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26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말씀: 마가복음 16:1-20

요절: 마가복음 16: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기독교는 고난의 종교이지만 또 부활의 종교요, 승리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의 인생이 십자가로 끝이 난다면 고맙기는 하지만 왠지 슬프고 안타까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로서 예수님은 부활의 주, 생명의 주가 되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부활 주 예수님을 깊이 영접하길 기도합니다. 또 부활의 생명력을 덧입고 힘써 세계선교 사명을 감당하길 기도합니다.

 

. 부활하신 예수님(1-14)

 

1절을 봅시다. 안식일이 지나자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예수님 시체에 향품을 발라 드리기 위해 무덤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예수님께 큰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특히 9절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에 들렸는데 예수님께서 쫓아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로 부터 받은 은혜를 어찌든 갚고자 여인들은 아직 동이 트지도 않았는데 대담하게 무덤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여인들은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덤 앞에 돌을 누가 굴려 주지?” “이럴 줄 알았으면 건주 목자를 데려 올 걸” “빨리 전화해 봐요” “핸드펀 꺼져 있네, 도대체 뭐하고 있지?” 이렇듯 걱정스런 마음을 안고 무덤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었습니다. 무덤을 막는 돌은 장정들 3,4명이 동원되어야 굴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큰 돌이 굴려져 있으니 여인들은 더 놀랬습니다. 무덤 안에 들어가 보니 무덤 안에는 흰 옷 입은 한 청년이 앉아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그 청년은 천사라고 했습니다. 천사가 여인들에게 말했습니다.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천사는 말했습니다. “놀라지 말라놀라게 해 놓고는 놀라지 말라고 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여인들은 지금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죽은 예수를 찾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찾고 있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체를 붙들고 실컷 울어보고 싶었습니다. 사람이 힘들고 어려울 때 목 놓아 울고 나면 좀 속이 후련합니다. 일종의 카타르시스 작용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겨우 카타르시스나 제공하는 분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만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사랑하지만 왠지 마음이 슬프고 멜랑콜리합니다. 찬송가를 불러도 약간 구슬픈 곡을 좋아합니다. 물론 예수님은 나의 죄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로서 나의 죄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에 머물러 계신 분이 아닙니다. 천사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He has risen. He is not here. 예수님은 살아나셨습니다. 사망권세를 파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로서 죽음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죽음을 정복하셨습니다. 이로서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심을 증명하셨습니다.

 

역사 속에서 이런 저런 질병을 퇴치한 훌륭한 분들이 있습니다. 페니실린을 개발한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 1881~1955)박사는 정말 고마운 분입니다. 20세기 초반까지 세균에 감염되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 부상당한 병사들이 감염으로 인해 속절없이 죽어갔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플레밍이 1928년 페니실린을 개발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전염병과 감염으로부터 구해냈습니다. 그 공로로 플레밍은 1945년에 노벨의학상을 받았습니다. 페니실린의 개발은 정말 혁명적입니다. 요즘은 의술이 발달해서 암도 많이 치료합니다. 그러나 수명을 조금 연장할 뿐이지 근본적으로 죽음을 정복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비어 있는 무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증명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모든 인생들에게 가장 고맙고 복된 소식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만의 부활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1:25,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시기 때문에 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로마서 8:11절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부활의 영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부활로서 승리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승리를 주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는 슬픔과 패배감에 젖어 살지 않습니다. 기쁨과 의욕이 넘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두려움과 허무에 지배당하지 않습니다. 담대함과 희망이 가득한 인생을 삽니다. 불가능에 도전하며 정복하고 다스리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전규조 목자님이 8년 전에 심장에 큰 고통을 느끼고 위험한 순간을 만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치료되신 후에 죽을 때 죽더라도 주의 일을 하다가 천국 가고자 결단하셨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새벽 3시에 교회로 출근하셔서 청소하고, 쓰레기 치우고, 화단 정리 등을 다 하십니다. 천국이 가장 가까운 4층에서 성경 읽고, 기도하고, 악기 연주하며 사시기 때문에 80대이신데 청년의 스피릿으로 살고 계십니다. 태평양 건너 미국수양회도 참석하시고 전혀 몸살도 나지 않고, 한국 오신 그 다음부터 하루도 결근하지 않고 충성하고 계십니다. 부활의 생명력을 덧입게 되면 나이의 한계도 극복하게 됩니다.

