로 초청하고자 연락했는데 외국 출장 간다고 다음에 오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정말 믿음으로 수많은 산을 옮겼습니다. 사고 직후 그는 어여쁜 얼굴에서 괴물처럼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이러고도 살아야 하는가 삶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31:6 “내가 너를 다시 세우리라하나님께서 이지선 자매를 다시 세상가운데 세우고 힘들고 병든 연악한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게 할 것이라는 목사님이 주신 말씀을 믿고, 40여 번의 수술의 산을 넘었습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 오빠오까로 발음해서 불가능하게 보였던 영어 산을 넘었습니다. 홀로 유학을 가서 석사, 박사 학위의 산을 넘었습니다. 42.19km 마라톤 완주의 산도 넘었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대학교수의 자리에 우뚝 세우셨습니다. 병들고 연약한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위대한 인생, 화상 이전의 삶보다 더 행복한 인생을 산다고 고백하는 진정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도저히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산도 옮겨 바다에 던질 수 있습니다. 17: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까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산을 옮기고 질긴 뽕나무 뿌리를 뽑으려면 엄청난 믿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작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됩니다. 작지만 온전히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가능합니다.

 

저는 여름수양회 양들을 초청하기 위해서 1학기 매주 금요일 마다 4명의 양들에게 점심을 사주며 만났습니다. 점심 먹자고 연락할 때면 달려오던 그들이 수양회 초청에는 연락이 없고 오지 않았습니다. 캠퍼스에 나가서 복음 전해도 대부분의 양들이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고 반응이 없었습니다.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이런 양들을 또 만나려고 생각하면 죽은 자를 만나러 가는 기분이 듭니다.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제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을 믿으라 말씀합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와 같던 박 민우 형제를 여름수양회 이후 살아나게 하시고 신실하게 예배와 일대일을 참석하게 하신 하나님을 믿으라 말씀하십니다. 제가 힘든 캠퍼스 양들을 바라보지 않고 죽은 자도 살리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겠습니다. 요지부동의 산을 옮기는 하나님을 믿어야겠습니다. 예레미야서 32:27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말씀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십니다. 죽은 자도 살리는 하나님이십니다. 산을 옮기는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이 하나님을 믿고 죽은 자 같은 양들을 다시 만나 말씀을 주며 돕길 기도합니다.

 

24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자연스럽게 생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믿음이 생깁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습니다. 저희가 덥지만 적극적으로 새벽을 깨워 기도하길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은 말씀한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신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가을학기에 저희가 이 하나님을 믿고 산을 옮기는 믿음의 체험을 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