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마가복음 21(김요나단)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말씀 / 마가복음 11:27-12:17

요절 / 마가복음 12:17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우리는 지난 시간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쫓아내시고 성전이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 되도록 깨끗하게 하신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때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무슨 권위로 성전에서 이런 일을 하는지 반발하며 따져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허락도 없이 성전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 못 마땅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권위가 어디서 왔는지 종교지도자들에게 역으로 질문하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요한의 세례를 인정하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기는 싫었습니다. 또한 백성들은 세례 요한을 하나님이 보내신 참 선지자로 믿었기 때문에 요한의 세례를 인정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반발할 것이 두려웠습니다. 결국 종교지도자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33) 하고 대답을 회피했습니다. 이런 종교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은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 자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시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포도원 농부의 비유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 인간의 죄악이 너무나 선명하게 대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의 모든 내용이 다 들어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권위 앞에 순종하는 영적 가치관을 소유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포도원 농부의 비유(11:27-12:12)

 

비유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12:1절을 보십시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아주 기름진 땅을 골라 가장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포도주를 제조할 수 있는 즙 짜는 틀도 만들었습니다. 짐승과 도둑을 막을 수 있게 산울타리를 두르고 망대를 지었습니다. 주인은 포도원을 위하여 더 이상 할 것이 없을 정도로 최상의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길거리에 나가보니 심각한 청년 실업으로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를 본 주인은 그들을 다 농부로 고용해서 포도원에서 일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농부들은 아이들이 아빠, 나 탁구레슨 시켜주세요’ ‘저 소고기 먹고 싶어요’ ‘우리도 요셉이네처럼 저~~기 강원도 놀라가요~’ 할 때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에게 일할 기회를 준 주인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포도원 주인에게 농부들의 감사의 카톡 메시지가 쏟아졌습니다. ‘고마워요. 사랑해요. 하트 뿅뿅’ ‘우리 포도원 주인님 킹왕짱! 엄지척!’ 주인은 행여나 농부들이 주인의 눈치를 볼까봐 아예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세를 내주고 멀리 타국으로 장기 출장을 갔습니다.

 