 

지난 수요일 캠퍼스 점심 모임때 1학년 남수민 형제가 전옥합 목자님을 보며 물었습니다. “저 누나는 몇 학년이죠?” 그 말을 듣고 옥합목자님이 너무 기뻐서 한턱 크게 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준경 목자님이 말했습니다. “, 몇 학년으로 보여?” 이분들이 본래 그런 분들이 아닙니다. 한때 슬픔 많고, 패배감에 젖어 있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력을 덧입자 살아났습니다. 캠퍼스를 휘젖고 돌아다니며, 전도하고, 종횡무진 양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자 학생 때의 스피릿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죽은 예수님만 붙들고 있지 말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나의 슬픈 처지만 바라보고 울지 말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소망찬 인생, 활기찬 인생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10월부터는 학생회 파트모임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어제 학생회들이 모여서 펠로우십을 나누는 것을 보니까 활기가 느껴졌습니다. 메시지 쓰는데 좀 시끄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젊음의 활기가 느껴져서 감사했습니다. 학생회들이 전공과 장래문제에 대한 근심에 눌려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승리하신 예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미 승리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고 정복하고 다스리고 개척하는 인생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의존심을 버리고 자립적으로 전도도 하고, 일대일 하고, 맹렬하게 공부해서 승리하는 가을학기가 되길 기도합니다.

 

천사로부터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전해들은 여인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8절에 보면 여인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부활소식은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9절을 봅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가장 먼저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마리아는 너무 감격했을 것입니다. 일곱 귀신에 들려 고통하던 자신을 치료해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부활의 주님을 맨 처음 만나는 영광을 덧입었으니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마리아는 이 감격을 혼자 간직할 수 없어 예수님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셨어요.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이제 슬퍼하지 마세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니까요?” 그러나 제자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사실도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다는 사실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면 제자들에게 먼저 나타나시지 귀신들렸던 마리아에게 나타나실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마리아가 또 귀신들린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12절에 보면 예수님은 시골로 가는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이들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도 처음에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 성경을 풀어 설명해 주시자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24:31,32). 이들이 가서 다른 제자들에게 알렸지만 역시 믿지 않았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 부활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알 수 있습니다.

 

14절을 봅시다. 예수님은 열 한 제자가 음식을 먹고 있을 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불신과 교만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 문제입니다. 때문에 책망해서라도 믿도록 도와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분명한 증거가 있습니다. 빈 무덤이 증거입니다. 증인들이 많습니다. 본문에도 막달라 마리아, 두 제자들, 다른 제자들이 직접 보았습니다.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의심 많은 도마가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직접 넣어보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0:28)” 예수님은 피조물이 아닙니다. 사망권세를 파하고 승리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면 왜 죽음을 이기지 못하시겠습니까?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해야 하겠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3:10,11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그는 부활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예수님의 죽으심에 동참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3,4절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베드로는 본래 두려움이 많아서 여종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후 담대해졌습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소망으로 충만했습니다. 핍박 때문에 두려워 하는 성도들을 위로하는 담대한 믿음의 종이 되었습니다.

 

리 스트로벨 목사가 지은 <부활의 증거>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본래 무신론자였고, 시카고 트리뷴지 기자였습니다. 아내가 교회 다니겠다고 하자 과연 성경이 사실인가? 예수의 부활을 믿을 수 있는가? 샅샅이 조사하고, 취재를 하기 시작합니다. 기자들의 생리는 비리를 파헤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고가 회의적이라고 합니다. 그는 19개월동안 2200여편의 부활에 관한 데이터를 탐독합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석학들을 찾아 다니며 인터뷰를 합니다. 그 결과 그는 마침내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성경이 허구가 아니란 결론에 도달합니다.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32개 나라, 54개 도시, 9개 섬을 조사해 보니까 단 하나의 착오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1981118일에 그는 마침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 그동안 제 삶은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삶과는 거리가 물었습니다. 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죄를 지었고 그래서 정말 죄송합니다. 이제 저의 길에서 벗어나 주님의 길로 행하고 싶습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로서 저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셨음을 최선을 다해 믿습니다. 이제부터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도록 저의 삶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그는 후에 목사가 되었고, 윌로우크릭 교회와 새들백 교회에서 사역하며 많은 신앙서적을 저술했습니다. 그의 회심과정을 그린 작품이 <예수는 역사다>라는 영화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2000년 전에 일어난 과거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지극히 교만하고 냉소적인 신문사 기자도 변화시켜 주의 종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놀라운 생명력이 있습니다.

 

. 복음전파의 사명을 주신 예수님(15-20)

 

이러면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1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온 천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왜 복음을 전해야만 합니까? 16절을 봅시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습니다. 반면에 믿지 않는 사람은 죄 가운데 살다가 정죄 받고 심판에 이를 수 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절대적으로 복음을 전해야만 합니다.

앞에서 말한 리 스토로벨 목사는 예수님을 믿기 전 겉으로는 똑똑한 체 했지만 내면은 죄로 심히 어두웠습니다. 술 취함, 방탕, 부도덕, 혈기와 분노로 가족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런 그가 복음을 영접하고 삶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그의 변화에 감동을 받고 딸도 기독교 동화작가가 되었고, 아들도 목사후보생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어떤 죄인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많은 사람들이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죄 가운데 살다가 심판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영혼들이 복음을 듣지 못해 파멸로 치닫고 있습니다. 누군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야만 합니다. 로마서 10:14,15절에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했습니다.

 

우리 선교사님들이 루마니아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랄루카 자매님이 복음을 영접하고 본국에 와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지난 말씀축제 때 눈물로 소감발표를 하고 루마니아로 돌아갔습니다. 루마니아에 가서도 매일 양식을 써서 저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라, 도라 자매님을 열심히 돕는 일대일 성경선생입니다. 지금 세계는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습니다. 지난주에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졌습니다. 남북의 철도가 곧 연결된다고 합니다. 기차타고 북한과 중국, 러시아, 유럽에 갈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김일성 대학에도 목자가 세워지고, 백두산에서 수양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요즘 캠퍼스에는 외국 학생들이 넘쳐납니다. 지난 말씀 축제때 우간다에 캐더린 자매가 참석했습니다. 지난주에 있었던 일본 수양회에도 현지 목자들과 2세 선교사들이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우상의 나라 일본도 변화되고 있습니다. 2주전에는 베네주엘라에서 여름 수양회를 했습니다. 국가부도상태 중에도 학생들이 수양회를 준비하여 양들이 120명이 참석했습니다. 베네주엘라는 벌써 20명의 선교사들을 중남미 여러 나라에 파송했습니다. 멕시코 우남대학은 학생수가 25만명입니다. 전대보다 10배나 많은 학생들이 있습니다. 중남미 땅에도 선교지원자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세계선교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많은 능력을 베풀어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17,18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우리는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 내가 부족한데 과연 할 수 있을까? 염려를 합니다. 그러나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귀신도 쫓아내고, 방언의 은사도 주셔서 외국어도 잘 하게 하십니다. 시카고에 임요셉 선교사님은 처음 미국 갈 때 영어 발음이 terrible 했지만 지금은 유창한 영어로 양들을 돕고 있습니다. 간호학 공부도 유급당하지 않고 잘 해 나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어린 제자들에게 세계선교명령을 주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두려워서 이리저리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20절에 보면 제자들이 나가 두루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들이 순종했을 때 많은 표적들이 나타났습니다. 말씀을 담대하게 증거했습니다. 부족한 제자들을 통해서 놀라운 사도행전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 되십니다.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파하고 승리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죽음의 요소를 정복하시고 승리를 주십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온 천하에 나아가 복음을 증거할 때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활의 증인이요,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복음의 일군들로 귀하게 써 주시길 기도드립니다.