주인은 때가 이르자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세로 받고자 했습니다. 주인은 농부들이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소출의 얼마를 바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농부들의 반응은 전혀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들은 세를 바치기는커녕 종을 잡아 심히 때려서 빈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를 본 주인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만일 제가 주인이었다면 분노가 폭발했을 것입니다. 박마가 목자님께 부탁해서 당장 종들을 잡아다 족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포도원 주인은 어떻게 했습니까? 또 다른 종을 보냈습니다. 주인은 종이 무례한 태도로 농부들을 대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하며 상냥하고 섬김이 풍성한 조엔젤라 사모님은 같은 종을 다시 보냈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오히려 종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주인은 보낼 수 있는 종들은 다 보냈습니다. 이제 딱 한 사람이 남았습니다. 그는 바로 주인이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지금까지는 종들이 갔기 때문에 농부들이 무시할 수 있었겠지만 아들만큼은 존대하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상속자인 아들을 죽이면 자기들이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아들을 죽여 포도원 밖에 던져버렸습니다. 이에 주인은 분노하여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이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농부들은 좁게는 유대인들과 종교지도자들, 넓게는 우리 모든 인생을 가리킵니다. 종들은 선지자들을, 아들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이 비유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첫째, 하나님은 은혜가 풍성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열매 맺고 행복한 인생을 살도록 모든 환경을 완벽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은 모든 것이 완벽한 에덴동산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정성껏 포도원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건강과 재능을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공부도 하고 일도 하며 자립적이고 열매 맺는 인생을 살도록 해 주셨습니다. 또 사랑하는 가족과 은혜가 넘치는 교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캠퍼스 포도원을 주셨습니다. 캠퍼스 포도원은 해마다 수많은 학생들이 들어오고 나갑니다. 우리는 젊음이 가득한 캠퍼스 포도원을 가꾸며 생동감 있고 힘찬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에 엘리야 팀 목자님들과 캠퍼스에 전도하러 갔습니다. 직장생활하느라 바쁘고 피곤했던 목자님들이 캠퍼스를 나가 복음을 전할 때 생기가 도는 것을 보았습니다. 미국 국제수양회 후 캠퍼스를 방문한 목자님들의 모습이 더 없이 행복하고 열정이 넘쳐 보였습니다. 이처럼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생기가 돌고 행복하게 하는 캠퍼스 포도원을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올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일생 필요한 의식주를 바리바리 싸들고 태어나는 것 보셨습니까? 맨몸으로, 빈손으로 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아름다운 포도원을 예비해 놓고 기다리셨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고생을 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때마다 모든 것을 예비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베스트의 포도원을 만들어 주시고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 않으십니다. 비유의 포도원 주인이 멀리 타국으로 갔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어 주십니다. 우리가 정복하고 다스리고 생육하고 번성하는 인생을 살도록 한걸음 물러나서 지켜봐 주십니다. 우리 각자에게 풍성한 인생의 포도원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둘째, 하나님은 인내와 사랑이 풍성하십니다. 비유에서 하나님은 농부들이 종들을 때리고 능욕하고 죽이는데도 끊임없이 보내고 또 보내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그만큼 우리에게 기대를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내 종을 공경하겠지” “이번에는 좀 다르게 나오겠지우리가 어떻게 나와도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우리 인생들을 나쁘게 보지 않으십니다. 그저 좋게 보십니다. 저는 막내 소향이는 무슨 짓을 해도 그저 눈에서 하트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는 눈이 아마 그럴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에게 계속해서 속으시고 당하시면서도 절대로 빨리 손을 쓰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소망을 품고 계속해서 기회를 주십니다. 요한복음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말씀처럼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시기까지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이는 참으로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종들에게도 그렇게 악하게 대했는데 아들이라고 잘 대하겠습니까? 이는 너무나 무모해 보입니다. 하나님이 너무 순진하고 바보 같습니다. 하나님은 왜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아들까지 보내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그만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독생자를 사랑하시는 것만큼이나 우리도 동일하게 사랑하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실 때에 경호원 한 명도 대동시키지 않았습니다. 아이언맨 슈트를 입혀 보내거나 재벌처럼 많은 돈을 주시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보내셨습니다. 조금이라도 거부감이 들까봐서 가난한 집안에 평범한 아이로 보내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인격적이고 섬세하신 분이십니다. 강압적이지 않습니다. 끝까지 인내하시고 사랑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면 눈이 멀게 됩니다. 주니어 팀 사모님들이 모일 때 가끔씩 남편 흉을 보면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 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승리 목자님은 그때마다 할 말이 없다고 합니다.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저를 사랑하여 흉볼 허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둘이 있을 때는 그때 그래서 좀 답답했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허물이 허물로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 자식이 최고로 예쁘게 보이고 단점조차도 귀하게 보입니다. 때문에 부모는 무모할 정도로 자식에게 대해서 전폭적입니다. 맹목적입니다. 자식에게 속고 속으면서도 계속해서 자식에게 정성을 쏟아 붓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가 잘못할 때마다 징계하셨다면 저부터 시작해서 여기 앉아계실 분이 한 분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지금도 우리에게 대한 기대를 끊지 않고 계십니다. 지금도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순종하며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십일조의 작은 소출을 받기 원하십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돈이 필요해서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 분입니다. 다만 하나님은 십일조의 작은 소출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인이요 우리는 청지기라는 사실을 인식시켜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감사의 소출을 드리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많은 축복을 베풀어 주십니다. 주님이 요구하시는 소출은 우리에게 축복주시기 위한 꼬투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포도원 농부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없습니다. 포도원 농부들은 처음에는 직장도 없이 빈둥거리는 자신들을 고용해 준 주인에게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감사가 사라졌습니다. 땀 흘려 일하면서 자기 의만 늘었습니다. 탐스럽게 열린 포도를 보면서 ! 내 수고의 결실이구나생각했습니다. 소출의 얼마를 요구하는 주인이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올해처럼 지독한 폭염 속에서 죽어라 일한 사람인 나인데, 주인은 먼 타국에 가서 놀기만 해놓고 소출을 요구하다니그런데 농부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습니다. 여름에 땡볕에서 땀 흘린 사실은 알았지만 그 땡볕 때문에 포도가 맛있게 익었다는 사실은 간과하였습니다. 비 맞으며 수고한 사실은 알았지만 그 비 때문에 포도송이가 탐스럽게 영글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생각이 자기중심적입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는 당연한 것이고 자기가 한 수고만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모든 일을 내 편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감사가 사라지고 원망, 불평만 남게 됩니다.

 

그러나 포도원 농부들처럼 우리도 아무런 대가도 없이 거저 포도원에서 일할 수 있는 특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포도원은 다 하나님이 창조하셔서 공짜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건강, 재능도 다 하나님이 주셔서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폭염에도 건강을 지켜 주시며, 센터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며 하나님께 예배드리게 하심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름수양회를 통해 풍성한 은혜를 주시고, 시온성회를 통해서 떡을 떼며 교제하게 하심이 감사가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8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말씀처럼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이들의 문제는 탐심입니다. 그들은 탐심에 눈이 멀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에 눈이 멀어서 계속해서 종들을 보내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까지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농부들은 탐심에 눈이 멀어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종들을 능욕했습니다. 마침내는 하나님의 아들까지 죽였습니다. 그들은 탐심에 눈이 멀어 눈에 뵈는 것이 없었습니다. 주인이 주인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소작농이라는 사실을 잊어 버렸습니다. 자신들이 주인인양 교만을 떨었습니다. 교만과 탐심이 살인이라는 무서운 죄를 낳게 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1: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습니다. 정치인들이 아무리 도덕성에 문제가 있어도 경제를 살리겠습니다!’ ‘경제 대통령하면서 잘 살게 해주겠다고 하니까 대통령에 당선이 됩니다. 사람들은 먹는 것에도 탐심이 대단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맛있고 비싼 음식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먹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온갖 먹방, 맛집 소개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남들보다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먹어도 그것이 진정한 행복을 주지 않습니다. 솔로몬 왕은 세상 어떤 왕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고백했습니다. 반면 아버지 다윗 왕은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님 한 분만 믿고 의지하며 치열한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23:1)하며 행복한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좀 부족한 듯해야 행복이 있습니다. 내게 좀 모자란 부분이 있어야 하나님을 찾고 기도합니다. 부족함이 없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전순기 목자님은 차장으로 승진하고 마냥 좋을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업무가 생소한데다 일도 너무 많아 주말부부처럼 사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거기다 깐깐한 상사 밑에서 매일 힘든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힘들 때 오히려 짧은 시간이라도 새벽에 나와서 양식 보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전순기 목자님이 이처럼 간절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별로 본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할 때 이 고난을 이기고 승리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을 믿습니다. 우리도 내게 2% 부족할지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섬기기에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비유에서 농부들은 종들을 죽여 버리면 소출이 자기 것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아들을 죽여 버리면 포도원이 자기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착각이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포도원 주인은 지금까지 힘이 없어서 당하고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무능력해서 우리의 죄를 그냥 두고 보신 것이 아닙니다. 농부들의 가장 큰 실수는 주인이 어떤 분이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세상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가진 모든 것이 본래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고 모든 것을 다 가져가실 수 있는 권세와 주권을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눈 감고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인내하며 기다리시지만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반드시 심판의 칼을 드십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시면 무섭습니다. 하나님은 농부들이 하는 것처럼 그냥 머리에 상처 내고 능욕하는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진멸하고 모든 것을 다 빼앗아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주님의 말씀을 새겨들어야 하겠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께서 과연 어떻게 하시겠는가?”

 

여름수양회 이후 주니어 학사 목자님들이 매일 양식을 써서 나눔으로 서로 힘과 위로를 얻고 있습니다. 양식 소감을 통해 자신의 고민, 죄에 또 다시 넘어진 부끄러운 모습, 내면의 갈등과 고통, 걱정, 근심 등을 진실되게 고백하며 예수님을 의지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렇지 않아도 피곤하고 힘든데 양식 좀 쓴다고 당장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또 일용할 양식과 새벽기도를 가볍게 여기고 육신의 소욕과 자기 생각대로, 세상 흘러가는 대로 산다고 당장 무슨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한 번이 나의 신앙생활과 인생 전체에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심판의 칼을 빼시기 전에 정신 차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이 예수님께 주인의 자리, 왕의 자리를 내어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내가 사는 길입니다. 그것이 내가 행복하게 되는 길이요, 축복받는 비결입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예수님은 건축자들이 쓸모없다고 버린 돌처럼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버려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버린 돌처럼 되신 예수님을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은 옛날에 건축을 할 때 기준이 되는 중요한 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구원역사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십니다. 예수님 중심으로 구원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가 중심이 되려고 합니다. 내가 내 인생의 머릿돌이 되기 원합니다. 나를 중심으로, 내 생각, 내 계획, 내 뜻대로 멋있는 내 인생의 집을 짓기 원합니다. 이를 방해하는 자들은 다 장애물로 여기고 거부하고 배척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배척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살고자 하면 어떻게 됩니까? 누가복음 20:18절에서는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고 했습니다. AD 70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유대인들은 로마 디도 장군에 의해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멸망하여 2천 년 동안 나라 없이 전 세계에 흩어져 모진 고난과 핍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내 인생의 장애물로 여기고 배척하고 내 생각대로 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퉁이의 머릿돌 예수님 위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고 가루가 되어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진정 지혜로운 인생은 예수님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내 인생의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고 예수님 위에 인생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떤 환난이 와도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을 영생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이 세상에 가장 크고 놀라운 일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필요 없다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사 가장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이 참된 보화입니다. 이 예수님이 가장 큰 재산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정말로 귀하게 여기고 욕심 부려야 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다른 것들이야 언젠가는 다 썩고 없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하십니다. 예수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생명이 있고 구원이 있습니다. 사랑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골로새서 2:3절에 예수님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다 감추어져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농부들은 주인의 아들을 환영해야 했습니다. 잘 대접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더 좋은 것을 넘치도록 주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엄청난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10분의 1의 작은 소출을 요구하십니다. 작은 정성과 시간과 진심을 바치기 원하십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주님이 주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길 원하십니다. 내가 이것을 인정하고 작은 것을 드리면 주님은 더 많이 우리에게 주십니다. 더 넘치도록 축복해주십니다.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고 내어 주신 하나님이 무엇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12:13-17)

 

13-17절에 보면 바리새인과 헤롯당이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동전에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져 있지 않느냐, 그러면 당연히 가이사에 바치라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말씀하셨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진 동전은 가이사에게 바쳐야 하듯이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다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예술가들은 작품을 만들어 놓고 밑에다 직인을 찍어 자기 것임을 밝힙니다. 우리 영혼에는 Made by God 이라는 하나님의 직인이 찍혀 있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이 세상에 내 것은 없습니다. 다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의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께 드리기에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캠퍼스 포도원의 농부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하나님께 자신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저의 인생을 크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가장 큰 구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일생을 캠퍼스 포도원을 섬기는 청지기로서 소명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주시고 사랑스러운 자녀들도 주셨습니다. 사랑이 풍성하고 다양한 은사를 가진 동역자들과 함께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해마다 캠퍼스 양들을 보내 주셔서 섬기는 축복도 주셨습니다. 시카고에서 4개월 인턴 훈련과 국제수양회를 통해 세계선교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많은 선교사님들과 교제하며 영적인 지경을 넓혀 주셨습니다. 특별히 이번 여름수양회는 준비하던 과정부터가 너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혹독한 폭염 속에서도 수양회 첫날부터 학생 목자, 양님들의 마음을 활짝 열어 주시고 목자님들이 적극적으로 영적 분위기를 이루어 주심으로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말씀과 소감은 어느 것 하나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은혜와 감동이 있었습니다. 수양회가 끝난 후에도 학생들에게 순종적인 마음을 주셔서 율동 교육에 참여하게 하시고 여호수아서, 로마서 말씀특공대를 통해 은혜를 받게 하셨습니다. 주니어 학사목자님들이 양식을 쓰며 교제하게 하신 것도 참으로 놀라운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구동한 형제가 수양회에 참석하고, 하윤수 형제가 다시 와서 말씀을 공부하며 관계성을 회복해 가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번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 세상과 복음 역사 그리고 저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인간적으로는 나만의 삶을 꾸리고 싶은 유혹을 받는 때도 많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 눈치보지 않고 마음껏 시간과 돈을 써보고 싶고, 늘 말과 행동에 조심하여 본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 목자로서의 무한한 책임감 등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번 하나님의 것으로 부름받은 이상 하나님 품에 안기기 전에는 이 모든 것을 벗을 수 없는 나의 삶이 오히려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여전히 정욕과 게으름, 미움과 분노 같은 죄의 세력에 쉽게 넘어지는 연약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사명도 열매도 없이 빈둥거리다 멸망할 자를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구원역사에 사용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땅 끝 해남 촌놈인 나 같은 자가 무엇이관대 하나님께서 죄로 죽을 영혼을 살리는 목자로 세워 주셨습니까? 수많은 사람 중에 저 같이 연약하고 부족한 자도 부르셔서 말씀의 종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랍습니까? 선한 것 하나 없는 가문에서 난 이 자를 감히 예수님의 피로 사신 교회와 주님의 자녀들을 섬기는 것이 가문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 비천한 저의 인생을 모퉁이의 머릿돌 되신 예수님 위에 세우시고 사용하신 은혜에 감사 찬송을 드립니다. 여름수양회 이후 여러모로 안일하여 시간을 허비하기 쉬운 때 말씀을 맡겨 주시고 영적 투쟁을 감당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김느헤미야, 전규조, 한충신 목자님들이 국제수양회 참석함으로 빈자리를 감당하고자 새벽부터 깨어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 분들의 빈자리를 체감하면서 그동안 너무 안일하게 살았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벌써 40이 된 제 나이도 믿기지 않습니다. 그동안 뭐했는지 돌아볼 때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열심히 인생과 가정, 교회와 캠퍼스 포도원을 가꾸어야 하는데 너무 안일했습니다. 이를 회개하고 더욱 깨어 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에 힘써야겠습니다. 뻬어난 말씀의 종이 되고자 말씀통독과 연구를 통해 가르치기에 힘쓰고 학생 제자양성에 전심전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가오는 2학기에는 어찌하든지 제자양성하며 학생회가 말씀을 가르치고 양들을 섬기는 목자들이 되도록 도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요, 우리는 청지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욕심 부리지 말고 주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함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드리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지막 기회로 주신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영접해야 하겠습니다. 이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을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산돌이신 예수님 위에 내 인생의 집을 지어서 주님과 함께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자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